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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글래디에이터 시승기, 이질감은 즐거움의 반증이 아닐까

픽업트럭 시장, 대중적이진 않아도 꾸준한 수요가 있다. 픽업트럭은 SUV형 차량에 트렁크 대신 적재함을 결합시킨 형태를 지니며, 뛰어난 적재용량과 실용성이 강점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고 운송 인프라가 발달한 만큼 해외에 비해 픽업트럭의 필요성이 대두되진 않는다. 그 반대의 예시가 되는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픽업트럭 문화가 활성화되었다. 하나, 국내에서도 캠핑, 낚시 등 레포츠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픽업트럭의 기능과 감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소외 시장이지만, 그만큼 잠재력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도 미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픽업트럭의 선택지가 상당히 다양해졌다.

SUV의 대명사와 같은 '지프'도 역시 픽업트럭을 생산한다. 지프의 아이코닉 리더, '랭글러'를 기반으로 하는 '글래디에이터'다. 의외로 글래디에이터는 2018년에 공개된 신규 라인업이다. 정확히 따져보자면 1963년, 지프의 왜고니어를 픽업트럭으로 개조한 차량의 차명이 글래디에이터였다. 하지만 1988년에 단종되었고, 약 30년의 시간이 흘러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왜고니어가 아닌 랭글러 JL을 기반으로 한 만큼, 바디온 프레임 형식, 파트타임 4WD 등 정통 SUV의 헤리티지를 물려받게 되었다.

시승 차량은 글래디에이터 3.6 가솔린 RUBICON 트림이다. 한국에 수입되는 글래디에이터는 V6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에, '루비콘' 단일 트림이라 선택지가 따로 없긴 하다. 루비콘은 미국 기준 최상위 트림에 속하며, LED라이트, 열선 패키지, 터치스크린 및 알파인 프리미엄 오디오, 그리고 사각지대 경보나 ASCC 등 기본적인 ADAS 장비를 포함한다. 때문에 출고가가 높게 형성되어 있긴 하다.

글래디에이터는 일반 랭글러보다 차고가 높게 세팅되었다. 손잡이를 잡고 운전석에 오르면 높은 시야각과 개성적인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글래디에이터에는 FCA 그룹의 3.6L V형 6실린더 펜타스타 엔진이 탑재된다. 과급 방식은 자연흡기로 최대출력은 284마력, 토크는 36.0kg.m이다. 육중한 차량에 디젤 엔진이 아닌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것 또한 북미시장의 특성이 반영된다. 변속기는 8단 토크컨버터, 공차중량이 2.3T에 항력계수가 0.5 Cd를 웃도는 만큼 공인 연비는 리터당 6.5 km로 매우 낮다. 물론 바디 온 프레임 정통 오프로더에게 연비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액셀레이터 페달은 서스펜디드 타입이다. 가솔린 엔진의 회전 질감은 부드럽고 실내공간은 생각보다 정숙하다. 엑셀을 밟으면 느긋하고 일관된 가속감이 느껴진다. 차량 무게가 있다 보니 즉답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지만, 탄력이 붙으면 꾸준한 토크감으로 차체를 이끈다. 글래디에이터의 비공식적인 제로백은 약 9초다. 시승 내내 출력에 대한 갈증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파트타임 4륜 구동임에도 AUTO 4H모드가 제공된다. 휠 슬립이 감지되면 순간적으로 센터락을 잠가 안정성을 보정하는 방식이다. 온 디멘드 타입 AWD라고 볼 수 있겠는데, 정밀성은 떨어지겠지만 효율성과 내구성의 측면에서 오프로더의 특성에 걸맞다. 정리하자면 트랜스퍼 케이스는 2H, 4H 오토, 4H, 4L 네 가지 모드를 지원하여 주행환경에 따라 중앙 레버로 설정할 수 있다.

때문에 센터 콘솔에 두 종류의 기어레버가 마련된 모습이 흥미롭다.도어트림에 위치해야 할 창문 레버가 센터패시아에 위치한다. 그 이유는 도어 패널을 쉽게 탈착하기 위해서다. 글래디에이터는 문을 비롯해 하드탑 루프도 탈착할 수 있는 손잡이와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네모반듯한 대시보드와 원형의 에어벤트는 투박하지만 아기자기한 감성을 잘 살려냈다. 클러스터와 디스플레이의 시인성도 좋았으며, 직경이 넓은 스티어링 휠과 직관적인 버튼들도 미국스러운 감성이다. 필러 각도가 높다 보니 헤드룸이 여유롭고, 의외로 사각지대도 넓지 않은 편이다.

2열 공간도 휠베이스 자체가 넓진 않지만 공간이 탁 트여있어서 답답함이 없다. 생각보다 시트도 편안하고 에어벤트와 USB 포트, 컵홀더 등 편의성도 배려했다. 1열 시트 뒤편에 다양한 장비들을 거치하기 편해 보이고, 뒷유리는 슬라이딩으로 개방이 가능하다. 2열 시트를 들어 올리면 꽤나 넓은 크기의 수납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블루투스 오디오와 충전 단자도 패키징 되어있다. 지프만의 전통과 배려는 확실하다. 직관적이고 실용성인 구성이 투박한 분위기를 낼 수는 있어도 감성으로 합리화가 가능하다.

글래디에이터의 인증 적재용량은 205KG이다. 강철 프레임에 마일드 스틸 바디를 생각하면 너무 낮은 수치이고, 사실 운전자만 탑승한다면 700kg까지도 문제가 없다는 말은 있다. 테일게이트는 손잡이로 쉽게 여닫을 수 있다. 적재함 커버도 기본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수하물을 보호하기 좋아 보인다. 커버는 내부에 있는 레버로 간단하게 접었다 폈다 하는 방식이다. 높은 적재함에 올라가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정말 힐링이겠다. 한편, 글래디에이터의 뒷모습은 심플하고 단단해 보인다. 네모난 테일램프 디자인은 아이코닉 하다.

전면부 디자인은 글래디에이터와 랭글러를 구분 짓기 어렵다. 명확한 디자인 헤리티지를 반영할 뿐이다. 7 대륙을 상징한다는 7슬롯 그릴과 원형의 헤드 램프, 그리고 듬직하게 뻗어 나온 휠 하우스와 범퍼가 특징적이다. 흠집이 쉽게 생기는 곳에는 플라스틱을 소재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기도 한다. 경첩식 도어 패널과 후드, 네모반듯한 윈드 실드 등 생산성과 기능성을 고려했던 초창기 지프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이어온 결과다. 픽업트럭으로써 랭글러와 확실히 구분되는 점은 D 필러가 없고 휠베이스와 리어 오버행이 상당히 길어졌다는 점이다.

랭글러의 디자인은 기능주의에 충실한 모습이니 창의성이 돋보인다고 표현할 순 없다. 그렇다고 랭글러의 외관을 비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역사성의 힘이다. 군용 윌리스 지프를 생산할 때부터 명맥을 이어온 아이코닉 한 스타일링 기법이다. 단지 외모만을 보아서도 투박하고 단단한 분위기는 멋있게만 느껴진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거나 모호한 지향성을 갖춘 크로스오버형 SUV와는 다른 차원의 멋이다. 글래디에이터는 그런 랭글러의 디자인 요소가 그대로 담겨 있다. 더불어 전장이 길고 지상고가 높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웅장해 보였다.

묵직한 핸들링 감각이 남다르다. 조향장치에 일반적인 랙 앤 피니언 기어를 사용하지 않고, 리서큘레이팅 볼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베어링처럼 웜샤프트와 섹터 기어에 볼을 끼워 기계 마찰을 줄이는 방식인데, 부피가 크고 정교한 세팅이 어려워 승용차에선 접해보기 어려웠다. 대신 내구성과 강성이 높아 오프로드에서 가해지는 충격에 대응하기 쉽고, 둔감한 피드백 덕분에 험로에서의 운전은 편하다.

현가장치는 전후륜 모두 5- 멀티링크로 연결되어 있다. 험로 주파를 위한 세팅으로 휠 트레블 길이가 길고, 국내 시판 글래디에이터의 경우 FOX 댐퍼를 기본 탑재해 감쇠력을 강화했다. 글래디에이터의 프레임은 약 57%가 고속도강으로 주조되었고, 차체는 강철, 필러는 일체형 핫스탬핑 공법으로 강성을 극대화했다. 바디와 프레임에서 약 90KG의 경량화를 달성하며 차체는 더욱 단단해졌다고 한다. 최대 견인하중은 약 3.4톤, 울퉁불퉁한 산길 속에서 글래디에이터의 묵직한 핸들 감각과 단단한 차체 강성은 신뢰도가 확실하다.

노면 상태가 상당히 불균일한 자갈길을 만났다. 글래디에이터는 전자식 스웨이 바가 탑재되어, 수동적으로 체결을 해제하는 게 가능하다. 스웨이바, 다시 말해 스테빌라이저는 고속에서 양측 바퀴의 거동 편차를 억제하여 롤링을 줄여주는 역할이다. 고속 주행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링크다. 하지만 험로 구간에서는 현가장치의 자유도를 억제하여 부하를 증폭시키고 승차감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지프는 스웨이 바로 인한 오프로드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실제 전자식 스웨이바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불균일한 노면은 물론 경사까지 높았던 자갈길에서 차체의 흔들림은 예상외로 안정적이다. 3.6L 자연흡기 엔진의 토크감은 2.3톤의 차체를 부드럽게 밀어주고, 차체가 무겁다 보니 접지도 잘 되는 것 같았다. 스태빌라이저를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다시 체결할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말 그대로 '험로'에서 40Km/h가 넘는 속도에 도달해도 전혀 불안함이 없었고, 종종 맞닿는 하늘 위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차량의 전고가 높다는 게 체감갔다.

높은 곳에 올라 감상하는 창밖의 풍경은 참으로 시원하다. 글래디에이터의 넉넉한 출력과 듬직한 차체 강성은 어떠한 길을 오르더라도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단지 고출력 엔진을 맞물리고 고강성 프레임에, 첨단 기술이 대거 탑재한다고 하여 '오프로더'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리적이고 실용적이어야 운전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다. 지프는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지극히 다목적 자동차의 본질로써 접근했다.

일반 포장도로에서의 승차감이 특별히 아쉽지도 않다. 오프로드를 위한 세팅, 높은 전고와 항력계수를 무시한 디자인에서는 말이다. 출력에 대한 결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형적인 감각의 제동 성능도 훌륭하다. 전자 장비를 지양하는 오프로더다 보니 마련된 ADAS 장비는 크루즈 컨트롤 정도로 미약하다. 대신 유선 스마트폰 미러링을 통해 T맵을 띄우는 등 커넥티비티 기술을 빼먹지 않았다. 물론 차량을 험하게 다룬다면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타입은 아닐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모노코크 바디를 활용하는 크로스오버와 정통파 SUV 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저 높은 시야에서 느껴지는 흥미와 부드러운 엔진 반응이 유쾌하다.

솔직히 정통 SUV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특히 픽업트럭을 높은 가격에 구매하면서, 불편함까지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무렴 바디온 프레임 SUV가 대중성과 거리가 멀다는 건 사실이다. 효율도 좋지 않고, 예전처럼 모노코크 SUV의 강성과 주행성이 많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자연흡기 엔진, 리서큘레이팅 볼 타입 조향, 파트타임 4WD 등 일련의 헤리티지들이 전부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감성이 있다. 무엇보다 근거가 확실한 감성이다. 탑승객을 보호해 준다는 신뢰감, 더 나아가 모든 여정을 책임져 준다는 책임감이 느껴지는 차량이다. 만약 정통 픽업트럭의 실효성까지 느껴본 소비자라면, 트렌드에 도태된 크로스오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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