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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에 진심인 현대자동차, 왜?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성능 SUV 코나 N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코나 N 라인이 작년 10월에 공개되었으니, 약 5개월 만에 ‘진짜’가 등장한 셈입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은 ‘다섯 번째 N 모델이자, 첫 번째 고성능 SUV’인 코나 N을 ‘핫 SUV’로 표현했습니다. 생김새는 SUV이지만 핫해치에 버금가는 운전의 재미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코나 N은 2.0리터 터보 GDI 엔진과 8단 습식 DCT의 조합 속에 최고출력 280마력, 최대토크 40kgf.m의 주행 성능을 발휘합니다. 마법의 버튼 ‘N 그린 시프트(N Grin Shift)’를 누르면 잠깐이지만 출력을 290마력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벨로스터 N에도 동일한 기능이 있었죠. 20초간 엔진과 변속기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버튼 말입니다.

닮은 점이 또 있습니다. 바로 변속기입니다. 습식 클러치는 건식과 달리 작동 과정에 오일이 활용되면서 윤활과 냉각 성능이 향상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토크를 발휘하는 엔진에 적합하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걸리는 시간은 5.5초. 참고로 1년 전 출시된 벨로스터 N은 5.6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코나 N의 기반이 되는 코나는 작지만 SUV입니다. 즉, 지상고가 높죠. 일반적으로 지상고가 높으면 선회 운동, 그러니까 코너링에서 좌우 흔들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하면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코너링 상황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감속이 늘어나게 됩니다.

N의 뱃지를 단 모든 자동차에는 N 파워 센스 액슬과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이 장착됩니다. 정밀하고 균형 잡힌 코너링을 위해서죠. 여기에 현대차는 코나 N에 여러 보강재를 담아 더욱 견고하고 단단한 차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수한’ 마찰재를 넣은 브레이크 패드와 크기를 키운 디스크로 브레이크 성능도 증대시키면서 브레이킹 포인트를 늦출 수 있게 됐고 코너 탈출 때 차의 균형도 더 쫀쫀하게 잡아준다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입니다.

보다 극한의 주행 상황으로 밀어붙일 수 있게 된 배경에는 E-LSD도 있습니다. 우리말로 바꿔 표현하면 전자식 차동 제한 장치인데, 보통 차동 제한 장치는 한 쪽 바퀴가 접지력을 잃고 헛돌 때 다른 바퀴에 구동력이 줄어들거나 전달되지 않는 상황을 막고 두 바퀴의 속도 차이를 제한하죠.

이를 빠른 속도로 코너링을 통과하는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좌우 바퀴의 회전 차이로 안쪽 바퀴의 접지력이 떨어질 때 이를 보완하며 안정적인 주행을 지원하는 겁니다. E-LSD뿐만 아니라 남양 글로벌 R&D 센터와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서스펜션 설정도 조율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현대차는 어떻게 보면 고성능의 움직임과는 상반되는 부분도 강조합니다. 현대차에서 N 브랜드 매니지먼트와 모터스포츠를 총괄하는 틸 바텐버그 부사장은 N을 ‘모든 사람과 모든 니즈를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출퇴근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 적합한 스포츠카로. 이제 일반 도로에서는 시속 50km 미만으로 달려야 하는데, 일상 생활에 적합한 스포츠카를 어디서 타야 할까요?

아무튼 EV 브랜드로의 전환을 선언한 기아와 다르게 현대차는 친환경, 전동화, 자율주행 등 자동차 산업의 변화 속에서도 N을 별도의 고성능 브랜드로 분리시키며 지속적인 투자와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고성능의 범위를 SUV까지 넓혔으니 이 정도면 진심이겠죠?

무엇보다 타 브랜드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현대차에게 고성능 브랜드는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전이겠죠. 대중적인 브랜드로 보편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대차는 N을 통해 기술력 과시는 물론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끌어올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저 저렴한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로 남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자동차는 고가의 소모품입니다. 물론 자동차가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겠지만 더 비싸고 차별화된 제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죠. 작년 수입 승용차 신차등록대수는 27만 6,000대를 넘어섰습니다. 2019년 대비 12% 이상 증가한 수치이고, 동시에 연간 최대치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은 33,600대 이상 기록한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입니다. 참고로 같은 기간 가장 많이 팔린 국산차는 그랜저로, 146,900대를 조금 넘습니다. 자동차 또한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을 넘어 하나의 ‘기호’로 소비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는 우리나라에서 5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창립자 칼 벤츠가 1886년에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이기에, 혹자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자동차의 역사는 곧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나 다름없다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헤리티지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특별함은 곧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독창성과 희소성으로 연결되죠.

흔히 독일 프리미엄 제조사로 인정받는 BMW와 아우디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브랜드만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프리미엄의 가치를 전하고자 하죠. 하지만 도로에서 자주 보이는 만큼 독창성과 희소성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차별성이 필요하게 된거죠. 여러 제조사가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가 고유한 가치와 체험을 전할 수 있는 제품, 공간, 서비스 확장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BMW의 M, 아우디의 RS와 같은 고성능 브랜드도 이런 차별화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기존 모델의 생김새와 달리기 능력 등을 상향 조정해서 조금 더 소수를 위한 그리고 조금 더 과시하기 좋은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용인에 위치한 AMG 스피드웨이가 좋은 예입니다. BMW 드라이빙센터와 다르게 메르세데스-AMG 전용이 아니기는 합니다만, 세계 최초의 AMG 적용 트랙을 비롯해 AMG 라운지와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 등 다양한 브랜드 체험이 가능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AMG 차량은 4391대로 2018년 대비 60%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에 AMG 라인업을 확장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늘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N이 2015년 별도의 고성능 브랜드로 독립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겠죠. 다만 브랜드만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전했던 독일 프리미엄 제조사가 고성능 브랜드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잃어버린 독창성과 희소성을 되찾기 위해 선택된 소수에게만 허락하는 차별화 전략이라면, N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힘이 더 쏠린다는 차이는 있겠네요. 보다 대중적이고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는 주행을 추구한다는 점도요.

코나 N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네요. 기술력 과시는 물론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는 N, 아니 현대차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될 듯 합니다. 코나 N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토마스 쉬미에라 현대차 글로벌 CMO는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수소 연료 전지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한 ‘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 콘셉트’를 언급하며 지속 가능한 운전의 즐거움을 N의 방향으로 지목했습니다.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 고성능 모델부터 수소 전기 고성능 자동차와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까지. 말미에 E-GMP 플랫폼을 언급했으니 조만간 아이오닉의 N 버전을 기대해도 되겠죠?

이순민

이순민

royalblue@encar.com

Power is nothing without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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