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8시리즈 그란쿠페 LCI M850i xDrive A/T를 장기간 시승했다. 현행 8시리즈는 2018년 BMW의 플래그십 쿠페로 개발되었다. 구 6시리즈 쿠페의 빈자리를 대체하기도 하나, 그보다 앞서 20세기에 단종된 8시리즈 쿠페의 후속차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BMW의 헤일로 카 역할을 담당한다. 펀 드라이빙을 앞세우는 BMW 온갖 기능 및 감성 요소를 총합시키고, 플래그십의 지위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그중 8시리즈 그란쿠페는 8시리즈 쿠페의 파생형, '4도어 GT'에 해당된다.
사실 쿠페 시장은 점점 위축되는 추세에 있다. 점점 라인업을 좁혀가는 것이 다수 브랜드들의 트렌드와 같다. 환경규제의 압박으로 내연기관 고성능 자동차는 자리를 잃어가고, 국제 정세가 안 좋은 시기 경제 지표가 요동치면 실용성이 부족한 쿠페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원래부터 쿠페는 수익이 아닌, 브랜드의 가치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현재 레거시 브랜드들은 전동화 산업의 불확실성과 관세 전쟁으로 개발비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없다. 결과적으로 당장의 8시리즈 쿠페, 그리고 그란쿠페도 후속 없이 단종될 것으로 예측되는 중이다.
하지만 BMW는 스포츠 세단의 전문 브랜드다. 결코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요가 감소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다. 2022년 페이스리프트 이후에는 디자인 완성도를 더욱 가다듬고,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강화한 바 있기도 하다. 특히 출시 당시부터 컨셉트카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해낸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다수 대중들의 소유욕을 자극했을 것이다. 아울러, 시승차량 M850I 트림은 탄소중립의 시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V8 엔진을 품고 있다. 누가 보아도 멋스러운 외모와 8실린더 엔진, 장르를 떠나 로망일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M850i 그란쿠페의 외관 디자인은 놀랍도록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다. 플래그십의 지위에 맞는 기다란 전장을 지녔지만, 노즈는 웬만한 준중형 세단보다도 낮게 깔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거대한 V8 엔진은 전방 중심에 위치하고, 전면 오버행을 늘리면서 프런트 마스크를 입체적으로 다듬은 모습이다. 육각형의 키드니 그릴은 페이스리프트 이후 아이코닉 글로우 기능이 추가된다. BMW의 기술력이 집약된 레이저 헤드램프는 8시리즈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강조하며, M 스포츠 패키지의 범퍼는 과감한 인상에 적절히 어울린다.
캐릭터 라인이 차체 후미로 갈수록 상승하는 스포츠 쿠페의 전형적인 스타일 기법을 갖추었다. 이로써 보닛보다 트렁크 데크의 높이가 높아지고, 매끄럽게 꺾인 루프라인은 더욱 완만하게 낮아질 수 있다. 8시리즈 그란 '쿠페'라는 명칭의 요구 조건인 프레임리스 도어와 하드탑 루프로 멋을 챙기기도 했다. 온갖 날카로운 직선과 액세서리들로 꾸며낸 공격적인 자세가 감탄스러운 수준이었다. 입체적인 전면은 옆에서 보아도 완성도가 훌륭하며, 프런트 펜더의 에어 브리더나 20인치 더블 스포크 휠, M 스포츠 브레이크 등 세부적으로 보아도 매력적인 디테일들이 많다.
후면까지 정체성은 확고했다. 직선적인 디자인의 기조와 입체적이고 과감한 음영 대비를 활용한다. 역시 완만하게 깔려있는 실루엣부터가 남다르다. 앞서 언급한 쿠페의 스타일 기법으로 뒷유리 면적을 최대한 낮추고, 트렁크 데크를 높이는 대신 굵직한 음영 대비를 통해 밋밋함을 덜어냈다. 리어 펜더를 파고드는 듯한 테일라이트는 차폭이 더욱 넓어 보이게 한다. 얇고 선명한 그래픽은 시선을 이끄는 힘이 있으며, 리어 범퍼에는 공격적인 에어 인테이크와 디퓨져, 사다리꼴 형태의 머플러 팁을 부착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간결한 편이다. 보통의 스포츠 쿠페는 기능 중심의 실내를 택하는 반면, 대형 쿠페라는 장르는 고급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2.4인치 터치스크린과 클러스터, 하이그로시 어퍼 커버 등 깔끔한 마감을 택한 대신, 공조장치나 특히 주행 모드 버튼은 센터 콘솔에 배치하여 직관성을 조율했다. 확실한 건 실물로 접했을 때 만족도가 높은 실내 공간이다. 그 근거는 고급스러운 소재와 섬세한 마감 품질이다.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한 크리스탈 기어노브는 당대 플래그십의 상징이며,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은 전부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야간에 바라보는 M850i의 인테리어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도어트림과 센터페시아를 감싸는 엠비언트 라이트가 화려함을 자극한다. 특히 바워스&윌킨스 서라운드 스피커는 풍부한 음향 성능과 함께, 고급스러운 장식 효과까지 책임졌다. 기어노브에 각인된 '8'숫자가 더욱 눈에 띄기도 한다. 소프트 클로징 도어를 닫고 시트에 앉으면, 고급스러운 가죽의 질감과 포근하게 감싸주는 볼스터가 편안한 착좌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M스포츠 스티어링 휠은 두꺼운 그립을 가졌고, 뒷면에 홈이 파여있는 형태라서 더욱 안정적으로 손에 쥘 수 있다.
플래그십 쿠페의 지위는 편안한 감각의 뒷좌석에서도 나타난다. 센터터널이 가로지르는 형태인데 형식상은 5인승이다. 실제 3명이 앉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으나, 그만큼 두 명이 앉기에는 안락한 시트 포지션을 제공했다. 헤드룸은 좁은 편이지만, 레그룸만큼은 넓다. 또 편의 장비도 넉넉하다. 2열에도 2존 독립 공조가 탑재되며, 시트는 열선 기능을 포함했다. 또 도어트림에 배치된 버튼으로 양측 전동식 롤러 블라인드를 조작할 수 있다. 리어 블라인드도 포함되며, 듀얼 선루프 역시 햇빛 가리게를 조작할 수 있다. 전동 트렁크는 부드럽게 개방되며 생각보다 넉넉한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리어 시트 폴딩도 가능하나, 매트아래 추가적인 공간은 없었다.
보통의 스포츠 세단이라 하면 딱딱한 승차감을 단정하게 된다. 하지만 8시리즈 그란쿠페, 이번 M 퍼포먼스 모델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M 어댑티브 서스펜션이 채택된 섀시는 설정에 따라 편안함과 단단함을 오갈 수 있다. 특히 연비 주행을 위한 에코 모드에서는 한없이 조용한 컴포트 세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진 회전 질감은 정말 부드럽고 엑셀 반응도 너무 예민하지 않다. 스티어링 휠은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면서도, 변속기는 아무런 충격 없이 부드러운 가속감을 구현해 준다.
M850I 그란쿠페에 채택된 4.4L급 V8 가솔린 엔진은 과급장치로 트윈 터보까지 채택하고 있다. 최고출력은 530HP, 최대토크는 76.5Kg.M에 달하며 변속기는 역시 ZF의 8단 토크컨버터를 맞물렸다. 복합연비는 7.7Km/l로 고배기량 엔진이다 보니 실연비도 엇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도심에서는 에코 모드로 주행해도 극히 낮은 연료 소비 효율을 보인다. 공차중량이 2120KG인데, 전자식 4륜 구동까지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열효율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유지비를 걱정한다면 포기해야 하는게 맞다.
아무렴, 세단의 탈을 쓴 스포츠카라 생각한다. 높은 배기량으로 정숙성과 안정성을 제시했던 V8 엔진은 스포츠 모드로 변화하는 순간 낮은 톤의 배기음과 엔진음, 그리고 떨림으로 운전자를 자극했다. 엑셀을 깊게 밟는 순간 튀어나가는 폭발적인 토크감과 꾸준함의 출력이 느껴진다. 부드러움을 앞세우던 8단 변속기는 RPM을 높게 쓰며 가속감과 사운드를 증폭시킨다. 특히 최대한 토크를 상승시키고 변속하는 순간이 정말 자극적이다. 스포츠 세팅의 현가장치는 차체의 롤을 억제시키며, 뛰어난 무게 밸런스는 BMW가 사랑받는 대목이다.
승차감이 정말로 단단해졌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충격 완화에 힘쓰는 느낌이었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노면을 읽혀주는 완전한 대비를 보인다.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은 안정감이 확고했진다. 차체가 워낙 크고, 특히 휠베이스가 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즉 후륜 조향 기능과 함께 전자제어식 M 스포츠 디퍼렌셜을 후륜에 탑재했다. 회전반경을 줄이고 구동 손실을 최소화하여 타이트한 코너에서도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정말 2톤의 무게가 넘어가는 세단 중에서는 가장 기민한 동특성을 보였다.
고속에서의 선회나 급격한 차선 변경에 있어서도 안정적으로 트랙션을 이끌어낸다. 더 자신 있게 가속할 수 있다. M스포츠 가변 배기 시스템의 카랑카랑한 배기 사운드와 V8의 우렁찬 부밍 사운드가 잊히지를 않는다. 자꾸만 엑셀과 패들 시프트에 손이 가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단, 워낙 안정성이 뛰어나다 보니 고속에서의 속도감은 잘 체감 가지 않는다. 제로백 3.9초, 엑셀을 살짝만 깊게 밟아도 속도계 바늘은 매우 빠르게 상승한다. 대신 긴장감이 적다는 점, 경쾌함보다는 안정감이 돋보이는 스포츠 쿠페다.
다시 에코 모드에서는 준수한 정숙성과 그럭저럭 괜찮은 효율성으로 돌아온다. 부드러운 피드백을 보이는 서스펜션, 거의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세단이었다. 정차 시 스탑&고가 작동하는 감각도 매우 부드럽다. 도심, 고속 구분없이 BMW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 기능을 활성화하여 레벨 2.5 수준의 ADAS를 활용할 수 있다. BMW는 정전식 스티어링 휠을 채택했기 때문에, 장거리 여정에서 드라이버 어시스턴트 기능을 더욱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폭발적인 성능을 품은 차량이다. 특히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자극적인 사운드가 운전의 재미를 강조해 주었다. 근데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점은 컴포트 모드의 편안한 주행감이었다. BMW의 스포츠 세단치고 부드러운 승차감, 고배기량 엔진의 여유가 넘치는 출력 전개, 하드탑 세단치고 훌륭한 차음 성능을 갖춘 것이다. 장시간 운전에도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 스포츠 쿠페다. 풍부한 편의 장비와 오디오까지 갖추고 있으니, 스포츠에 편향되지 않은 럭셔리 세단의 편리함까지 갖춘 모델이다.
그리고 디자인은 정말 완벽했다. 보통 4도어 쿠페라 하면 일반적인 세단보다는 훨씬 더 스타일 감각을 강조한는게 맞다. 아무렴, 2도어 쿠페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남는 디자인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8시리즈 그란쿠페는 2도어 보다도 일부분 더욱 날렵하고 매끄러운 조형미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특히 측면 디자인, 극단적으로 낮고 길게 빠져있다. 통상적인 쿠페의 조건을 모두 갖추면서,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디자인은 유별난 존재감을 제공했다. 2도어 쿠페를 대신하여 선택할 자격이 충분하다.
BMW의 8시리즈 그란쿠페, M850i Xdrvie LCI를 오랜 시간 시승했다. 폭발적인 출력과 안정적인 접지력, 뛰어난 중량비와 첨단 기능 등 스포츠 세단이라는 수식어에 의구심은 없다. 날렵한 외관부터 그 정체성을 피력했다. 실내 공간이나 편의성도 럭셔리함에 준하는 플래그십의 자격을 갖춘다. 이 모든 조건들을 취합해 본다면, 스포츠 세단의 공시 가격 자체가 합리적이게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인 구성이다. 보통 4도어 GT는 쿠페의 감성을 대체해줄 세단이라고 본다. 하지만 M850I 그란쿠페는 2도어 쿠페의 아쉬운 대안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답일 수 있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