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GTI 2.0 Limited Edition을 장기간 시승했다. 해치백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의했던 골프는 대중형 자동차의 아이콘으로 기록된다. 기민한 운동성능과 뛰어난 효율성, 합리적인 가격과 공간 활용 능력은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 등지에서 큰 성공을 이룬다. 특히 20세기 중후반 자동차의 대중화와 석유 파동이 영향을 미쳤던 시기, 골프는 경제적인 이동 수단을 찾던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셈이다. 누적 판매량 3500만 대를 돌파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여정을 뒷받침해 왔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골프는 예나 지금이나 유럽 해치백 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중이다. 다만 전체적인 판매량은 감소 추이에 있다. 즉, 해치백 시장의 인기도 자체가 예전 같지는 않다. 저단가와 고급화 전략을 택하던 소형 SUV로 이탈되는 수요가 많아지고, 또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로 인해 대중차의 판매량이 분산되고 있다. 골프의 판매량은 자동차 산업의 동향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의 아이콘이라 생각을 한다. 시대는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골프 GTI는 다르다. 새로운 소형 SUV나 전기자동차는 GTI가 제시할 수 있는 운동 성능이나 감성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번 글의 주제 'GTI'는 골프의 고성능 디비전에 붙는 수식어다. 엔진 형식과 출력에 따라 베이스 모델부터 GTI, GTD 등 하이 퍼포먼스 모델, 그리고 하이엔드급 '골프 R'까지 다양한 라인업으로 구분된다. 그중 현시점으로 한국 시장에 출시된 최고성능 모델이 골프 GTI다. 페이스리프트를 앞두며, 100대 한정판으로 정식 판매된 리미티드 에디션은 독일의 튜닝사 '오팅어'의 바디킷 세트로 커스텀 된다.
8세대 골프의 디자인은 직선 위주의 기조를 따르고 있다. 전면 중심부를 가르는 LED 스트라이프와 I.Q 헤드램프의 그래픽 조화가 인상적이다. 골프 GTI는 더욱 스포티한 멋을 가미한다. LED 스트라이프 하단에는 레드라인이 추가되었고, 범퍼의 에어 인테이크 면적이 확장된다. 특히 허니컴 타입 그릴 메시가 강렬함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범퍼 양 끝단에 부착된 가니시는 프런트립과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입체감을 더해준다. 골프는 실물로 볼 때 더욱 날렵한 스탠스가 매력적인데, 프런트 마스크 자체를 최대한 낮고 넓게 배치했기 때문이다.
골프는 한국의 포니를 디자인하기도 했던 주지아로의 작품 중 하나였다. 특유의 쐐기형 차체 디자인은 50년의 역사가 흐른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두터운 C필러를 기반으로 한 프로필은 해치백의 전형이자 골프의 캐릭터가 된다. 꽤 오래전부터 골프는 낮게 깔린 노즈와 벨트라인을 특징으로 하기도 했다. 탑승객의 시야감을 개선하면서 역동적인 실루엣을 구현하는데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 골프 GTI의 가장 매력적인 차별화는 낮은 편평비를 지닌 19인치 전용 휠이다. 레드 캘리퍼와 GTI 레터링, 전용 스커트도 멋을 더한다.
후면 디자인은 간결했다. 헤드램프처럼 정교한 그래픽을 보여주는 테일램프가 특징이며, 다이내믹 턴 시그널 기능이 카리스마를 더한다. 테일게이트에 골프 대신 GTI 레터링이 적용되었고, 두꺼운 언더커버 사이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구경 머플러 팁이 인상적이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골프의 디자인 자체는 사실 간결하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이야깃 거리가 다양할 수 있다는 건, 오랜 헤리티지가 기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골프 GTI의 바디킷은 그런 대중적인 골프의 이미지를 자연스레 전환해 주었다.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이다. 오팅어사의 프런트 스포일러와 루프엣지 스포일러, 그리고 리어 디퓨져가 순정으로 적용되었다. 오팅어는 폭스바겐 그룹의 계열사들을 위한 전문 튜닝 브랜드로 알려진다. 실제 폭스바겐과 오랜 기간 협력하며 많은 팬층을 확보했다고 한다. 바디킷을 부착한 골프 GTI의 디자인은 더욱 진취적이고 공격적이다. 앞서 강조했던 19인치 휠과 함께 스탠스를 극대화하며, 공기역학적인 설계를 거쳐 주행성 향상 효과를 거두었다고도 한다. 또, 한정 모델에는 골프의 출생지인 '볼프스부르크' 문장이 프런트 펜더에 부착된다.
실내 디자인은 기존 골프 GTI와 동일하다. 기존 골프의 깔끔하고 세련된 레이아웃을 지니며, GTI 전용 인테리어 파츠가 도입된다. GTI만의 차별성부터 알아보자면 가장 큰 차이는 스포츠 시트였다. 세미 버킷 타입으로 보기보다 편안한 탑승감이 느껴진다. 실제 웬만한 세단의 시트보다도 편했다. 다채로운 색상 조합과 GTI 레터링으로도 개성을 더한다. 1열 시트는 전부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하는데, 전동 및 메모리 기능은 운전석만 탑재된다. 그 외에도 GTI 전용 D 컷 스티어링 휠과 허니컴 패턴이 각인된 인스트루먼트 패널, 메탈 페달이 채택되었다.
인포테인먼트는 디지털 클러스터와 10인치 센터 스크린으로 구성된다. 디지털 클러스터의 테마나 표기 정보 구성이 상당히 자유롭다. 부스트 압, 자이로센서, 타이머 등등 특히 RPM 게이지를 키운 디자인 테마는 운전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10인치 센터 스크린도 활용성과 반응성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대신 센터페시아가 간소화되면서 공조장치까지 통합한 구성은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다. 센터 콘솔엔 무선 충전 패드와 시동 버튼, 토글 레버 타입 변속기가 배치된다. 변속기의 조작감이 꽤나 부드럽다. 컵홀더는 접이식으로 활용성을 높였다.
뒷좌석 공간이다. 소형 해치백의 정석답게 협소한 공간 속에서도 2열 시트의 포지션이 잘 조율되어 있다. 레그룸의 깊이감이 있어 생각보다 편안한 거주성이 느껴지고, 차체 크기 대비 측면이 창이 넓어 개방감도 개선되었다. 단, 파노라믹 선루프의 경우 2열 시트까지 확장되어 있진 않다. 뒷좌석 편의 장비로는 암 레스트와 시트 열선이 있고, 에어벤트와 독립 공조 장치까지 구성된다. 트렁크는 러기지 패널로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다. 해치게이트는 수동식으로, 평탄한 바닥면을 보인다. 매트 아래에도 잔여 공간이 있다.
간혹 시트 포지션이 낮은 차량에 앉으면 시야가 답답한 경우가 있다. 골프는 A필러가 넓게 확장된 만큼 개방감이 느껴지는 시야가 인상적이다. 엔진 시동 버튼에 점등되는 빨간색 LED등이 감성을 더한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중저음의 엔진 사운드가 울린다. 너무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아쉬운 수준의 소음도 아니다. 골프 GTI에는 배기량 2.0L급 직렬 4기통 가솔린 TSI 엔진이 탑재된다. 싱글 터보가 과급을 보조하며 최고출력 245Hp, 최대토크 37.7Kg.M 수준의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7단 DCT, 공차중량 1493Kg이다.
습식 듀얼클러치와 가벼운 공차중량의 조화로 11.5Km/L 수준의 공인연비를 인증받는다. 고성능차 치고는 합리적인 편,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제로백은 6.2초다. 주행 모드는 에코와 컴포트, 그리고 스포츠 모드와 각개 설정이 가능하다. 사실 에코와 컴포트 모드의 세팅에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기본 출력이 높다 보니 에코 모드에서도 발진감은 경쾌하며, 7단 DCT도 오르막이나 잦은 가감속에 재빠르게 응답하는 모습이었다. 오토스탑 기능도 자연스럽게 개입하며 효율성을 보조한다. 오토홀드는 약간만 더 부드럽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이 탑재되면서 15단계의 감쇠력 조절이 가능하다. 골프 GTI 휠의 편평비가 좁지만, 컴포트 모드에서는 어느 정도 편안한 승차감을 제시해 준다. 노면에 대한 진동과 소음은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겠으나 방지턱에서의 충격은 리바운드 없이 부드럽게 흡수해 준다. 단지 컴포트 세팅에서의 스티어링 휠이 너무 묵직하게 느껴지긴 했다. 아마 프로그레시브 스티어링 기능을 감안했을지 모른다. 이는 주행 환경에 따라 스티어링 휠 기어비를 조율해 주는 기능으로, 실제 주차나 골목길에서는 회전 반경을 좁혀준다.
가변식 배기가 아니다 보니 에코 모드에서도 배기음은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특히 도심주행시 저 RPM 구간에서 소음이 큰데, 골프 GTI는 '고성능' 자동차이기에 수용 가능한 부분이겠다. 에코 모드에서는 도심 주행으로도 11km/l 이상의 평균 연비는 기록된다. 다만 그런 묵직한 핸들링과 단단한 승차감, 배기 사운드에 미루어 자꾸만 펀 드라이빙을 자극하는 차량이었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댐핑력은 확실히 단단해지고 부밍 사운드가 증폭된다.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은 미세하게 묵직해지는데 저속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스포츠 모드에서 본격적으로 출력을 활용해 본다. 전륜 기반이고, 시승일자가 겨울이다 보니 초반 휠 슬립과 토크 스티어는 피해 가기 어렵다. 이후 트랙션이 잡힌 뒤로는 ESC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직진성을 확보했다. 골프 GTI에는 전륜 크로스 디퍼렌셜 시스템, 유압식 디퍼렌셜 락 기능으로 좌우측 바퀴에 배분되는 토크를 가장 안정적으로 조정해 줄 수 있다. 7단 DCT는 민첩하게 반응하며 막힘없이 속력을 밀어붙인다. 공식 제로백이 6.2초라 하지만 체감 가속은 더욱 강하다. 고속에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는 스티어링은 신뢰를 준다.
날카로운 배기 사운드가 주행의 재미를 더한다. 패들 시프트의 감기는 듯한 그립감도 마음에 들고, 다운시프트로 5000 이상의 RPM을 올리면 팝&뱅 사운드도 심심치 않게 운전자를 자극한다. 스티어링과 변속기의 반응성이 정말 기민했다. 최고 감쇠력을 설정한 댐퍼는 코너링의 한계치를 끌어올리며, 차체 흔들림을 적극적으로 억제한다. 유압식 디퍼런셜과 프로그레시브 스티어링은 강한 횡력에도 섬세한 조향이 가능하도록 보조한다. 아담한 차체와 짧은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회두성은 '핫해치' 그 자체의 감각이었다.
겨울철 블랙 아이스가 심해 안전상 차량을 너무 몰아붙이진 못했다. 대신 골프 GTI가 지닌 포텐셜은 제대로 느껴보았으며, 2.0 TSI 엔진으로도 펀 드라이빙을 즐기기에 차고 넘치는 운동성능을 제시했다. 기본 세팅부터가 스포티한 성격이 확실하다. 단, 에코 모드에서는 적절한 효율과 낮아지는 댐핑력으로 데일리카의 활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또, 2레벨 수준 ADAS에 해당하는 트래블 어시스트 기능과 각종 안전 보조 기능이 탑재되어 막히는 길이나 중거리 운행에서 편안한 여정을 돕는다.
터치식 패널의 조작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상품성을 저해할 수준은 아니고, 깔끔한 디자인을 얻은 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포테인먼트 완성도가 훌륭했다. 순정 내비게이션은 사용하기 어렵지만 무선 스마트폰 미러링이 대체한다. 파크 어시스트 기능은 주차 진행시 조향을 보조해 주는데 소극적인 기능이라 잘 사용하지 않았다. 주차 센서는 전후방 모두를 인식하며, 후방 카메라는 약간의 왜곡 현상이 있다. 단, 주차나 주행과 관련된 기능들은 어차피 차량 자체가 콤팩트하다 보니 정말 보조 기능으로만 느껴진다.
원래 골프란 자동차를 타면서 남는 기억은 부드러운 승차감이나 풍부한 편의 장비가 아니다. 기민한 운동성능과 안정적인 주행감, 그리고 헤리티지를 답습하는 세련된 디자인이다. 골프 GTI는 그런 본성을 강조하는 세팅을 가졌다. 재미있는 주행 감각 하나가 많은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데, 골프는 단점이 없는 차량이다. 그래서 만족감이 강해진다. 특히 리미티드 에디션에 적용된 오팅어 바디킷은 짜릿한 운전에 어울리는 스포티한 외관을 제시한다. 운전석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아도 더욱 매력적인 해치백이 된 셈이다.
폭스바겐 골프 GTI 리미티드 에디션을 장기간 시승했다. 오팅어 바디킷으로 치장한 익스테리어는 디자인의 결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테리어는 기존 GTI와 동일하지만 역시 아쉬움은 없는 분위기, 특히 앰비언트와 인포테인먼트 UI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원래부터 안정성을 내세우던 골프의 주행 질감은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운 세팅으로 변하였다. 그에 맞는 파워풀한 엔진 출력과 배기 사운드가 끝없는 흥미를 자극한다. 골프는 실용성의 강점으로 해치백 시장을 개척했지만, 골프 GTI는 해치백이 지닌 운전의 매력에 대한 본보기가 되어준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