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에서는 '전기차'와 'SUV'의 대중화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테슬라 쇼크'라고 불리는 전기차 산업의 급성장, 테슬라라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고부가가치 전략이었다. 로드스터나 모델 S와 같은 고가의 승용차를 앞서 공개했고, 소위 '셀럽들의 자동차'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마케팅한 것이다. 순차적으로 양산형 모델 3와 모델 Y를 공개했고, 중형 크로스오버 모델Y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즉, 고급화 전략을 시작으로 신속한 대중화를 이끈 셈이다.
어쩌면 SUV 시장의 발전과는 대비된다. 사실 전통적인 SUV의 정의와, 우리 사회에서 통용하는 SUV의 개념은 달라진 부분이 많다. 원래 SUV는 말그대로 중공업이나 농업을 위해 사용되는 '다목적' 장비였다. 승용차와는 개념이 철저히 다른 영역이었다. 하지만 랜드로버 등 정통 SUV 브랜드들은 생존성 확보를 위해 '고급화 SUV'라는 신제품을 공개하고, 이를 벤치마킹 한 레거시 브랜드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유관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본격적인 대중화는 소형 SUV라는 개념을 정립한 스포티지, 유니 바디 기술을 접목한 라브 4 등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모든 트렌드를 정통한 차량이 있다. 바로 볼보의 EX30, 위 서사를 따르는 소형 SUV이자 순수전기자동차다. 적절한 가격이 뒷받침된다면 실패할 수 없는 장르라고 본다. 다만 레거시 브랜드들에겐 한가지 숙제가 남는다. 이토록 트렌드에만 충실한 차종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브랜드의 가치, 내지는 '헤리티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볼보는 '크로스 컨트리'라는 장르를 각색하게 된다. 도심형 SUV보다는 더욱 실용적인 기동성을 갖추고, 일반적인 전기차보다는 퍼포먼스를 강조했다. 그리고 전용 디자인 파츠를 제공하며, 타사와는 차별화된 북유럽 감성을 자극하고자 한다.
시승 차량은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다. 이른바 EX30 CC, EX30 '울트라' 트림을 베이스로 한 최상위 모델이 된다. 기존 모델과는 많은 차별성을 둔다. 가장 큰 차이는 듀얼 모터 시스템 탑재를 통한 강력한 출력, 그리고 AWD 시스템 구현이다. 외관에는 전용 실드와 엠블럼 등 디자인 액세서리가 추가되고, 지상고를 19mm 높여 기동성을 확보했다. 상위 트림 울트라를 베이스로 하는 만큼 옵션 수준은 풍부하다. 1040W 급 하만카돈 사운드 바, 12.3인치 터치스크린 등, 그리고 공조기와 조명, 시트 등을 활용한 리프레시 모드 등 실내 환경 모드가 추가된다.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의 외관이다. 정면의 경우 기존 EX30과 동일한 'T'자형 헤드 램프가 적용된다. 헤드램프 형상 자체가 DRL처럼 점등된다는 점이 특징, 브랜드의 상징성을 강화한다. 그 밖에 비대칭 형상의 아이언 엠블럼이나 차체 하단부에 배치한 인테이크 그릴 정도가 특징이다. 여기에 EX30 CC는 전면 가니시와 언더바디 실드를 추가로 부착하여 견고한 인상을 더했다. 특히 전면 가니시에는 지형도를 형상화한 음각의 그래픽과 위도, 경도가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EX30 CC의 최초 공개 장소를 의미하는 이스터에그와 같다.
기존 EX30은 대부분의 컴팩트 SUV가 그렇듯 지상고가 낮은 편이었다. 차체 하부에는 배터리와 실드까지 추가되니, SUV보다는 해치백에 가까운 지상고를 보인다. 그에 대해 EX30 CC는 지상고를 19mm 가량 높였다. 덕분에 전면 범퍼 하단에 부착된 실드도 어색함 없이 자리 잡는 모습이다. 또, 두꺼운 휠 아치 가니시를 추가로 부착하여 SUV 다운 강인함을 강조해 준다. 기존 EX30에 제공되던 투톤 컬러 루프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 같기도 하다. C필러 가니시에는 기존 EX30 각인 대신 '크로스컨트리'라는 영문을 새겼다.
EX30 CC에는 전용 19인치 휠이 제공된다. 멀리서는 블랙 원톤 컬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레이 계열 투톤으로 구성되어 입체감이 느껴진다. 소형 SUV에 속하는 EX30의 차체에는 넉넉한 사이즈로 스타일링을 더해주기도 한다. 창의성의 돋보이는 분리형 테일램프 디자인, 그 사이에도 EX30 CC 전용 가니시가 부착된 모습이다. 언더커버 하단에는 역시 실드가 부착되고, 크로스컨트리 각인이 더해져 있다. 마지막 특징은 EX30 엠블럼 우측의 배지, 일부분의 변화로도 전체적인 인상은 크게 달라져 보인다.
실내 공간이다. 기존 ULTRA 트림의 옵션을 베이스로 '파인 룸 테마' 단일 컬러로 제공된다. 인터페이스는 12.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전부 통합되었고, 볼보의 최신 운영체제 Volvo car UX가 지원된다. T맵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네이버 웨일 등 브라우저까지 적용된다. 센터 콘솔은 전부 수납공간, 칼럼식 기어 레버와 가변형 컵홀더가 특징이다. 하만/카돈 1040W 사운드 바와 PM2.5 필터, 앰비언트 무드 램프, 그리고 각종 안전 장비와 파크 파일럿 어시스트 등 고사양 장비들이 탑재되어 있다.
새롭게 적용된 인테리어 모드는 환경에 따라 주차, 휴식, 리프레시 등 실내 장비를 활용한 최적의 분위기를 구현해 준다. 뒷좌석은 기존 EX30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로 광활한 개방감은 물론, 헤드룸도 넓게 확보한다. 체급상 레그룸은 협소하지만, 센터터널을 최소화 한 깔끔한 마감 처리가 장점이다. 참고로 2열 파워윈도우 버튼은 중앙 센터 터널에 배치된다. 센터 콘솔 수납공간은 공용 가능한데, 제대로 된 컵홀더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파워 트렁크가 적용되어 있고, 역시 용량 자체는 제한적이지만 깔끔한 마감이 돋보인다.
EX30 CC에는 전륜과 후륜 각각의 모터가 탑재된다. 합산 315kW 급 출력, 단순 환산으로는 최고 출력 422Hp, 최대 토크 55.4Kg.m 수준의 힘이다. 기본 EX30대비 더욱 강력한 출력은 물론, AWD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트랙션을 확보할 수 있다. 공차중량 1885Kg으로, 제로백이 3.7초다. 고성능 전기차들과 견주는 가속성능인 셈이다. 대신 전비는 4.4Km/kWh 수준으로 낮아졌다. 전력량은 66kWh이며, 항속거리는 329Km 수준으로 인증을 받았다. 참고로 최대 175kW 급 급속 충전으로는 80%까지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EX30의 경우 크리핑 주행을 지원하기 때문에 발진감이 더욱 부드럽다. 회생 제동은 두 가지 강도와 아예 끌 수가 있고, 높음 단계에서는 원 페달 드라이빙도 가능할 수준으로 강도가 높다. 합산 315kW 급, 강력한 모터를 탑재하지만 주행감은 편안하다.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기존 EX30 싱글 모터도 차고 넘치는 출력이었다. 대신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그 폭발적인 가속력을 느껴볼 수 있다. 엑셀 반응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응답 지연이 있는 편인데, 그만큼 트랙션을 확실히 확보하면서 안정적으로 가속되는 느낌이다. 그 힘이 정말 강력하다.
다만 퍼포먼스 성향의 SUV는 아니다. 컴포트 섀시를 채택하고 있으며, 전기차 전용 SEA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다. 현가 세팅은 기존 EX30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추가로 지상고를 19mm 높인 셈이니, 오히려 롤링이나 다이브는 조금 더 나타날 수 있다. 기존 EX30부터 체급에 대비한 안정성은 훌륭했다. EX30 CC도 마찬가지, 일상적인 주행에서 느껴지는 차체 쏠림이나 흔들림은 심하지 않다. 스티어링 휠의 반응성도 수준급, 다만 제로백 3초대의 성능을 유쾌하게 활용하기에는 부드럽다는 의미다.
크로스컨트리라는 장르의 본질부터가 장거리 여정에 목적을 두고 있다. 때문에 출력과는 별개로 컴포트 한 느낌을 전달하는 섀시 세팅은 그 자체의 역할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전기차인만큼 동급 SUV에 비해 공차중량이 훨씬 무겁다. 그만큼 주행감 자체가 묵직한 느낌이 있고, 전기모터의 정숙한 반응은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구현해 준다. 여기서 조금 더 역동적인 주행을 원한다면, 퍼포먼스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 모드 전환 시 가장 큰 차이는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 총 3가지 단계 설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엑셀 반응성이 조금 더 예민해진다.
고속에서의 안정성이나 정숙성 모두 수준급이다. 변속기로 활용되는 칼럼 레버를 D 단에서 한 번 더 내리면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이 활성화 된다. 카메라와 레이더, 초음파 센서를 활용한 완성도 높은 주행보조 기능은 운전 편의는 물론 안전에는 타협이 없다는 브랜드 철학을 반영했다. 클러스터가 없다는 점도 생각보다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스마트폰 연동 없이도 온전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편리했다. 전기차인 만큼 차량 주행 세팅도 보다 직관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UI에는 볼보의 오랜 노하우가 담겨있다.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를 시승했다. 차분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EX30의 외관 디자인에, 크로스컨트리만의 견고함이 더해졌다. 간결한 실내 공간은 대화면 디스플레이와 UI 최적화를 통해, 차별화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아무렴, 크로스컨트리만의 차별화는 독보적인 가속 성능에 있다. 제로백 3.7초라는 강력한 수치, 그리고 네 바퀴에 전해지는 안정적인 구동력은 소형 SUV라는 장르의 잠재력을 최대화한다. 의외로 부드러운 승차감은 일상용 자동차로서 활용성을 더해주는 부분, 사실상 EX30의 트윈 모터 버전이라고 감안해도 무관하겠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