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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벤츠 GLC 300 4MATIC 쿠페, 800km 주행기

“고속도로에서는 벤츠가 왕이지”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모두들 입을 모으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다른 차들도 워낙 잘 나오니까. 한데 꼭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속도로에서 유독 좋다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편집장은 “네가 아직 뭘 모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내게 두 가지 미션을 내렸다. 첫째, AMG가 아닌 대중이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 섭외하기. 둘째, 부산까지 다녀오기.

나의 부산 여행을 함께할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GLC 300 4MATIC 쿠페’로 정했다. 벤츠 SUV 라인업에서 상당한 인기를 끄는 모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차는 아니다. 쿠페 라이크 SUV라서다. 부풀어 오른 뒷태가 멋지다고들 하지만 내 눈엔 일반형(?) GLC가 더 맘에 든다. 어쨌든 시승차는 올해 초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델이고, 가솔린 2.0L 엔진을 단다.

사실 시승차를 받기 전까지 달라진 점을 잘 몰랐다. 실제로 만나니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얼굴이 보다 자극적으로 바뀌었다. LED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기본화된 AMG 라인 익스테리어는 GLC 43 AMG 못지 않게 과감하다. 테일램프 그래픽도 멋을 부렸다. 휠도 볼수록 스타일 좋게 느껴진다.

엔진도 새로 얹었다. 코드네임 M276의 신형 가솔린 엔진은 2.0L 배기량으로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37.7kgf·m를 발휘한다. 여기에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 효율 위주의 개선을 이뤘다. 유럽 쪽 리포트를 살펴보니 출력을 보조하는 ‘EQ 부스트’ 기술은 빠진 것으로 보인다. 변속기는 전작과 같은 9G 트로닉. 4MATIC 시스템도 그대로 적용됐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운전석에 올랐다. 시트 방석이 폭신한 게 느낌 좋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꽤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크랭크가 돌기 시작했다. 놀랐다. 최근 만난 벤츠의 4기통 가솔린 엔진과 달리 이 녀석은 조용하다. 공회전 시의 소음 뿐만 아니라 진동도 잘 억제되어 있다. 덩치는 산 만한데 첫인상이 서글서글하다.

정오. 꽉 막힌 서울 중심부를 비집고 나와 경부고속도로로 향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이라 동적인 특성을 느끼긴 어려웠다. 9G 트로닉 변속기는 엔진 회전을 낮게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듯 보였다. 2단과 3단을 오갈 때 간헐적으로 변속 충격이 느껴지긴 했지만 스트레스 받을 정도는 아니다.

하체는 의외로 타이트했다. 최근 시승했던 벤츠 세단들에 비하면 나사를 몇 번 더 조인 느낌이다.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의 울퉁불퉁한 노면 질감이 느껴진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GLC 300 4MATIC 쿠페는 ‘스포츠 서스펜션’을 기본으로 달고 나온다. 기존 벤츠 특유의 말캉함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영동고속도로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다. 램프 구간을 지나 가속 페달을 밟으니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가속력은 상당하다. 1.8톤이라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뿐하게 발진한다. 싱글 터보를 썼지만 반응이 즉각적이다. ‘빠른 것 같은 느낌’만 선사하는 게 아니다. 제원 상 0→시속 100km 가속은 6.3초에 불과하다.

조용하고 나긋하게 굴었던 M276 엔진은 한껏 소리를 낸다. 가상 엔진 사운드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버무려졌다. 페이크 머플러를 썼을지언정 소리로 느껴지는 감성만큼은 잃지 않았다. 가상 사운드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음색에 속한다.

정신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배기량의 한계에 맞딱뜨린다. 일정 시점부터는 속도계가 둔하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한껏 기대감을 실어주다 갑자기 맥이 풀려버린다. 최고속도는 240km/h에 묶어 놨다. 하지만 왠지 제한속도까지 속도를 높이지 못 할 것 같다. 저속에서 줬던 출력에 대한 기대감이 고속 영역에서 살짝 약해지는 게 아쉽다.

듣던대로 고속안정성은 신기할 정도다. 매우 좋다. 처음엔 뻣뻣하게 굴던 녀석이 고속도로에 오르자마자 유연해지는 게 느껴진다. 속도를 높일수록 콤포트한 감각. 네 바퀴가 부지런히 충격을 흡수한다. 옆자리에 함께한 이는 가변식 댐퍼를 장착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만큼 승차감 변화가 또렷하다. 장거리를 달려도 시종일관 편안하다. 이래서 "고속에서는 벤츠"라고 하나 보다.

승차감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GLC 쿠페는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달린다.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대도 불안한 낌새가 없다. 비슷한 체구의 국산 SUV에 빗대어 보면 시속 40km쯤은 느리게 달리는 듯한 감각. 커다란 몸뚱이와 육중한 무게로 도로를 짓누르며 달린다. 믿음직스럽다.

해 질 때쯤 부산에 도착했다. 이따금 정체 구간을 만나 시간이 제법 소요됐지만 피로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등허리가 땀에 살짝 젖은 걸 빼면 참으로 쾌적한 장거리 주행이었다. 트립 컴퓨터 상 연비는 약 9km/L를 기록했다. 막히는 길도 많았고 연비 주행을 한 것도 아니기에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다. 참고로 GLC 300 4MATIC 쿠페의 공인 복합 연비는 9.7km/다. 도심에서 L당 8.9km를, 고속도로 항속 주행 시 L당 12.8km/L를 달릴 수 있다.

서울로 복귀하기 전 주유소를 찾았다. 258마력짜리 직분사 터보 엔진답게 옥탄가 95 이상의 고급휘발유를 권장한다. 연료탱크 가득 채우니 주유비는 9만9천 원이 나왔다. 연료탱크 용량은 66L.

회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새벽 2시다. 평소라면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이상하게 졸리지 않았다. 집에 가기는커녕 오히려 북악 스카이웨이 가는 경로를 찾고 있었다.
GLC 쿠페는 계속 운전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주행성을 선사했다. 믿음직스러운 하체와 편안한 승차감에서 비롯되는 주행성이 인상적이다. 고속안정성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루 만에 부산을 왕복하고도 피로감이 확실히 덜 하다. 하루 종일 운전해 보니 느껴진다.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고속도로에서 벤츠가 좋다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