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자동차 기업 중 하나로 남아있다. 18세기 전반에는 생활용품과 자전거 등을 생산하던 가공업체였고, 1889년 증기기관 바탕의 삼륜차를 공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 푸조는 프랑스 태생의 브랜드이다. 이로써 철저한 철저한 유럽 지향성 자동차를 설계해 왔다. 아담하고 안정적인 유럽의 향기가 짙은 컴팩트카와 LCV의 위주의 라인업을 꾸려왔는데, 그런 성격상 북미와 같은 일부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약한 편이었다. 그에 대한 분업화가 가능토록 성사된 만남이 PSA과 FCA의 합작법인 스텔란티스다.
하나, 2022년 공개된 푸조 408 1.2 퓨어 테크는 브랜드의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된 차량이다. 누가 보아도 '푸조'다운 인상을 심어둔 '펠린-룩'디자인, 비행기의 조종석을 형상화 한 인테리어까지 브랜드의 색감이 여전히 짙게 물들어 있다. 대신, 차체 형식은 유럽시장의 보수적인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푸조는 세단 및 해치백 등 승용차 라인업의 명칭 가운데 '0'이라는 숫자를 덧붙이고, SUV 라인업에는 '00'이름을 더하는 전통이 있다. 차마 408의 외형을 접하고서, 전통적 의미의 세단이나 해치백으로 분류할 수는 없겠다.
그런 차종들을 위해 '크로스오버'라는 장르가 있다. 정확한 분류가 불가능한 디자인, 408은 마치 SUV처럼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와 높은 지상고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전고는 세단처럼 낮고 매끈하며 C필러 라인은 쿠페처럼 우아하게 뻗어나간다. 권위적인 브랜드들은 장르 고유의 특성이 지닌 안정성이나 스타일링 등 초점을 명확히 하지만, 점차 기준이 달라지는 자동차 시장에서는 실용성과 타협이 필요했다. 그 접점을 잘못 이해하면 끔찍한 실패작이 탄생하기도 하나, 408은 괜찮다. 모든 것을 담고서도 매력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푸조 408은 GT와 Allure 등급으로 구분된다. 시승차량과 같은 GT 트림이 상위 옵션이다. 기본적으로 외관 디자인은 큰 차이가 없는데,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와 오토 하이빔 컨트롤, 선루프, 휠이 GT 전용 사양으로 제공되었다. 푸조의 스타일링 기법 '펠린-룩'은 고양잇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실루엣을 특징으로 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별도의 프레임이 없는 프레임리스 타입으로 복잡한 그래픽과 함께 강렬한 존재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헤드램프에는 고양이의 앞니를 연상시키는 수직형 DRL이 매력적이다.
그 수직형 DRL은 측면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내비친다. 낮고 길게 뻗어있는 보닛을 따라 날카로운 인상을 마무리 짓는다. 푸조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서도 408은 가장 다채로운 디자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우선 차체 하부는 두꺼운 언더 플레이트로 마치 SUV 같은 듬직함을 남긴다. 그와 대비되는 루프라인은 패스트 백 쿠페처럼 완만한 아치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로커 패널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고, 벨트라인은 서서히 상승하며 웨이스트 라인에서 한 번 더 강하게 꺾인다. 리어 엔드 포지션을 높이며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자세를 형성한다.
보통 이런 디자인은 후방 전고가 높아지다 보니 매력적인 뒷모습으로 완결되기 어렵다. 하지만 408은 앞서 언급했었던 언더 플레이트를 리어 범퍼에 확장시켜 부착했다. 그와 함께 입체적인 범퍼 형상은 마치 스포츠카의 공격적인 디퓨저를 연상시킨다. 테일램프는 검은색 가니시로 연결되어 있다. 테일램프에는 블랙베젤 처리가 되어있다 보니 마치 단일 형상처럼 느껴진다. 내부의 날카로운 그래픽이 역시나 푸조만의 독창성을 각인하여 준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부분은 전면 가공이 적용된 19인치 알루미늄 휠, 편평비가 넓지만 스탠스가 매력적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비행기의 조종석을 연상시키는 'i 콕핏' 디자인, 운전석을 감싸는 각종 디스플레이와 직관적인 버튼 배치를 지닌다. 그리고 더블 D컷 형태로 다듬어진 직경이 짧은 스티어링 휠이 특징이다. 직경이 짧은 스티어링 휠은 조금 더 경쾌한 조향 감각을 제공하며, 푸조는 아예 스포크 상단으로 클러스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실제로는 클러스터의 하단부가 살짝 가려지는데, 그에 맞게 UI 테마를 클러스터 상단부에 집중시켰다. 10인치 i콕핏 디지털 클러스터는 기본 사양인데, 홀로그램을 띄워주는 3D 기능은 GT 등급만 지원된다.
센터 스크린도 10인치 크기다. 역시 직관적인 테마를 보여준다. 하단부 5개의 i토글 터치스크린은 주요 기능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데, GT 등급에만 제공된다. 디자인의 세련미와 편의성을 더한다. 기어 변속도 토글 레버 타입, 타사 제품보다 더 작고 부드러운 조작감을 보여준다. 그 외에는 구석구석 편리한 수납공간이 마련되었고, 또 일부분 적용된 앰비언트 라이트가 화사함을 더한다. 트립 미터 버튼을 찾았었는데 칼럼 레버 끝부분에 위치한다. 그 외 1열 안마시트, 프레임리스 룸미러와 조수석 전동 시트, 스티어링 휠 열선, GT 전용 핸들이 추가된다.
뒷좌석이다. 패스트백 루프를 채택하고 있지만, 2열 좌석은 세단처럼 넉넉한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만족스러운 부분은 넓게 확장되어 있는 레그룸, 헤드룸도 여유가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후방 전고를 높인 디자인 덕분이다. 나파가죽 시트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다소 딱딱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이는 유럽차스러운 모습이다. 2열 옵션으로는 에어벤트와 충전 포트, 암레스트 컵홀더 정도가 있다. 선루프 면적은 넓지만, 2열 공간까지 내려오진 않는다. 트렁크 공간은 깊고 평탄하다. 매트 아래 잔여 공간도 있고, GT에는 전동 트렁크가 탑재된다.
푸조 408 베이스 모델은 배기량 1.2L급 직렬 3기통 가솔린 퓨어테크 엔진이 탑재된다. PSA에서 직접 개발한 고효율 가솔린 엔진으로, 1.6L급 엔진 출력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실린더를 배제하였다. 엔진 자체의 경량화와 열관리 시스템, 밸브 및 오일펌프 타이밍을 최적화하며, DLC코팅을 통해 내구성을 강화한다. 싱글 터보까지 탑재한 결과 최고 출력은 131Hp, 최대토크는 23.5Kg.m 수준이다. 차체 중량 1455Kg을 감안하면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성능, 변속기로는 8단 토크컨버터가 맞물려 12.9Km/l 수준의 공인 연비를 인증받는다.
사전에 퓨어테크 엔진은 낮은 배기량으로 인해 가속성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 주행을 경험해 보는 순간 엔진 파워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진다. 최대 토크 자체는 평범하지만 그 영역대가 낮은 RPM에 세팅되어 있다. 때문에 초반 가속에서의 발진감이 정말 경쾌한데, D단에서 브레이크를 떼면 가속하는 크리핑부터 상당히 빠른 편이다. 엑셀을 지그시 밟으면 생각보다 빠른 응답성으로 속력을 올린다. 1750RPM 수준, 극히 낮은 영역대부터 최대 토크가 발휘되다 보니 오히려 엑셀을 부드럽게 밟아주는 게 경쾌한 가속력을 더해주었다.
스포츠 모드에서 비공식적인 제로백은 10초에서 11초 대, 당연히 여유가 넘치는 출력은 아니다. 하지만 출력 곡선과 변속기의 세팅 상으로 시속 80Km까지는 준수한 가속성능을 보여준다는 점이 대목이다. 고속주행에서도 꾸준히 밀어붙이는 힘은 지속된다. 단지 강렬한 수준의 가속감이 없는 것이다. 과속을 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지구력이 중요하진 않다. 하지만 감안은 해야 할 부분이겠다. 스포츠 모드에서 체감 출력이 많이 달라지진 않지만, 민첩한 스티어링 휠과 패들 시프트, 액티브 사운드가 더해주는 운전의 재미는 분명한 매력이다.
변속기는 높은 속력을 향할수록 부드러워진다. 다만 저단에서는 이따금씩 DCT처럼 약간의 울컥거림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초반 가속감이 높게 세팅되어 있는 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408 특유의 출력 전개와 변속 특성에 익숙해진다면 얼마든지 부드럽고 경쾌하게 운행할 수 있겠다. 엔진 정숙성이나 떨림도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었고, 오르막이나 고 RPM에서 부밍음이 커지긴 하나 어차피 모든 차량이 피치 못할 단점이다. 고속에서의 풍절음 억제나 안정감도 예상보다 더욱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고속주행에서의 매력은 높은 연비다. 막히지 않는 길에서 정속 주행을 하면 18Km/L 수준의 주행 연비를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초과속을 한다면 실질 연비는 매우 낮아지겠지만, 일상적으로 주행한다면 결국에는 장점만 남는 퓨어테크 엔진이었다. 참고로 푸조 408의 바탕이 되는 EMP-2 플랫폼은 경량화와 고강성을 목표로 하는데, 후륜 서스펜션 구조가 '트위스트 빔' 형식이다. 흔히 쓰이는 '토션빔' 구조에 가깝고, 차이점이라면 댐핑 스트로크가 높게 세팅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적정한 수준의 요철이나 방지턱은 충격을 곧잘 흡수하는 편이었다.
SUV의 장점을 혼합하고 있지만 주행감은 세단에 가깝다. 롤 스트로크가 편안한 세단에 가까운 정도, 댐핑력도 적당히 물렁하다. 무게중심이 낮게 깔려있는 움직임이고, 실제 주행에 있어서도 롤에 대한 저항성이 다소 강한 편이다. 차체가 길지만 민첩한 핸들링 감각을 보여준다. 회피기동과 급선회에도 후미 추종성이 안정적이다. 선회 방향성은 약간의 언더스티어 경향을 띄지만, 반응성이 강점이었다. 높은 초반 토크와 민첩한 핸들링 감각이 가져오는 움직임은 와인딩 코스에서 한층 편안한 주행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장거리 주행에서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는다. 스탑&고 작동까지 지원한다. 마사지 시트가 1열 탑승객의 피로도를 낮추어 주기도 한다. 미디어 인포테인먼트는 무선 안드로이드 오토& 카플레이가 탑재된다. 순정 내비게이션이 적용되어 있지만 프로젝션 기능을 대부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스피커의 만족도가 높았다. GT 등급은 클린 캐빈 시스템까지 탑재되어 실내 공간의 쾌적성을 높여준다. 타 브랜드에 대비한 단점이라면 오토홀드가 누락, 서라운드 뷰 카메라가 없다는 점도 개인차에 따라 아쉬울 수 있겠다.
강렬한 디자인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매력적이다. 시승차량은 색상까지 붉은색 계열이다 보니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더욱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기교가 느껴지는 전면 디자인부터 아치 형태의 루프라인을 거쳐, 테일램프에 닿는 순간까지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다. 푸조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는 인테리어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신기함에 사로잡힐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열 시트 헤드레스트에는 고급스러운 엠블럼 자수가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어떠한 측면에서든 양산 모델 중 브랜드의 색감이 정말 짙은 차량이었다.
푸조 408 1.2 가솔린 퓨어테크 GT 트림을 장기간 시승했다. 푸조 고유의 감성이 담긴 내 외관 디자인은 408의 제품성이자 매력이다. 옵션 구성은 1열 위주로 편성되어 있지만, 4인이 탑승하기에도 넉넉한 실내와 트렁크 공간을 보유한 크로스오버였다다. 실용성을 위해 디자인을 포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아울러, 푸조의 오랜 기술력이 담겨 있는 1.2 퓨어테크 엔진과 섀시 세팅은 일상적인 움직임에서의 만족도가 높았다. 특별함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푸조는 이를 위해 감내해야 할 불편을 배제하는 훌륭한 선택지를 내놓았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