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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의자를 설득하는 법,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P400 시승기

프리미엄 SUV의 대명사 '레인지로버' 는 랜드로버의 최상급 라인업이다. 앞으로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가 아닌, JLR 산하의 '레인지로버'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독립시킬 예정이라 한다. 아무렴 레인지로버라는 며칭이 브랜드처럼 사용된 이후에 네 번째 차종이자 종지부는 '벨라'였다. '아방가르드 SUV'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삼고 '스타일링'을 차별점으로 강조한다. 아무리 실용성이 중요한 SUV일지라도 '멋'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벨라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니즈다. SUV의 인기가 급상승하며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가 대응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했고, 벨라는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한 모델이기도 하다.

레인지로버 벨라가 공개된 건 2017년이다. 같은 해 국내시장에도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1년 연식변경 이후 꾸준히 판매 중이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합병사인 재규어의 중형 SUV 'F-페이스'와 플랫폼을 공용하여 출시된 바 있다. F-페이스는 '가장 세단에 가까운 SUV'라는 수식어를 내세운 차종이다. 그래도 SUV의 본질을 내세운 레인지로버 벨라와 F-페이스는 패키징과 세팅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미드사이즈 럭셔리 SUV 시장에서, 재규어 랜드로버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인상적이다.

시승 차량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P400 SE 트림입니다. 환경친화 정책에 따라 디젤 엔진은 모두 단종되었고, 가솔린과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조합으로만 시판 중이다. 그중 P400이 최상급 트림이다. 등급은 SE와 HSE트림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자식 서스펜션 기본 탑재와 실내 소재, 그리고 21인치 휠 등 익스테리어 사양이 달라진다. 올해 2024년에는 실내 디자인이 더욱 간소화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디자인은 '아방가르드 SUV'라는 철학을 담아낸다고 했다. 관념적인 행동에서 벗어나는 예술, 원래는 정통 SUV만을 생산했던 랜드로버에게 크로스오버를 지칭할 수 있는 좋은 표현이다. 벨라의 디자인 요소는 플래그십 레인지로버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사각형의 헤드램프와 그릴, 클램셀 후드와 섬세한 그래픽, 특히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는 '캐슬 보닛' 은 레인지로버의 잔상이 남는다. 대신 우람함보다는 날렵함에 초점을 맞춘 벨라의 스타일 감각이 차별화다. R-다이내믹 패키지 덕분에 디자인은 더욱 세련미가 출중했다.

혁신은 프로파일에서 가장 잘 느껴진다. 스포티한 감각을 보여주는 DRL 그래픽은 물론,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연결하는 '스웨이지'라인이 사선형으로 공격적인 스탠스를 만들어준다. 반면 루프라인은 뒤로 갈수록 낮아지며 역동적인 윤곽선을 형성한다. 플로팅 디자인 루프로 거의 마름모꼴 형태를 보여주는 그린하우스가 인상적이다. 스포티한 범퍼에서 연결되는 검은색 라인은 로커패널을 따라 후면부에서 꺾인다. 랜드로버가 레인지로버 벨라에서 처음 선보인 '오토플러시 도어핸들'은 기능적 감성의 아이콘과 같았다. 20인치 블랙휠도 디자인에 잘 어울린다.뒷모습도 매력적이다.

앞서 급격히 꺾인다고 표현한 리어 범퍼 덕분에 공격적인 실루엣이 느껴진다. 디퓨져의 면적도 최대로 키우고 마름모꼴 머플러 팁도 SUV보다는 스포츠카의 감각이었다. 테일램프 그래픽은 입체적이며 프레임을 연결한 디자인도 혁신을 추구하는 듯 하다. 와이퍼를 숨기고 윈드 실드의 면적이 좁은 것도 벨라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보통 쿠페 디자인이라 하여 스포티한 감각을 추구하고자 하는 SUV들은 흔하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SUV의 기틀을 유지하면서 이토록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놀랍다. 참고로 항력계수는 0.32cd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레인지로버의 테마가 느껴진다. 비교적 공간이 좁은 대신 선도적인 디지털화를 거쳤다. TFT 클러스터와 10인치 디스플레이, 그리고 센터페시아는 더 큰 화면의 LCD로 구성된다. 터치 패널은 직관성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벨라는 각 디바이스마다 역할이 지정되어 있어 괜찮았다. 상단 디스플레이는 인포테인먼트와 오디오, 하단 디스플레이는 공조장치및 차량 기능 제어를 담당한다. 소프트웨어는 LG전자와 협력한 '피비프로'다. 클러스터에도 T맵 화면을 띄워주기 때문에 편리했고, 테크놀로지 팩의 HUD까지 길안내를 도와준다. 디자인과 마감품질만 보아도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3스포크 타입 스티어링 휠은 많은 기능을 조작할 수 있고, 작동 여부를 직관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패들시프트의 그립도 만족스럽다. 센터터널에 기어노브와 컵홀더 부근 마감도 마음에 들고, 엠블럼을 누르면 커버가 열리는 게 독특한 감성이다. 전체적으로 대시보드가 경사지게 누워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으며 공간감을 개선해 준다. 모니터의 시인성이 불안해질 수 있는 건 각도 조절 기능으로 극복했다. 센터페시아의 스크린과 다이얼 장치의 연결부가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상급 레인지로버 모델들과 차이가 와닿는 부분은 뒷좌석이다. 레그룸은 일반적인 중형 SUV보다 살짝 좁은 느낌인데 전폭은 넉넉했다. 헤드룸은 적당한 공간이고 쿠페형 SUV와 비교한다면 훨씬 편안하다. 편의장비는 에어벤트와 열선시트, 암레스트가 있다. 2열 공간이 생각보다 좁다고 느껴진 대신 트렁크 공간이 굉장히 넓어서 놀랐다. 아무래도 늘씬한 비율을 위해 리어 오버행을 연장한 디자인이라서 트렁크 공간 면적이 확장된 것 같다. 옵션으로 제스처 컨트롤을 추가하거나 파티션을 부착할 수도 있다.

크로스오버 스타일이라 차고와 시트포지션이 낮은 편이다. 다이나믹 핸들링 팩과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된 덕분에 지상고에 따른 주행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일단 벨라 P400에 탑재된 직렬 6기통 인제니움 엔진은 최대출력 400 HP, 최대토크 56.1Kg.m이라는 강력한 힘을 갖췄다. 직렬 구조로 생산성과 경량화, 고효율을 추구한 인제니움 엔진은 기본적으로 48V급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도입되어 에너지 낭비를 절감한다. 공인 연비는 8.9Km/l입니다. MHEV는 스트롱 하이브리드처럼 직접적인 주행 개입이 없어서 이질감은 걱정할 필요 없다.

시동을 걸면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의 부드러운 회전 질감이 인상적이다. R-다이나믹 패키지의 영향인지 스티어링 휠은 예상보다 많이 묵직했고 에어스프링 서스펜션은 의외로 노면을 선명히 읽혀주는 느낌이었다. F-페이스와 공유했다는 MLA플랫폼은 알루미늄 바디를 통한 경량화와 무게 배분에 최적화된 형태라 한다. 전륜 서스펜션 지오메트리는 더블 위시본, 후륜은 인테그랄 링크를 적용했다. 인테그랄 링크도 결국에는 멀티링크의 한 종류라도 본다. 대신 링크 형상이 3D로 복잡하며 소음과 진동 개선에 유리한 형태라고 랜드로버는 설명했다.

에어스프링 서스펜션과 전자제어식 댐퍼가 탑재되며 서스펜션 세팅과 차고를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다.전자식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접목되며 공차중량은 약 2.2톤이다. 무거운 무게처럼 느껴지지만 직렬 6기통 가솔린엔진은 경쾌한 가속감을 구현해 낸다. 변속기는 ZF의 8단 토크컨버터를 맞물렸다. 급격한 가감속에도 특별한 충격이나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티어링은 약간의 오버스티어가 느껴지고,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의 구동력 배분과 후륜 토크백터링 기능 덕분에 끈끈한 트랙션을 유지해 준다.운전이 즐겁다.

딱히 SUV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트의 착좌감은 편안하고 차고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역시 에어스프링을 통한 차고 조절과 롤링을 최소화하는 세팅이 주행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즉답적으로 반응하는 엑셀과 핸들은 차량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고 제동성능도 확실했다. 사실 의아한 느낌도 있긴 했다. 레인지로버라 하면 컴포트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이 먼저 떠올랐는데, 벨라의 쇽업 쇼버는 안정성에 편향되어 있다. 아무래도 플랫폼의 차이도 있는 듯하며 벨라의 포지션에는 이견이 없는 세팅이다.

그러면서도 랜드로버의 아이덴티티를 잃지는 않았다. 오프로드 성능이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에어스프링은 지상고를 최대 25Cm 가지 높일 수가 있다. 도강 능력은 60CM로 차가 통할 수 있는 웬만한 도로는 전부 주파가 가능하다. 특히 다판 클러치 방식의 AWD와 토크백터링의 효과를 눈길에서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일반 주행모드에서는 헛바퀴만 돌덜 빙판길에서 스노 모드를 전환하니 약간의 부밍음과 함께 그립을 확보했다. 피비프로는 직관적인 어라운드 뷰와 구동력 제어 기능을 제시해 주니 참으로 친절한 SUV다.

많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적극적인 정보 전달과 ADAS의 사용으로도 운전은 편안했다.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주행감이 좋았고, 고속에서도 승용차와 같은 정숙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SUV로는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물론,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을 기대했다면 벨라의 세팅에는 실망감이 들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는 에어스프링의 감도도 무겁고 스트로크가 짧아서 충격 감쇠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레인지로버 벨라의 스포티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세련된 승차감도 금방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를 시승했다. 세련된 디자인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신선함을 유지해 준다. 최근 여러 브랜드 사이에서 유행하는 '심리스'스타일은 의외로 랜드로버가 이끌어온 게 아닐까 싶다. 알루미늄 바디와 인제니움 엔진, 각종 전자 장비의 도입은 훌륭한 응답성을 선사한다. 특히 디지털 장비들은 화려함을 과시하지 않고 기능성에 충실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랜드로버가 잔고장이 심하다는 내용은 많이 접했는데, 그만큼 디지털 인터페이스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브랜드도 랜드로버였다.

아방가르드 SUV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디자인에만 국한된 표현이 아니다. SUV의 보수적인 틀은 유지한 채, 쿠페형 SUV보다도 세련된 스타일링을 보여준다는 점은 겉으로 보이는 혁신이었다. 승용차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승차감도 트렌디한 세팅으로 조율했다. 전통주의자들을 배척하기보다 설득하고자 했던 랜드로버의 전략을 이해하게 된다. 정통 SUV를 추구하는 팬덤, 그리고 세단만을 선호하던 소비자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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