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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원들이 사랑하는 자동차는 무엇일까?

그랜저, K7, K9, G80, EQ900. 이 차들은 우리 같은 자동차 마니아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차를 고를 때 선택지에 오르지도 않는다. 저런 차를 산다고 하면 “그 돈 주고 흉기차 타지 말고 BMW나 벤츠 사라”는 소리 듣는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안 통하는 세상이 있다. 대한민국 임원용 자동차의 세계다. 사실 보수성 짙은 집단 속에서 '외제차' 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원용 차 고를 때는 도리어 심심하고 눈에 안 띄는 게 미덕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기업 임원들은 어떤 차를 많이 굴릴까?

부장급_ 현대 그랜저, 기아 K7
엔트리(…) 임원에 속하는 부장이나 본부장들에게는 2.4L의 현대 그랜저 IG나 기아 올 뉴 K7이 인기다. 배기량 제한에 걸리지 않되 차 값을 4,000만 원 언더로 끊을 수 있어서다.

그들에게 주로 선택 받는 차는 그랜저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마치 미국인들이 픽업 트럭 좋아하는 것처럼 ‘그냥’이다. 회사로부터 그랜저를 받아 타는 S사의 부장은 “그랜저라서 골랐다”고 했다. 그의 차는 2.4L 버전이지만 스마트센스 패키지와 뒷자리 암레스트 리모콘까지 달린 ‘풀 옵션’ 모델이다. 이른바 ‘임원 전용차’를 출고한 거다.

K7 타는 부장도 제법 보인다. 그랜저와 K7은 형제차다. 엔진과 변속기, 하체 부품을 나눠 쓴다. 그런데 덩치는 K7이 더 크다. 예컨대 길이가 40mm 길고 너비도 5mm 넓다. 휠베이스도 그랜저보다 10mm 벌렸다. 이걸 메리트로 여기는 부장들이 K7을 좋아한다. “김 부장이 그랜저 IG 골랐으니까 자기는 K7 탄다”는 사람도 있다. K7 2.4 임원용 차 역시 일반인용(?) 버전보다 편의장비가 훨씬 훌륭하다. 시트 관련 옵션이나 뒷자리에 대한 배려가 3.3L 급이다. 시트는 나파 가죽이고 천장은 스웨이드다. 크렐 오디오나 ASCC 같은 것도 기본으로 달린다.

상무~전무급_ 제네시스 G80
상무부터는 많은 대기업들이 3.0L 이상의 차량을 제공한다. 그랜저나 K7도 3.0L 엔진이 달리지만 어쨌든 상무가 되면서부터 제네시스를 탈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거다.

G80는 3.8과 3.3 선택 비중이 비슷하다. 대신 기본형도 편의장비 풍성한 까닭인지 3.3L '깡통'도 더러 보인다. 회사에서 차량가 5,000만 원 제한을 둘 경우 3.3 후륜구동형을 뽑는다. 겨울철 운전은 “법인차량 정비비로서 윈터 타이어를 달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는 후문이다.


시장에서는 “연비가 나쁘다”는 말이 많지만 이 역시 법인용차로 쓸 때는 문제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본인 주머니에서 주유비 나갈 일 없기 때문. G80는 이따금 부사장들도 고르는데 이때는 기사가 운전한다. 주인은 오른쪽 뒷자리에 탄다. 지금 내 옆에 달리는 G80의 조수석이 대시보드 쪽으로 바짝 당겨져 있다면, 그 차는 ‘부사장의 자동차’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부사장급_ 기아 더 K9
더 K9은 임원용차 세계에서 ‘부사장님 차’로 통한다. 제네시스 G80과 EQ900 사이를 절묘하게 채우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K9은 실용적인 고급차다. 뒷자리에 대한 배려가 충실하고 승차감도 쇼퍼드리븐에 가깝다. 단점은 제네시스보다 브랜드 가치가 달린다는 것. 하지만 사장님의 EQ900을 뛰어 넘을 수 없어 ‘눈치게임’하는 부사장에게 딱 들어맞는다. K9을 고르는 임원들은 대부분 3.8L 자연흡기형을 선호한다고. 3.3 터보보다 조용하고 값은 오히려 싸서란다.


우리는 살 수 없지만 임원용으로는 G80 3.3L 엔진 달린 K9도 있다. 이걸 사면 3.8L 버전의 배기량이나 가격 제한을 피해갈 수 있다. 실제로 K9 3.3L 기본형의 값은 G80 기본형처럼 앞자리가 ‘4’로 시작한다. 중고 시장에 풀렸을 때 손에 넣으면 은근 ‘득템’일 것이다.

우두머리_ 제네시스 EQ900
사장님이나 회장님은 눈치 볼 거 없다. 자기 타고 싶은 거 타면 된다. 그렇다고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굴리면 대중에게 뭇매 맞는다. 이때는 검소한(?) 최고급차가 필요하기 마련.

그런 상황에서 EQ900는 최고다. G80나 K9은 기본형도 많은 선택 받지만 EQ900는 다르다. 심지어 8기통 5.0L 모델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길쭉한 리무진 버전도 비교적 흔하다. 유일하게 스트레치드 리무진형도 있다는 사실은 임원용차 세계에서 EQ900의 위상을 일깨우는 포인트다.

지금까지 언급한 임원용 자동차들을 보고 자연스레 “현대기아판이냐”는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임원들로부터 여기 나온 모델이 인기 높은 건 ‘팩트’다. 회사 밀집해 있는 빌딩 지하주차장만 가봐도 답 나온다. 온통 까만 그랜저와 제네시스다. 이 풍경을 뒤엎고 싶다고? 방법은 하나다. 현대 기아를 아무리 욕 해봐야 소용 없다. 다른 국산차 메이커들이 분발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쌍용 체어맨은 에쿠스의 대체재로서 임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랜저의 대안인 르노삼성 SM7도 적잖이 보였다. 언젠가는, 다시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정상현

정상현 편집장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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