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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는 절대 죽지 않는다┃연예카중계

“구남아 한국 가 사람하나 죽이고 오라”
전례없는 뼈다귀 액션을 보여준 족발.. 아니 황해의 면정학.

“니가 전화를 씹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때리고 시작합니다.끝까지 간다 박창민.

“운행 시작하겠습니다”
전화 한통이면 대신 복수해드립니다. 모범택시의 김도기.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범죄도시의 마석도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심장 쫄깃하게 하는 최악의 빌런 혹은 정의구현을 보여주는 민중의 몽둥이죠. 그러니까 세계관 최강자들이라는 얘긴데 이들의 공통점 이것 말고도 하나더 있습니다. 바로 이 차를 탄다는 것. 오늘의 이야기 강한자들의 자동차,갤로퍼입니다.

“커다란 바퀴, 지독한 연기, 투박한 디자인, 뒤덮인 먼지, ….거칠은 들판, 나쁜 승차감, 까다로운 정비, 지독한 연비” 갤로퍼를 알차게 까는 가사 뿐인 술탄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 ‘갤로퍼’. 하지만 이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뒤에 나옵니다.

"진탕에 빠저 헛바퀴 돌아도 엔진에 터져 연기에 휩싸여도 나는 좋아 계속밟아아
내인생은 내가 달려 거친 풍파 갤로퍼 모진인생 갤로퍼" 내 인생이 잠시 고장나더라도 잠시 멈추더라도 갤로퍼처럼 계속 나아간다는 거죠. 술탄오브더 디스코의 이 음악은 갤로퍼를 욕하는 듯 했지만 사실 깊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3년 단종된 차량을 2018년 음악으로 만든것에서부터 이 차 대한 애정을 엿볼수 있는데요. 갤로퍼에 대한 애정, 술탄오브 더 디스코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뭐하니에서는30년간 아버지의 발이 되어준 갤로퍼를 고치고 싶다는 아들의 사연이 방송됐습니다. 아버지는 함께한 세월이 눈에 밟혀 선뜻 차를 바꾸기 어려웠다는데.. 24명의 국가대표급 엔지니어가 달려들어 참여한 복원 프로젝트 노후 갤로퍼의 가장큰 문제인 노후경유엔진을 6기통 휘발유엔진으로 통째로 바꿨습니다. 갤로퍼는 배출가스 등급제의 대표적인 희생양이기 때문이죠.


2002년 7월 1일 이전에 생산한 경유 차는 모두 5등급이기 때문에 갤로퍼는 운행제한 대상이 되는거죠. 서울에서 무리없이 운행하려면 매연 저감장치 장착하거나 엘피지 차량으로 개조해야만 합니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갤로퍼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중고가 시세도 함께 치솟고 있습니다.

갤로퍼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빨리 현대가 알아줘야 할텐데 말이죠. 이에 부응하듯 현대는 포니와 그랜저에 헤리티지에 이어 갤로퍼가 세번째 헤리티지가 될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갤로퍼의 탄생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정주영회장의 동생 ‘정세영’회장이 경영하고 있었고 항공기, 철도, 공작기계를 만들던 현대 정공을 정주영 회장의 아들 정몽구 명예회장이 맡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서 사륜구동 자동차를 만든다? 하면 이게 당연히 현대 자동차에게 넘어갔어야 할 일 같지만 당시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 있는 정공에 맡기게 됩니다. 뭐 그때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세영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느니.. 뭐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데요.


사실 지금에야 SUV가 각광받고 인기도 많고 하지만 당시에 자동차 업계는 승용차, 세단 위주로 소비되던 시절이었어요. 사륜구동 시장이 크지도 않고 이미 쌍용이라는 부동의 1위가 있으니 아들에게 한번 맡겨 본거죠? 이에 현대정공은 용인에 연구소를 세워 SUV를 개발했지만 결과는..?? 개 똥망쓰..

차량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없는 현대정공이 복잡한 사륜구동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정몽구 회장은 “야 우리 이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믿을만한 회사에서 라이센스를 구입해 자동차를 생산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기술제휴를 맺고 있었던 미쯔비시의 자동차 파제로 라이센스를 사왔고 결심한지 3년만에.. 1991년부터 갤로퍼 생산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초 대박이 나버립니다. 승용차 중심이던 자동차 시장을 뒤집어 엎은거죠. 출시한지 3개월만에 3천대가 팔렸고 사륜구동을 장악했던 쌍용의 점유율을 추월. 그래서 3년만에 10만대, 8년만에 30만대를 생산. 갤로퍼의 성공은 자투리 담당이라고 평가받았던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후 현대차를 품에 안게된 명분이 되어줬다고 합니다.


사륜 구동 개발 실패에서 갤로퍼 신화를 쓰기까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정몽구 회장과 갤로퍼.어쩌면 좀 닮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갤로퍼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은근 자주 등장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데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갤로퍼 출연작! 이라고 할까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의 갤로퍼 이야기는 이렇게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더 재밌는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조르디

조르디

joso@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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