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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D300 HSE 시승기, 도심형 SUV의 정수

영국의 SUV 명가, 랜드로버는 비교적 파란만장한 역사를 딛고서 명성을 유지하는 중이다. 랜드로버는 정통 오프로더에 근간을 두고 기업 규모를 키워왔다. 1970년, 프리미엄 모델 '레인지로버'를 양산하며 고급화 SUV의 초석을 다진다. 그리고 2023년 부로는 '랜드로버'라는 사명을 폐지하기로 발표했다. JLR은 '레인지로버'를 비롯해 '디펜더', '디스커버리', '재규어' 등 현재의 차명을 새로운 브랜드 네임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즉, 이번 시승기의 주제인 '스포츠'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의 서브네임이 아닌, 레인지로버라는 브랜드의 '스포츠' 모델로 변경될 것이다.

사명 변경 및 라인업 개편이 의미하는 바는 그만큼 '레인지로버'라는 이름과 '랜드로버'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 내지는 아이덴티티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랜드로버는 다목적 자동차 사업에서 쌓아온 명성이 곧 브랜드의 가치이자 자산이었다. 소비자들에게도 오프로드 DNA를 가진 고급형 SUV로 인식되고 있고, 그게 랜드로버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었다. 하지만 디펜더와 레인지로버, 그리고 디스커버리는 각각의 제품성과 수요층 자체가 다르다는 결론이다. '레인지로버'는 세 브랜드 중에서 세계 시장의 변화를 이끈 트렌드 세터와 같은 포지션이다. 도심형 SUV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여 온갖 첨단 기술과 디자인 경영에 집중해 왔다.

2022년에 공개된 제3세대 레인지로버 스포츠 L421은 어쩌면 브랜드 독립의 신호탄과 같았다. 목적부터 레인지로버의 양산형에 가까웠던 레인지로버 스포츠가 분명한 독자 모델로 변경된 시점이다. 즉, 양산형을 의미했던 '스포츠'라는 수식어가, 이름 뜻 그대로 '스포티한 감각'을 지닌 프리미엄 SUV라는 성격을 표현한다. 물론 플랫폼은 여전히 5세대 레인지로버와 공유한다. 하지만 21세기 크로스오버 시장을 보면, 플랫폼 사양의 자동차의 성향을 크게 희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수많은 브랜드들이 입증한 바 있다.

시승 차량은 레인지로버 스포츠 D300 Dynamic HSE 트림이다. JLR의 자체 개발 인제니움 직렬 6기통 디젤 엔진과 독일 ZF의 8단 토크컨버터 변속기가 기본이다.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과 터레인 리스폰스 2 시스템 등 레인지로버를 상징하는 고급 사양이 탑재된다. 그 밖에도 드라이버 어시스트, 3D 서라운드 카메라, 냉장 콘솔 박스, 4존 독립 공조, 2열 전동시트 및 수동식 선바이저 등 편의장비가 풍부하다. 매력적인 붉은 색감을 지닌 색상 명은 피렌체 레드, 휠은 22인치 크기로 꽉 채워져 있다.

최신 레인지로버의 스타일링 기법은 매끄러운 라운드 스타일에 집중한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크기가 슬림 해지고 베젤까지 얇아졌다. 헤드램프의 경우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채택하며 보다 날렵한 인상을 추구한다. 레인지로버의 오브제 중 하나인 클램셀 후드가 깔끔한 파팅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랜드로버 엠블럼은 라디에이터 그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톤 다운된 그릴 프레임과 레터링, 범퍼의 액세서리가 스포티한 감성을 더한다. 차체 하부에 두꺼운 가니시가 없다는 점에서 도심 지향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측면 디자인은 현대 SUV중 가장 이상적이라 느낀다. 정통 오프로더의 감각을 답습하는 '2-박스'의 형식이 나타나지만, 가파르게 하강하는 루프라인과 완만한 각도로 상승하는 벨트라인에서 쿠페의 스타일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플러시 글레이징 기법과 히든 웨이스트 피니셔를 통해 글래스와 필러, 패널 사이의 단차를 생략할 수 있었다. 완성도가 훌륭하다. 전동식 사이드 스텝과 도어 캐치까지 매끄러운 디자인을 추구하기 위한 레인지로버의 기술적 접근이 인상적이다. 에어벤트와 22인치 휠의 스탠스도 매력적이다.

뒷모습도 레인지로버가 추구하는 심 리스한 감각이 반영되어 있다. 슬림한 테일램프 그래픽은 역시 스포티한 인상이고, 후미등을 연결하는 검은색 가니시가 매력을 가산한다. 또한 전체적인 그린하우스 형상이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 테일' 실루엣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리어펜더의 볼륨은 살아나고, 매끄러운 측면 디자인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디젤 모델이다 보니 이따금 공격적인 머플러 팁이나 디퓨져가 단순한 점은 아쉽다. 그래도 전반적인 하이테크 감성과 테일램프의 카리스마가 고급감을 자아낸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의 정수와 같다. 13.9인치 세미 플로팅 디스플레이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13.1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LG전자와 협력한 PIVI PRO UI로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가장 놀랐던 점은 공조장치 다이얼이다. 다이얼을 클릭하면 에어컨 온도 조절 장치가 통풍 및 열선 시트 제어 UI로 변경된다. 세미 아닐린 가죽과 블랙 하이그로시 위주로 마감한 인테리어는 상당히 고급스럽고, 엠비언트 라이트의 광량도 밝은 편이다. 브리지 타입 센터 콘솔 및 2중 콘솔 박스, 2단 글로브 박스 등 넉넉한 수납공간은 SUV의 강점이다.

준대형 SUV인 만큼 2열 공간의 편의성도 훌륭했다. 다만, 시트가 마치 소파처럼 크고 두꺼운 타입이라 외관에 비해서는 공간이 좁아보일 수 있다. 대신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다. 2열에도 2존 독립 공조 시스템과 전동식 리클라이닝을 지원한다. 전방을 바라보면 파노라마 선루프의 개방감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트렁크 공간도 넓은 편이다. 2열 시트는 전동식 폴딩이 가능하고, 에어서스펜션의 차고를 낮춰 편의성을 개선할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디자인과 기능에 대해 파고들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을 것 같다. SUV의 명가답게 활용성이나 고급감 전부 만족스러운 실내 공간이다.

JLR은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48V MHEV 시스템을 기본화 했다. 엔진 시동이 정말 부드럽게 걸린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정숙성이다. 시승 차량은 D300 '디젤'엔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JLR에서 독자 개발인 인제니움 엔진은 여느 내연기관처럼 경량화와 소형화, 그리고 효율성 개선을 목표로 했다.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안은 마찰 손실 감소였다. 그만큼 디젤엔진임에도 진동과 소음이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고, 정교한 방음 성능으로 인해 실내 공간은 더욱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엑셀을 밟으면 부드럽게 나아간다. 다이내믹 에어서스펜션과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로 조율한 승차감은 그저 편안하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잔잔한 충격은 현가장치에서 걸러내고, 격한 주행에서도 실내 공간에는억제된 롤링만이 느껴진다. 디젤엔진의 회전 질감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파워트레인에서는 인위적인 변속감이나 충격을 느껴보기 어렵다. 역시 레인지로버라는 브랜드 밸류에 맞게 기본적인 승차감은 호화로웠다. 반면 '다이내믹 모드'를 작동시키면 아쉽지 않은 수준의 엔진 사운드가 실내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 296마력, 최대 토크는 66.3Kg.M이다. 원래 디젤엔진은 연비가 좋아 이용한다는 인식이 있고 틀린 말도 아니지만, 출력 특성이 공차중량이 높은 SUV에 적합하기 때문에 적용되는 부분이 크다. 저속에서의 회전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초반 가속이 상당히 흥미롭다. 시속 100Km 초반까지는 계기판의 숫자가 무섭게 치솟는다. 다운시프트를 하면 들려오는 RPM 사운드도 굉장히 우렁차다. 다이내믹 모드에서의 핸들링은 묵직하고, 승차감도 보다 단단해진다. 전장이 길어서 조향감이 기민하진 않다. 대신 그만큼 안정적이다.전자식 LSD와 후륜조향이 포함된 '스토머 핸들링 패키지'가 적용되지 않기도 했다.

다시, 엑셀을 최대한 깊게 밟아본다. 속도계에서 보이는 가속력대비 운전자가 직접 체감하는 가속감은 크지 않다. 우렁찬 사운드와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환경이 긴장감을 더해주나, 흔히 펀 드라이빙을 위한 '퓨어'한 감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준대형 SUV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데일리 세팅의 레인지로버가 이따금 공격적인 퍼포먼스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겁다.

고성능 엔진의 적용은 운전에 대한 여유를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다. 추월이나 나들목 등 운전자의 의도에 맞는 펀치력을 발휘한다. 대략 2.5톤의 무게를 의식하지 않는다. 변속기와의 소통도 원활하다. 또한, 넉넉한 출력과 변속감 덕분에 주행중 유입되는 불쾌한 소음도 없었다. A필러가 얇아지면서 개방감과 사각지대가 줄고, 풍절음이 다소 생겨난다는 매스컴의 평가가 있는데 딱히 의식하지 못했다. 어차피 오디오를 들으면 엔진소리나 풍절음을 의식할 겨를이 없다. 풍부한 ADAS장비와 함께 장시간 주행에도 피로도가 낮을 것이다.

매끈한 디자인덕분에 항력계수는 2.9Cd에 불과하다. 웬만한 해치백보다 낮은 수준의 공기저항 계수다. 때문에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2.5톤이란 무게를 갖추고도 L당 10.4Km/l라는 훌륭한 연비를 보인다. 에어챔버를 통한 차고조절이 가능하니 연료 소비 효율 및 주행성능 확보에 더욱 유리한 부분이 있다. 차고 조절은 피비프로 디스플레이로 선택할 수 있고, 센터 스택에 위치한 다이얼을 돌려 지형반응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다. 오프로드 성능이야 의구심이 들지 않는 레인지로버다. 간단한 산길 코스도 주행해 보았는데, 트랙션을 잃을 정도로 노면 상태가 불량하진 않아 승차감의 변화도 없었다.

대신 차고를 높일 수 있다는 기능만으로도 심리적인 편안함이 대폭 나아진다. 도로에서 튀는 흙이나 충격으로부터 자유롭고, 디젤엔진의 토크를 활용하면 높은 턱도 쉽게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서라운드 뷰 카메라는 오프로드 특화 기능으로 타이어만을 비춰주기도 한다. 실질적으로는 평행주차나 골목길에서 큰 도움이 된다. 추가로 최대 90Cm의 도강 성능과 3.5톤의 견인 능력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전자식 룸미러와 클러스터의 T맵 네비게이션도 편의성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화질과 선명도가 훌륭했고, 특히 전자식 룸미러는 야간 시야 확보와 눈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준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젤을 시승했다. 레인지로버의 DNA는 확실하다. 에어서스펜션이 탑재된 여타 SUV를 시승해도, 비단 레인지로버의 승차감은 느껴보기 어렵다. 그리고 '스포츠'라는 수식어는 보다 많은 운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스타일과 퍼포먼스를 내세우며, 오프로드 성능까지도 겸비한 것이다. 랜드로버는 디자인 전문 기업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감성 마케팅 능력이 뛰어났다. 도심형 SUV를 선호하는 대중들은 당연히 만족할 터, SUV의 가치를 부인하는 운전자 분들께 가장 소개해 주고 싶은 SUV다. 필자도 SUV의 전성시대에 거부감을 가져왔지만 정말 레인지로버는 다르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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