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계의 스포츠카’를 표방한 포르쉐 카이엔. 2002년의 1세대 모델을 시작으로 2010년에 2세대가 나왔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3세대 모델은 오는 10월 국내 론칭 예정이다. 새 카이엔은 폭스바겐 그룹의 MLB 플랫폼을 타고 나온다. 전 라인업 가솔린 터보. 일단 한국에는 340마력짜리 3.0L 카이엔이 가장 먼저 들어올 전망이다.
10월 론칭을 앞두고 포르쉐 공식 사이트에서는 3세대 카이엔의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가 가능해졌다. 눈에 띄는 건 드디어(!) 카이엔에서 HUD를 달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참고로 구형은 HUD가 아예 없었다. 대신 값을 220만 원이나 받아 먹는다. 어쨌든 이제라도 장비할 수 있게 된 건 환영할 만하다. 이밖에 뒷바퀴 스티어링 시스템이나 이오나이저, 나이트 비전 같은 장비들도 신선하다. 적어도 카이엔에서는 신선한 것들이 맞다.
사실 새로 생긴 여러 장비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 차의 아랫도리, 더 정확히는 브레이크 쪽에 있다. 이름은 ‘PSCB’다. 이는 포르쉐 서피스 코티드 브레이크의 약자다. 직역하면 포르쉐의 표면 코팅 브레이크 시스템 정도가 되겠다. 포르쉐 전 라인업을 통틀어 완전히 처음 보는 옵션이다. 그런데 이게 3세대 카이엔에서 달 수 있게 됐다. 가장 비싼 카이엔인 ‘카이엔 터보’에서는 아예 기본이다.
사실 포르쉐 ‘옵션질’ 중 브레이크 쪽에는 PCCB가 이미 있었다. 포르쉐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디스크가 탄소섬유 세라믹인 게 특징. 신형 카이엔 기준 프런트는 10 피스톤, 리어는 4 피스톤 모노블록 캘리퍼에 물린다. 옵션가 1,240만 원이다. 기아 모닝이 얼마였더라.
그런데 돌연 PSCB라는 게 생겼다. 위에 말한 이름(포르쉐 서피스 코티드 브레이크)처럼 브레이크의 디스크 로터를 ‘탄화텅스텐(화학식 WC, 화장실 아니다)’으로 코팅했단다. 탄화텅스텐은 유리를 자르는 데에 쓸 수 있을 정도로 혼합 결정이 단단하다. 단단한 정도로 따지면 다이아몬드 다음이라고 한다. 회주철보다는 10배 정도 단단하다. 이게 브레이크 표면을 코팅했다면? 슬슬 감이 온다. 경도가 높고 산화에 강하니 브레이크 내마모성과 제동성에 유리할 것 같지 않나?
실제로 포르쉐는 PSCB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브레이크 반응성의 향상, 반복 제동에서의 페이드 감소(열에 대한 높은 대응력), 디스크 부식에 강함, 마지막으로 브레이크 분진의 저감! 독일차는 늘 브레이크 쪽 분진 때문에 휠이 더러워지기 일쑤였는데 PSCB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소리다.
결국 표면 코팅 브레이크의 장점은 PCCB의 장점과 비슷하다. 실제로 포르쉐의 브레이크 부문 책임자인 Matthias Leber는 PSCB가 “세라믹 브레이크와 열 안정성이 거의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옵션가는 420만 원밖에 안 된다. PCCB의 정확히 3분의 1이다. 이거 완전 ‘개꿀’ 옵션이다. 게다가 PSCB를 설정하면 PCCB처럼 앞 10 피스톤 캘리퍼, 뒤 4피스톤 캘리퍼가 달린다. 로터 사이즈는 PCCB가 앞/뒤 440/410mm, PSCB는 415/365mm다. 대신 캘리퍼 색상은 PCCB의 옐로 대신 화이트다. 흰 차에 예쁘겠다. 사실 캘리퍼가 흰색인 이유는 PSCB가 실제로 분진을 거의 안 내는 까닭이라고 한다. Matthias Leber에 따르면 “수천 킬로미터를 달리고도 브레이크가 처음처럼 깨끗했다”고. 결국 ‘카이엔 살 때 420만 원 내면 휠 세척 자주 안 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이야 PSCB가 ‘제대로 안 달리는 차’인 카이엔에 들어갔으니까 별 감흥 없을지 모르겠다. 이 상태에서는 가장 큰 장점이 그저 분진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718과 911 같은 정통 스포츠 계열 모델에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동안 PCCB는 1,000만 원 넘는 가격 때문에 설정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반면 PSCB는 400만 원 언저리니까 ‘나도 한 번?’하는 생각 든다. 비단 분진 적게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성능까지 좋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선택의 다양성은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PCCB 아래에 또 다른 옵션 파 놓은 포르쉐에 고마운 마음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 할 일이 남았다. 포르쉐 살 돈 모으기, 그리고 PSCB 넣을 420만 원을 모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