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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자동차를 만든 회사의 슬픈 전설! 아메리칸 머슬카의 아버지 [폰티악]

 

요약
①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 최고의 명장면(?)을 장식한 [폰티악]
② 2010년 폐업한 폰티악…<미국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자동차회사> 1위
③ 1960~ : ‘분노의 질주’에 사운을 걸었던 폰티악…정통 [머슬카] 시대를 열다
④ 1980~ : 꾸준한 ‘청춘갬성’ 공략…의외로 국내에서도 대 히트(?)했던 폰티악
⑤ 2000~ :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 취급받은 ‘못생긴 차’를 만드는 회사로 전락
※ 영화 <분노의 질주 : 더 얼티메이트>.에 대한 쥐며느리만한 약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분노의 질주 : 더 얼티메이트>의 상상도 못 한 씬스틸러 : [폰티악] 피에로

안녕~ 친구들~ 빡빡이 아저씨야 <출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공식 예고편>

이제는 아득해진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 영화관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이어지며 사람들은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로 발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해질 무렵. 영화관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팝콘을 포대에 담아 팔며 주객이 전도된 눈물나는 생명연장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 눈물과 오욕의 <코로나 강점기>를 겪고 있던 극장가에 홀연히 한 구세주가 나타났다. <분노의 질주 : 더 얼티메이트>.

눈뽕에 간다간다 쑝간다!! 개봉 일주일 백만 관객 돌파! <출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공식 예고편>

시리즈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온갖 슈퍼카가 스크린에서 노니며 코로나 강점기 아래 우울한 일상을 지내오던 민초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분노의 질주는 무려 이 <코로나 시국>에 개봉 일주일만에 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줬고, 그 중에는 마스크를 쓰고 눈을 밝히는 글쓴이 또한 있었다. 스토리 따위 무엇이 중요하랴, 이게 말이 되냐는 좌뇌의 상소를 묵인하며 우뇌를 주무르는 시신경의 대향연에 몸을 맡기고 있던 글쓴이는 영화 종반부,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장면’을 목도하고 경악했다 (이하 약스포일러 주의)

쑝간다 쑝간다 했더니 대기권 돌파해 우주로… <출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공식 예고편>

 

그렇다, 차를 우주로 날려버렸다.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남기남급 영화적 상상력에 무릎을 탁 쳤다. 묘한 패배감과 함께 영화관을 나서며, 나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고 경악시켰던 ‘로켓 자동차’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분노의 질주에서 이렇게까지 임팩트있게 사용한 차라면 필시 보통 자동차는 아니리라. 아니나다를까 로켓 자동차의 정체는 [폰티악]에서 만든 미드십 스포츠 쿠페 ‘피에로’였다. 하지만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못했다. [폰티악]은 지난 2010년,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사라졌으니까.

 

# 미국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자동차 회사…미국 [머슬카] 전성기를 연 폰티악
재미있는 점은 이미 [폰티악]이 사라진 지 10년이 넘은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이 가장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라는 사실이다. 사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폰티악의 차량이 언젠가 대활약하리란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주인공 빈 디젤이 1편에 타고 나온 이후 시리즈의 상징이 된 1970년식 닷지 차저는 미국을 대표하는 ‘머슬카’ 차종이다. 폰티악을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폰티악이 ‘머슬카’를 정식 라인업으로 출시한 최초의 회사기 때문이다.

 

 

머슬카란 무엇인가? 메리암 웹스터 사전에서는 머슬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넓은 구매층을 대상으로 하는, 퍼포먼스를 위한 강력한 엔진을 갖춘 미국산 2도어 스포츠 쿠페’ 즉, 가격대가 저렴해 대중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도 고성능 주행성능을 갖춘 차량을 뜻한다. 이 [머슬카]는 1970년대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싼 차량에 고배기량 엔진을 튜닝해 가속력을 높이는 ‘핫로드’ 문화가 이미 자생적으로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 요즘 젊은 것들은 ‘양카’나 타고 말이야…그러면 우리가 만들자!!

미국은 운전면허 취득 연령이 만 15세 전후로 낮은 편이다. 즐길 거리가 마땅찮았던 당시 청춘들에게 길거리 경주(공도 레이스)는 매력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오락 수단이었고 이는 55년 작 영화 ‘이유없는 반항’ 등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엔진 배기량이 얼마든, 자동차세가 일정했기에 적당히 싼 차를 구해서 ‘고배기량 엔진’을 튜닝하는 것은 공도 레이스에서 승리를 얻는 가장 확실하고도 가성비 좋은 방법이었다.
이 시기 부진을 겪고 있던 폰티악은 이러한 청년 계층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운다. “젊은 사람의 차를 노인에게 팔 수는 있지만, 노인의 차를 젊은이에게 팔 수 없다”는 당시 폰티악 사업부장의 지침 아래, 폰티악은 ‘분노의 질주’를 시작한다. 시판 차량을 개조해 벌이는 경기인 나스카(NASCAR)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두며 성능을 과시하는 한편, 1964년 ‘중형차 섀시’에 ‘대형차 엔진’을 얹은 미국 최초의 머슬카, ‘템페스트 르망 GTO’를 출시한다.
사실 이 ‘GTO’는 태생적으로 탄생 자체가 불가능한 차였다. 당시 폰티악의 모회사였던 GM은 중형차 플랫폼을 사용하는 템페스트에 엔진 상한선을 ‘5400cc’로 제한한다. 하지만 폰티악은 ‘별도 옵션 트림’으로 6400cc 대형차 엔진을 제공하는 ‘꼼수’를 쓰는데, 출시 한 달 만에 1만 대가 넘는 판매고를 거두며 폰티악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 물 들어올 때 풀악셀 밟아라! 미디어로 청춘 갬성 사로잡은 폰티악

폰티악 오너의 맥주밀매 대모험! 다크나이트급 흥행을 기록한 영화 <스모키밴디트>


머슬카 시대를 개막한 폰티악은 이후로도 스포티한 고성능 차량을 출시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1977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스모키 앤 밴디트’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당시 1억 달러를 넘는 대 흥행을 거뒀다.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면 대략 ‘다크나이트’급의 초대박 흥행을 거둔 영화다. 맥주 밀매 추격전과 차량 액션씬을 다룬 이 영화는 ‘분노의 질주’ 조상님뻘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한 가지 차이라면 영화 내내 활약하는 주인공이 ‘불새 도장’을 한 폰티악 ‘파이어버드’ 차량을 몰고 대활약한다는 점이다. 지금 보면 취향에 따라 유치해 보일 정도로 허세가 폭발하는 이 ‘불새 도장’이 사제 튜닝이 아닌 ‘정식 옵션’이었다는 지점에서 당시 폰티악이 추구하던 ‘청춘갬성’이 극적으로 엿보인다.

내 동년배들은 다 <전격Z작전>로 자율주행 배웠다...

사실 이 ‘파이어버드’는 아마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명세를 탄 폰티악의 차량일 것이다. 80년대 추억의 외화 드라마 ‘전격Z작전’의 말하는 인공지능 슈퍼카 ‘키트(K.I.T.T)를 기억하는가? 이 차량 또한 폰티악의 파이어버드였다.
70년대에 접어들며 유가상승 및 고배기량 차량의 보험료 인상 등의 이유로 머슬카 선호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폰티악은 여전히 각종 미디어를 통해 청년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품’을 만들고 침몰한 폰티악

하지만 80년대 접어들며 폰티악은 서서히 침몰의 길을 걷게 된다. GM은 폰티악에게 원가절감을 통한 이윤증대를 요구하면서도, 타 차량과의 ‘확실한 차별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과거 GM의 정책에 반발해 중형차에 대형차 엔진을 옵션으로 끼워팔던 폰티악의 기개는 예전 같지 않았다. 폰티악은 ‘차별점’을 ‘싸게’ 만들기 위해 자사 차량의 외관에 ‘플라스틱 클래딩’을 덕지덕지 붙여대기 시작한다. 차별성은 생겼지만 우스꽝스러워질 따름이었다. 훗날 폰티악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했던 GM 부회장 ‘밥 루츠’는 이 시기의 폰티악에 대해 ‘폰티악은 흥분을 만든다고 광고했지만, 흥분은 플라스틱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소비자 민심을 잃어가던 폰티악에게 다가온 2000년, 훗날 타임지에 의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으로 손꼽히는 폰티악의 최대 실책이 탄생한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자동차’ 폰티악 아즈텍의 출시였다. 사실 폰티악 아즈텍은 99년 모터쇼에 컨셉 모델을 출시할 당시만 해도 시대를 선도할 크로스오버 차량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원가절감을 위해 GM의 재무회계팀이 개입하며 헬게이트가 열렸다.
‘트럭’ 플랫폼을 상정하고 설계된 차량 디자인은 예산 절감을 위해 기존 ‘미니밴’ 플랫폼으로 변경하면서 차폭은 줄고 차고는 높아져 모터쇼에서 공개한 컨셉카의 비율이 완전히 뭉개졌다. 한술 더 떠서 벨트라인을 도어의 절반 가까이 올린 걸로도 부족해 싼티나는 플라스틱으로 마감하며 처참한 디자인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폰티악과의 옛정이 남아있던 기존 소비자들의 애착이 모조리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즈텍 출시를 기점으로 폰티악의 매출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결국 2010년, GM은 폰티악 브랜드와 산하 모든 차량의 단종을 발표한다.

 

 

# 갬성으로 흥하고 숫자로 망한 폰티악
앞서 밝혔듯 폰티악은 폐업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인이 가장 많이 검색한 차량 브랜드’이다. 그만큼 폰티악의 전성기, 청년 감성을 정확히 파악했던 ‘아메리칸 머슬카’의 아버지 폰티악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리라. 하지만 폰티악의 몰락은 소비자는 언제까지고 추억 속에서만 살지 않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고객의 만족보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회사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도.

차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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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ncar.com

차에 대한 소식을 즐겁게 전해드리는 차똘박...아니 차돌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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