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판매 점유율은 약 20% 내외로 알려진다. 대략 25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판매 비율은 1%를 채 넘기지 못했다. 2002년 무렵 처음으로 1%를 넘어서게 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2008년 7% 수준으로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2008년은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드리웠던 시절, 그럼에도 한국의 수입차 시장은 쾌속 성장을 이루어낸다. 2000년대 대한민국은 지금과 달리 일본차에 대한 선호도가 폭발적이었다. 2007년 당시 수입차 전체 판매량중 30% 이상의 점유율을 일본 브랜드가 차지한 바 있다.
특히 2008년 외산 판매량 1위를 달성했던 '어코드'는 수입차 시장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어코드는 혼다의 중형 세단, 다시말해 승용차의 표준과 같은 규격을 갖추고 있다. 1977년부터 혼다의 중형 세단 포지션을 담당해왔고, 일본 브랜드 최초로 북미 현지 생산을 감행했던 차종이기도 하다. 중형 세단 부문 글로벌 시장 판매량은 캠리에 뒤이은 2위, 특히 2008년에는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 판매량 1위를 달성했을 정도로 전세계 각지에 영향을 미쳤던 차량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어코드의 판매량은 위축되었다. 여러 환경의 변화가 얽혀있다. 대체적으로 매스 브랜드의 양산차들은 가격이 오르는 반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생존성을 위해 엔트리 모델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특히 전동화 트렌드가 번지면서 자동차의 기본 가격은 점차 상승해온다. 어코드도 판매량의 상당량이 하이브리드 엔진이고, 전량 북미 생산으로 원달러 환률의 변동성도 피해가지 못했다. 즉, 수입차 시장에서의 포지션이 과거만큼 분명하진 못하다. 이제는 어코드만의 성격을 이해하고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승용차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승 차량은 어코드 하이브리드 '투어링' 등급으로 현지 기준 최상위 트림에 해당된다. 그 외관 디자인은 직선 위주의 스타일링으로 간결함을 추구하고 있다. 이전까지 혼다는 두꺼운 크롬 바를 패밀리룩 요소로 채택해 왔는데, 풀체인지 이후로는 아예 프레임리스 타입으로 그릴을 배치하고 있다. 수평 형태의 그릴도 간결한 형태, 그릴과 헤드램프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헤드램프도 형상 자체나 DRL 그래픽까지 무난한 인상을 보인다. 그리고 범퍼까지도 눈에 띄는 그래픽 없이 깔끔함을 유지하며, 디자인의 초점을 이어간다.
그렇듯 디자인의 지향성이 명확하다 보니 별다른 특징이 없음에도 세련미가 느껴지고는 한다. 정확히는 미니멀한 스타일링 기법 자체가 어코드만의 개성이 되어 준다. 한때 디자인 요소의 과잉을 리드했던 일본 브랜드인 만큼, 성격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어코드는 항상 경쟁 모델에 비해 전장이 긴 편이었는데, 현행 모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비율적으로도 자유로운 모습이다. 길게 뻗어있는 보닛과 유연한 루프라인이 역동적인 프로필을 구현하며, 특히 리어 오버행이 긴 편이라 공격적인 스탠스가 느껴지게 된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연결하는 한 가닥의 캐릭터 라인도 정제된 매력을 더해준다. 요즘 양산차량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간결함의 미학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9인치 5스포크 타입 휠 디자인의 정교함도 어코드의 매력을 더해주는 부분이었다. 하이브리드 세단치고는 편평비가 얇고, 또 차체 하단부를 마감하는 스커트 형상이 디자인 완성도를 높여준다. 후면부도 스타일링의 맥락을 따라 간결함이 느껴졌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테일램프는 중간에서 그래픽이 끊기며 엠블럼을 강조해 주었다. 디퓨저가 구현되어 있는 범퍼로 외관 디자인을 마감한다.
실내 공간이다. 전체적인 실내 구성은 직관성을 중시 여기고 있다. 우선 TFT 디지털 클러스터와 12.3인치 센터 스크린, 그리고 HUD로 운전석 인터페이스를 구축한다. 예상외로 중앙 스크린의 반응성이나 스마트폰 연동성 모두 훌륭했고, 직관적인 구성의 클러스터 UI도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에어벤트를 일체화한 디자인을 적용했고, 센터패시아의 직관적인 버튼 배치나 센터 콘솔 구성은 간결하면서도 편안한 사용성을 제공한다. 소재 자체가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견고한 마감 품질이나 조작감이 만족스러운 편이다.
투어링 등급이 현지에서는 최상위 트림인 만큼 옵션에 대한 부재는 없다. 공조 장치는 듀얼 존 풀 오토 에어컨 방식, 시트 및 스티어링 휠 열선은 물론 한국에서 선호하는 통풍시트까지 뻬놓지 않았다. 가죽 시트는 편안한 탑승감은 물론 높은 내구성을 강점으로 한다. 운전석의 경우 8방향 전동 조작과 럼버 서포트, 시트 메모리 기능을 지원한다. 조수석은 4방향 전동 조작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오토홀드와 같은 편의 기능은 물론, 12개의 스피커와 서브 우퍼로 구성된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가 더욱 만족스러운 사용감을 제공해 준다.
쾌적함이 느껴지는 뒷좌석 공간이다. 1열과 마찬가지로 깔끔한 마감을 보여주는 가죽 시트는 '가지' 공정을 통해 매끄러운 탑승감을 구현했다고 한다. 루프 디자인이 패스트 백 타입이지만, 워낙 전장이 길다 보니 헤드룸에 대한 손실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만큼 여유로운 레그룸도 강점, 암레스트 컵홀더와 에어벤트, 충전 포트 등 편의 장비가 구성되어 있다. 트렁크는 반자동 방식이다. 넓은 면적은 물론 깊이감이 뛰어난데, 6:4 비율 폴딩까지 가능하여 공간을 더욱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세련되고 첨단화된 실내 구성을 원한다면 어코드의 지향점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북미 취향에 맞는 기계식 기어 레버를 채택하기도 하며,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앰비언트 라이트도 생략했다. 오직 사용성 개선을 위해 버튼 주면을 밝힐 뿐이다. 매립형 클러스터도 시인성은 뛰어나지만 최근 유행하는 방식은 아니다. 유행이 정답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처럼, 누군가에겐 가장 편리하고 익숙한 레이아웃으로 느껴질 수 있는 셈이다. 시트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고 변속기를 체결하는 시점 하나하나가 직관적이고 본질적인 감성을 제시해 준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에는 배기량 2.0L급 i-VTECH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채택된다. 효율성을 위한 애킨슨 사이클 운동으로 최고 출력 147Hp, 최대 토크 18.4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하이브리드 모듈은 구동과 발전용 2모터 시스템을 택하며, 엔진과 모터사이 클러치및 CVT 기능을 포함한다. 구동 모터는 최고 출력 184Hp, 최대 토크 34Kg.m으로 오히려 ICE보다 강하다. 엔진이 발전과 구동 모두를 가담할 수 있는 이른바 '직병렬 방식'이며, 전륜 아키텍쳐 1605Kg의 공차중량으로 16.7Km/L라는 높은 복합 연비를 인증받는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발진감은 상당히 부드럽다. 위에서 기재한 내용처럼, 어코드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보다 모터의 최고 출력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마치 '직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처럼 구동되는 모습이다. 엑셀을 깊게 밟더라도 가속은 오직 전기 모터가 담당한다. 엔진 개입 시점은 생각보다 이르게 느껴지지만,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사이클 운동으로 최적의 효율성과 정숙성을 유지한다. 덕분에 빈번한 엔진 개입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고출력 구동 모터가 적용되는 만큼 회생 제동의 개입도 HEV 치고 적극적이다. 패들 시프트 자리를 대체하는 감속 셀렉터를, 항속 주행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완전 정차는 불가능하지만, 감속이 강하게 개입하기 때문에 동승자가 없다면 마음 놓고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다. 정차 후에는 강도가 리셋되기 때문에 원하는 경우에만 제동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질감도 적고 편리했다. 덕분에 가감속이 잦은 도심에서는 경우에 따라 1L당 40Km 이상의 트립 연비가 계측되기도 한다.
승차감은 예상외로 단단하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물론 패밀리 세단치고는 단단하다는 의미, 특히 북미에서 높은 인기를 끄는 세단임에도 경쟁 차종에 비해서는 확실히 감쇠력이 강하다. 요철에 대한 충격과 소음이 다소 유입되는 편이지만, 충격이 지나간 이후에는 리바운드 없이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해 준다. 방지턱처리는 그보다 더 매끄럽다. 동급 승용차들에 비해 운전자와 섀시의 직결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물렁하고 여유로운 승차감을 원한다면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주행의 기본기를 선호한다면 어코드의 세팅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그런 섀시 세팅과 어울리도록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도 묵직하게 잡혀있는 편이다. 그만큼 코너링이나 급가속에 있어서도 전륜구동 세단치고는 안정성이 뚜렷하다. 원래도 무게중심이 낮게 조율되어 있으니 롤링을 쉽게 허용하지 않고 쏠림 현상도 자연스럽다. 반면 회전반경은 길게 느껴졌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주행 모드는 크게 스포츠, 일반, 에코 정도로 간결하게 구성된다. 보통 도심 주행에서는 에코 모드를 활용하였고,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배제한 차량의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스포츠 모드가 적합다.
스포츠 모드에서의 핸들링은 더욱 묵직해진다. 안정적인 섀시까지 '중형 컴포트 세단'이라는 장르에서는 가장 스포티한 편이라고 판단된다. 그만큼 고속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도 구동은 모터가 담당하겠지만, 엔진이 꾸준히 출력을 보조하며 날카로운 사운드를 더해준다. 모터는 별도의 변속과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즉답적인 반응성은 물론, 고속 영역에서도 꾸준히 가속력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보통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격하게 다루는 경우 회전 질감이 매우 불안정하고 소음도 불쾌한데, 어코드는 그저 매끄럽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었다. 커브길 주행 시 조향 및 제동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반응성과 민첩성을 보정해 주는 로직이다. 실제 코너링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은 전륜 구동의 한계를 극복해 주는 수준이었다. 회전반경이 길게 느껴지던 저속과 달리, 코너에서는 핸들링과 함께 가속하는 경우 전륜 측이 더욱 적극적으로 코너를 파고들어 준다. 후륜 추종성도 차체 크기에 비해 즉답적인 편, 실제 민첩하게 반응하는 핸들링 감각은 마치 후륜구동 세단을 모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전륜구동 승용차의 제어 로직으로 이토록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물론 편안한 크루징 위주의 주행을 원했다면 큰 만족감을 느낄만한 요소는 아닐 수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 '운전의 기본기'를 중시 여긴다면 어코드의 매력에 충분히 빠져들만하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는 어코드를 '직렬 하이브리드'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가 의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엔진과 모터의 클러치는 고속 항속 주행 시에만 결합되는 세팅이다. 즉, 적정 RPM으로 엔진 최대 효율을 유지하는 시점에서는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생략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고속 주행 연비는 21.9Km/L 수준으로 계측되었다. 당시 성인 3명이 탑승했고, 주행모드 등 딱히 연비에 신경 쓴 상황은 아니었기에 최고 연비는 얼마든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코드는 도심 효율이 더욱 높다. 이 정도면 동급 세단 중 최고 효율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항속 주행에서는 낮고 안정적인 승차감과 적절한 N.V.H 성능이 편안함을 더했고, 의외로 노면 소음이 잘 억제되어 있었다. 주행보조 '혼다 센싱'의 경우 차선 유지 보조 기능을 따로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이 편했다.
장기간의 시승, 시트가 겉으로는 단순한 디자인을 보여주는데 의외로 안정적인 지지력과 편안한 시트 포지션을 구현해 주었다. 직관적인 실내 디자인 구성은 오래 탈수록 만족감을 더해주는 요소다. 확실히 자동차를 오래 운용하게 되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일상적인 편리함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통풍 시트와 무선 폰 프로젝션, 오토홀드, HUD를 비롯한 편의 기능도 한국 시장의 정서를 만족시키는 편, 아쉬운 점이라면 서라운드 뷰 카메라의 부재였다. 없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명백한 국내 선호 기능이고 실제 차체가 긴 편이기도 하다.
단조로워 보인다는 어코드의 디자인은 오히려 그 간결함 자체가 존재감을 과시해 주는 요인이다. 화려한 스타일링과 조명으로 무장한 신차들 사이에서 오히려 눈에 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신형 어코드의 디자인 자체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면밀히 따져보면 세련된 디자인의 정석이라고 하는 '로& 와이드' 그리고 '롱 노즈& 숏데크' 비율 전부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길게 뻗어있는 보닛은 동급 세단에서 느껴보기 어려운 품위를 갖추고 있다. 어코드처럼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외모가 '굳 디자인'일 수 있다.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투어링을 장기간 시승했다. 간결한 디자인 구성과 역동적인 실루엣은 어코드만의 매력을 확실시한다. 직관적인 조작감을 지닌 인테리어는 승용차의 본질에 충실한 부분이다. 혼다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비교적 단가가 높지만, 최고의 효율과 역동적인 성능 모두를 만족시키는 설계에 가깝다. 특히 안정적인 승차감과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조화는 월등한 '기본기'를 느껴볼 수 있는 요소, 혼다가 왜 '기술'기반의 기업이라고 칭해지는지 이해가 된다. 단순한 패키징에도 강한 생명력 그 뛰어난 성능을 반증한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