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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에서 맛본 스위디시 만찬, 볼보 S90 T5/D5 시승기

볼보자동차가 국내 시장에 S90을 선보이고 9월 27일 시승회를 가졌다. 인천 영종도와 송도 인근에서 이뤄진 이벤트로 가솔린과 디젤을 대표하는 T5와 D5의 고급형인 인스크립션 모델을 경험할 기회였다.

S90은 S80의 뒤를 이어 볼보 플래그십 세단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주인공인 왜건과 크로스컨트리의 곁에서 구색 맞추기에 그쳤던 S80과 달리 S90은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중형 세단을 겨냥하며 주인공 자리를 노리는 눈치다.

역동적인 외모

당찬 이미지가 그 출발점인데 토르의 망치를 품은 LED 헤드램프와 음각으로 멋을 낸 그릴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인다. 이전의 투박한 볼보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다. 먼저 등장한 2세대 XC90부터 이어진 신세대 볼보의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들었다.

특이한 점은 앞바퀴를 S80보다 한 뼘 정도 앞으로 당긴 것. 이런 변화로 프런트 오버행은 크게 줄었고 보닛은 늘었다. 앞바퀴굴림(FF)이 기본이지만 비율적으로 보면 FR(앞 엔진 뒷바퀴굴림)에 가깝다. 클래식 쿠페의 우아함과 다이내믹함을 새롭게 해석한 부분으로 지루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앞바퀴굴림 모델에서 쉽지 않은 결정인데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것만 봐도 S90의 개발에 디자이너의 입김이 더 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현재 볼보가 가질 수 있는 엔진이 4기통 2.0L 하나라는 점도 이런 디자인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V6 3.0 혹은 그 이상의 엔진 크기까지 고려해 엔진룸을 짜야 하는 라이벌과 달리 볼보는 S90의 엔진을 가솔린과 디젤 모두 2.0L로 사이즈를 통일시켰다. 그러면서도 라인업 별로 출력에 차이를 두어 여러 선택지를 두었다.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디자인으로만 봤을 땐 ‘신의 한수’처럼 느껴진다.

반면 뒷모습에선 밸런스가 아쉽다. ‘ㄷ’자 형태의 LED 테일램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볼보의 전통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부자연스럽다. D필러를 살려 자연스럽던 볼보식 세로 램프가 세단에선 그 매력을 잃었다.

휴식의 품격 느껴지는 실내

이전 볼보와의 격차는 실내에서도 느껴진다. 스웨덴의 모던 가구에 둘러싸인 기분이다. 실은 그보다 더 화려하다. 수평의 흐름을 강조한 대시보드는 가죽과 우드, 크롬 라인을 샌드위치처럼 붙여 새로운 감각을 완성했다. 브랜드별로 차별성이 점점 옅어지는 현실에서 볼보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것 같아 맘에 든다.

위로 한껏 올린 기어 레버 주변의 센터 터널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밝은 우드의 감성도 만족스럽고 입체감을 주도록 감싼 가죽에서도 쉬 지나치지 않은 디자이너의 고민이 느껴진다.

센터페시아엔 9인치 태블릿 PC를 그대로 붙인 듯한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미래적인 감각을 뽐낸다. 시트와 공조,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고 조작할 수 있다. 터치보다 돌리고 누르는 스위치에 익숙한 전통적인 고급차 수요층에선 손사래를 칠 가능성도 있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에겐 조작이 어렵지 않다. 게다가 가장 많이 쓰는 오디오 스위치는 아날로그 감성을 살렸다. S90의 타깃이 단순히 돈 많고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새로운 감각을 주도하는 젠틀맨’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파가죽으로 만든 시트의 감성도 나무랄 데 없다. 척추를 자연스럽게 받쳐주도록 구부린 시트 프레임과 허벅지의 접촉면을 확장해 장거리 시 부담을 덜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요추 지지대 조절을 위한 스위치를 가장 바깥으로 뺀 부분도 맘에 든다. 일부 모델의 경우 이를 가장 뒤에 배치해 도어와 시트 사이에 손을 비적이며 조작할 수밖에 없어 불편하다. 뒷좌석의 경우 무릎 공간은 넉넉한 편이지만 센터 터널이 높아 가운데에 탄 사람에겐 볼멘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아이를 위한 볼보의 자랑거리인 부스터 시트도 세단이라는 이유로 빠져 아쉽다.

강력한 가속, 코너링은 무난

먼저 오른 건 D5 AWD, 직렬 4기통 2.0L 트윈 터보 디젤로 최고출력 235마력을 낸다. 배기량은 같지만 BMW 520d(190마력)와 벤츠 E20d(194마력)보다 강력하다. 최대토크 48.9kgm는 1,750~2,250rpm 영역에서 나와 최근의 디젤 엔진보다 특별히 토크밴드가 두텁진 않다.

XC90과 마찬가지로 센터 터널의 이그니션 스위치를 비틀어 시동을 건다. 아이들링 진동과 소음은 5시리즈보다 얌전하다. 하지만 움직이면서 베이스톤의 소리로 디젤의 존재를 알린다. 8단 자동변속기와 AWD로 묵직한 토크를 타이어에 전달한다.

0-100km/h 가속시간이 7.0초에 불과할 정도로 가속이 훌륭하지만 체감상으로 빠르다는 느낌이 덜한 것은 정숙한 실내 때문. 속도를 높여도 엔진과 바람 소리는 크지 않다. 대신 타이어 소음이 귀를 간질이는데 255/35 R20 타이어의 영향이 크다. 폼은 나지만 효율과 소음 면에선 19인치나 18인치를 권한다.

터보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 파워펄스(Power Pulse) 시스템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작은 엔진에 터보를 붙이면 배출 가스 압력이 낮은 저회전에선 출력을 높이기보단 오히려 저항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터보랙이라 부른다. 볼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L 정도의 공기를 12바(bar) 정도로 미리 압축해 저회전에서 이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시스템은 인젝터마다 달린 인텔리전트칩을 통해 연료 분사압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i-ART’ 시스템과 함께 볼보 디젤 엔진의 출력과 효율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변속에서 망치는 기분이어서 아쉽다.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의 3가지 드라이브 모드를 오가며 변속기의 움직임을 체크해보니 특별히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직결감이 우수한 것도 아니다. 특히나 급가속하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반 박자 뒤에 변속이 이뤄지며 기분 나쁜 충격을 전한다. 서스펜션의 완성도도 독일 라이벌에 뒤진다. 코너링 때 속도를 올리면 뒤쪽이 미끌미끌 거리는 느낌이 들고 과속방지턱을 조금 속도 높여 지나면 리바운스의 충격이 좀 센 편이다.

반면, 볼보가 자랑하는 인텔리세이프 개념의 파일럿 어시스트 II는 이전보다 더 만족스럽다. 스티어링 왼쪽의 버튼을 눌러 활성화하는데 차선을 이탈하는 경우 안으로 밀어 넣던 느낌이 강했던 이전과 달리 애초에 차선 가운데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벤츠 S클래스보다 이질감이 덜하다.

하지만 아직은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차선이 흐리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선 종종 차선을 벗어났고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는 시간이 15초 이상 되면 ‘조향을 해주세요‘라고 경고한다. 그마저 무시하면 파일럿 어시스트가 해제된다.

짧은 거리지만 가솔린 터보인 T5도 경험했다. 싱글터보 형태의 T5는 최고출력 254마력에 최대토크 35.7kgm를 낸다. 펀치력은 D5보다 약하지만 고회전에서의 움직임은 더 날카롭다. FF 방식이고 더 가볍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덤덤한 디젤 사운드에 비하면 T5의 엔진음은 훨씬 듣기 좋다. 이런 즐거움의 대가로 더 많은 유류비를 써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편안한 드라이빙을 위한 보너스

프리미엄을 지향한 S90엔 달리는 것 이외에도 감동을 줄 만한 요소들을 담았다. 바워스 앤 윌킨스(Bowers & Wilkins) 오디오 시스템과 세미자율주행 시스템이 그것. 인스크립션 트림에 기본으로 달리는 바워스앤 윌킨스 오디오는 19개의 스피커와 12채널 1,400와트 앰프를 이용해 뛰어난 소리를 들려준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그래미상을 2회나 수상한 사운드 엔지니어 황병준 씨는 ‘볼보차의 가격에 버금가는 비용을 들여야 들을 수 있는 사운드를 낸다’고 호평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오디오 볼륨을 높이는 순간 ‘아~ 좋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웅~웅~’ 거리는 과장된 소리나 날카로운 전자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주어 오래 들어도 피로하지 않다. 음악 애호가라면 이 옵션을 위해 인스크립션 트림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스위디시 젠틀맨’을 내건 S90은 확실히 강한 개성을 뿜는다. 프리미엄 E세그먼트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독일 3사의 중형 세단과는 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서스펜션의 완성도와 기본기에선 조금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S90만의 장점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좀 더 젊고 진취적인 스타일과 전 모델에 기본으로 달린 파일럿 어시스트와 같은 장비가 좋은 예다.

S90의 국내 판매 가격은 D4 엔진이 ▲모멘텀 5990만원 ▲인스크립션 6690만원, D5 AWD 엔진이 ▲모멘텀 6790만원 ▲인스크립션 7490만원 ▲R-디자인 7340만원, T5 엔진이 ▲모멘텀 6490만원 ▲인스크립션 7190만원이다. 다만 11월엔 D5와 T5만 손에 넣을 수 있고 D4 모델은 내년 상반기부터 만날 수 있다.

전문가 평가

87.1
  • 85 파워트레인
  • 80 섀시 & 조종성
  • 80 승차감
  • 95 안전성
  • 95 최신 기술
  • 90 가격 & 실용성
  • 85 기타
박영문

박영문 기자

spyms@encarmagazine.com

부품의 기술적인 결합체가 아닌, 자동차가 지닌 가치의 본질을 탐미하는 감성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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