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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악연, 쉐보레 플래그십 수난사

또 악연이다. 쉐보레 임팔라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4년 전, 쉐보레는 알페온 후계 모델로 임팔라를 들여왔다. 북미에서 나름 잘 팔린 모델인 만큼 관심도 높았다. ‘그랜저 대항마’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그랬던 임팔라의 지난 달 판매량은 고작 한 대다. 대기수요가 8천여 대에 이르렀던 초창기를 떠올리면 씁쓸한 결말이다. 결국 이번에도 단종이다. 벌써 네 번째다. 스테이츠맨부터 임팔라까지 또렷한 성과가 없었다. 쉐보레 플래그십 세단의 연이은 실패들. 그 원인을 살펴보자.

스테이츠맨(2005년 5월~2006년 7월)
GM대우로서는 처음 내놓은 플래그십 세단이다. 대우자동차 시절 아카디아 이후 10년 만의 일이었다. 독자 개발한 모델은 아니다. 홀덴 WL 스테이츠맨을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다듬어 출시했다. 당시 에쿠스나 체어맨보다 긴 보디(5,195mm)로 이목을 끌었다.

스테이츠맨이 실패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실내에 있었다. 토대가 된 WL 스테이츠맨은 호주 태생이다. 일본처럼 운전대가 오른쪽에 위치한 나라여서 우리나라에 출시하기 위해서는 설계를 바꿔야 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가령 핸드 사이드 브레이크는 조수석 쪽에 달렸다. 트렁크 버튼은 운전석 하단이 아닌 글러브 박스 안에 숨어있었다. 고급감도 문제였다. 사이드 미러는 손으로 접어야 했고 안테나는 90년대에 만들어진 자동차처럼 징-하고 솟아올랐다. 판매량은 참담했다. 13개월 동안 1,700여 대가 팔렸을 뿐이다.

베리타스(2008년 9월~2010년 10월)
전작과 마찬가지로 홀덴의 신형 스테이츠맨을 들였다. 실패를 만회하고자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더욱 꼼꼼하게 다듬었다. 2년 간 GM대우 엔지니어들이 현지에서 설계를 수정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는 드디어 운전석 쪽으로 옮겨왔다. 뒷자리 천장에는 DVD 모니터를 마련했고 뒷좌석 안마시트와 전용 블루투스 헤드셋도 제공하는 등 고급화했다.

자동차 자체는 무난하다는 평가였다. 3m 넘는 휠베이스 덕분에 뒷자리 공간이 여유로웠고 V6 3.6L 엔진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스테이츠맨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는 시기가 문제였다. 베리타스가 출시된 해에는 경쟁사 대형 세단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BH)를 선보였고 쌍용자동차는 체어맨 W를 내놨다. 이듬해에는 2세대 에쿠스(VI)도 출시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베리타스 단종에 한몫 거들었다. 누적 판매량은 약 2,100대.

알페온(2010년 9월~2015년 9월)
연이은 실패 후 2년만에 등장했다. GM대우는 고급차 전략을 틀었다. 과거에는 에쿠스, 체어맨과 경쟁할 대형 세단을 들였다면 준대형 세단으로 그랜저와 맞붙을 요량이었다. 그렇게 출시된 모델이 알페온이다. 당시 북미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뷰익 라크로스의 리뱃징 모델이다.

알페온은 안전성과 정숙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콕핏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푸른색 조명도 이색적이었다. 초창기 성적은 준수했다. 출시 첫 해에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의 총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이듬해에는 1만 대 넘게 팔기도 했다. 하지만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트랜스미션 내구성 이슈가 불거졌고 그랜저 HG 대비 편의장비가 부족하다는 혹평도 이어졌다. 결국 알페온도 5년만에 단종되었고 임팔라에 기함 자리를 내주었다.

임팔라(2015년 8월~2019년 1월)
출시 전부터 떠들썩했다. 쉐보레 ‘보타이’ 엠블럼을 단 첫 번째 플래그십 세단인 만큼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도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기아자동차 K7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하더니 그해 12월에는 2,700대가 팔려 정점을 찍었다. 차 자체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좋았다. 그랜저나 K7가 싫은 이들에게 절묘하게 먹혀든 것이다.

하지만 전량 수입하는 만큼 공급에 차질을 겪었다. 계약하면 금방 받을 수 있는 그랜저와는 달리 수개월 기다려야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가격 인상도 실패 원인이다. 2016년에 슬그머니 345만 원을 올린 것. 차는 그대로 둔 채 말이다. 보태어 2세대 K7과 그랜저 IG가 출시되면서 인기는 급격하게 식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에는 단종설이 떠올랐다.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GM이 뷰익 라크로스, 쉐보레 소닉(아베오), 임팔라, 볼트 하이브리드 등을 단종 시킬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당시 한국GM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단종이다. 벌써 네 번째 실패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정해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앞으로는 중형차인 말리부가 쉐보레의 최상위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호주를 대표했던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 중국을 호령하던 알페온(라크로스), 미국 터줏대감 임팔라까지. 쉐보레가 들여온 플래그쉽 세단들은 GM이 자랑하는 베스트셀링 모델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이유가 무엇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