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 K5의 보급형 트림, 2.0 가솔린 프레스티지 트림을 시승했다. 전통적으로 중형 세단은 '승용차'의 가장 근본적인 차체 형식이었다. 엔진룸과 캐빈룸, 그리고 트렁크가 구분되어 있는 3박스 형식으로 정의되는 '세단', 역설적으로 지금은 가장 소외되고 있는 자동차의 장르 중 하나다. 도심형 SUV의 대중화에 따라 패밀리카의 수요가 대거 이탈하였고, 오직 '세단'의 장점만을 편애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선택지로 남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산 세단은 사실상 현대차 그룹의 독점 시장이 되었고, 국내 완성차 3사에게는 투자의 여력이 없다. 국내 중형 세단은 한때 국민차를 표명했던 '쏘나타'와 디자인의 기아를 상징했던 'K5'가 남는다.

한 지붕 아래 플랫폼과 구동 계통 대부분을 공용하는 쏘나타와 K5는 '디자인의 싸움'으로 번져왔다. 그 디자인의 힘으로 과거 K5는 '국민차'라는 타이틀을 유지오던 쏘나타의 견고한 판매량을 넘어선 바 있다. 이는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기도 있었다. 현재는 중형 세단의 인기도 하락에 따라 두 차종 모두가 평이한 판매량을 보이고, 내수 판매량 20위권을 간신히 유지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던 중 2024년에는 쏘나타의 전체 판매량이 K5를 훌쩍 앞선다. 올해 2025년 1월~8월 누적 실적도 쏘나타는 약 3만 26백 대 수준의 판매량으로 K5를 1만 대가량 앞서는 추이에 있다.

하지만 쏘나타라고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간신히 10위를 유지했지만, 그랑 콜레오스와 모델 Y가 판매량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무엇보다 쏘나타의 판매 1위 트림은 2.0LPG 택시 트림이다. 대략 1만 대 수준이고, 현대차가 아닌 '북경 현대'의 중국 현지 생산분이다. 즉, 국내 생산분으로만 비교하면 K5가 쏘나타의 판매량을 앞지른다. 아무래도 사업자 수요가 많아서인지 2.0 가솔린과 승용 LPG 트림의 판매량이 K5가 쏘나타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미지와 다르게 1.6 가솔린 터보는 쏘나타가 앞서는 모습, 결과적으로 쏘나타나 K5의 판매 실적에서 승부를 논하긴 어려워졌다는 사견이다.

이번 시승차량 기아 더 뉴 K5 페이스리프트 2.0 가솔린 '프레스티지'는 보급형 트림이다. 정확히 엔트리 트림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저가형 모델 '스마트 셀렉션'이 존재하기 때문, 오직 2.0 가솔린에만 제공되는 사양이다. 내비게이션과 전자식 변속기가 빠지고 보급형 외장이 적용되는데, 워낙 선택률이 낮아 존재감이 없는 구성이긴 하다. 또, 1.6 가솔린 터보 기준으로는 '프레스티지'가 엔트리 트림이 맞다. 2026년형부터는 '베스트 셀렉션'의 선택률이 높은 반면, 이번 시승 차량이 이른바 '깡통'이라고 하는 기본형에 가깝다고 간주할 수 있겠다.

더 뉴 K5는 기존 디자인보다 정제되면서도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다듬어졌다. 기아의 오랜 상징이던 타이거 노즈 그릴과 GT 라인을 연상시키는 스포티한 범퍼가 특징이다. 패스트 백 라인으로 뻗어나가는 C필러, 이를 가르는 윈도우라인 몰딩은 K5의 오랜 디자인 헤리티지다. 페이스리프트 이후 테일램프는 더욱 길게 확장된 바 있다. 다만, 기존 금형을 유지하다 보니 디자인 자체는 다소 어색하다. K5의 비율 자체가 잘 조율되어 있으니 억지스럽게나마 소화해 내는 모습, 디퓨저가 자리한 리어범퍼는 여전히 매력적인 디자인 요소다.

K5는 기본 프레스티지 트림부터 LED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제공된다. 다만 시그니처의 프로젝션 타입과는 달리, 그래픽이 살짝 아쉽다. 그리고 테일램프는 벌브타입이라서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휠은 17인치가 기본이다. 의외로 기본 휠 디자인은 나름 정교한 전면 가공과 매력적인 디자인을 품고 있다. 덕분에 K5 고유의 날렵한 스탠스가 잘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테일램프의 그래픽에만 아쉬움이 남을 뿐, 가격에 대비해서는 만족스러운 외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LED 테일램프가 기본인 '베스트 셀렉션' 트림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된다.


기아 K5 프레스티지 등급의 실내다. 시승 차량은 오직 '12.3인치 클러스터 팩'만 추가되어 있었다. 12.3인치 컬러 디지털 클러스터, 하이패스, 그리고 레인센서와 터치 타입 2존 풀 오토 에어컨, 오토디포그, 공기 청정 시스템으로 구성된 패키지다. 가격은 104만 원, 정말 '가성비'만 본다면 필수적인 옵션은 아닌 것 같다. 여담으로, K5는 12.3인치 내비게이션이 기본이다. 기본 클러스터도 디지털 방식이라서, 기본 등급도 실내 구성 자체는 준수해 보일 수 있다. 블랙 하이그로시 패널과 전자식 변속 다이얼도 기본 적용이다.


정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옵션들은 전부 탑재되어 있다. 버튼 시동, 크루즈 컨트롤, 애프터 블로우, 인조가죽 시트, 1열 통풍 열선 시트, 오토라이트 컨트롤, 크루즈 컨트롤, 후방카메라 등이 그 예시다. 다만 기본 사양 그대로는 메뉴얼 에어컨이 적용되고, 수동 조절식 시트나 디지털 키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급감이 많이 떨어진다. 만약 옵션을 추가하는 경우라면, 1열 릴렉션 컴포트 시트나 고속도로 주행보조 2, 헤드업 디스플레이, KRELL 프리미엄 사운드, 앰비언트 라이트 등등 고사양 장비들을 누릴 수 있다. 적절한 고민이 필요하다.


참고로 기아 K5의 뒷좌석은 풀옵션 '시그니처'를 선택하더라도 몇 가지 옵션이 누락되어 있다. 2열 시트 폴딩과 헤드레스트, 암 레스트가 그 품목이다. 프레스티지 트림은 당연히 무 옵션 그 자체, 뒷좌석 에어벤트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행이다. 프레스티지 트림 기준으로는 '컴포트' 패키지를 추가해야 2열 시트 열선과 높이 조절식 헤드레스트, 암 레스트가 추가된다. 뒷좌석 측면 수동 선 커튼은 오직 '시그니처' 트림에만 제공된다. 또, 기본 사양은 '스마트 트렁크'가 적용되는데, 전동 조작은 불가능하나 반자동 방식으로 편리한 개방을 도와준다.

시승 차량은 2.0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탑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1.6 가솔린 터보의 수요도 많은데, 같은 프레스티지 트림으로는 가격이 79만 원 정도 저렴하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출력이다. 최고 출력 160Hp, 최대토크 20.0Kg.m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변속기도 6단 토크컨버터로 교체되며, 자연흡기라서인지 공인 연비도 12.2~12.6Km/l 수준으로 대략 1Km/l 가량 낮다. 스티어링에 랙 타입이 아닌 C-MDPS가 적용되는 등 전체적으로 저가형의 구성을 채택하는데, 79만 원의 비용 절감이 크게 합리적으로 느껴지진 않는게 사실이다.

아무렴 접근성이 낮은 가격대 인건 맞다. 2.0 가솔린 엔진으로도 주행 성능은 충분히 확보되기 때문에, 터보 엔진의 특유의 소음과 둔탁한 주행 질감, 내구성 등 다른 사유로도 자연흡기 엔진은 선택할 가치가 있다. 발진감은 여느 세단이 그렇듯 부드럽게 세팅되어 있다. 엑셀 반응이 너무 예민하지 않고 출력이 부드럽게 전개된다. 그에 대한 변속기의 반응도 여유롭게 느진다. 엔진 출력이 좋아서 부드럽게 나아간다기보다는 차체가 가벼워 경쾌히 가속되는 감각이다. 실제 공차중량도 1425Kg 수준으로 가볍다.

생각보다는 하체가 부드럽게 조율되어 있다. 공격적인 디자인과는 다르게 편안한 주행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17인치 휠이 적용되어 있다 보니 편평비가 작고, 노면 충격과 소음이 거의 없었다. 방지턱에 대한 대응도 부드러운데, 오버행이 길고 휠베이스가 긴 차체 특성상 많은 감속을 필요로 한다. 정말 무난히 타기 좋은 승차감이다. 세단이라서 가능한 편안함으로, 무게 중심이 낮다 보니 일상 주행에서는 크게 차체 쏠림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 역동적인 주행에서는 반응성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C 타입 MDPS는 차량과 섀시와의 직결감이 많이 떨어진다. 핸들링 감각 자체도 다소 가볍고, 격한 주행에서는 예상보다 차체 움직임이 불안정하다. 원래 K5는 쏘나타에 비해 단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의외로 실제 주행은 쏘나타가 조금 더 안정성에 집중하는 편이다. 2.0 자연흡기라고 드라이브 모드 세팅은 가능하다. 스포츠 모드에서 가장 큰 차이는 핸들링의 무게감, 다만 무겁다고 정교해지진 않는다. 엔진 반응은 확실히 예민해지는 것 같은데 최고 출력 자체가 '펀 드라이빙'을 즐기긴 어렵다.

특히 6단 변속기의 대응이 매우 느린 편이다. 고 RPM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딱히 유쾌하지 않기에, K5 가솔린 사양은 본 목적에 맞는 여유로운 주행이 적합해 보인다. 아무렴, 굳이 스포츠성을 평가한다면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K5의 승차감 세팅 자체가 부드럽고, 2.0 가솔린 엔진과 6단 토크컨버터의 조합도 도심이나 항속주행에서는 나름 정숙하고 부드러운 컨디션을 맞춰준다. 특히 K5는 장거리 크루징에서 편안한 세팅이다. 차로 이탈 방지 기능과 크루즈 컨트롤을 활용하면 장거리 여정도 편리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

기아 K5 2.0 가솔린 프레스티지 트림을 시승했다. 기본 트림부터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은 'K 시리즈'의 브랜드 가치를 충족해 준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 직관적이면서도 깔끔하다. 편의 장비 수준은 딱히 부족하지도, 탁월하지도 않다. 주행에서 느껴진 편안함과 부드러움은 별다른 불만이 없다. SUV가 아닌 '세단'이기 때문에 가벼운 세팅도 크게 불안하지 않은 면이 있겠다. 무엇보다 가격 대비 느껴지는 만족감이 좋았다. 특히 비슷한 가격대를 공유하는 소형 SUV 들에 비해 실용성은 떨어지더라도, 기본기와 완성도 자체는 훨씬 매력적이었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