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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레야레, 못 말리는 시장님 또 기대하게 만드는 거예요?

영화 ‘뺑반’에서 F1이 뭔지 아냐는 정재철(조정석)의 질문에 서민재(류준열)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기계빨로 달려서 순위를 매기는 대회’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서민재는 자신이 폭주족 일 때 쫓아오던 경찰차가 몇 대였는지 아냐면서 정재철에게 ‘너는 나한테 안돼’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영화에서 정재철은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입니다.

F1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세 번은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F1은 폐쇄된 트랙을 달리는 건 맞지만 안전하진 않습니다. 그랑프리 도중 사고는 끊이지 않습니다. 각자의 라인 안에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행에 유리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20대가 치열하게 달리거든요. 그리고 F1은 ‘기계빨’로만 순위가 정해지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물론 F1 레이스카는 레이스카 중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합니다. 그런데 성능이 좋은 레이싱카를 제대로 제어하고 활용하는 건 드라이버의 역량입니다. 선수의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스포츠처럼 F1 또한 드라이버의 근력, 지구력을 비롯해 기술, 경험, 판단력 등 인간적인 요소가 레이스에서 매우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아무에게나 운전석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죠. 특히 F1은 세계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대회 중 최상위 수준이라 가장 탁월한 드라이버들만 모여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서민재는 동네에서 공 좀 찬다고 프리미어 리그 선수 출신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명확한 선악구도를 고려하더라도 착한 놈 서민재는 나쁜 놈 정재철뿐만 아니라 관객에게까지 도발을 해버린 셈입니다.

제작진은 특정 스포츠 비하가 도발을 위한 대사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대사가 그저 대사로만 인식되고 허용될 것이라는 안일함이 앞섰기 때문에 이렇게 묘사가 된 것 같아요. 영화와 등장인물에게 F1이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묘사가 됐다는 건 단순히 제작진뿐만 아니라 F1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르면 2026년부터 5년간 F1 그랑프리를 개최하겠다고 밝힌 인천시. 5년 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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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F1의 4번째 라운드인 일본 그랑프리가 한창이던 지난 6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스즈카 서킷을 찾았습니다. 현장에서 스테파노 도미니칼리 포뮬러원 그룹 최고경영자를 만나 F1 인천 그랑프리 개최 의향서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은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12개의 특급호텔’과 ‘15개의 국제기구’가 있는 세계적인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는데요. 스테파노 도미니칼리 최고경영자는 이른 시일 내 인천을 방문해 협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2026년 혹은 2027년에 첫 그랑프리를 개최하고 최소 5년 이상 대회를 여는 것이 인천시의 구상입니다. 만약 대회가 유치된다면 전용 경기장이 아니라 도심에서 레이스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사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개최된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의 방문 인원이 30만 명이 넘고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13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7000억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가 시가지 서킷에서 나이트 레이스로 진행된 만큼 인천시가 레퍼런스로 삼았나 봅니다. 구체적으로 공개된 내용이 많지 않아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몇 가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신경 쓰이는 몇 가지

먼저 특색 있는 신(Scene)입니다. 유정복 시장의 말대로 인천엔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이 있고 특급 호텔이 10곳이 넘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가 꼽은 인천의 관광명소를 보면 송도 센트럴 파크, 인천 대교, 인천대공원,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월미도, 차이나타운, 을왕리 해수욕장, 인천 SSG 랜더스필드 등이 나옵니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적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배경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F1에서 대표적인 시가지 서킷을 꼽자면 모나코일 텐데요, 호화스러운 호텔들과 값비싼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지중해 등 그곳에서만 가능한 특유의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라스베이거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1조가 넘는 경제적 효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런 특색 없는 시가지 서킷을 무대로 그랑프리를 개최한다면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천을 찾아올까요? 인천의 어떤 것을 어떻게 조합해 지역적 특색을 매력적으로 어필하려고 하는지 혹은 이게 가능한 지 의문입니다.

다음으로 시가지 서킷의 위험성입니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 연습 주행에서 맨홀이 튀어 올라 레이싱카 하부를 파손시킨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랑프리 전 도로에 있는 맨홀들을 콘크리트로 봉했지만 워낙 빠르게 달리는 레이싱카로 인해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일이 인천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더욱이 처음 개최하는 경우라면 관련 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할 텐데 말이죠.

그리고 인천 시민 모두가 이 행사를 달가워할진 않을 겁니다. 일부가 누릴 즐거움으로 인해 대다수의 시민들은 도로 폐쇄, 소음과 같은 불편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라스베이거스 리뷰 저널의 리포터 리처드 벨로타는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90% 이상이 F1 그랑프리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소한 스포츠 이벤트가 일상에서 겪을 불편을 상쇄할 만큼 지역 주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역 주민의 공감을 이끌어 낼지 궁금하네요.

앞서 얘기했듯이 한국에서 F1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F1팀의 시니어 퍼포먼스 엔지니어인 김남호 씨는 자신의 저서, ‘김남호의 F1 스토리’에서 한국에서 모터스포츠의 인기는 늘고 있지만 ‘그 온도 상승은 언 바닥을 녹이는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많지 않은 이유를 ‘사회에서 대중이 짊어진 삶의 무게’에서 찾기도 하는데요. 오랜 자동차 엔지니어링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여유를 배려하는 노동 문화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영국과 달리 한국은 일상에서 여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지쳐 있다는 거죠. 인천 그랑프리의 흥행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F1은 진입 장벽이 높은 스포츠입니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랑프리가 왜 3일 동안 진행되는지, 출발 지점은 어떻게 정하는지, 포인트는 어떻게 획득하는지, 중계나 선수가 엔지니어 팀과 하는 무전에서 나오는 생소한 단어는 무슨 뜻인지 등 경기를 이해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려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 시즌엔 24번의 라운드가 진행되는 일종의 리그 형식이다 보니 이전 라운드에 대한 복습도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F1은 그저 20대의 레이싱카가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도는 지루한 달리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하지 않기에 단기간에 많은 팬덤을 형성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티켓값이 저렴한 것도 아니니 확고한 팬층이 없다면 좌석을 채우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영암 잠실과는 다르길

4000억 원이 넘게 투입된 전남 영암의 F1 서킷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그랑프리를 개최하기로 했지만 영암 서킷은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2022년 잠실에서 개최된 전기차 경주 대회 포뮬러 E 서울 E-프리는 티켓 가격(9만 9천 원~50만 원)을 비롯해 전반적인 대회 운영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면서 단 한차례의 이벤트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와 함께 인천국제공항공사도 F1 그랑프리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는데, 인천시의 구상과 달리 전용 경기장을 영종도에 마련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개최로 인천을 알리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서 언급한 것들보다 불필요한 경쟁과 중복 투자를 피하는 교통정리가 먼저일 것 같네요.

F1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페라리를 슈트를 입은 루이스 해밀턴의 모습을 보고 싶긴 하지만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그저 좋은 숫자만 보고 무턱대고 달려들어 이전의 과오가 반복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만약 인천 그랑프리가 개최된다면 이를 계기로 F1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에서 F1을 특이하게 생긴 자동차를 타고 같은 코스를 여러 번 반복해서 달리는 경주 정도로 생각하는 ‘서민재’가 더 많아지길 원치 않거든요.

참고로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사진 F1

이순민

이순민

royalblue@encar.com

Power is nothing without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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