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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시승] 설산에서 만난 지프 랭글러

투박함 투성이지만 묘하게 끌린다. 지난 번 온로드 시승했던 랭글러를 다시 불러들인 이유다. 대신 이번에는 장소를 옮겼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한 야산으로 갔다. 여기는 경사가 높고 폭이 좁아 험준하다. 다행히(?) 눈까지 내린 뒤였다. 최고의 환경이다. 랭글러에게 딱 맞는 장소다.

출발은 임시 도로에 가깝다. 랭글러는 사뿐하게 달린다.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은 큰 힘을 쏟아낸다. 8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도 잘 맞다. 파워에 대해선 흠 잡을 게 없다. 다운사이징의 좋은 예로 삼을 만하다. 서스펜션은 상하 스트로크가 길다. 이 때문에 포장도로에서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에서는 되려 차분하게 군다. 하체는 요동치는데 상체는 안정적이다.

구동 모드는 4륜 하이기어로 맞췄다. 사실 로 기어로 변경하고자 했지만 레버가 안 먹혔다. 사용 설명서를 찾아봐도 구체적인 방안이 없었다. 결과적으론 쓸 데 없는 일이었다. 로 기어가 아니어도 너무 쉽게 주파했다. 루비콘에 탑재된 ‘락-트랙’ 사륜구동은 기어비가 4:1에 이른다. 스포츠나 오버랜드의 ‘셀렉-트랙’보다 험로 주파 성능을 끌어올린 것(셀렉-트랙: 2.72:1)

락-트랙은 디퍼렌셜 잠금(LD)과 스웨이 바 분리 기능도 갖췄다. 바닥이 질었지만 바퀴가 빠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디퍼렌셜을 잠글 일도 없었다. 스웨이 바 분리 기능은 꽤 유용하게 쓰였다. 앞바퀴 좌우를 분리하면 어디서든 균형을 유지한다. 버튼 하나만으로 간단히 잇고 끊을 수 있다는 점도 반갑다.

타이어는 BF 굿리치의 KM2 MT. 포장도로에서는 노면 소음의 주범이었으나 비포장길에서는 꾹 쥐는 듯한 그립력을 자랑한다. 눈길과 진흙길을 지날 때에는 갈퀴질하며 오르는 느낌이다. 터레인 타이어의 필요성을 새삼 느꼈다.

짤막한 보디는 오프로드에 특화되어 있다. 2도어의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는 2,460mm로 4도어에 비해 550mm 짧다. 바닥 쓸릴 일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아울러 최소 회전 반경도 4도어보다 작다(2도어: 5.3m, 4도어: 6.2m). 길 잘못 들었을 때 차를 돌리기도 쉽다. 굽은 비포장길에서는 2도어가 딱인 듯.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웨에에엥’하고 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엔진오일 온도와 변속기 온도 모두 상당히 오른 탓이다. 8.4인치 디스플레이에는 오프로드 페이지가 있다. 이를 통해 냉각수, 오일, 변속기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이밖에 스티어링의 각도나 사륜구동 장치, 피칭과 롤링도 확인이 가능하다. 포장도로에서 시승할 때에는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요긴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운전대다. 랭글러는 리서큘레이팅 볼 타입 스티어링을 채택했다. 전자 유압식 스티어링과는 구조부터 다른 녀석이다. 사실 랭글러는 포장도로에서의 주행 감각이 어색했다. 운전대 감각 흐릿해 이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선명한 느낌을 낸다. 울퉁불퉁한 노면을 손바닥으로 짚고 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미세한 컨트롤로 차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산할 때에는 브레이크의 역할이 컸다. 물 먹은 듯한 브레이크 페달 감각은 그대로다. 대신 제동력을 미세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채 발끝으로 보디 전체를 다스린다. 포장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이다.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썼다. 타이어는 물론 하체 구석구석까지도 진흙이 찼다. 이게 ‘진짜 랭글러’의 모습이다. 도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녀석들보다 자연 속에서 한바탕 뒹군 진흙 투성이 랭글러가 유난히 멋져 보인다. 독보적인 스타일과 남들의 시선은 일부에 불과하다. 진짜 랭글러를 느끼고 싶다면 산으로 가자. ‘Go Anywhere. Do Anything.’ 지프의 철학처럼 랭글러는 어디든 데려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