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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런 짬짜면, 마세라티 르반떼 S 시승기

SUV는 본디 짐을 많이 싣고 도로를 가리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해서 오너들은 이외의 것들에 관대했다. 이를테면 세단의 승차감을 원하거나 스포츠카의 빠릿빠릿함을 넘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욕심이 커졌다. 여기에 재빨리 반응한 곳이 포르쉐. 아스팔트를 고속으로 질주하던 포르쉐가 뚱보 카이엔을 투입한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운 시선이 많았다. 아는 것처럼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장의 많은 사람들은 포르쉐의 이 즐거운 변심에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는 키우고 날램은 그대로 살렸으니까.

카이엔의 성공은 많은 스포츠카 메이커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몇몇은 작은 볼륨을 극복할 좋은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마세라티도 최근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이디어는 카이엔과 같다. 스포티한 성격과 SUV의 실용성을 버무린 것. 물론 둘의 맛엔 조금 차이가 있다. 절인 배추에 고춧가루를 뿌린다고 똑같은 맛의 김치가 아니듯 말이다.

거구지만 날렵함 강조한 디자인, ★★★★

시각적으로 크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르반떼의 크기는 상당하다. 길이 x 너비 x 높이가 5,003 x 1,968 x 1,679mm로 시장에서 라이벌로 보는 포르쉐 카이엔 터보(4,918 x 1,983 x 1,673mm, 2,895mm)를 훌쩍 뛰어넘어 레인지로버에 버금간다. 특히, 휠베이스는 3,004mm나 되어 2,895mm의 카이엔보다 109mm나 길다.

그럼에도 민첩하게 보이는 이유는 격하게 구부린 곡선 덕이다. 앞뒤에 몰아넣은 곡선 덕분에 시각적으로 작고 스포티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앞모습은 마세라티 10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알피에리 컨셉트의 연장선에 있다. Cd 값도 0.31로 SUV치곤 낮다.

얼굴이 험상궂은데 헤드램프는 얇게 저며 원형 안개등 위로 붙였고 그 사이에 마세라티의 고급스러움을 대변하는 음각의 그릴을 달았다. 보닛은 활처럼 휘어 역동성을 강조했다. 라이벌에 비해 범퍼 하단부가 무덤덤한 건 아쉽다.

옆에서 보면 르반떼의 특성이 좀 더 또렷이 드러난다. 노즈를 길게 빼고 앞뒤 오버행은 짧게 잘랐다. 운전석이 정중앙보다 약간 뒤에 있는 느낌인데, 클래식 쿠페의 패키징을 살짝 부풀린 형태다.

지금까지 등장한 모델 중 쿠페와 SUV의 결합이라는 컨셉트에 가장 어울린다. 근육질의 리어 펜더 캐릭터 라인과 지붕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C 필러에서도 스포티함이 묻어난다.

굽힌 윈도 상단엔 스포일러를 붙였고 그 아래쪽으로 기블리의 것을 좌우로 바꾼 듯한 테일램프를 달았다. 프런트와 마찬가지로 뒤 범퍼도 힘을 뺐다. 공격적인 디퓨저를 붙이지 않았다. 이 차의 성격이 GT(그랜드 투어러)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스타일 위해 실용성 양보, ★★★

기교가 넘실대는 겉에 비하면 실내는 단정하다. 가죽과 우드를 메인으로 알루미늄의 양념을 더해 고급지게 꾸몄다. 계기판 중앙의 그래픽과 뭉툭한 기어 레버와 센터 터널의 틈새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먼저 나온 기블리보다는 만듦새가 낫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해 아쉬움이 덜하긴 한데, 내비게이션의 지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그림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미흡한 한글화도 옥에 티다. ‘스포츠 서스펜션 모드'를 '스포츠 차량 현탁액 모드'로 번역했다. 기블리 때부터 지적받은 사항인데 아직 수정되지 않았다. 사소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값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긴 휠베이스를 감안하면 공간도 만족스럽진 않다. 휠베이스의 상당 부분을 엔진룸에 할애했다. 무게 배분을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2열의 공간과 쓰임새가 동급 평균치를 살짝 밑돈다. 시트를 조금 높인 덕에 발 주변의 공간은 기블리보다 넉넉하지만 머리 위쪽이 답답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 차의 길이는 카이엔은 물론이고 레인지로버보다 길다. 덜렁거리는 암레스트도 눈에 거슬린다.

트렁크는 580L가 기본으로 카이엔보다 40L 정도 넉넉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보단 궁색하다. 리어 윈도 경사 때문에 키가 큰 물건을 실기는 어렵다. 60:40으로 분리되는 뒷좌석을 접으면 소형 자전거 정도는 편안히 넣고 다닐 수 있다.

GT에 어울리는 주행성, ★★★★

르반떼의 엔진은 가솔린 2종과 디젤 2종류. 시승차인 르반떼 S는 가솔린의 고성능 버전으로 V6 3.0L 직분사 터보 엔진을 달았다. 최고출력 430마력, 최대토크 59.1kgm를 낸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ZF)와 AWD를 결합했다.

내년 GTS 버전이 나오기 전까지 르반떼의 맏형 역할을 담당할 파워트레인이다. 기블리와 같은 구성으로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는 마세라티론 별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얼마나 완성도 있게 세팅했느냐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블리보다 만족스럽다.

평범하게 깨어나는 V6 엔진은 회전수가 오르면서 본성을 드러낸다. 대략 3,500rpm 이후부터 마세라티가 말하는 ‘쇼 타임’이 펼쳐진다. 소리를 그냥 내는 것이 아니라 토해낸다는 표현이 옳다. 포르쉐 카이엔과 레인지로버가 주지 못하는 청각적인 호사를 맘껏 누릴 수 있다.

르반떼는 가변 배기 시스템을 채용했다.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목청을 열어 한껏 우렁찬 사운드를 토한다. 최상의 사운드를 들으려면 스포츠 버튼을 누르고 변속기의 수동 모드를 활용해야 한다. 이 상태로 변속할 때 주어지는 그 알싸한 느낌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가속 페달을 짓이기게 된다. 동시에 뇌에서 연비와 친환경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3미터가 넘는 긴 휠베이스에도 불구하고 코너링이 무디지는 않다. 기본기가 좋아 전자제어의 개입도 적다. 하지만 카이엔 터보보다는 여유를 둔 세팅이다. 하체와 상체에 약간의 물리적 유동성을 둔 느낌이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보단 지향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상부를 이동하면서 하체는 바닥에 꽂는다. 뻣뻣함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동작이 GT답다. 그렇더라도 시트의 홀딩력은 아쉽다. 좌우로 반복되는 코너에서 옆구리가 자꾸 삐져나올 듯해 신경이 쓰인다. 저절로 팔과 다리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다.

네 바퀴 굴림이지만 평상시엔 뒷바퀴에 구동력을 몰아넣는다. 뒤쪽에 더 힘을 준다는 건 타이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265/50 ZR19와 295/45 ZR19로 바닥에 닿는 면적이 뒷바퀴가 훨씬 넓다. 차는 모름지기 뒷바퀴를 굴려야 제맛이라는 부류와 안정적인 주행성을 최고로 치는 쪽을 효과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묘책이다.

키를 높이면 빠르게 돌기 위해 서스펜션의 강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SUV의 구조적 한계다. 마세라티는 이를 고려해 르반떼의 무게 중심을 다른 SUV보다 낮췄다. 덕분에 서스펜션 강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었다. 높은 키를 딱딱하게 죈 하체로 커버하는 여느 SUV보다 르반떼의 코너링이 부드러우면서도 안정적인 이유다.

액티브 에어 서스펜션은 선택에 따라 차체를 25mm, 40mm까지 들어 올리거나 20mm, 35mm 낮출 수 있다. 기본과 차를 타고 내릴 때의 편의를 위해 주차시 45mm까지 떨구는 기능을 포함하면 총 6가지로 차고를 조절한다.

가속 페달에 힘을 빼면 세단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벤츠나 BMW의 럭셔리 세단과는 조금 다르다. 비교하자면 기블리 정도의 승차감이다. 이태리 차에 익숙한 오너라면 불만을 토로하진 않을 듯하고 렉서스나 벤츠에 익숙하다면 조금 투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운행 중 바람 소리와 바닥으로 스미는 잡음은 잘 걸러내지만, 엔진의 걸걸함은 듣기 좋게 포장해 운전자의 귀까지 배달한다.

르반떼는 알려진 것처럼 지중해의 바람을 일컫는다. 평소엔 온화하다가도 갑자기 강풍으로 바뀌곤 하는데 르반떼의 양면성을 잘 대변한다. 두 가지의 색깔을 합치면 각자의 개성이 무뎌져 매력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마세라티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만의 특징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맛깔스럽게 요리했다. 벤츠나 BMW 등의 독일 SUV가 식상하고 레인지로버의 온로드 성능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충분히 대안으로 삼을 만한 목적지다.

전문가 평가

76.4
  • 80 파워트레인
  • 80 섀시 & 조종성
  • 75 승차감
  • 75 안전성
  • 70 최신 기술
  • 70 가격 & 실용성
  • 85 기타
박영문

박영문 기자

spyms@encarmagazine.com

부품의 기술적인 결합체가 아닌, 자동차가 지닌 가치의 본질을 탐미하는 감성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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