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특집 기획 특집 > 고급차의 돌출형 엠블럼은 라디에이터 뚜껑이 시초

고급차의 돌출형 엠블럼은 라디에이터 뚜껑이 시초

흔히 ‘자동차 배지’라고도 부르는 돌충형 엠블럼은 고급차에 자주 쓰이는 아이템이다. 운전 중에는 앞차와의 거리를 가늠하기도 편해 기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가 태동하던 시기 돌출형 엠블럼은 그저 냉각수를 식혀주던 라디에이터 그릴의 뚜껑에 불과했다.

내연기관의 열효율이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던 터라 냉각수를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1900년대 초반에는 이 뚜껑에 냉각수 온도를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능도 수온을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대시보드에서 냉각수 온도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

냉각수 온도 체크의 기능이 사라진 1930년대 이후부턴 이 돌출형 엠블럼이 디자인 포인트 역할을 담당했다. 이 시기의 클래식카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이기도 한데 차체의 가장 앞머리에 브랜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조각이지만 멋스러워야 하는 숙명이었다. 이를테면 범선의 뱃머리에 붙은 조각품과 같았다.

자동차 생산량이 늘어나고 교통체계와 법규가 마련되면서 돌출형 엠블럼은 교통사고시 보행자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안전문제가 대두된다. 너무 크고 뾰족한 엠블럼들은 점차 얌전하고 작아지거나 보닛에 배지형태로 달라 붙었다. 하지만 미적가치를 버릴 수 없었던 고급차 브랜드들은 상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 여전히 이 돌출형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반경에 돌출형 엠블럼 장착 구조에 다양한 특허가 출원됐다. 평소에는 돌출형 엠블럼을 고정시키면서도 스프링 클립구조 혹은 탄성을 가진 유연함을 추가해 교통사고시 뒤로 젖혀지는 방식을 썼다. 일부 럭셔리 세단은 전방 충돌시 엠블럼이 보닛 아래로 들어가는 방법도 썼다. 이를 위해서 복잡한 설계와 추가비용이 들었지만 돌출형 엠블럼이 가져다 주는 감성적 가치를 더 크게 여긴 것이다.

미국의 기능주의 건축가로 유명한 루이스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ing The Function)’고 말했다. 이는 자동차 업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말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형태는 과감히 버려야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돌출형 엠블럼이지만, 고급차 분야에서는 감성적 소비재로서의 새로운 기능을 찾아 살아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김경수

김경수 기자

kks@encarmagazine.com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