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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고기] G80를 G70로 다운그레이드하다

제네시스 G80는 얼마 전까지 저의 출퇴근용 자동차였습니다. 2017년 6월 출고해 2만8,000km 뛰었지요. 원래 필자는 달리기용 자동차를 좋아하는데요. 예외적으로 출퇴근할 때는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른 게 G80이었어요. 그동안 선택에 만족하면서 잘 탔습니다. 1년 8개월 보유했으니 ‘기변병’ 환자로서는 꽤 오랜 시간 함께했지요.

그 1년 8개월 동안 “안 어울린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할아버지 차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실제로 G80는 중장년층이 많이 타는 모델입니다. 주행감이나 차의 공간 등 여러 면에서 그들에게 어울리니까요. 하지만 저의 G80 뒷자리에는 사람이 탄 적도 없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기름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80를 유지했던 건 ‘출퇴근 때 쓰기 가장 편한 차’라는 생각이 변함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대체재가 없었다는 거죠. 다시 생각해도 G80은 참 편한 차였습니다.

제가 G80를 샀을 때는 기아 스팅어가 나온 직후였습니다. 이윽고 2017년 9월 20일에 제네시스 G70이 나왔지요. G70은 저도 기대를 많이 했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출시 직후 3.3 터보 사륜구동(H트랙) 버전을 두 번이나 시승하기도 했습니다. 한데 별 감흥 없었습니다. G80을 확 줄인 뒤 파워풀한 엔진을 얹은 느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포르쉐나 BMW M 같은 차들이 선사하는 인상이 있거든요? ‘너무 사고 싶다’는 기분. G70은 그런 게 없었어요. 다른 분들은 이를 두고 “감성이 없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그렇게 G70은 순식간에 제 머릿속에서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G70을 뽑았습니다. 3.3L 트윈 터보 후륜구동 모델. 컬러는 레이싱 그레이, 시쳇말로 시멘트 색이었죠. 타봤습니다. 웬 걸? 사륜구동하고는 다른 차더군요. 사륜구동은 끈적하고 묵직했던 반면 후륜구동은 날렵했습니다. 무거운 V6 엔진에 터보차저를 두 개나 달았는데도 노즈가 빠르고 산뜻하게 움직였습니다. 좁은 앞 타이어 때문에 초반에는 살짝 언더스티어를 내지만 이윽고 머리를 안쪽으로 쭉쭉 밀며 내달렸습니다. 가속도 사륜구동형 대비 한층 날카로웠습니다. 풀가속하면 몸 속 내장이 등 쪽으로 달라 붙는 기분. 이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죠. 생긴 것과 달리 악랄함이 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G70을 사 볼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짧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하고 봅니다. 고민은 짧을수록, 실행은 빠를수록 좋더라고요. 이 신념 하에서 덜컥 G70을 계약했습니다. 친구 차와 같은 레이싱 그레이 컬러에 후륜구동 모델. 엔진은 당연히 3.3L 트윈 터보로 골랐습니다. 다행히 일치하는 사양이 있어 이틀만 기다리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현대차는 핸드폰보다 간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스포츠 드라이빙 용도의 자동차가 따로 있었습니다. G70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그 차보다 재미있거나 빠르지 않았습니다. 이러니까 오히려 포지션이 애매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G80의 콤포트성에 스포츠성을 아울렀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걸 비꼬면 G80보다 불편하고 나의 달리기용 차보다 느린, 이도 저도 아닌 녀석일 수 있던 거죠.

고민이 계속됐습니다. 어느덧 출고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일 오후 2시경 차가 나올 예정이었는데요. 결국 나쁜 짓을 했습니다. 출고 당일 아침에 차를 취소한 것. 제 나름대로는 용단이었습니다. 딜러분께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습니다. 저에게 현대차를 7대 팔았던 김 팀장님은 그 동안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듯 아무 상관 없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차 사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이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일단 G70 계약을 취소하지 말고 유지시켜 달라고. 며칠 더 고민해보겠다”고.

여러분은 자동차의 구매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지 아십니까? 그 설렘은 1달 동안 유럽 여행을 한 다음 귀국할 때 롤렉스 시계를 사오는 것보다 클 겁니다(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새로운 사람으로도 채울 수 없을 테죠. 완전한 새 차를 받는 기분, 그 쇳덩이를 어떤 것으로 정할 건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 그 과정에 중독되면 ‘기변병’이 생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차를 사고, 기분 좋을 때도 차를 사고, 경기가 호황일 때도 차를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합리화에 따라 그 고민의 과정을 며칠 더 즐기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G70을 좀 더 긴 시간 동안 타 보았죠. G80를 대체할 목적이 컸기 때문에 지난 번과 방향을 달리 잡았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것과 반대로 타본 것. 사실 그 관점에서, 즉 콤포트성 면에서 G70이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G80보다 스프링이 단단하고 차체는 가볍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틀렸습니다. 예상이 빗나갔어요. G70은 시내에서 움직일 때 더욱 좋았습니다. G80의 둔중함과 달리 너무나도 산뜻한 몸놀림. 그러면서도 엔진은 G80의 자연흡기형처럼 매끄럽게 돌았습니다. V6 엔진 특유의 ‘쌔앵~ 쌔앵~하는 소리도 그대로입니다. 가변식 댐퍼를 콤포트에 두면 승차감이 G80만큼이었습니다. 서스펜션의 상하 스트로크가 긴데 여진은 전혀 없습니다. 좋은 댐퍼를 달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포츠로 바꾸면 일순간 빳빳해집니다. 5,000만 원짜리 차가 이런 하체라니. G70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만든 차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고민은 ‘다운 그레이드’ 정도였습니다. 친구에게 말했죠. “G80을 타다 G70으로 바꾸면 형편이 주저앉은 것 같지 않겠냐”고. 다정한 나의 친구는 “실제로 그런 거니까 괜찮다”며 저를 다독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는 가족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고마운 녀석.

그렇게 형편이 나빠진 저는 G80을 팔고 G70을 사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대신 색깔을 가족보다 못한 내 친구놈과 다른 색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외장은 로얄 블루, 내장은 레이싱 레드 컬러. 19년형의 어두운 색 휠과 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감평사 김 씨 보고 있냐? 레이싱 그레이는 꼭 도색하다 만 차 같다고. 네놈이 보기에도 내 제네시스가 더 멋있지 않어?”

그렇게 저의 카라이프에 G70이 들어왔습니다. G80은 워낙 상태가 좋아 금세 팔았습니다. 오늘은 G70을 출고한 지 딱 한 달 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1,500km 탔군요. 아직 길들이기 하느라 가속 페달을 날계란 밟듯 살살 만지고 있지만 응축되어 있는 힘이 엄청납니다. 발목을 살짝만 꺾어도 나란히 달리던 차들이 작게 변합니다. 그러면서도 연비는 L당 9.5km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G80보다 1km/L쯤 잘 나옵니다. 대신 고급유를 먹이는 까닭에 기름값은 더 듭니다만.

서두에 말했듯 G80를 탈 때는 뭔가 내게 맞지 않는 자동차 같았습니다. 저 같은 비렁뱅이가 타기에 너무 좋은 차였던 듯해요. 반면 G70은 제 격에 그나마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시내 좁은 주차장 드나들기도 편해졌고 G80보다 젊은 아저씨처럼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이제와 말하지만 예전에 저는 G70을 두고 “제품기획자가 두 명이었던 차 같다”며 깎아내렸었습니다. 둘의 알력 사이에서 애매한 차가 나와 버렸다고 했죠. 예를 들어 한 명은 콤포트성을 주장하고 나머지 한 명은 스포츠성을 강조하다 마침내 둘을 짬뽕시킨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G80처럼 편하게 다니다가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쏠 수 있는 자동차. 멸종 위기에 처한 ‘작은 고급차’로서의 가치까지 품고 있는 차. 그래서 지금은 “두 개의 매력을 가진 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콤포트 끝판왕 G80를 팔고 G70으로 다운그레이드한 이유입니다.

이 콘텐츠는 이번 편을 포함해 총 세 편으로 나갈 예정입니다. 2편은 G70 3.3T 차주로서 시승해 본 G70 2.0T에 관한 소감을 전합니다. 아마 G70 2.0과 3.3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입니다. 3편은 G70 3.3T를 5,000km 운용한 뒤 나온 시승리포트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짧게 타보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포인트들을 장기 시승기로써 짚어 볼게요. 그럼 2편에서 만나요!

정상현

정상현 편집장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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