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i4 eDrive40 M Sport Pro를 장기간 시승했다. BMW의 4시리즈 '그란 쿠페'를 베이스로 한 순수 전기차이자,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세단이다. BMW는 이후 I5나 I7 등 ICEV 플랫폼 기반의 BEV를 순차적으로 출시하며 전기차 시장의 영향력을 키웠다. 많은 기업들이 전기차의 혁신성을 강조하며 신규 플랫폼 개발에 집착했던 반면에, 오히려 시장 초읽기부터 전기차에 투자해온 BMW는 내연/전기 차 겸용 플랫폼으로 단기간의 원가 절감과 라인업 확장을 이루었다.
전기차의 '혁신성'이라 하면 재래식 자동차는 실현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겠다. 공간의 확장이나 안정성, 동력 분산이나 SDV향 발전에서 유리할 것이다. 그런 혁신성은 얼리어답터를 시작으로 많은 대중들의 소비욕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혁신성은 '갖고 싶은 차'에 요구되는 필수 조건 중 하나일 뿐인 셈이다. 결국 전기차도 자동차다. 장기적으로 보면, 차별성으로 승부 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과 성능, 감성 품질 등 기본기에 충실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BMW는 기술의 진보와 브랜드의 가치가 양립하는 듯 느껴져왔다.
그 플랫폼부터 디자인까지 내연기관과 차이를 두지 않는 BMW의 전기차 시장 전략이다. 단일 플랫폼 전략이 단기적인 혁신성을 표명하진 못했지만, 차근차근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는 중에 있다. 무엇보다 세단 라인업의 초석이었던 i4 그란쿠페는 앞서 언급했던 '갖고 싶은 차'라는 명목에 부합하는 첫인상이었다. 전기, 내연 구분 없이 멋스러운 디자인, 의구심보다 기대감이 앞서는 BMW의 엔지니어링 역량, 그리고 BEV와 ICEV의 가격 격차가 큰 매스 브랜드에 비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높은 마진율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BMW의 첫 번째 순수 전기 세단이 3시리즈가 아닌 4시리즈가 바탕인 연유도 유사할 수 있다. 본격적인 쿠페 스타일을 지향하는 4시리즈가 더욱 '갖고 싶은 차'의 명목에 부합하게 된다. 순수 전기차 'i4'의 변화는 버티컬 타입 그릴의 상단은 막혀있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시승 차량은 M 스포츠 'PRO' 사양이다. 공격적인 범퍼와 블랙 몰딩도 멋스럽지만, PRO 트림의 핵은 '레이저 헤드 램프'가 아닐까 싶다. 어느 각도, 어느 거리에서 보아도 강렬한 엔젤 아이는 BMW 특유의 카리스마를 극대화 한다. 충분한 세일즈 포인트라고 느꼈다.
아무렴 그란쿠페의 핵심은 측면 디자인이다. 도어 프레임이 없는 하드탑 스타일, 얇고 매끈한 루프라인으로 곡선미가 느껴지는 실루엣을 보인다. 캐릭터 라인도 꽤나 입체적이다. 리어 펜더 뒷부분 웨이스트 라인만 급격히 상승한다. 19인치 휠, 그 사이로 비치는 M 스포츠 브레이크와 에어 브리더, 두꺼운 스커트까지 공격적인 스탠스를 확고히 했다. 통상 EV 전용 플랫폼 전기차는 실내 공간 확장을 중요시 여긴다. 때문에 비율적인 매력은 상실하는 문제가 생겨버리는데, BMW의 겸용 플랫폼 전기차는 후륜구동 고유의 역동적인 비율이 나타나는 셈이다.
후면 디자인도 4시리즈 그란쿠페와 거의 동일하다. 가장 유사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drive40과 i4라는 엠블럼, 그리고 엠블럼의 푸른색 테두리로 '전기차'라는 점을 쉽게 알아보는 건 가능했다. 점차 얇게 파고드는 테일램프 그래픽이 날카롭다. M 스포츠 패키지 적용 모델답게 리어 범퍼까지도 공격적인 형태였다. 에어커튼과 공격적인 디퓨져를 갖추고 있는데, 이 디퓨져가 마치 머플러 팁을 형상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C필러 라인을 낮추기 위해 뒷면 전고가 높게 빠져있는 인상은 있다.
실내 디자인은 더욱 i4와 4시리즈를 구분하기 어렵다. 3시리즈도 같은 레이아웃을 택한 바 있다.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4.9인치 터치 스크린을 혼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그리고 HUD가 탑재된다. 운영체제는 8.5세대, 센터 콘솔의 I 드라이브 다이얼과 버튼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디지털 클러스터는 다양한 테마와 레이아웃을 제공한다. 센터패시아는 볼륨 다이얼과 비상등 정도가 남았고, 공조 기능은 터치스크린 하단에 배치되었다. 그 아래 컵홀더와 무선충전 패드, 아울러 변속기는 토글레버 타입으로 회생 제동 모드도 변경할 수 있다.
차량에 앉으면 전기 차인 만큼 바닥면이 높게 올라와 있긴 하다. 특히 시트 포지션이 낮은 BMW인 만큼, 평소보다 시트레일을 더 뒤로 밀고 주행해야 했다. 그런 측면에서 시야 확보를 위한 서라운드 뷰 가 빠진 점은 아쉬웠다. 대신 주차 센서는 전범위, 자동 주차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M 스포츠 스티어링 휠은 멋스러운 디자인과 뛰어난 그립감을 갖추고 있다. 1열 통풍 시트, 앰비언트 라이트와 하만 카돈 스피커 등 고급감을 더하는 장비들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센터 콘솔에 배치된 푸른색의 엔진 스타트 버튼과 휠 엠블럼이 전기차만의 포인트다.
뒷좌석 공간이다. 쿠페를 기반으로 한 세단인 만큼 협소한 느낌이 있기는 하다. 특히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헤드레스트가 좁다. 그래도 예상한 것보다는 시트 포지션이 편안했고, 레그룸은 여유가 있었다. 1열 시트를 최대한 뒤로 밀어도 꽤 잔여 공간이 있다. 편의 장비로 암 레스트와 독립 공조 시스템, 시트 열선 정도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선루프 면적도 생각보다 넓어서 개방감에 효과가 있었다. '세단'이라 하기에는 아쉬운 2열 공간이지만, 그만큼 여유로운 트렁크 공간이 매력적이다. 리프트 백 게이트를 채택하여 실용성도 좋다.
디자인과 사용감은 일반적인 BMW다. 대신 바닥면이 다소 높고 시동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 또 스포츠 모드에서 RPM 대신 'POWER' 게이지를 활용하는게 i시리즈만의 특징이다. 아무렴, 베이스 모델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i4 eDrive40에는 250Kw급 전기 모터가 탑재된다. 단순 환산 최고출력은 335HP, 최대 토크는 43.9Kg.m이다. 실제 출력은 가솔린 모델 40i와 비슷한 수준, 그래서 '40'이라는 명칭이 붙은 셈이다. 다만 84kwh 급 삼성SDI의 LI-ion 각형 배터리가 탑재되면서 공차중량은 2110kg까지 늘어난다.
당연히 변속기는 없고 제로백은 5.7초로 알려진다. 항속거리는 429km로 넉넉한 수준이며, 80%까지 급속충전 시간은 약 31분이라 한다. 참고로 BMW는 일반적인 PMSM 모터가 아닌 WRSM 모터를 탑재한다. AC 브러시 타입 모터로 회전자에 영구자석을 활용하는 PMSM보다 원재료 수급과 원가 절감, 출력 효율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대신 '내구성' 특히 유지관리 용이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배터리 내구성보다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운전자가 모터 형식의 차이까지 체감할 수가 없다.
드라이브 모드는 SPORT, ECO, COMFORT로 구분된다. 함께 어댑티브 서스펜션, 모터, 스티어링 휠의 감도를 조율할 수 있다. 기본 컴포트 모드에서 발진감은 상당히 부드럽다. 딱 엑셀을 밟는 느낌 그대로 가속되며, 풀 파워에서 가상 사운드도 조용하게 억제되어 있다. 그 가속감이 너무 조용하다 보니 잠깐만 엑셀을 깊게 밟아도 속력은 예상치보다 훨씬 높게 올라 있다.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그 반응성 차이가 크진 않지만, 분명히 다르기도 하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초반 가속보다 30~60Kph 사이에서의 펀치력이 가장 강했다.
대략 시속 140Km 이상에서 가속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전기차의 공통된 특징이다. i4도 같다만, 편안히 운전하면서 그 이상의 속력이 필요하진 않다. 결과적으로 실용 영역의 반응성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이점이다. 만약 세팅이 미숙한 전기차를 타면, 고 부하에서 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는데 i4는 언제든 안정적인 트랙션을 유지해 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단, 전체적인 주행감성이나 피드백은 모든 전기차가 비슷하다. 투자 비용에 따라 방음 대책에 대한 차이가 있긴 하겠으나 그 외의 부가가치가 축소되는 문제이다.
그러한 전기차의 성격 평준화 시대에서, i4의 강점은 BMW 고유의 드라이빙 감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여전한 정숙성과 고속 안정성, 스티어링의 묵직함은 내연기관 시절부터 전기차까지 이어져 오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본기였다. 그리고 탄탄하고 안정적인 핸들링 감각까지도 답습했다. 특히 스포츠 모드에서 섀시는 BMW의 M 패키지 모델다운 단단한 피드백을 전달한다. 전륜 코일 오버, 후륜 에어 서스펜션 타입으로 노면 충격을 흡수하며, 미세한 리바운드도 느껴지지 않게 깔끔하게 충격을 받아친다.
물론 컴포트한 감각과는 거리가 멀지만 피드백이 즐겁다. 스티어링을 과감히 꺾어도 롤링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고속에서도 낮게 깔려있는 듯한 무게중심은 접지력의 한계치를 끌어올려 준다. 대신 무게 때문인지 내연기관에 비해 후륜 추종성이 다소 둔한 느낌은 있긴 하다. 급제동식 다이브 현상도 심한 편이라 종 방향 흔들림이 강하지만, 반대로 전기모터의 응답성은 내연기관이 따라올 수 없는 민첩함을 더한다. 그리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한스짐머와 공동 작업했다고 하는 '아이코닉 사운드'가 제법 강렬하게 들려온다.
역시나 컴포트한 자동차는 아니다. 기존 4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세단'의 명목으로 구매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어댑티브 서스펜션은 컴포트 모드에서 보다 더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긴 하지만, 기본 셋업과 무게중심 자체가 롤을 억제하다 보니 피드백이 너무 직접적이다. 그리고 '회생제동'도 마찬가지다. 다이브 현상은 동승석은 멀미를 유발하게 할 수 있다. 끄면 문제가 없겠지만, 시내에서는 강도를 키우는 게 언덕 밀림도 없고 전비도 높이고 하니 편리하다. 그나마 '어댑티브'모드가 있어서 차간 거리에 따른 부드러운 회생제동 개입을 돕는다.
하나, 어댑티브 모드가 완전 정차까지 지원해 주진 않다 보니 혼자 주행할 때는 대부분 원페달로 주행하게 되었다. 그런 전기차의 특성, 하물며 날렵한 외관과 승차감 세팅까지 I4 그란쿠페는 오너 드리븐으로 적합한 펀 드라이빙 세단이 아닐까 싶다. 충전이야 굳이 I4만의 불편함은 없고, 항속거리도 넉넉하다. 가을철에 최소 400Km는 주행하는 셈이니, 그보다 더 장거리 주행이 필요하다면 급속 충전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통행료와 공영시설 할인도 좋다. 장거리 주행하니,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의 도움도 받으면 정말 편리하다.
근원적으로 전기자동차는 '친환경'을 위해 판매가 강요되어 왔다. 기업 차원의 탄소 절감 대책을 찾아야 하면서도,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과 제품성을 추구해야 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갖고 싶은 차'를 만드는 것이 BMW의 전략 같다. 여타 브랜드들이 EV의 친환경성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BMW는 그저 전동기로 움직이는 4시리즈를 제작한 느낌, 그 가격과 편의에 대한 괴리감도 없으니 더욱 완벽하다.
물론 그런 BMW의 행보를 비판하는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전기차의 플랫폼 혁신은 기존 내연기관이 가지지 못한 광활한 공간성을 실현해 준다. 그에 비하면 4시리즈 그란쿠페의 2열 좌석은 비좁고 답답한 면이 있다. 아무리 좋은 소재와 편의 장비를 사용한다 한들, 전용 플랫폼 전기차의 개방감을 따라잡기란 어렵다. 그에 대한 문제점을 느낀 BMW도 노이에 클라세 시리즈의 부활을 예고했으니, 앞으로의 대응은 꾸준히 지켜봐야겠다. 결과적으로 i4를 장기간 시승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갖고 싶은 전기 차였다는 점, 그리고 전기차에 앞서 'BMW'인 것이다.
BMW I4 그란쿠페 Edrive40 M 스포츠 패키지 프로를 장기간 시승했다. 전기자동차의 뛰어난 응답성과 정숙성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주행감을 구현했다. 대부분 고중량 전기차들의 승차감은 딱딱하고, 이번 i4 그란쿠페도 동일하다. 대신 BMW라서 이질감이 적다. 원래도 그런 세팅을 가진 자동차처럼, 공격적이고 미래적인 외모와도 잘 어울리는 주행성이었다. 결과적으로 내연기관에 충성심이 높은 소비자들도 수긍할 만한 제품성을 보였다. 전기차 산업의 부흥으로 인한 격동기에 BMW는 정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