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니퍼를 외칠 때 왜 이 차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남달리 더 예쁘지도 빠르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이 차의 매력은 꾸밈없음에서 찾을 수 있다. 부드러운 선으로 구현된 간결한 디자인과 이질감 없는 주행감에서 폭스바겐 특유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호응과 판단
2025년형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생긴 변화들이 있다. 전면에선 범퍼 하단의 실버 가니시가, 측면에서는 실버 필러 스트립이 자리한다. 후면에도 범퍼 하단에 전면과 동일한 컬러의 가니시가 더해진다.
안에서의 변화라면 먼저 기어 셀렉터를 꼽을 수 있는데, 계기판 측면에서 스티어링 휠 오른쪽으로 옮겨졌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12.9인치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스크린에 새로운 메뉴 구성도 추가됐다. 여러 에어리어 뷰 기능을 포함한 주차 메뉴를 포함해서. 디스플레이 하단에 위치한 실내 온도와 오디오 볼륨을 제어하는 컨트롤 패널은 생김새가 달라졌고 일루미네이션 기능도 적용됐다. Pro 모델 한정 IDA도 적용되는데 이는 폭스바겐의 보이스 어시스턴트다. 인포테인먼트의 전화, 미디어, 앰비언트 라이트, 공조, 주행 모드 등 일부 기능을 자연어로 조작할 수 있다.
기존 모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새로운 드라이브 시스템. 최고 출력은 40%, 최대 토크는 75% 향상되어 2025년형 ID.4는 최고 출력 286PS, 최대 토크 55.6kg.m의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6.7초. 최고 속도는 180km/h.
82.836kWh 용량의 고전압 배터리를 탑재해 1번 충전으로 424km(복합)까지 달릴 수 있다. 에너지 소비 효율은 복합 4.9km/kWh로 인증받았다. 폭스바겐의 설명에 따르면 2025년형에 탑재된 새로운 일렉트릭 드라이브 시스템엔 영구자석 로터와 개선된 스테이터 및 고출력 전류를 제공하는 신형 인버터가 들어가고, 열 관리와 냉각 시스템은 한층 더 최적화되고 지능화됐다고 한다. 성능과 효율성을 모두 챙기고 싶었다는 말이다. 충전 시스템의 개선도 눈여겨볼 만한데 배터리 히터 기능을 활성화해 주변 환경이나 기온에 상관없이 충전 속도를 최적화할 수 있다. 175kW 급 급속 충전으로 배터리 용량의 10~80% 충전까진 28분 정도 걸린다.
소소하다면 소소할 변화다. 지난해 2600대 넘게 팔리며 유럽 브랜드 전기차 판매량 1위를 달성했던 터라 변화의 폭은 크지 않더라도 개선에 대응하고 기대에 부응해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면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세제 혜택 적용 후 ID.4 Pro의 가격은 5999만 원인데 지역에 따라 국고 및 지자체 보조금과 폭스바겐코리아 혜택을 받으면 3천만 원 후반대~4천만 원 중반대로 떨어진다.
취향과 가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심 테마로 완성된 매끄러운 외관이다. 사라진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을 대신하는 빛 등 전기차 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특성이 더해졌지만 전체적인 균형과 안정감이 돋보인다. 미래 혹은 과거 지향적이 아니고 두 가지를 무리하게 섞지도 않아 과함이 없다. 단조무미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 취향을 넘어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보편성에 가치를 둔다면 이만한 브랜드와 차가 또 있을까.
곡선이 강조된 실루엣 속에서 빛은 날카롭다. 가로로 곧게 뻗은 라이트는 디자인의 요소로서 부드러움을 견제하기도 하지만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Pro 모델엔 IQ.라이트가 기본 적용되는데, LED 매트릭스 헤드 램프를 비롯해 LED 주간 주행등, 3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다이내믹 라이트 어시시트 등 반대편 운전자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밝은 시야를 확보해 주행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유쾌함도 있다. 키를 가지고 접근하며 헤드 램프는 운전자를 반겨준다. 회전하고 위를 올려보는 라이트는 운전자와 시선을 맞추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다. 사이드 미러 프로젝션도 있어 도어를 열면 바닥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패턴이 비친다.
측면에선 도어를 가로지는 캐릭터 라인과 사이드 가니시를 통해 역동성을 표현한다. 큼직한 휠과 타이어도 역동적인 면모에 힘을 보탠다. 휠의 직경은 20인치로 앞뒤 동일하지만 타이어의 단면과 편평비는 각각 235/50, 255/45로 다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에 기반한 ID.4의 길이는 4585mm로 테슬라 모델 Y와 현대 아이오닉 5보다 짧다. 두 차보다 슬림 하기도 하다. 도심 주행, 특히 주차할 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이다. 높이는 조금 더 높지만 휠베이스는 짧다. 아이오닉 5와 비교하면 차이는 230mm. 3m에 이르는 아이오닉 5의 수치는 압도적이지만 2.7m가 넘는 ID.4도 부족한 편은 아니다. 게다가 큼직한 파노라마 루프 글라스는 개방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심플한 인테리어 구성은 실내 공간에 여유가 머물게 한다. 5인치가 조금 넘는 계기판은 작지만 충분한 정보를 담는다. 반면 크기를 키운 12.9인치 터치스크린엔 조금 더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능이나 정보보단 그래픽이 구현되는 공간의 낭비를 줄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 형형색색의 그래픽 자체는 만족스럽다. 탑재된 내비게이션은 없지만 무선으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안에선 촘촘하게 개인화된 앰비언트 라이트와 함께 ID.라이트가 디자인 요소로 차용된 빛의 심미적 기능성을 가져간다. 특히 윈드 실드 하단에 설치된 ID.라이트는 타거나 내릴 때, 도어를 열고 잠글 때, 충전, 전화, 긴급 제동 등 상태를 LED로 시각적으로 전달하는데, 이는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Pro 모델 기준 에르고 액티브 전동 시트가 1열에 적용된다. 허벅지 지지대는 조절이 가능하고 마사지와 더불어 편하게 내리고 탈 수 있는 컨비니언스 엔트리 기능을 지원한다. 뒷좌석엔 암 레스트와 로드 스루가 있지만 리클라이닝은 불가하다. 시트가 꼿꼿하게 서 있는 편은 아니지만 불편한 각도도 아니다. 2열 에어벤트는 바닥에 가깝게 설치되어 있다. 트렁크 용량은 543L로 아이오닉 5보다 넉넉하다. 2열 시트를 폴딩 하면 적재 공간은 1575L. 전동식 파워 트렁크와 발을 갖다 대면 열리는 이지 오픈&클로즈는 공간 활용과 편의성에 이바지한다.
기대와 설득
굳이 시동 버튼을 찾아서 누를 필요는 없다. 브레이크만 밟아도 충분하다. 기어 셀렉터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변속 레인지 중 D와 B는 동일 선상에 있다. 차이는 회생제동의 강도. 변속 레인지가 B일 때 더 많은 에너지를 회수한다. 그렇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폭스바겐은 강력한 단계의 회생 제동이 실시되면 트랙션 손실이나 미끄러운 도로에선 스키드 현상으로 인해 제어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효율적인 주행 방식으로는 변속 레인지 D와 에코 주행 모드의 조합을 추천한다.
주행 모드는 에코, 컴포트, 스포츠, 인디비주얼 등 총 4가지. 에코는 연비 절감에 중점을 둔 주행 방식이다. 구동과 에어컨 출력은 감소될 수 있다. 컴포트는 표준 모드다. 일상 주행부터 장거리 주행까지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스포츠에선 반응이 더 직접적으로 바뀐다. 스티어링 휠은 깊게, 서스펜션은 민첩하게.
92% 충전된 상태에서 주행 가능한 거리는 479km. 부드럽게 나아간다.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도 자연스럽게 나아감을 이어간다. 이는 위화감 없는 승차감 구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전기차는 배터리로 인해 무거워진 중량으로 인해 서스펜션은 상대적으로 단단하게 세팅되기 마련인데 거부감이나 불편함은 없다.
도심과 고속도로를 오가는 과정에서 쾌적함은 도드라진다. 가속력은 폭발적이다기 보다 꾸준한 편이다. 구부러진 길에서도 속도를 높여 돌아 나갈 때도 안정감은 변함없다. 기울어짐은 잘 억제되는 편이고 노면을 야무지게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차의 성향 자체가 과격함보단 부드러움과 안정성에 더 주안점이 놓인 듯하지만 절대 느슨하진 않다. 주행 모드를 변경해도 체감되는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생김새와 달리 기민한 거동을 보여준다. 회전반경도 차체에 비해 크지 않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는 IQ.드라이브가 적용되는데 트래블 어시스트, 이머전시 어시스트, 차선 유지 레인 어시스트, 사이드 어시스트 등이 포함된다. 기능이 활성화된 이후 스티어링 휠에서 일정 시간 손을 떼면 메시지를 시작으로 경고음이 이어지고 해제된다. 반응이 없으면 차는 스스로 멈춘다. 이 밖에도 전방 추돌 경고 프런트 어시스트와 긴급 제동 시스템 등 적극적인 시청각적인 경고와 제동 보조를 통해 주행 안전성을 높이고자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 경연 컨설턴트 존 굿맨은 성공적인 CX 방법으로 고객의 당연한 기대를 당연하다는 듯 만족시키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는 것이 필요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면서 말이다. 안팎으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부터 닿지 않는 곳까지 거짓이 없고 무던하다는 점에서 ID.4는 기대를 충족한다. 그리고 그 충족은 설득으로 이어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기본에 충실하며 균형을 찾고 안정을 추구하는 브랜드만의 매력은 전기차에서도 여전하다. 화려한 눈부심을 양보하는 겸양도 마찬가지. 기본이 잊히고 주변의 것이 현란하게 부풀어지는 세상 속에서 특출나지 않아도 제격에 어울리는 ID.4가 유난한 이유다.
글/사진 이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