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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클래스 오너가 시승한 A클래스의 놀라운 점 5가지

필자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W213)를 보유중입니다. 가솔린 엔진 달린 E300이지요. ‘그런 평범한 걸 왜 샀냐’고 생각하실 텐데요. AMG GT 이후 의외로 벤츠도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특유의 주행감, 실내 분위기, 곳곳에 숨은 배려가 맘에 들었습니다. 전엔 BMW처럼 꽉 조여진 게 좋은 차라는 강박이 있었는데 최근의 취향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AMG GT 후기형은 꽤 무릅니다).
이렇듯 메르세데스는 특유의 감각이 있습니다. 짧게 타서는 느끼기 힘들고 ‘보유’해야 알 수 있는 거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벤츠를 두고 “따분하고 느긋한 차”라며 깎아 내렸었습니다. 한데 요즘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든 라인업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메르세데스-벤츠의 막내인 A클래스도 타보기로 했습니다. 값이 3,770만원(개소세 1.5% 기준)이라 헉 소리 나오지만 어차피 구매를 전제로 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래저래 요즘 메르세데스의 소형차 만듦새가 궁금했지요.

벌써 4세대를 맞이한 신형 A클래스. 2019년 9월에 국내 론칭했습니다. 3세대 모델은 디젤과 가솔린 모두 시승했는데 4세대는 완전 처음입니다. 제가 탄 건 2.0L 가솔린의 A220 해치백입니다.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30.6kgf∙m로서 VW 5~6세대 골프 GTI 급에 해당하는 준족입니다. 실제로 0→시속 100km 가속을 6.9초에 끊고 최고속도는 240km/h(리미터 작동)에 이릅니다. 온순한 생김새에 비해 상당한 실력이죠.

스펙 나열은 이쯤에서 거두고 바로 본론으로 갑니다. 신형 E클래스 보유자 입장에서 느낀 A클래스의 놀라운 점, 5가지만 콕 집어서 나열하겠습니다. 자, 놀라운 점입니다.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 아니라 ‘놀라운 점’이요.

첫째, 승차감이 E클래스 같다
많은 이들이 “요즘 벤츠 승차감이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다”거나 “BMW화 되었다”고 말하는데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전히 무르고 여유로운 편이에요. 메르세데스 특유의 플랫 라이드 성향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요철을 밟으면 ‘쿵’하는 다른 독일차와 달리 잔잔한 호수 위를 순항하는 듯 넘실거립니다. 그 느낌은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된 S나 CLS 클래스를 탔을 때 극대화되고, 주철 서스펜션에서는 아방가르드(로워드 서스펜션) 모델보다 익스클루시브(콤포트 서스펜션)에서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메르세데스 특유의 주행 감각. 그걸 A클래스가 품었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타고 있으면 주행감 면에서 E클래스와 다른 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길이 4,420mm짜리 콤팩트 해치백 승차감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콤팩트카 승차감은 으레 단단하거나 탄탄하게 조율해 빠릿한 운동성을 제공하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한데 A클래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부드럽고 쾌적해 후륜구동의 준대형 세단을 탄 듯합니다. 수요층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1시리즈를 사면 그만이죠.

둘째, 선회 능력과 고속안정성이 최고 수준
마일드한 녀석이 운동성도 훌륭합니다. 본격적으로 몰아 붙이면 갑자기 팽팽하게 긴장한 듯 롤링 없이 코너를 돕니다. 정말 예상 밖이었어요. 평소 순항할 땐 호수를 가르는 소형 선박 같았는데 코너에서는 차체를 일순간 응축한 듯합니다. 타이어를 좋은 거 쓰지도 않았습니다. 콤포트성을 강조한 미쉐린 프라이머시 3이고 사이즈도 205/55/R17입니다. 폭이 205mm면 아반떼 AD의 16인치 사양과 같은 거죠.

고속안정성은 제가 타 본 이 급의 차들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속도 리미터가 작동하는 영역에서도 너무 여유로워서 운전자는 할 일이 없습니다. 팔에 힘을 축 빼고도 그 속도로 내달리는 게 가능합니다. A220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단연코 하체입니다. 고속도로 출장이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차가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셋째, 운전재미가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코너를 빠르게 돌 수 있고, 6.9초 만에 ‘제로백’을 끊고, 변속기도 듀얼 클러치이고, 차체도 짤막하고, 심지어 독일차입니다만 운전의 재미 따위는 없습니다. 빠르게 이동한다거나 편하게 이동한다는 관점에서는 합격인데 재미있게 이동한다는 관점에서는 낙제입니다. 그래서 많이 타지 않게 됐습니다. 그냥 이동수단일 뿐이니 더 궁금할 것도 없었죠.

컬컬거리는 엔진 소리는 디젤 아닌가 싶을 지경입니다. 예전 독일차들의 쇠 냄새 나는 장엄한 사운드? 그런 거 없습니다. 변속기도 마음에 안 듭니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녀석이에요. 가령 신호 대기 후 슬금슬금 출발할 때 주저하는 게 10년 전 DSG 수준입니다. 다운시프트든 업시프트든 실제 입력보다 딜레이가 긴 것도 운전 재미를 깎아 내립니다.
참고로 구형 A클래스 듀얼 클러치는 더 심하긴 했습니다. 걔는 ‘반 클러치’를 너무 많이 써서 엔진 회전을 3,000rpm 이상 띄우는 것도 가능했죠.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신형은 그보단 낫습니다만 여전히 엉성하고 느슨합니다.

운전대의 피드백도 흐리멍덩합니다. 운전대 감각이야 뭐 메르세데스 벤츠 특성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요. 결국 A220은 빠르고 편한 차일 뿐 감성적인 무언가가 전무합니다. E클래스만큼의 편안함을 품되 E클래스만큼 운전 재미가 없습니다. 운전 재미를 원한다면 되려 골프 쪽이 나아 보입니다.

넷째,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듯하다
정확히 읽으셔야 합니다. ‘고급스럽다’가 아니라 ‘고급스러운 듯하다’는 걸요. 일단 운전석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실내 분위기에 압도 당합니다. 시승차는 완전한 기본 모델. 10.25인치 계기판(93만원 옵션)도 없고 인조가죽시트와 파노라마 선루프가 묶인 프로그래시브 패키지(240만원 옵션)도 없습니다. 송풍구까지 삽입되는 엠비언트 라이트(커넥트 패키지-167만원-에 포함)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딱 보는 순간 화려하고 멋지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저 ‘삼각별’ 때문이 아니라 정말 멋진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차분히 보면 곳곳의 소재가 엉성한 게 눈에 띕니다. 우레탄 재질 운전대와 베젤이 두꺼운 8인치 계기판이 슬슬 거슬리지요. 직물 덮은 시트는 벌써(3월 말)부터 허벅지와 엉덩이를 덥게 만들었습니다. B필러와 C필러 내장재도 딱딱한 플라스틱인데요. 그게 또 노골적으로 티 나는 패턴과 질감이어서 분위기를 깹니다. 도어 프레임의 도장이 그대로 노출된 것도 에러입니다. 경쟁 모델인 1시리즈는 여기를 까만 커버로 단정히 마감했지요. 심지어 현대 i30(PD)도 비슷한 마감입니다.

정리하면 전반적으로는 고급스럽고 화려하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급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중제를 고급스러운 ‘듯하다’고 꼽아 봤습니다.

다섯째, 2월 수입차 내수판매 3위라고?
A220 해치백은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가장 저렴한 차입니다. 개별소비세 1.5% 기준으로는 3,770만, 5% 기준으로는 3,900만원이죠. 실구매가는 이보다 높게 잡힙니다. 앞서 말한 프로그래시브 패키지만 넣어도 4,000만원을 넘보니까요. 세단 모델도 3,850만원(개소세 1.5% 기준)부터 시작해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벤츠 중 가장 노려볼 만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3,000만원 대니까.

한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어쩌면 E클래스보다 A클래스 사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논거는 ‘대체재’에 있습니다. E클래스는 국내에서 제네시스 G80과 경쟁하는 모델. G80의 값은 5,000만원 대부터 시작해 E250과 큰 차이 없습니다. 물론 E250의 안전/편의장비가 G80 기본형보다 현저히 적지만 가격만큼은 서로 비슷하죠. 마음의 결정만 된다면, 편의장비만 좀 양보한다면 G80 사려다 E클래스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면 A클래스는 사정이 딴판입니다. A클래스의 대체재로 꼽을 만한 국산 준중형차의 가격은 비싸야 2,000만원 중반에 그칩니다. 간단히 말해서 G80 사려는 사람이 E클래스 살 수는 있지만 국산 준중형차 사려는 이가 A클래스 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는 소리입니다. 실질적으로 A클래스의 가격 레인지(3,770만~4,540만원)는 현대의 기함인 더 뉴 그랜저와 비슷합니다.

이렇듯 가치 면에서는 살짝 물음표가 남았습니다. 시승팀 중 한 명은 “이 차는 어떤 사람이 사는 거냐”고 화두를 던졌습니다. 차는 분명 좋은데 많이 팔릴 거냐는 관점에서는 의문이 남은 거죠. 저도 그 걱정이 합리적이라고 공감했습니다. 콤팩트카에 4,000만원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럼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와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931대나 팔렸네요. E클래스와 5시리즈에 이어 수입차 내수 판매 3위입니다. 아, 제가 상품성에 대해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 엄청 잘 나가고 있네요. 어쩌면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작은 고급차’의 수요가 일순간 폭발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한국인들의 삼각별 사랑으로 치부하기엔 3등이라는 숫자가 너무 크군요. 시장이 방증하고 있었나 봅니다. 4세대 A클래스가 퍽 괜찮은 차라는 것을.

정상현

정상현 편집장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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