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특집 전문가 칼럼 > 렉서스 ES 페이스리프트, 극적인 대비의 역설

렉서스 ES 페이스리프트, 극적인 대비의 역설

2023년, 한국 시장 내 토요타 그룹의 판매량 회복세가 눈에 띄었다. 특히 렉서스는 1월에서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9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고 한다. 주력 차종은 ES, 단일 차종으로 총 6616대가 판매되었다. 렉서스 ES는 2018년에 풀체인지가 진행된 바 있고 2021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한국 시장에 시판 중이다. 보이콧 운동의 여파와 독일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판촉 전략 사이에서도 이따금 큰 변화 없이 소리 없는 인기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 정도로 렉서스의 브랜드는 대한민국 시장에 긍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정숙성, 내구성 만큼은 독일 브랜드의 애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렉서스는 많은 브랜드들의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토요타에서 분사된 프리미엄 브랜드이자, 브랜딩 전략의 성공 사례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시장의 중추였던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성공의 열쇠는 소비자들의 '특별한 브랜드 경험', 당연 품질과 성능, 서비스 차원의 균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21세기 렉서스의 미래전략 중 한가지는 '디자인 경영'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디자인을 그려내는 목적이 아니다.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율을 높일 수 있는 렉서스만의 '독창성'이 필요했다. 그런 디자인 경영의 계보가 시작되었고 분명 많은 이들의 관심은 이끌어냈다. 렉서스 ES 페이스리프트의 디자인을 분석해 본다.

렉서스의 디자인이라 하면 많은 이들이 '스핀들 그릴'을 우선 떠올릴 것이다. 현행 렉서스 ES는 제7세대 모델, 스핀들 그릴은 이전 세대 렉서스 ES부터 적용된 바 있다. 그마저도 싱글프레임으로 통합된 형식은 페이스리프트 이후부터였다. 사실 스핀들 그릴이 공통된 패밀리룩으로 자리잡은 지는 대략 10년 정도가 흘렀다. 다시 말해 10년 전까지만 해도 ES의 디자인에는 딱히 브랜드의 개성이랄 게 없었다. 항상 판매량의 주축이 되어 왔으나, 단지 토요타의 고급화 차종이라는 인식을 탈피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던 ES가 렉서스만의 분명한 얼굴을 지니게 되었으니 6세대는 브랜드 차원에서도 의의가 있을 듯하다.

디자인 자체는 '부드러운 승차감'이라는 렉서스의 이미지와 다르게 과감하고 역동적이다. 특히 날카롭고 스포티하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스핀들 그릴'이 프런트 마스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통 렉서스는 점잖고 연령대가 높은 소비자들의 자동차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기에 변화는 더욱 진보적으로 다가왔다. 복잡한 전면부와 다르게 밋밋하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비즈니스 세단' 스타일의 측면에 본연의 성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페이스리프트의 한계였다. 아무렴 향후 렉서스라는 브랜드와 다음 세대 ES의 디자인에 대한 방향성은 가시화되는 시기였다.

예상처럼 7세대 렉서스 ES의 디자인은 6세대의 외관을 '정제'시킨 모습에 가까웠다. 페이스리프트 또한 디자인의 초점은 동일했다. 단지 디테일을 보강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프로필과 리어엔드 스타일링까지, 누가 봐도 차세대 ES였다. 하나 첫인상이 분명히 다르긴 하다. 렉서스는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리딩-에지'라고 설명한다. 선과 면, 각종 조형요소의 하나하나에 장인 정신을 담는다. 모서리를 다듬는다는 것, 렉서스의 디자인을 대변한다고 하는 '스핀들 그릴'의 복잡하고 예리한 비주얼을 보면 어떠한 노력을 설명하고자 하는지는 알아볼 수 있겠다.

미리 설명하자면 렉서스의 디자인 경영 전략이 설명하는 한 ES의 디자인 구성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통 풀체인지는 디자인의 변화를 통해 판매량을 촉진하지만, 오히려 렉서스는 디자인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을 마케팅 신조로 삼는다. 평생 브랜드의 충성심을 지닐 재구매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함이라 설명한 바 있다. '락-인' 전략이라고도 한다. 의도적으로 독특한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그런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는 일부 대중들만 각별히 대우한다. 물론 신규 고객의 유입도 필요하다. 그러나, 브랜드의 가치와 긍정적인 평판을 쌓아가기에는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율을 높이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신념이다.

역시 디자인의 주축은 스핀들 그릴이다. 스핀들 그릴은 '리딩-에지'를 추구한다는 렉서스 브랜드 그 자체에 해당한다. 풀체인지를 거치며 그릴이 '>' 자로 꺾이는 지점인 '핀치 포인트'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핀치포인트를 기점으로 하단부의 그릴 면적이 훨씬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상단부의 영역은 좁혀진다. 확대된 영역은 여전히 과시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상단부의 그릴 면적을 좁힌 이유는 노즈콘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즉, 보닛 끝부분이 더 낮아 보이게 하여 날렵한 실루엣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후륜구동처럼 보닛이 길어 보이는 효과도 준다.

아울러 핀치포인트의 변화는 스핀들 그릴 상 하단부의 대비도 더욱 확실해진다. 차량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입체감이 더해진다는 의미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변화한 그릴 메시 디자인은 렉서스가 설명하는 장인 정신의 요소중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마감부터 패턴 형상까지 정교하고 입체적이다. 화살촉 형상의 DRL 또한 렉서스의 예리함을 상징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헤드램프 자체의 그래픽은 간결하다. ES는 각 디자인 요소들이 매우 복잡한 구성이다. 대신 차체의 면도 명확한 음영 대비를 구현했다. 덕분에 어느 디자인 요소 한가지가 튀어 보이지 않는다. 극도의 대비가 오히려 안정감을 선사한다.

렉서스 ES는 전륜구동이다. 레이아웃 특성상 동급 프리미엄 세단에 비해 휠베이스가 짧아진다. 렉서스가 추구하는 역동성과는 부조화를 이룰 수 있는 부분이다. 길게 뻗은 프런트 오버행이 그런 제한점을 반영한다. 대신 리어 범퍼는 의도적인 분할선을 그으며 오버행이 짧아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덕분에 전장이 짧아 보여 전체적으로는 균형 있는 비율을 제시한다. 앞서 설명한 그릴 디자인 덕분에 보닛은 더욱 길어 보이게 되었고, 음각을 활용한 범퍼의 형상은 공격적인 스탠스를 지향한다. 화살촉 형태의 DRL은 측면에서도 확고한 캐릭터를 지닌다. 전체적으로 전륜구동 세단임에도 백워드 프로모션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린하우스를 구성하는 A필러와 C필러도 완만한 형상으로 뻗어나가 '쿠페라이크'를 추구한다. C필러에서 역방향으로 꺾인 윈도우 몰딩은 동적인 인상을 준다. 완성도 높은 프로포션을 구현했으니, 다음은 캐릭터 라인을 새길 차례였다. 휠 하우스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벨트라인 하단을 기점으로 프런트 펜더에서 시작된 양각의 면은 리어 펜더로 향하며 점점 좁혀진다. 이로써 프런트 펜더를 강조했다. 리어펜더 주변에는 인위적인 볼륨을 가하였다. 로커패널에도 깊은 양각을 조형했다. 이 자체로 입체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새겨진 라인은 리어범퍼를 따라 우상향으로 뻗어나간다.

차세대 ES는 후면부 디자인도 기존의 룩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리어엔드를 감싸는 크롬 가니시는 슬림한 형태로 전폭이 넓어 보이도록 유도하며, 은은한 색감으로 세련미를 추구했다. 테일라이트의 형상은 비교적 단순하고 그 배치도 안정감을 지향한다. 대신 내부 그래픽을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L'자 패턴이 반복적으로 좁혀지는 만큼 상징성도 담겨있을 것이다. 범퍼 하단부의 리플렉터와 크롬 몰딩은 딱히 꾸밈이 없는 형태이고, 머플러를 생략한 채 기능성과 끝맺음을 확실시한다.

원래 준대형 세단의 뒷모습에 특별한 기교를 가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래야 할 의무가 가장 중시되지 않는 세그먼트다. 특히 멋보다는 기능성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ES도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는 배제하며 시각적 안정감을 담았다. 그럼에도 '리딩 에지'를 추구한다는 철학은 느껴진다. 복잡한 바디라인이 있다. 로커 패널에서 시작되었던 라인은 테일램프의 끝부분까지 연결되는 디테일이다. 캐릭터 라인은 크롬 가니시를 완만하게 감쌌다. 범퍼 양 끝단에도 깊은 음영을 새겼는데, 전체적인 실루엣을 보면 전면부의 '스핀들 그릴' 형상이 떠오른다. 정말 렉서스이기에 가능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생각 외로 인테리어 구성은 단순하게 느껴진다. 깊게 매립된 클러스터와 대형 디스플레이로 직관적인 배치를 갖추었다. 센터페시아의 버튼과 다이얼, 그리고 에어벤트까지 전부 수평형으로 뚜렷한 특징은 없다. 대신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다양한 소재로 구성하여 정교함을 부각시키고,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이 일체화된 형태로 안락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간결한 구성의 센터콘솔도 그런 흐름을 따른다. 전체적으로 소재 본연의 느낌을 살리며 밋밋한 면을 다루더라도 허접함은 최대한 배척했다. 디스플레이와 스티어링 휠 그립 사이에 놓인 아날로그시계를 제외하면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다.

렉서스의 인테리어는 기교로운 개성을 강조하던 익스테리어와 대비된다. 일치하지 않는 시각 정체성과 단순하고 칙칙한 구성으로 비판을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본성적으로 렉서스는 편안함에 올인하는 브랜드가 맞다. 렉서스가 타겟으로 선정한 북미 시장은 장시간의 운전이 반복되는 국가였다. ES의 인테리어는 기능성이 훌륭한 형태이며, 스티어링 휠마저도 두텁고 직관적인 버튼 배열을 갖는다. 매립형 클러스터와 거치형 디스플레이도 시야 확보가 가장 원활한 형상으로 운전 피로도를 낮추는 목적이다. 어쩌면 아날로그시계를 디스플레이 옆에 건성으로 배치한 것도 단순 장식요소에 그치기 때문일 수 있겠다.

스핀들 그릴은 모래시계의 형상이라고도 칭해진다. 그렇듯 스핀들 그릴이 상징하는 또 한 가지 의의는 '영속성'이다. ES의 디자인은 오랜 기간 그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것이다. 렉서스를 선택해 준 소비자들에게 단점은 보완할지라도 기존의 장점은 잃지 않고자 하는 심산이다. 7세대 ES의 디자인이 실패하지 않은 이유는 식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봐도 디자인 요소는 이전 세대의 외모를 그대로 계승했다. 이면적으로 신차답다는 느낌도 확실했으며 '장인정신'이라는 부연 설명이 아쉽지 않은 디테일을 품었다. 독특하고 과감한 디테일만을 지향하니 역설적이게도 균형에 의한 '안정감'이 돋보인다는 점도 놀랍다.

양산 브랜드 중 렉서스만큼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진중하게 앞세우는 브랜드가 또 없는 듯하다. 말로써 디자인의 예리함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은 많다. 자동차의 외관에 다양한 선과 형상을 그려내고, 그렇게 새로움을 강조하는 것 자체로 기술이고 과시 일수는 있다. 하지만 렉서스처럼 극적인 면의 대비를 지향하는 브랜드는 없다. 특히 E세그먼트 세단과 같이 대중적인 세그먼트에서는 파격적인 도전이 말처럼 감행되기 어렵다. 요즘에는 독일 브랜드들도 상식을 벗어난 도전에 치중하고 있지만, 시기로는 렉서스가 앞서있음에 분명하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