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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전략의 선견 지명은 옳았다 제네시스 G80

제네시스 G80, 대한민국의 프리미엄 E세그먼트 세단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시장에서 손에 꼽히는 고급 자동차 시장에 가깝다. 특히 유럽 주요 수출 시장 중 판매량 기준 인구 1억 2천만 명의 경제 대국 일본을 앞질렀고, 판매 총액으로는 대한민국이 4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영국, 미국, 중국의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 인구 수는 G2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며 영국의 경우에는 자국 양산차 기업이 없다. 물론 세계 고급차 시장이 아닌 유럽 연합에 한정하여 대한민국의 수입차 소비량이 과장되어 보일 수는 있다. 접근이 어떻든 수입차 판매량이 꾸준히 상승해 온건 사실이다.

자동차에 대한 과소비 문화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사변적으로 자동차에 대한 과한 소비를 비판하고자 쓰는 글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국 자동차 산업은 시장경쟁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현대 자동차 그룹이 소비재의 시세를 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쉽게 말해 가격이 높아졌다. 물론 터무니없는 가격 인상은 수입차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딜러사들은 경기에 따라 할인율을 유동적으로 조절하는 등 말그대로 세일즈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막상 국산차와 수입차의 견적이 좁아지니 수입차의 문턱이 낮아 보인다.

특히 E세그먼트 시장의 경우 수입차와 국산차의 가격 격차는 더욱 좁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수입차종에 절대적으로 붙는 마진 대비 차량 가액이 높기도 하고, 수요층부터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고급 세단을 소유하고자 한다면 더욱이 '브랜드'를 중시 여기는 경향이 커진다. 아무리 국산차의 가격이 상승했다 한들 그래도 수입차보다는 저렴하다. 이는 수치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성능이다. 엔진 출력이라던가 옵션 장비, 정비 인프라나 서비스 등을 따져보면 아무래도 국산차가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긴 하다.

그래서 시작부터 '프리미엄'을 지향한 제네시스의 브랜딩 전략이 옳았다. 만약 현대자동차 그룹이 제네시스의 브랜드화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심리를 더욱 가파르게 촉진했을 것이다. 악순환의 결과로 실질 독점 시장인 소형 세단이나 SUV들의 가격 인상폭이 지금보다 가중될 우려가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론칭한 건 직설적으로 차를 더 비싸게 팔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결과다. 대신 차별화된 품질과 서비스로 응대한다. 구색을 갖춘 가격이라는 표면적인 '사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치라는 표현 또한 긍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과한 소비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제품이 붙는 프리미엄, 내지는 '부가가치'가 높다고 표현할 수 있다. 소비와 투자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관을 사치로 '폄하'하는 것 또한 필요치 않다. 소득과 소비에 대한 절대 기준이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취지는 '좋은 차'에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 대중들이 저렴한 양산차량들을 등지고 고가의 수입 차량을 찾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그게 브랜드의 중요성이자 힘일 것이다.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도 브랜드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누적 판매량 순위가 무려 8위에 기록되었다. 이는 현대차의 그랜저, 포터를 제외한 모든 현대자동차의 단일 차종들을 제친 결과이다. 이외 기아의 인기 차종 셀토스, K5 등을 누적 판매량에서 제쳤다. G80을 넘어선 국내 자동차 3사의 차종은 딱 토레스 한 대 뿐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 수입차 시장과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 올린 이유는 그만큼 G80은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동차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만 명의 잠재 고객들이 G80을 택한 것이다. E클래스와 5시리즈 풀체인지 시기가 겹쳤지만, 오히려 판촉 정책으로 판매량은 더욱 부풀려질 수 있는 시기였다. 이를 렉서스 ES와 아우디 A6가 뒤따른다. 렉서스는 균일가 정책, 아우디는 높은 할인 정책으로 판매를 촉진했다. 물론 수입차의 경우 공급이 일정하지 않고 출시 시기가 오래 걸리며, 초기 기준가 판매량이 감소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다. 그래도 G80의 판매량이 독일 3사 준대형 세단 합산 판매량과 동일한 수준이다. 제네시스 G80은 수입차 시장이 규모 경제를 앞세우는 기현상에서도 입지를 잃지 않았다.

브랜드 밸류를 올바르게 쌓아 올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네시스는 자국 시장을 가장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브랜드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자인, 편안한 승차감과 풍부한 옵션이 G80의 세일즈 포인트이다. 전면 디자인을 장식하는 웅장한 크레스트 그릴과 시선을 이끄는 두 줄 헤드 램프, 제네시스의 날개 엠블럼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측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길게 뻗은 보닛과 프레스티지 디스턴스, 리어 엔드를 말발굽 형상으로 마감하며 포지션을 낮추고 '패스트 백' 형상의 루프를 그려냈다.

G80의 디자인을 투-라인 룩, G-매트릭스 패턴, 애슬레틱 파워 라인, 파라볼릭 캐릭터 라인 등 여러 가지 표현 기법으로 설명하고는 한다. 다만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기업 차원의 의미 부여에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 같다. 보기에 멋있어야 한다. 3세대 제네시스는 정말 보기에 멋있는 고급 세단이다. 한 줄을 내세우는 현대차와는 결이 다르다. 이미 2세대 제네시스의 디자인도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정말 RG3 프로젝트는 더 멋스러운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디자인은 성공에 가까웠다고 본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여백의 미'를 통해 한국적인 멋을 실현했다고 한다. 실내 구성이 독일 차량보다는 일본 브랜드를 벤치마킹한 듯 느껴졌다. 막연히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강화하기보다는 기능성에 집중했다. 그리고 CMF 디자인 차원의 품질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너무 화려하지 않게 우드 트림, 가죽, 알루미늄 등의 소재감을 잘 살려냈다. 블랙 하이그로시를 남발하지 않은 것도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깊게 자리 잡은 디스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디자인, 개방감을 조율했겠지만 터치가 불편하긴 하다.


제네시스 엠블럼을 부각시키는 4스포크 타입 스티어링 휠도 참 섬세해 보인다. 사변적으로 자동차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스티어링 휠의 스타일링이 8할이라고 본다. 아무리 멋스럽고 고급스러운 대시보드를 구현해도 스티어링 휠이 실패하면 분위기가 다운된다. 매립형 디스플레이도 단조로운 테마는 아쉽지만 시인성은 훌륭하다. 헤드라이닝과 파노라마 선루프까지 부분부분 아쉬움을 알아보기 어렵다. 2열까지도 풍부한 옵션이 탑재되어 있다는 점이 수입 세단과는 차별화되는 요소다. 비스포크 옵션으로 제공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승차감은 굉장히 편안하다. 웬만한 요철은 조금 여유롭게 세팅된 현가장치가 걸러준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항상 제 기능을 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제 기능을 수행할 때만큼은 차로부터 배려 받는 느낌이 든다. 프리미엄 모델답게 엔트리 파워트레인도 출력은 충분하다. V6 모델은 출력도 출력이지만,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엔진 회전 질감을 선사해 준다. 뒷바퀴를 굴린다는 것, 아무래도 고중량 준대형 세단이라 코너링 성능이 즐겁진 않다. 하지만 최상의 직진성과 고속 안정성을 보여준다. 대중 모델과 가장 큰 차이는 정숙성이다.

만약 제네시스가 독일 세단처럼 탄탄한 승차감을 지향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코너링 성능에 초점을 둔 딱딱한 섀시 세팅을 선호한다. 다만 G80의 주된 수요층이 그런 승차감을 바라진 않을 것이다. G80 은 통상적으로 좋은 승차감을 지녔다. 그래서 G80의 인기를 이해할 수 있다. 독일 브랜드를 처음 경험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상반된다.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한 피드백에 감탄하는 반면, 딱딱하고 허리 아픈 승차감에 의문을 품는 소비자들도 있다. 물론 그 마저도 브랜드의 성격에 따라 다르고는 하지만, 대중적으로 좋다고 표현하는 승차감과는 괴리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고급차다. 한국인의 취향을 이해한다 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핵심 요소 중 한 가지는 '희소성'이다. '대중성'은 희소성을 반감시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에게 대중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스스로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다수 소비자들이 선택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사치품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세단을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많은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G80을 선택한다. 수입차의 문턱이 낮아지더라도 G80은 꾸준한 수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국 생산과 인프라의 이점으로만 일궈온 결과라고 생각했다. 현대 기아 자동차는 사실상 자국 자동차 시장을 독점한다 했고, 또 프리미엄 브랜드는 유일무이하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이 규모 경제를 앞세우는 상황에서도 제네시스는 크게 밀리지 않는 사회적 평판을 쌓았다는 생각이 든다. 렉서스가 북미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고객층의 '입소문', 내지는 충성도라 했다. G80을 시승해 본 많은 대중들은 분명 고급차는 다르다는 표현을 한다. 오히려 기대심에 부풀려진 수입차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도 종종 있다.

제네시스 G80의 시승과 함께 프리미엄 세단 시장에 대한 담론을 펼쳐보았다. 전술했지만 필자는 수입차의 탄탄한 주행감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고급스러운 승차감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수입차들도 예전처럼 각 브랜드의 성격이 확실하진 않다. 이번 글에서 확실히 결론짓고 싶은 내용은 G80의 성공 배경은 '브랜드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G80이 현대의 엠블럼을 달고 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가격 인상 정책으로 점유율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브랜드가 있기에 G80의 우수성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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