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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낚시꾼의 눈에 비친 혼다 파일럿의 매력

국내에서 가장 인기 높은 레포츠는 뭘까요? 정답은 낚시입니다. 지난해 등산을 제치고 700만 명이 즐기는 국민 레포츠로 떠올랐죠. 다양한 장르의 낚시 가운데 기자는 붕어를 주로 낚는 민물낚시를 즐기고 있습니다. 새벽녘 스르르 올라가는 찌의 짜릿함은 형언할 수 없죠. 그런데 이 민물낚시에서 낚싯대만큼이나 중요한 장비가 자동차입니다. 낚시채비를 고이 모셔야 하는 것은 물론 강가나 늪지 혹은 물웅덩이 인근까지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죠. 혼다의 대형 SUV 파일럿을 우선 떠올린 이유입니다.

낚시에는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합니다. 특히 민물 붕어낚시처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붕어를 모으는 방식은 다른 장르에 비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 대의 낚싯대부터 낚시 받침틀과 좌대 그리고 낚시 전용 의자와 낚시 텐트, 취사도구까지 챙기면 웬만한 4인 가족 캠핑장비 규모에 버금갑니다.

이렇게 많은 짐을 한 번에 실을 수 있을까? 혼다 파일럿의 트렁크를 열고 차근차근 쌓아보기를 시작해 봤습니다. 우선 가장 부피가 큰 낚시용 좌대 발판을 바닥에 깔고 캠핑용 테이블과 낚시 가방 2개를 넣어보니 확실히 큰 트렁크 용량이 실감 납니다. 웬만한 자동차는 여기까지 싣기도 버겁거든요. 물론 장비 적재는 여기서 끝이 아니죠. 다양한 떡밥과 밑밥을 담은 상자 2개와 난로를 비롯한 겨울용 난방 장비, 낚시 받침틀과 짬이 날 때 사용하는 소좌대를 담았습니다. 넉넉하고 안정감 있게 트렁크를 꽉 채워보니 이제 떠날 준비가 된 듯합니다.

혼다 파일럿은 가솔린 SUV입니다. 이 장르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디젤 엔진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음과 진동이 적고 회전 질감도 부드럽습니다. 핸들링은 상당히 직관적인 데다가 3.5L V6의 직분사 엔진은 아쉬움 없는 출력(284마력)을 발휘합니다. 덩치가 커도 핸들링이 가볍기 때문에 처음 대면했을 때의 부담감을 쉽게 떨칠 수 있죠.

욕심을 부려 꽤 빠른 속도를 내봤습니다. 토크가 일정 영역에 쏠리지 않아서 고속에서도 추월이 쉬웠고, 핸들링도 중심을 잃거나 허둥대는 면 없이 정확하면서도 안정적입니다. 보디 롤도 생각보다 적고, 코너링 밸런스도 의외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혼다는 소비자들이 가솔린 SUV에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듯합니다. 이 차급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편의사양을 다 담고 있음은 물론 센서와 카메라를 기본으로 하는 차선이탈방지, 각종 경고 시스템과 전방 추돌방지 장치 등을 충실히 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연비는 가솔린 SUV라 조금 걱정됐는데, 복합연비 8.9km/L를 상회하는 10km/L를 기록했습니다. 시승을 위해 과감한 가감속을 반복했고 꽤 험한 지형을 통과한 결과라는 점을 생각하면 연비에 대한 걱정은 기우입니다.

큰 덩치이지만, 운전하기에 그리 부담스럽진 않습니다. 시야가 높아 확 트인 데다가 사이드미러와 룸미러 각도를 맞추니 차의 형태가 한 번에 들어올 만큼 운전자의 시야를 잘 고려하고 있습니다. 또 도어 포켓이 3층으로 있고 USB 충전단자와 컵 홀더도 모든 좌석에 설치되어 있으며 2열에서도 에어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파일럿에 탑승할 수 있는 8명 모두에게 부족함 없는 배려가 느껴집니다.

혼다 파일럿의 가속력은 꽤 인상 깊었는데 무엇보다 속도를 높이는 과정이 꽤 매끄럽습니다. 더불어 모든 영역에서 안정감 있게 출력을 더하는 과정은 상쾌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혼다 파일럿의 최고출력 284마력이 나오는 6천 rpm까지 끌어올리는 느낌은 짜릿하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LKAS와 ACC 등 주행보조 시스템도 충실히 챙겨놨더군요.

상당한 수준의 오프로드 대응도 가능합니다. 기어봉 하단의 버튼을 누르면 노멀-스노-머드-샌드 등 지형에 따른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룻밤 낚시 장소로 진입하기 위한 도로는 다소 질척거리고 땅 위에 수풀까지 우거져 있어서 웬만한 차로는 엄두도 못 낼 장소였죠. 노련한 전자식 구동형 배분 시스템은 푹푹 빠지는 흙길에서도 마치 범선의 항해처럼 안정감 있게 험로를 탈출합니다.

단점도 존재합니다. 다소 단조로운 인테리어 컬러나 2열의 플라스틱 소재들은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차선이탈경보장치는 그 동작이 투박하고 급제동시에 앞머리가 기울어지는 각도가 큽니다. 대형 SUV 특성이라곤 하지만 적응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낚시할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 대략적인 자리를 잡습니다. 요즘 같은 붕어 산란기는 낚시하기 참 좋은 시기죠. 좌대를 설치하고 낚싯대를 뽑으면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찌를 수심에 맞추고 붕어의 입질을 기다려봅니다. 깊은 저녁까지 몇 번의 입질을 받아보긴 했지만 붕어의 얼굴을 보는 데는 결국 실패. 꾼의 마음이 계절을 또 앞섰나 봅니다.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일어섭니다.

낚싯대와 좌대를 접으며 혼다 파일럿의 트렁크를 열고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하룻밤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상당히 피곤하죠. 이럴 때 가솔린 엔진의 부드러운 주행감은 진동과 소음이 더 큰 디젤차가 아니라는 점이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매끄럽게 가속을 끌어올리는 한편 부드러운 핸들링이야말로 혼다 파일럿의 장점이니까요.

Editor’s Note

낚시 장비는 낚시를 즐겁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본다면 혼다 파일럿은 낚시를 위한 자동차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디젤 SUV보다 주유비는 조금 더 들지언정 장비를 고민 없이 적재할 만한 공간과 정숙함이 있었고, 스포티한 생김새도 챙겼으니 일명 ‘하차감(내릴 때 우쭐한 마음)’도 좋더군요. 조금 더 날씨가 풀리길 기다려 혼다 파일럿과 다시 한번 낚시터를 찾아야겠습니다. 월척이 아니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김경수

김경수 기자

kks@encarmagazine.com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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