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물가지수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신차 출고가도 상승해오고 있다. 대부분의 연식변경과 모델 체인지는 마치 경쟁을 하듯 가격대를 높이지,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더욱 높아진다. 반면에 이를 기회로 여기는 기업들도 분명 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현대 자동차 그룹이 장악하고 있지만, 그 외 대한민국의 자동차 3사는 경제적인 신차 출시를 통해 빼앗긴 수요를 되찾고자 한다. 국내 완성차 3사들은 일부 차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해당 차종은 비교적 출시 시기가 가깝지만 가격대는 소폭 낮게 책정된다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국내 자동차 3사의 실적 부진 사유중 하나는 브랜드 파워의 약화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파워의 약화는 비단 인지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수요 자체가 저조한 만큼 품질이나 서비스 네트워크까지 약화될 수 밖에 없고, 실제 라인업 단축과 결여된 상품성을 지닌 차종도 남아있다. 하지만 잠재 수요에 대한 희망은 있다. 인지도를 극복하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선례는 다양하다. 그리고 생산자 물가 지수의 향상을 통한 경기 악순환은 오히려, 가성비를 앞세워온 국내 완성차 3사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점도 사실이다. 오직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전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적절한 가격과 편의성은 기본이고, 경쟁모델을 압도할 수 있는 장점 한가지는 꼭 전제루로 두어야 한다. 최근에는 인지도가 약해졌지만, 이번 글의 주제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그런 시장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격대비 큰 차체 크기와 합리적인 옵션 구성을 갖추었고, 저렴해보이지 않는 매력적인 디자인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도 월 1천 대 이상의 판매량은 꾸준하며, 상호관세의 영향이 직시되지 않는 현재까지는 수출 실적도 매우 우수했다.
시승차량은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1.2 가솔린 ACTIV 트림이다. 옵션 구성이 기본형인 LS, 그리고 열선과 스마트키 등 옵션 사항이 포함된 '레드라인' 트림이 있다. 이는 기존 LT 트림을 대체한다. 이후 익스테리어 컨셉에 따라 시승 차량과 같은 '액티브', 혹은 'RS' 트림을 선택할 수 있다. 트림 별로 세분화가 되어 있지만, 선택 옵션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특정한 옵션이 꼭 필요하다면, 부득이 하게 상위 트림을 선택해야 한다는 아쉬움은 있다. 특히 통풍시트는 액티브 트림부터만 제공된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디자인은 전형적인 쉐보레의 패밀리룩을 뒤따른다. 상하단으로 분리된 듀얼 포트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DRL과 전조등을 분리하여 배치한 구성이다. 슬림한 DRL에서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느껴볼 수 있고, 굴곡이 심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역동적인 실루엣이 나타난다. 액티브 트림의 경우 블랙 보타이 엠블럼과 전용 그릴 인서트, 프런트 에이프런으로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바 있기도 하다. SUV가 아닌 크로스오버를 형식적으로 지향하는 만큼, 전고가 낮고 폭이 넓은 디자인에 스포티함이 느껴진다.
측면 디자인도 크로스오버의 역동성과 기동성이 혼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전장대비 전고가 낮아 매끄럽고 날렵한 실루엣이 나타나며,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와 사다리꼴 형태의 휠 아치로 터프한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DRL 형상은 옆에서 바라보아도 날렵한 인상이다. 전반적으로 복잡한 캐릭터 라인이 적용되어 있기도 하다. 로커패널과 웨이스트 라인에 강렬한 볼륨이 있고, 벨트라인도 뒤로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를 두고 쉐보레는 'LEAN MUSCULARITY'라는 디자인 철학을 표명한 바 있다.
마치 쿠페 스타일처럼 가파르게 떨어지는 C필러 라인도 매력적인 디자인 포인트다. 역시 복잡스러운 윤곽선을 지닌 테일램프가 조화를 이룬다. 테일램프는 숄더 라인을 강조하고, 휠 아치의 볼륨을 키워 더욱 매력적인 차체 형상을 구현해 주기도 했다. 테일램프 그래픽 자체는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전폭이 더욱 넓어서 디자인의 균형 자체는 나쁘지 않다. 역시 액티브 트림 전용 블랙 보타이 엠블럼과 리어 디퓨져가 묵직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인테리어는 운전자 중심적이고 깔끔한 버튼 배치가 돋보인다. 8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1인치 디스플레이로 디지털 UI를 확보했고, 무선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을 활용해 네비게이션 등 기본 기능은 생략되었다. 통풍 시트를 포함한 공조 기능은 전부 센터페시아에 모여있고, 조작감이 직관적이다. 변속기는 기계식으로 매뉴얼 모드는 기어 레버 좌측의 버튼을 활용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뒤편에는 사운드 및 트랙 조절 버튼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원형의 에어벤트나 알루미늄 몰딩, 유광 인스트루먼트 패널 등 시각적인 디테일도 신경 썼다는 점이 와닿는다.
2열 공간은 체급 대비 공간감이 더욱 넓게 느껴진다. 전고가 낮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천장에 헤드룸을 따로 조율했으며, 1열 공간도 마찬가지다. 2열 시트 각도가 낮은 편이고 레그룸 바닥면 완전 평탄화가 이뤄져 있어 체감상의 공간감은 더욱 넓다. 편의 장비는 컵홀더가 포함된 암 레스트와 에어벤트가 있다. 기본적인 거주성은 확보된 셈이다. 트렁크에는 시트 폴딩은 물론 러기지 스크린이 포함되어 있고, 면적도 굉장히 넓다. 매트 아래에도 잔여 공간이 많이 남아 있서 충격에 예민하지 않은 물건은 보관하기 좋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배기량 1.2L급 직렬 3기통 가솔린 싱글터보 단일 엔진으로만 시판중이다. 최고출력은 139마력, 최대 토크는 22.4kg.M 수준이다. 스펙상의 출력은 높은 편도 부족한 편도 아니다. 대략 1.3톤수준의 중량을 고려해도 그렇다. 변속기로는 6단 토크컨버터를 맞물렸고, 공인 연비는 최대 12.7Km/l로 인증을 받는다. 시동을 걸면 예상보다 정숙한 사운드에 놀란다. 진동은 심한데, 조용하다. 특이하게도 기본 트림부터 액티브 노이즈 캔슬 레이션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제 역할을 하는 듯 하다.
가볍게 엑셀을 밟으면 오디오를 끈 상태에서도 매끄럽고 매우 정숙한 가속감이 인상적이다. 전기차 같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렇다고 발진 감각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배기량이 낮은 다운사이징 엔진의 한계인지, 터보래그가 긴 편이다. 6단으로 설계된 변속기도 즉답적인 반응을 도와주진 않는다. 그래도 출력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반응이 다소 굼뜨지만 높은 토크가 발휘되는 순간부터는 꽤나 시원한 가속감을 보여줄 수 있다.
엑셀을 깊게 밟고 RPM이 상승하는 구간부터는 특유의 정숙성이 소음으로 전환된다. 이는 오히려 저속 주행시 정숙성이 뛰어나다 보니, 고 RPM에서의 소음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 하다. 해당 세그먼트에서는 평이한 수준이라 굳이 단점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1.2L엔진의 실연비도 경쟁 모델에 비해 뛰어나가거나 부족한 느낌도 아닌데, 엔진 자체의 효율보다는 변속기의 레브매칭이 다소 부족한 영향이 큰 것 같다. 참고로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의 답력은 비교적 무거운 편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핸들링 감각이다. 드라이브 모드가 없어서인지 기본 세팅이 묵직하게 조율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뿐만이 아니라 현가장치의 댐핑력도 비교적 높게 세팅되어 있다. 차체 롤링이 적고 안정적인 승차감이 매력적이다. 평탄한 노면에서는 흔들림이 적어 편안한 대신, 요철이나 방지턱에 대한 반응에 예민하다. 그럼에도 고속이나 코너에서 느껴지는 안정성이 동급 SUV에 비해 확실히 만족스럽다. 후륜 토션빔 서스펜션의 특성을 잘 살려낸 세팅이다. 어설픈 부드러움보다 완연한 안정성이 낫다.
댜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무겁고 딱딱한 세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흔히 대중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승차감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그만큼 강점이 될 수도 약점이 될수도 있는 부분이다. 최근 경쟁 모델들을 시승해보면 과거 소형 SUV에 비해 승차감에 대한 완성도가 대개 높다. 트랙스는 그보다 조금 더 주행감을 살려낸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사전에 우려했던 부분은 원가절감을 위한 6단 토크컨버터였는데, 차량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크게 불편감이 있진 않다. 변속기보단 터보랙이 더 아쉽다.
메뉴얼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은 모호하다. 차라리 패들시프를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행성 자체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나름 운전의 재미도 있기에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한편, 인포테인먼트 구성이나 직관적인 버튼 배치는 마음에 들었다. 차량에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옵션으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선택할 수 있다. 차로 이탈 및 사각지대 경보, 저속 긴급 제동 등의 안전장비는 구성된다. 확인해두어야 할 점은 상위 트림이라도 차선 유지기능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탈 방지 기능만 있다. 그 외에 폭우속에서도 후방카메라 화질이 선명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쉐보레의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시승했다. 듬직하면서도 날렵한 역설이 공존하는 디자인은 동급 SUV중 가장 완성도 높아보인다. 직관적인 실내 구성도 마음에 들고, 옵션에 대한 결핍도 느껴지지는 않았다. 매끄러운 저속 주행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단점은 주행 안정감과 대비되는 굼뜬 응답성과 드라이브 모드의 부재, 그리고 차로유지 기능의 누락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굳이 없어도 될 기능은 잘 생략하였고, 이를 통해 경제성을 잘 살려낸다.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모델이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배려도 확실하다고 느꼈다. 최근 한국 GM의 지속성에 대한 불안감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더욱 확실한 신뢰를 쌓아가야 할 단계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