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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심EP.3] 일본 지도교수를 무릎꿇린 한국 대학원생!! 그건 현대차 엔진개발 스토리였고요~ (R.I.P.미쓰비시)

요약
① 엔카 이용자분들이 뽑아주신 ‘가장 부활하길 원하는 차’ 1위 갤로퍼! 하지만…
② 그런데 갤로퍼 엔진은 일본 미쓰비시 기술 엔진…?! 미쓰비시의 그늘에 가려졌던 현대
③ 엔진 자체생산을 꿈꾸던 현대의 야망…어떻게든 막으려던 미쓰비시의 ‘뒷공작’
④ 미쓰비시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 현대…세계에서도 통하는 엔진을 만들다
⑤ 미쓰비시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현대는 엔진 결함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① 엔카 이용자분들이 뽑아주신 ‘가장 부활하길 원하는 차’ 1위 갤로퍼! 하지만…

지난 5월, 엔카닷컴에서 ‘전설의 명차 중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모델’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과연 국산 소비자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국산차는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현대, 정확히는 현대정공이 1991년부터 생산한 SUV ‘갤로퍼’였다.

갤로퍼가 첫 선을 보인 1991년 당시 국내 SUV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와 쌍용의 ‘코란도 훼미리’가 존재했지만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등장한 현대 갤로퍼는 단 5개월 만에 ‘박힌 돌’ 코란도를 밀어내고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사실 현대 갤로퍼 자체가 세계 시장에서도 선전한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라이선스 생산한, 사실상의 복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때문에 좌핸들인 일본 기준으로 설계가 되어 트렁크 문이 열리는가 하면, 엔진 역시 일본 미쓰비시 기술을 사용한 엔진이었다. 당시 쌍용은 이 지점을 노리고 ‘갤로퍼는 일본차, 코란도는 국산차’라고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② 그런데 갤로퍼 엔진은 일본 미쓰비시 기술 엔진…?! 미쓰비시의 그늘에 가려졌던 현대

소비자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단종된 명차, 갤로퍼의 심장이 ‘일본산 엔진’인 것은 사뭇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비단 갤로퍼뿐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역사 전반에서 미쓰비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도교수’ 같은 존재였다. 흔히 ‘대한민국 수출 1호차’라고 일컬어지는 포니 역시 미쓰비시 ‘랜서’의 플랫폼과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결합한 뒤, 현대가 차량 디자인을 변경해 조립해 낸 차량이다. 사실상 뼈대와 심장이 모두 '일본산'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포니 생산 첫 해부터 수출/내수 모두 대박이 터지자 현대는 은밀히 '반란'을 꿈꾸기 시작했다. 바로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을 자체 개발하려는 시도였다.

 

③ 엔진 자체생산을 꿈꾸던 현대의 야망…어떻게든 막으려던 미쓰비시의 ‘뒷공작’

현대의 엔진 자체개발을 진두지휘한 것은 놀랍게도 정주영 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본인이 직접 최전선에 나서서 엔진 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현순 박사였다. 정 회장은 하루가 머다하고 국제전화로 이현순 박사에게 국내로 돌아와 엔진개발에 착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끈질긴 '스팸 전화'에 이현순 박사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달러가 귀하던 시대, 이현순 박사는 한국에서 근무하며 제네럴모터스에서 받던 급여의 1/3 정도밖에 받지 못했지만 엔진 개발에 열정을 불태웠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오지 않던가,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이다.

이현순 박사를 모신 현대는 곧이어 크라이슬러에서 근무하던 이대운 박사를 영입하고 영국 리카르도 사에 엔진 설계를 의뢰해 엔진 개발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엔진독립운동’을 손 놓고 바라만 볼 미쓰비시가 아니었다. 미쓰비시의 ‘실세’로 군림하고 있던 ‘구보 도미오’ 전 회당 (당시 직책은 상담역)은 정주영 회장을 찾아와 제안한다.

“엔진 신기술을 줄 테니 ‘그놈’을 잘라버려라”

‘그놈’이란 다름아닌 이현순 박사였다. 정 회장은 언제 개발될지 기약도 없는 자체제작 엔진의 핵심개발인력과 당장 제공하겠다는 미쓰비시의 엔진 신기술을 저울질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중한 거절과 함께 본격적인 현대자동차의 ‘국산 엔진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현대의 첫 엔진인 ‘알파 엔진’ 시제품이 20대 넘게 부서지며 개발에 난항을 겪자, 구보 회장은 또다시 정 회장을 찾아온다.

“로열티를 50% 깎아줄 테니 '이현순'을 내보내라’

당시 현대는 800억 원 가량 되던 순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미쓰비시에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던 상황. 이번에는 핵심 개발인력 1명과 200억 원 가량을 저울질하게 된 정 회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 회장의 선택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위기감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구보 전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그렇게나 싸고 도는 이현순 박사를 직접 만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미쓰비시의 엔지니어들이 해결에 난항을 겪던 ‘열 변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진에 200개가 넘는 온도계를 꽂아 측정하는 이현순박사 연구팀을 보고 경악한 구보 전 회장은 자사 연구원들에게 일갈했다 전해진다.

“현대에 웬 독한 놈이 있다. 이러다가 우리가 현대에서 기술을 배울 판이다”

④ 미쓰비시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 현대…세계에서도 통하는 엔진을 만들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 걸까. 구보 전 회장의 비통한 일갈은 현실이 된다. 280번이 넘게 설계를 변형한 끝에 현대는 1991년 마침내 최초의 ‘국산 엔진’인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현대가 개발을 완료한 알파엔진이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현대는 자사 ‘스쿠프’ 차량에 미쓰비시 오리온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알파 엔진 개발이 완료되자 미쓰비시 엔진을 뜯어버리고 알파 엔진을 탑재한다. 2004년이 되자 중형차량 엔진인 ‘세타 엔진’을 자체 제작해 소나타 차량에 장착한다. 그리고 2007년, 이미 세상을 떠난 구보 전 회장의 불길한 예언이 실현되었다. 미쓰비시 랜서의 신형 모델에 현대 세타 엔진을 기반으로 세팅한 ‘4B1’엔진이 사용된 것이다. 현대는 2008년 마침내 대형차 엔진인 ‘타우 엔진’ 개발에 성공하는 한편, 미국 워즈오토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10대 엔진’에 3년 연속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일본 기술력에서 벗어나 엔진독립을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통하는 엔진을 만든 현대의 역량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⑤ 미쓰비시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현대는 엔진 결함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15년, 현대는 미국에서 제조한 세타2엔진을 장착하고 판매한 소나타 47만대를 리콜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리콜이 이어진다. 최근 개발한 스마트스트림 2.5 엔진도 엔진오일 감소 현상이 나타나며 설계결함 논란에 휩싸였고, 지난 5월에도 엔진 화재 가능성이 발견된 차량 39만대를 리콜하는 치욕을 당했다.

‘품질 논란’이 현대를 엄습하고 있는 이 시점에, 현대는 과거 스승이었던 미쓰비시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 한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00년, 미쓰비시 자동차는 무려 1977년부터 60만 대가 넘는 자사 차량에 결함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은폐해 온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터진 뒤에도 미쓰비시는 자사 차량의 결함을 인정하기보다는 해당 소비자와 접촉해 몰래 수리해주며 이슈를 덮으려고 했지만 결국 또다시 들통나게 된다. 당시 회장까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소비자들은 미쓰비시를 외면했고, 끝내 미쓰비시는 2016년 닛산-크라이슬러에 인수되며 브랜드 자체는 살아남았지만 사실상 간신히 목숨부지만 하는 ‘산송장’ 처지가 되었다.

과연 현대는 스승 미쓰비시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현대가 스승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을지, 아니면 스승의 잘못을 반복할지는 오로지 현대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차돌박이

차돌박이

shak@encar.com

차에 대한 소식을 즐겁게 전해드리는 차똘박...아니 차돌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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