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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사?" 구박받던 쏘나타는 어떻게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나? [쏘나타 히스토리 1부]

● 클라스는 영원하다!! 중형차 판매 1위 쏘나타!! 하지만?!
● 현실은 '당장 출고 가능한 재고차' + '땡처리 할인' 덕분...
● 35년 전 '폭망'했던 쏘나타는 어떻게 '국민차' 자리까지 올라왔을까?
▶ 영상으로 보시면 더 찰지고 디테일한 [쏘나타 히스토리 1부]

 

"메기다. 메기가 나타났다"
2019년 쏘나타 8세대가 갓 등장했을 무렵,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웅장한 메기수염을 연상케하는 전면부 디자인을 앞세운 쏘나타는 대부분의 타깃 구매층의 기억 속에 있던 쏘나타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디자인이었죠. 그때의 충격은 6세대 쏘나타 YF의 삽엽충룩을 처음 봤던 소비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엔 충분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YF 쏘나타와 8세대 쏘나타 DN8 모두 해외에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호평받았다는 겁니다. 문제는 '양키센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소나타의 입지는 점점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DN8에 와서는 경쟁차종, 정확히는 말하면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아우'인 K5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쏘나타가 중형차 판매 1위 자리를 되찾았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뒤늦게 메기, 아니 쏘나타 DN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라도 한 걸까요?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우리한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차량 반도체 수급 지연으로 대부분의 차량이 최소 2달, 심하게는 6개월 이상 출고대기상태인 이 와중에, 인기가 없어 팔리지 않고 창고에 처박혀있던 쏘나타들은 '1주일'만 기다리면 당장 받아서 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의 눈물겨운 '재고 할인'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당장 받을 수 있는 안팔린 재고차'가 있다는 것만 거의 유일한 장점이 되어버린 쏘나타의 처참한 현실,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쏘나타 생산 라인을 줄여 아이오닉6 생산을 늘리겠다는 보도까지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현대마저 쏘나타를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 걸까요? 그런데 사실 쏘나타에게 이런 '폭망'은 낮선 일이 아닙니다. 1985년 등장했던 쏘나타 1세대 역시 경쟁 차종에 밀려 처참하게 실패하고, 심지어 한동안 현대자동차로부터 '쏘나타'로 인정받지도 못했던 비운의 차량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쏘나타는 다시 일어나 '중산층의 상징'으로 한동안 대한민국을 호령했고, 위세가 꺾인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 중 '쏘나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들의 인생 깊숙히 각인된 국민차가 되었습니다. 내리막길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이어가는 쏘나타, 그렇기에 더욱 '쏘나타'의 찬란한 황금기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떡락'해 호적에서마저 파였던 쏘나타는, 어떻게 진흙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올 수 있었을까요? 1세대 '소나타'부터 4세대 'EF 쏘나타'까지, 찬란했던 쏘나타의 황금기 히스토리를 알아봅니다.

 

▶ 난 너같은 자식 둔 적 없다...현대차 호적에서도 파였던 1세대 소나타 쏘나타의 시작은 비참했습니다. 제작자인 현대조차 한동안 ‘버린 자식’ 취급하는 '폭망차' 였기 때문이죠. 1985년 출시된 ‘소나타’는 현대가 당시 히트했던 중형 세단 스텔라를 개조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크루즈 컨트롤, 파워 시트 등을 탑재하고 유럽 차에나 달린다는 해드램프 워셔까지 달린 소나타. ‘VIP를 위한 자동차’로 홍보하며 각종 첨단기술로 무장해 등장했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분명 고성능 첨단기능을 탑재하긴 했지만 ‘중형차’ 스텔라와 너무나 외관상 차이점이 없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소나타가 어필하고 싶었던 VIP들은 소나타를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스텔라와 구분하기도 힘든 소나타 대신, 흘깃 스쳐만 봐도 '귀티'가 철철 넘치면서도 가격은 더 저렴한 완벽한 상위호환 대체재가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던 '로얄 살롱'이었습니다. 집안 재산을 '영끌'해야 자동차 살까말까하던 시절, 차의 크기는 곧 그 사람의 재력의 크기를 상징했습니다. 로얄 살롱은 소나타보다 더 커다란 건 물론이고 무려 '장관님 자동차'로 정부에 납품되던 차였습니다. 5공화국 시절 고위관료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귀티가 철철 넘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스텔라'를 어떻게든 활용해 '고급차'로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판매하던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자동차 '그라나다'가 단종되었기 때문이죠. 그라나다는 현대가 포드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조립만 하다시피해 팔던 차량이었는데, 1984년 포드가 그라나다와 관련 부품의 단종을 선언하며 현대 입장에서는 '고급차 라인업'이 사라질 위기가 닥쳤던 겁니다.
결국 중형차 스텔라에 온갖 첨단기능을 넣어 VIP 자동차로 팔아보려고 했던 것이 1세대 소나타지만, '소비자 니즈'보다는 '현대의 사정'으로 만들어진 소나타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산 후반기에는 판매량이 증가세를 보이긴 했습니다만, ‘소나 타는 차’라고 빈축사기 일쑤였던 소나타는 ‘쏘나타’로 개명되는 굴욕까지 겪게 됩니다. 이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현대자동차는 차량의 ‘ㅅ’발음을 ‘ㅆ’된소리로 내는 유구한 전통을 갖게 됩니다. (EX: 투싼, 싼타페).

 

▶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쏘나타 2세대의 역습


하지만 소나타가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며 로얄살롱에 판매량으로 두들겨맞는 동안, 현대는 차량 하나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신입사원이 타고 오면 온 회사가 뒤집어진다는 바로 그 차, 1세대 각그랜저였습니다. 1세대 소나타가 ‘소나 타는 차’라고 비웃음당했을지언정,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현대는 고급차 라인업의 공백 없이 대형차 ‘그랜저’를 개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1986년 출시된 그랜저 출시와 동시에 국내 대형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전륜구동 플랫폼'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중형차 이상급 차량은 대부분 '전방 엔진 후륜 구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동방식은 크랭크축 샤프트가 차량을 수직으로 가로지르기때문에 실내 공간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계절의 대비가 강렬한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눈길'을 만났을 경우 주행 난이도가 급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조향과 구동이 일치하는 전륜구동 차량은 눈길에서도 상대적으로 주행이 용이했고, 결과적으로 그랜저는 대히트를 치며 국내 대형차 시장을 석권합니다. 현대는 기존 스텔라의 플랫폼을 내다버리고 그랜저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쏘나타에 그대로 이식합니다. 플랫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88년 출시된 2세대 쏘나타의 메인 광고 카피부터가 '그랜저의 테크니컬 그대로', 즉 그랜저의 기술을 차용했다고 강조하는 멘트였을 정도였죠. 1985년 처절하게 시장에서 외면받아 돌아온 쏘나타 2세대는 '그랜저 빨'과 함께 엄청난 무기를 장착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랜저보다도 넓은 실내공간이었죠. 지금까지 전해오는 ‘한 체급 위의 실내공간’이 본격적인 세일즈포인트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더 큰’ 실내공간은 당대 중형차 수요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구매요소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적당히 좋은 차’의 겉모습 속에 ‘대형차보다 더 좋은 거주성’을 누리는 이중적인 소비가 가능했기 때문이죠. 압도적인 인기 속에 중형 세단의 최강자로 인정받은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수출한 중형차가 됩니다.

 


▶ 잘 선점한 이미지, 열 신차 안 부럽다...신화를 이어간 쏘나타3세대

93년 출시된 3세대 쏘나타 = ‘쏘나타2’는 출시 이후 33개월,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60만대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에서 연간판매량이 가장 높았던 중형차’ 기록을 갖게 됩니다. 20세기 마지막의 경제호황기 속에서, 과거 80년대 초반 '포니'나 '브리사', 80년대 후반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던 사회인들의 상당수의 차량 교체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향상된 소득수준으로 주머니 또한 두둑해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앞 세대에서 ‘운전이 편한 중형차’, ‘대형차만한 중형차’ 포지셔닝을 선점하고 있던 중형차, ‘쏘나타2’로 차급을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쏘나타 2의 디자인이 지금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세련되면서도 고급진 '절제미'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쏘나타를 산다는 것은 제법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상징과도 같던 시기였죠. 하지만 경쟁사들도 가만히 눈 뜨고 당하고 있을리는 없었습니다.
기아에서는 코너링이 부드러운 차 '크레도스'로 도전장을 던지며 치고 올라왔습니다. 왕년에는 로얄살롱으로 '소나타'를 압살했던 대우자동차는 '소리없이 강한 차' 레간자로 소나타 2세대의 아성에 도전했습니다. 마치 한국 중형차 시장이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위,촉,오 삼국중에서 결국 삼국통일을 하게 된 건 처음부터 잘 나갔던 조조의 위나라(를 찬탈한 사마씨의 진나라)였다는 사실을요. 그렇습니다, 승자는 좌절감으로 성장한 중형차 쏘나타2세대였습니다. 중형차 수요가 증가할 시기에 플랙폼 혁신을 통해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고급 중형차'라는 이미지를 선점한 쏘나타의 아성은 경쟁사가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탓인지 쏘나타 2세대의 페이스리프트모델, 쏘나타 3는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헤드램프 모양이 '남성기'를 닮았다는 루머부터, 후면 앰블렘의 'S'와 '3'를 떼면 수능 300점 이상을 맞아 서울대를 갈 수 있다는 등 갖은 루머와 테러(?)에 시달린 차량이 쏘나타 3였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사랑도 끊이지 않았기에, 쏘나타는 단 한번도 중형차 연간판매량 1위의 왕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곡선미학과 품격의 정점을 찍다...미국도 인정한 쏘나타 4세대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안전의 욕구](safety)
→ 가족, 친구들과 친해지고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애정·소속 욕구](love/belonging)
→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존중받고 싶은 [존중의 욕구](esteem)
→ 계속 발전하고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자아실현 욕구] (self-actualization)
의 순서대로, 하위 욕구단계가 충족되면 인간이 원하는 '욕구'가 변화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인간'이 만든 쏘나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습니다.

쏘나타는 2세대에서 혁신적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상품성을 인정받아 생존을 유지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됐습니다. 3세대에 이르러서는 경쟁 차종을 모조리 따돌리며 [안전의 욕구]까지 충족했죠. 이 시기 쏘나타가 세운 여태까지 깨지지 않은 '중형차 연간 최대 판매 기록'은 쏘나타에게 [애정, 소속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고, 차를 몰아볼 일 없는 학생들에게까지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점을 보아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존중의 욕구]또한 성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쏘나타는 4세대에서 무엇을 추구했을까요?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였습니다.

1998년, ‘네오 클래식’을 표방하며 등장한 EF쏘나타는 지금까지도 디자인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쏘나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느낌의 전면부를 가졌던 뉴 EF쏘나타는 당시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전면부 디자인을 도입하는 한편, 베이지 컬러의 가죽시트를 도입해 블랙 일색이었던 차량 내장 인테리어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줬습니다.
4단 HIVEC 변속기의 미숙함 탓에 '유리 미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아연 도금 처리로 '부식되지 않는 차' 입소문을 탄 SM5에게 위협받기는 했지만, [자아실현]단계에 접어든 EF쏘나타는 원숙미를 더해가며 '격차'를 벌려갔습니다.
2002년 등장한 EF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그랜저 XG의 크롬라인과 사이드몰딩을 도입하고, 리어 어퍼가니쉬는 통해 강인하면서도 품격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쏘나타 최고의 작품"이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조금은 민망하지만 중후하면서도 특색있는 디자인인건 분명했기에, 지금까지도 유행을 초월한 디자인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뉴EF 쏘나타는 2004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J.D.Power)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중형차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당시 외신은 '개가 사람을 무는 일이 벌어졌다'고 보도하며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소나타를 '개'취급했다기 보다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도의 관용어입니다만, 아무튼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겁니다. 이듬해 2005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미국 컨슈머리포트에서 '고장이 적은 차 1위'로 선정되면서 외국에서도 쏘나타의 이름값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황금기를 누린 쏘나타의 리즈시절 전반전...하지만...?


쏘나타 2세대와 3세대, 4세대의 공전절후의 대히트로 쏘나타는 길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차' 소리를 곁들어 들을지언정, 쏘나타는 여전히 '성공한 인생'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LG그룹에서 '전무'까지 승진하면 임원 차량으로 EF쏘나타가 지급되었다는 것은, '보편적이지만 고급진 차' 쏘나타의 사회적 위치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현용 8세대가 출시된 쏘나타의 4세대까지의 이야기, 쏘나타 차생의 리즈시절 전반전 이야기였습니다. 그랜저를 출시할 시간을 벌기 위해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 속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쏘나타는 그랜저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산층 차량’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세대 각그랜저의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정 반대의 ‘곡선 미학’을 추구했던 쏘나타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쏘나타 4세대, 뉴EF쏘나타를 마지막으로 반환점을 돌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쏘나타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쩌면 현대의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EF 쏘나타를 마지막으로, 쏘나타의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끼기엔 쉽지 않은, 흡사 진짜 ‘부장님’ 같은 존재가 되고 있던 쏘나타의 인생 후반전 이야기, 조만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차돌박이

차돌박이

shak@encar.com

차에 대한 소식을 즐겁게 전해드리는 차똘박...아니 차돌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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