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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본 그랜저 이야기 Ⅰ (1세대~2세대)

 

▶ 1986년 첫 출시된 '회장님을 위한 차' 그랜저
▶ 1986년 제정된 '노동자를 위한 법' 최저임금법
▶ 최저임금과 함께 태어난 '성공의 상징' 그랜저
▶ 36년 동안 그랜저는, '성공'이란 어떻게 변해왔을까?

최저임금으로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최저임금으로 본 그랜저 이야기 3부작
▶ 1부. 현대차 회장마저 휘둘렸던 '회장님 차' 그랜저의 위엄
: 그랜저는 어떻게 성공의 상징이 되었나? (1세대~2세대)
▷ 2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성공의 '포장지'가 된 그랜저
: 그랜저는 진짜 성공의 상징일까? (3세대~4세대)
3부. 그대가 위장막 속 그랜저를 볼때, 그랜저도 그대의 심연을 보고 있다
: 그랜저는 앞으로도 성공의 상징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5세대~6세대)

 

▶ 프롤로그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 김완선씨와 대한민국 최고의 MC 유재석씨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그랜저’ 오너였다는 점이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의 그랜저에 대한 평가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김완선 씨의 경우 “와 진짜 성공했구나. 대단하다” 이렇게 칭송받았지만
유재석 씨의 경우 “와 진짜 검소하구나. 대단하다” 이렇게 칭송받았죠

왜 이런 차이가 생겨버린 걸까요?

현대 그랜저가 7세대 풀체인지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랜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대형 세단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차량이죠. 하지만 동시에 그랜저는 ‘최고’ 대형 세단이라기에는 더 이상 ‘최고급’ 쇼퍼드리븐 차량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라는 단어 세글자에서 여전히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는 사실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랜저가 처음 등장하고 36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는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그 변화을 알아볼 수 있는 한 가지 재미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그랜저가 ‘회장님 차’로 처음 탄생했던 1986년, 그 회장님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위한 법안인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란히 36년의 역사를 걸어온 최저임금과 그랜저를 따라, 36년동안 변해 온 성공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엔카매거진 자동차 스토리텔링 콘텐츠 [차부심]
최저임금으로 본 그랜저 이야기,
[최저임금으로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전해드립니다.

 

▶ 정주영 현대 회장도 '그랜저' 안 타면 무시당했다? 1세대 각그랜저의 위엄

사실 그랜저는 현대의 치욕스러운 과거로부터 탄생했습니다. 그랜저가 시장에 등장하기 직전이었던 1986년 초, 당시 국내 최고급 자동차는 현대가 아닌 대우자동차의 ‘로얄 살롱 슈퍼’ 였습니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 엔진분사 제어시스템을 탑재한 차량이었고, 그에 걸맞게 국내 최고가를 기록하며 높으신 분들의 상징과도 같은 차량이었죠. 그런데 ‘2인자’ 대우자동차가 이렇게 선전하는 동안, 내수시장 1위라던 현대에서 만들고 있던 최고급 플래그십 차량은 무엇이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사실 현대도 ‘그라나다’ 라는 이름의 최고급 플래그십 세단을 만들어 왔었습니다. 문제는 원 제작사인 포드 사에서 1985년 부품 생산 중단을 선언하며, 현대는 더 이상 그라나다를 생산할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술 독립을 하지 못한 회사의 비극이었던거죠. 대우자동차의 로얄 살롱 슈퍼에 밀려 ‘최고급’ 자리를 내놓은 굴욕을 당한 현대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일본의 미쓰비시였습니다. 미쓰비시의 대형 고급 세단 기술을 제공해줄 테니 현대가 디자인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대형 세단 [데보네어]의 차세대 모델 공동 개발을 제안한거죠.

사실 미쓰비시도 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1세대 데보네어는 무려 22년동안 풀체인지 없이 생산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렇다고 대규모 신규 개발을 하자니, 일본의 고급차 시장은 회장님을 모시는 ‘쇼퍼드리븐’ 영역에서는 도요타 센추리가, 오너가 직접 차를 모는 ‘오너드리븐’ 영역에서는 도요타 크라운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미쓰비시로서는 디자인 비용이라도 절감하는 동시에 한국 시장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심산으로 공동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기술독립을 하지 못해 플래그십 증발이라는 굴욕을 겪었던 현대는 다시한번 외세(?)의 힘을 빌려 대형 세단 공동개발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1986년 그랜저가 첫 선을 보였습니다. 사방이 각져있는 근엄한 디자인은 공동 출시국가였던 일본에서는 ‘80년대 초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이라며 혹평받았지만, 엄격-근엄-진지한 아우라는 당대 우리나라 ‘높으신 분’들의 취향을 직격했죠. 군사정권 시절이다보니 ‘각’ 잡힌게 먹혔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비록 수동 트림밖에 없었고, 사이드미러도 손으로 직접 접어야 했지만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 대거 투입되었던 차량입니다. 컴퓨터 자동조절 에어컨, 운전자 주의 경고,. 풀 플랫 시트 , 슈퍼 밸런스 서스펜션 등 국내 최초이거나 동급 유일 사양만 해도 9가지가 넘었죠. 결정적인 킬링 포인트는 그랜저가 ‘전륜구동’이었다는 점입니다.

본디 높으신 분을 모시는 ‘쇼퍼드리븐’ 차량은, 승차감이 좋은 후륜구동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지만, 당시 산간 지형이 많고 4계절이 뚜렷해 빙결현상 대응이 필요했던 우리나라에선 전륜구동 차량이 높으신 분을 더욱 ‘안정적’으로 모실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랜저는 출시와 동시에 로얄 살롱을 따돌리고 ‘회장님’들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의전차량으로 그랜저가 선정되며, 올림픽 참관을 온 왕족과 해외 귀빈들이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당시 88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85%에 달했고, 이 뒤로는 전 국민에게 [그랜저=왕족이 타는 차]라는 공식이 각인되었죠.

그렇게 그랜저가 명실상부한 ‘회장님 차’로 등극한 1988년, 그 회장님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이 실제로 책정되어 시행되었습니다.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이후 2년 만의 일이었죠. 최초의 최저임금은 특이하게도 직업군에 따라 2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최’저’임금의 취지에 맞게, 가장 낮은 최저임금은 1986년 당시 462.5원이었습니다. 올림픽 중계로 ‘스타’가 된 88년형 그랜저의 가격은 1790만원이었죠. 최초의 최저임금으로 깡통(?) 그랜저를 사기 위해서는 무려 38702시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13년 3개월동안, 하루도 안 쉬고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그랜저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었고,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명백한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90년대 초 정계에 진출한 이후, 검소한(?)이미지를 얻고자 평소 타고 다니던 그랜저 차량을 쏘나타로 바꿨습니다. 문제는 그랜저를 타고 다닐 때에는 아무런 제지 없이 자유롭게 국회 출입이 가능했는데, 차를 쏘나타로 바꾸자마자 차가 세워져 검문을 당한 끝에 간신히 국회로 들어갔던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 회장의 비서실장이 [차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가 얼마나 심한지 기가 막힌다]고 회고한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단순히 차량 번호 등록 유무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하의 정주영 회장조차도 그랜저를 타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는 시대. 높으신 분들을 그랜저를 못 가져서 안달이었습니다. 거기다 그랜저 오너로 널리 알려져 있던 프로야구 득점왕 출신의 LG이광은 선수와 인기절정을 달리던 가수 김완선씨가 대형 교통사고가 난 뒤에도 큰 부상없이 복귀해 활동을 재개하자, ‘좋은 차가 튼튼하기까지 하다’며 그랜저를 향한 선망의 시선은 더욱 높아져만 갔습니다. 심지어 ‘그랜저를 빨리 출고하는 비결이 있다’며 높으신 분들만 골라 등쳐먹은 사기꾼이 등장할 정도였죠.

 

▶ '회장님 차'에서 '회장놈 차'로...증오의 대상이 된 2세대 그랜저

현대 또한 소비자들의 이러한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품에 반영했습니다. 1992년 등장한 뉴 그랜저는 단언컨대 '국산차' 중에 가장 안전한 차였습니다. 국산차 중 유일하게 '에어백'이 장착된 차량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기아의 고급 세단 '세이블'이 벌써 80년대 후반에 에어백을 장착한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기는 했지만, 기아의 세이블은 [포드 세이블]을 국내 라이센스 생산 및 판매한 것이기 때문에 '국산차'로 분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국산차 최초 에어백 장착 외에도 2세대 뉴 그랜저 (LX)는 안전과 주행에 당대 첨단기술을 아낌없이 도입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구동력을 컨트롤하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을 탑재했고, 초음파로 노면상태를 파악해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제어하는 프리뷰 ECS등 각종 안전 기술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2세대 뉴 그랜저를 최저임금으로 사려면 얼마나 노오력해야 했을까요? 놀랍게도 전 세대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정확히 20000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뉴그랜저의 최저트림 출시가는 1850만원, 92년 최저임금은 925원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약 6년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한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그랜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도 안 쉬고 일하고 한 푼도 안 쓴다는 대전제가 현실성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2세대 그랜저는 여전히 최저임금 노동자로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차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랜저 할부기간은 기간에 따라 변동이 있긴 했지만 24~36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사람들에게, 저렴해진 그랜저의 가격은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2세대 그랜저는 1세대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그랜저 오너가 늘어난 것이 현대에게는 상상도 못한 악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차'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랜저가, 조금씩 '회장놈 차'로 증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1994년 당시 롯데그룹 신준호 부회장의 아들이었던 신동학씨가 친구들과 같이 ‘그랜저’ 차량을 타고 가던 도중, 그랜저 차량 앞으로 끼어든 프라이드 차량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프라이드 차량 운전자를 집단 폭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더더욱 황당했던 사건은 ‘지존파 사건’입니다. 당시 지존파는 ‘우리는 부자를 죽인다’는 행동강령 아래, ‘우리는 부자를 죽인다’->’그랜저 타는 사람은 부자다’->’고로 우리는 그랜저 타는 사람을 죽인다’는 끔찍한 발상을 실제로 실행에 옮김으로써 조직원 6명이 전원 사형됐습니다.

그랜저를 타는 사람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그랜저를 타는 사람이 끔찍한 범죄의 대상이 되자 그랜저에 사회적 위신 자체가 크게 흔들려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현대는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그랜저를 버리기로 했던 겁니다.

현대는 96년 출시된 그랜저의 고급형 페이스리프트 차량의 이름을 ‘다이너스티’로 개명하고, 미쓰비시와 다시한번 ‘최고급 세단’ 합작 개발을 선언합니다 (이 차량이 훗날 에쿠스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현대가 그랜저를 버리려고 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랜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장님 차’로서의 존재감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랜저의 존재감을 잘 나타내준 또 하나의 엽기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97년 탈옥한 ‘탈옥수 신창원 사건’ 이었죠.

사실 신창원은 탈옥 도중 훔친 그랜저 차량으로 도주하다 주민 신고로 검거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주민이 신창원을 신고했던 이유가 예술이었습니다. 신창원의 인상착의를 알아보고 신고한 것이 아닌, [젊은 사람이 그랜저를 타고다니는데 수상하다]는 이유로 누군지도 모를 [젊은 그랜저 오너]를 경찰에 신고했던 거죠.

현대는 분명 그랜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2세대 그랜저는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수입차시장 개방과 다이너스티 출시라는 악재 속에서도 꾸준히 대형세단 판매량 1위 자리를 지켜냈고, 브랜드가치 평가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줬죠. 그랜저는 어느덧 현대 입장에서는 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패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현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습니다. 가뜩이나 ‘다이너스티’를 출시한 상황에서 미쓰비시와 고급 쇼퍼드리븐 차량 개발 또한 추가로 착수중이었기 때문에 ‘회장님 차’ 그랜저를 계속 놔둘 수도 없었죠.

‘회장님 차’ 그랜저를 가만히 놔둘 수도,
그렇다고 ‘동급 판매량 1위 차’ 그랜저를 버릴 수도 없었던 현대.
계속되는 고뇌 끝에, 현대는 불현듯 한 가지를 깨닿게 됩니다.

‘회장님 차’ 그랜저가 안 되는 거라면…
‘그랜저’가 회장님 차가 아니면 되겠네?

☛ 2부에 계속됩니다

차돌박이

차돌박이

shak@encar.com

차에 대한 소식을 즐겁게 전해드리는 차똘박...아니 차돌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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