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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리스 아이콘, 랜드로버 디펜더 110 P300 X-Dynamic SE 장기 시승기

랜드로버의 디펜더 110 P300 X-Dynamic SE를 장기간 시승했다. 디펜더는 JLR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중 '정통성'을 지향하는 라인업에 해당된다고 간주할 수 있다. 디자인과 브랜딩 전략을 중요시하는 재규어 랜드로버, 이하 JLR은 니치 프리미엄 성향의 자동차 기업으로 인지도를 쌓고자 의도해 왔다. 하지만 시작부터 고가의 자동차를 생산했던 재규어와 다르게, 랜드로버는 철저히 산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 '농기계'를 주력 상품으로 삼았다. 그 가격과 품질의 수준을 떠나 '결' 자체가 달랐던 브랜드라는 의미다.

대략 50년 전, 랜드로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던 '럭셔리 SUV'라는 제품 기획이 트렌드를 정통했다. 레인지로버의 성공, 내지는 혁신성을 계기로 랜드로버는 고급SUV의 대명사가 된다. 하지만 랜드로버가 오랜기간 정립해온 '실용주의'라는 헤리티지와 레인지로버의 '모던 럭셔리' 철학은 또 다른 갈래로 구분될 수 있다. 다시말해 도심지향적인 성향이 짙어져만가는 레인지로버 라인업에, 랜드로버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펜더'가 존재한다. 레인지로버가 그러했듯 '뉴 디펜더'는 온갖 혁신 기술과 고급 마감 품질로 무장했다. 대신, 오프로더의 대명사 '랜드로버' 고유의 짙은 향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디펜더는 1989년에 이름 지어진 랜드로버의 가장 고전적인 SUV 시리즈였다. 고급과는 거리가 먼 '실용성'과 '기동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그 투박하고 강인한 디자인과 순수미는 여전히 오리지널 랜드로버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그런 향수에 의해 뉴 디펜더에 반감을 지닌 충성 고객들도 많았다. 당연한 비판일 수밖에 없다는 당사의 의연한 반응 또한 인상적이었다.

뉴 디펜더의 디자인은 클래식 모델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긴 프런트 마스크가 특징이다. 반구 형태의 메인 램프와 사각형의 LED 그래픽은 '시그니처' DRL이라 명칭이 붙는다. 말 그대로 디펜더의 역사성을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후드 끝부분에 배치된 디펜더 레터링 로고와 비대칭 엠블럼, 사각형으로 투박한 인상을 남기는 라디에이터 그릴 또한 정통 SUV의 감성을 의도하는 디자인 헤리티지다. 다만 뉴 디펜더는 섀시 마운트와 바디가 일체화된 '모노코크' 타입으로 차체 하부까지 단정한 마감을 보인다. 그리고 느껴지는 곡선적인 윤곽선, 클래식 디펜더와 가장 이질적인 차이가 아닐가 싶다.

하지만 뉴 디펜더는 클래식 모델의 '재현'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현대적 재해석을 의도했다. 랜드로버의 디자인 혁신은 '미니멀리즘' 철학에 기초를 둔다. 그런 감각적인 변화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대목이 측면이라 생각된다. 우선 휠베이스가 강조되어 있는 비율부터, 한껏 볼륨이 강조된 사다리꼴 형태의 휠 아치, 수평성을 유지하는 벨트라인과 루프라인 등 누가 보아도 디펜더만의 윤곽선이 느껴질 것이다. C필러와 D필러 사이를 장식하는 시그니처 그래픽, 그 위에 자리 잡은 '알파인 글래스' 도 참 개성적인 디자인 요소이나 전혀 과잉된 느낌이 없다.

측면 창은 D필러를 따라 뒷유리까지 랩 어라운드 스타일로 디자인된다. 끊임이 없는 '심리스' 타입, 미니멀 디자인을 재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향성이다. 거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 후면 디자인은 여타 시점에 비해 라운드 한 감각이 무뎌진다. 그 위를 장식하는 스페어타이어와 두터운 범퍼 덕분에 디자인은 더욱 클래식해 보이는 것 같다. 선명한 LED 그래픽을 품고 있는 테일라이트가 현대적인 분위기를 표현해 주는 매개라고 생각된다. 이 역시 특별한 기교보다도, 깔끔하고 단아한 형상과 최소화된 배치 자체가 디펜더만의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다.

인테리어도 이야깃거리가 정말 많은 차량이다. 고급스럽고 미래적이며, 때로는 실용적이고 고전적인 성격을 느껴볼 수 있다. 아무렴 현대적 디자인과 기계장치의 순수미는 '미니멀리즘' 철학으로 통할 수 있다. 우선 인터페이스는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0인치 센터 모니터로 구성되었다. LG전자와 협업했다고 알려져 있는 PIVI PRO는 누가 보아도 최신 소프트웨어 다운 테마를 갖춘다. 그 직관성과 자율성도 준수하다. 디지털 클러스터의 테마나 정보 역시도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기본 탑재된 T맵과의 연동성이 편리했다.

지원하는 기능에 비해 센터패시아가 굉장히 간결하다. 2존 공조장치를 조절하는 다이얼에 시트 온도 제어와 풍량 제어 기능까지 포함된다. 버튼을 클릭하면 전환되기 때문에 직관성도 확보하며, 부드러운 작동감에서 또 한 번의 고급스러움을 느껴본다. 전자식 기어노브도 사용하기가 참 편리한 위치에 있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넓고 그립이 얇은 타입, 그 감각 자체가 다소 클래식하게 다가온다. 대시보드를 감싸는 고급스러운 가죽과 인위적으로 노출시킨 볼트 마운트, 철제 프레임이 정말 이색적인 조화이자 디펜더의 개성이 되어준다.

실용성이란 공간 활용의 창의성에 투영되어 있다. 이층 구조의 대시보드는 그 모든 빈틈이 수납공간이다. 그 바닥면은 논슬립 소재로 마감이 되어 있고, 센터 콘솔까지 브리지 타입으로 다양한 짐들을 보관할 수 있다. 센터 콘솔에는 쿨링 기능을 옵션으로 추가하여 아이스박스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디펜더의 리지스트 시트도 참 편했다. 럭셔리 모델 레인지로버의 소파 같은 포근함보다도. 디펜더의 탄탄한 지지력이 누군가에게는 더욱 만족스러울 수 있다. 룸미러로 흘깃 보이는 스페어타이어도 또 하나의 낭만적인 요소가 된다.

2열 좌석의 메인 키워드는 '개방감'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개방이 가능한 수직형 창과 D필러 글래스, 알파인 글래스, 그리고 파노라마 선루프까지 빛이 투과되는 장소들이 다양하다. 시트 포지션 자체가 높기 때문에 시야도 트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독립 공조와 시트 열선, 암레스트 정도의 편의 장비가 구성되어 있다. 박스 타입 보디 덕분에 트렁크 공간이 굉장히 여유롭다. 2열 시트 뒤편까지 튼튼한 마감재로 적재물로 인한 실내 손상을 보호하며, 해치 게이트의 수납함이나 언더 트레이, 파워 아웃렛, 차고 조절 버튼 등 편의를 돕는 옵션들이 눈에 띈다.

디펜더 P300에는 배기량 2.0L급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이 탑재됩니다. 재규어 랜드로버에서 직접 개발했던 인제니움 엔진으로, 싱글 터보를 결헙하여 최고 출력은 정확히 300Hp다. 최대토크는 40.8Kg.m 수준이다. 수치상의 성능에 비해 가속감은 예상보다 가뿐했다. 넉넉한 초반 토크와 이질감 없는 전개로 나아간다. 특히 오르막에서도 충격이나 굼뜨는 느낌이 거의 없고, ZF의 8단 토크컨버터 세팅이 굉장히 부드럽고 훌륭하다고 느껴진다.공차중량은 약 2.35톤, 공인 연비는 7.6km/l으로 인증을 받았다.

본성적인 SUV인 만큼 스포츠성은 크게 중요치 않을 것이다. 때문에 오직 편안함과 기동성에만 초점을 맞춘 파워트레인 세팅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랜드로버의 가장 숙련된 주행감을 느껴볼 수 있는 것 같다. 터프함으로 가득 찬 외모이지만, 승차감은 정말 부드럽다. 저속에서는 가솔린 엔진의 정숙함도 돋보이는 편이다. 마치 엔진룸과 캐빈 사이의 이격 거리가 긴 느낌이다. 그리고 섀시 마운트와 차체를 일체화한 D7X 유니바디 플랫폼을 채택한 대신, 에어 스프링 서스펜션을 채택하여 노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불쾌한 진동과 사소한 충격들을 전부 매끄럽게 흡수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숙련된 승차감은 '대중적' 성향이다. 즉,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누가 경험하더라도 '고급차'다운 승차감의 진가를 느껴볼 수 있다. 적정한 무게감을 전달하는 스티어링 휠도 주행에 안정감을 더하며, 에어 스프링은 주행 중에 발생하는 롤이나 피치도 효과적으로 대응해 준다. 그리고 오프로드에서는 차고를 높여 기동성을 개선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최저와 최고 지상고의 차이는 대략 29cm, 높은 시야에서 느껴지는 개방감이 좋아 시내에서는 일부로 차고를 올리고 주행하기도 했다. 그때 디펜더의 개성적인 외모는 더욱 돋보인다.

고속에서도 예상보다 더욱 정숙한 크루징을 보여주었다. 펜더의 디자인상 공기저항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높은 경사의 전면 유리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깎아져 내린 D필러의 압력저항으로 인해 소음이든 불안함이든 피해 갈 수 없는 형식인 것이다. 디자인의 공기역학이 뛰어나다기 보다, 방음 설비에 굉장히 신경 쓴 것 같다는 느낌이 크다. 큰 덩치에 비해 생각보다 발진감도 부드럽다. 고속에서도 아쉽지 않은 펀치력을 보여주며, 대략 7.4 초라는 제로백이 준수한 엔진 파워를 증명해 준다.

물론 부드러운 세팅 특성상 급격한 선회에서는 심한 롤링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쏠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다소 자극적인 운행이 필요한 셈이다. 자동차를 편안한 여정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디펜더는 모든 관점에서 완벽한 주행감을 보였다.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라면 독특한 비율로 인해 운전석과 뒷바퀴 사이의 거리가 꽤 긴 편이다. 하지만 디펜더는 차체 하부까지 비춰주는 '클리어 사이트' 어라운드 뷰 카메라를 지원하며,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프런트 펜더를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골목이나 교행에서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단지 좋은 승차감으로만 평가해도 충분한 프리미엄 SUV라고 표현하고 싶다. 추가로 레벨 2.5 수준의 ADAS 장비까지 탑재하고 있으며, 다양한 센서들이 높은 차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데드존으로부터 운전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그런 디펜더를 운행하다 보면 여유와 낭만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 디펜더가 지니고 있는 월등한 기동성은 또 하나의 '헤리티지'가 된다. 일반적인 SUV를 찾던 운전자가 디펜더의 '저속 기어'를 전환시킬 일이 자주는 없겠지만, 터레인 리스폰스 기능이 누락되어 있다면 그건 차세대 디펜더에 대한 예의가 아니게 된다.

그 목적이 공기역학이든 스타일링이든 최신식 크로스오버들은 대부분 낮고 곡선적인 루프라인을 갖는다. 그에 익숙해진 최신식 자동차 시장에서, 디펜더가 지닌 높은 시야와 넓은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SUV의 의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디에서든 편안한 휴식공간이 되어줄 수 있고, 세단에 비해 월등한 적재 용량을 자랑한다. 못 가는 길은 없고, 없는 길이라도 개척해서 갈 수 있다. 트렁크 모서리를 투과하는 '알파인 글래스'사이로 가능한 많은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다.

랜드로버 디펜더 P300을 장기간 시승했다. 단점과 장점이 교차하는 차종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좋은점만 기억에 각인된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본 디펜더의 매력은 '타임리스'라는 성격이다. 어느덧 출시된 지 5년이 훌쩍 지난 디펜더지만, 그 디자인과 성능에 대한 노후화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하고 짙은 상징성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가 거닐어온 유구한 SUV 산업의 여정이 함축되어 있다. 생각보다 디펜더는 친숙하고 대중적인 SUV였으며, 그 고전미에 대해 가볍게 접근해 보아도 좋겠다.

글/사진: 유현태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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