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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다시 만난 쉐보레 트래버스, 2만5,000km 뛴 시승차 재평가

쉐보레 트래버스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해 론칭 행사 이후 10개월 만입니다. 그동안 꽤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숙명의 라이벌인 포드 익스플로러를 포함, 고급감 내세운 경쟁자들도 시장에 속속 등장했습니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대형 SUV 시장. 이곳에서 트래버스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이 녀석이 지닌 가치를 재평가해봤습니다.

존재감 넘치는 디자인. 인테리어 품질은 아쉬워
트래버스의 최대 강점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공개됐을지언정 여전히 멋스럽지요. 거대한 차체는 직선 위주의 디자인과 어우러져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합니다. 비율만 놓고 보면 수준급의 디자인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디테일도 꽤 괜찮습니다. 램프 류 디자인이라든지 사다리꼴로 다듬은 테일파이프 등이 의외로 멋스럽지요. 특히 프리미어 등급은 차체 하단부 클레딩에 페인트를 입혀 도회적인 느낌도 물씬 납니다.

소소하게는 희소한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길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기에 볼 때마다 새롭거든요. 참고로 트래버스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3,000여대 정도라고(2019년 10월~2020년 6월 기준). 전량 미국에서 수입하다보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인테리어는 보면 볼수록 아쉬움이 남습니다. 쉐보레 특유의 투박함이 고집스럽기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미국차도 고급스럽게 잘 만들던데 이 녀석은 살짝 뒤처진 감각입니다. 디자인이나 소재의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인테리어 품질도 실망스럽습니다. 플라스틱 소재가 나빠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생채기가 남더군요. 구석구석 살펴보니 생채기 안 난 곳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2만5,000km 달린 시승차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내 컨디션이 너무나 나빴습니다. 실제 트래버스 오너라면 두고두고 거슬릴 만한 포인트입니다.

자연흡기 엔진의 무르익은 감성 VS 대세는 다운사이징
트래버스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환경 규제를 뚫고 여전히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쉐보레의 자랑, V6 3.6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한 것.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시장의 ‘대세’가 된 이후부터는 자연흡기 엔진은 제법 귀한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부드러운 엔진 사운드, 선형적인 가속력 등 매력적인 면이 많지요.

답답하지 않으냐고요? 생각보다’는’ 괜찮습니다. 코드네임 ‘LFY’의 트래버스 엔진은 최고출력이 314마력에 이르거든요. 최대토크 역시 36.8kgf·m로 모자람 없습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7~8초 정도. 이 덩치에 이 정도 스펙이면 충분합니다. 저회전 영역부터 토크가 충분히 나오기에 느리다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일단 자동차세가 비쌉니다. 배기량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국내법 상 익스플로러보다 자동차세를 조금 더 내야하지요. 특히 유류비는 상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요. 하이드라매틱 9단 자동변속기로써 동력을 효율적으로 쪼개어 씁니다만 실제 연비는 기대에 못 미칩니다. 두 자릿수 연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매일매일 고속도로만 달릴 건 아니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연료 탱크가 크다는 것(82.1L). 주유소 직원이랑 친해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승차감이… 이랬었나?
지난해 론칭 행사 당시, 트래버스를 짧게 시승해보고는 ‘SUV 탈을 쓴 미니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의 경우 2, 3열에서의 만족도가 꽤 컸었는데요. 성인 여섯 명이 탑승해도 여유로운 공간과 수준급 정숙성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니발의 대체재가 될 수도 있겠다’고 평가했었지요. 패밀리카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였습니다.

하지만 10개월 만에 다시 만난 트래버스는 변해 있었습니다. 서스펜션은 전반적으로 헐거워진 듯한 감각이었고 굽잇길에서는 차체 상부와 하부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석에 탑승한 우리 편집장은 멀미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승차감이 눈에 띄게 나빠졌더군요.

그 사이 하체 세팅이 바뀐 건 아닐 겁니다. 차량 문제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시승 목적의 차량인 만큼 가혹한 운명이었을 터. 비포장길 같은 곳에서 험하게 달렸을 수도 있고 트레일러도 수없이 끌었을테지요. 때문에 서스펜션에 피로가 많이 쌓여 100% 컨디션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이제 고작 2만5,000km 뛴 차량입니다. 아무리 험하게 굴렸다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느낌을 낸다는 게 의외네요. 참고로 론칭 행사 당시의 트래버스는 탄탄하면서도 안락했던 기억입니다.

10개월 만에 다시 만난 트래버스. 필자의 최종 평가는 80점입니다. 20점은 연비와 하체에서 깎아 먹었습니다. ‘만약 내 차가 된다면’이라고 가정하니 유지와 관리 면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외적인 생김새는 물론, 광활한 실내공간과 자연흡기 방식의 대배기량 엔진이 주는 감성도 상당히 좋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감성의 차를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애착도 갑니다. 대형 SUV를 노리고 있다면 반드시 살펴봐야할 선택지. 트래버스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