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다 CR-V 하이브리드 2.0 HEV 4WD Touring 트림을 장기간 시승했다. CR-V는 세계 10대 베스트 셀링카이자, 혼다의 준중형 크로스오버다. 20세기 말 아담한 크기와 실용성을 겸비한 '도심형 SUV'라는 장르가 유행했을 시기, 혼다도 적절한 대응책을 펼친 셈이었다. 당시 혼다의 준중형 세단이었던 '시빅'의 플랫폼을 활용했고, 정교한 섀시와 리얼 타임 AWD 기술로 SUV의 목적에 특화한다. 일본과 북미는 물론, 유럽 시장에도 제품성이 통용되었던 '크로스오버'형 SUV의 시작이었다.

20세기 말, 당대 CR-V는 컴팩트 크로스오버라는 개념으로 기획된 바 있기도 하다. 최신의 자동차 시장에 있어서 소형 SUV라 함은 A세그먼트 부터 그 크기가 다양화되어 있지만, 이토록 SUV의 선택지가 다양화된 시기는 오래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CR-V는 입문형 SUV라는 목적에 충실했던 차량이고, 혼다의 승용차 기술이 더욱 다양한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CR-V는 1995년 출시되었던 1세대 이후로, 지금의 6세대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해왔고, 특히나 한국 시장에서도 3세대 CR-V는 강력한 영향력을 남긴 바 있다.

이제는 승용차 시장의 중심을 세단이 아닌 SUV가 차지하는 시대다. 그런 SUV 시장의 성장에 가담한 차종 중 하나로 CR-V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에 공개된 6세대 CR-V는 급증하는 SUV의 수요를 따라 더욱 넓은 공간과 대중적인 디자인을 갖추고서, 글로벌 시장 전략형 승용차로 출시된다. 오히려 일본에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았고, 2024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5위, 준중형 SUV로는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 엔진 추가와 최고 사양 단일 트림 구성을 통해 매스티지급 SUV라는 포지션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에 출시된 혼다 CR-V 하이브리드는 투어링 단일 트림으로 구성된다. 북미 기준으로는 온로드 세팅 최상위 트림에 해당되며, 그에 따라 스포츠 스타일링이 기본 적용되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혼다의 중형 세단 어코드와 완벽한 패밀리룩을 이루고 있다. 수평 형태의 헤드램프와 프레임리스 타입의 그릴, 이를 하나로 연결한 직선 위주의 간결한 외관을 지향한다. 최근에는 이런 간결함 디자인 자체가 하나의 특징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블랙 베젤 마감이 더해진 LED 헤드램프와 글로스 블랙 마감이 더해진 그릴은 더욱 차분하고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모습이다.

헤드램프 상단부에 배치된 DRL은 차량을 더욱 크고 웅장해 보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자체의 카리스마도 확실하고, 플래티넘 디테일이 더해진 로워 범퍼와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CR-V의 캐릭터와 같은 '직선'은 측면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연결되는 모습이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연결하는 수평 형태의 캐릭터 라인, 안정적으로 뻗어나가는 루프라인이나 오버행도 차분함을 더해준다. 반면 동급 SUV 들에 비해 노즈가 길게 연장되어 있고, 보닛과 A필러의 접점이 확실하게 분리된 모습은 비율적인 고급스러움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최상위 모델답게 휠 사이즈도 19인치로 넉넉하다. 그릴이나 사이드미러, 루프랙 등 알로이 휠에도 블랙 컬러 도장이 더해져 탁월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D필러를 감싸는 세로형 테일램프 디자인은 CR-V의 오랜 디자인 헤리티지로 잡혀왔기도 하다. 이전 모델보다 더욱 날카롭고 입체적으로 다듬어진 그래픽은 독보적인 캐릭터는 물론, 탁월한 가시성을 보여준다. 즉, 안전성을 함양했다. 동급 SUV에 비해 전고가 높게 느껴지고, 그만큼 테일게이트 면적도 넓다. 고급스러운 색감의 리어 범퍼 가니시와 머플러 팁이 디자인을 마무리 짓는다.


CR-V 하이브리드의 실내 공간이다. 외관 디자인처럼 인테리어도 간결한 구성을 택하고 있다. 전통과 같은 매립형 TFT 스크린 매립형 클러스터를 활용했고, 대시보드 중앙에는 9인치 플로팅 타입 센터 스크린을 배치한다. 그만큼 실내에서 느껴지는 개방감이 탁월하다. 센터페시아는 공조와 관련된 버튼과 다이얼로 직관적인 구성을 갖추고, 센터 콘솔 역시도 큼지막한 버튼들이 자리 잡는다. 기어 레버는 부츠타입, 스티어링 휠도 비교적 직경이 넓고 두꺼운 편이다. 그립감을 중시 여기는 구성이다. 물리 버튼들의 조작감과 피드백이 매력적이다.


북미형 SUV 특성상 필수적인 편의 장비 위주로 구성된다. 가죽시트는 편안함보다는 안정감을 제공하는 편이고, 운전석은 8방향 전동 조작과 럼버 서포트, 시트 메모리 기능을 포함한다. 1열 시트 열선 기능이 내장되며, 2존 독립 공조를 제공한다. 주행보조 기능인 혼다 센싱은 전부 탑재되어 있고, 우측 카메라를 활용한 '레인 와치'기능이 이색적인 옵션이다. 그 외 12스피커 BOSE 프리미엄 사운드와 노이즈 컨트롤, 무선 충전 패드, 그리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혼다 커넥트 원격 제어 기능들이 주요 편의 장비로 제공되고 있다.


뒷좌석 공간이다. 앞서 CR-V는 동급 SUV에 비해 전고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고, 그에 따른 여유로운 거주 공간이 매력적이다. 시트 포지션이 높은 편이라 레그룸을 더욱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으며, 수동식 시트 리클라이닝 각도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측면 창도 면적이 넓은 편, 다만 일반 선루프가 제공되는 점은 아쉽다. 2열 암 레스트와 에어벤트, 충전 포트가 정도가 편의 장비로 제공된다. 넓은 후석 공간만큼 트렁크 공간도 넓고 평탄하다. 전동 트렁크 역시 기본, 리어 시트는 6:4 비율 폴딩이 가능한데 평탄화는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넓은 창문 면적에서 느껴지는 개방감이 있다. 시트 포지션도 적당히 높아 시야 확보에 편리하고, 그렇다고 무게중심이 높은 감각은 또 아니라 주행감이 정말 편리하다.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시동 버튼은 혼다스러운 면모다. 혼다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저속 영역의 대부분을 모터가 커버한다. 시동을 켠 순간에는 전기차처럼 조용했다. 아울러 9인치 디스플레이 오디오는 무선 카플레이를 지원하나, 안드로이드 오토는 유선 방식으로만 연결된다. 선을 연결해야 하지만, 그만큼 연동성이나 배터리 충전은 안정적이다.

혼다 CR-V 하이브리드에 탑재된 구동 모터의 최고 출력은 184HP, 최대토크는 34kg.m수준이다. 발전을 담당하는 직렬 4기통 애킨슨 사이클 엔진은 최고출력 147Hp, 최대토크 18kg.m 수준의 힘을 제공할 수 있다. 고출력 모터의 파워가 더 강한 셈, 추가적인 발전용 모터가 탑재되어 2모터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도심 주행 등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직렬 하이브리드처럼 엔진이 발전을 담당하고, 모터가 구동을 담당한다. 변속기 역시도 모터가 담당하는 e-CVT 형식, 리얼타임 AWD가 맞물려 14.0Km/L 수준의 높은 연비를 인증받는다.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평소 직렬 EREV처럼 동작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직병렬이라는 명칭을 덧붙이는 이유는 엔진과 구동륜 간의 직접 연결을 위한 클러치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러치를 통한 직접 구동은 RPM이 안정화되는 엔진 최대 효율 구간에서 이루어지는데, 특히 CR-V는 고단과 저단 클러치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운행 중에는 엔진 역시 발전을 위해 구동되는 경우가 많아 그 시점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골자는 최선의 효율과 주행감을 실현하기 위한 혼다의 아이디어가 창의적이라는 뜻이다.

결국 도심 주행에서는 고출력 모터가 구동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전기차처럼 그 가속감은 매우 부드럽고 정숙했다. 변속 충격이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보통의 하이브리드는 모터 구동시에는 조용하지만, 엔진 개입 시 유입되는 소음과 진동의 편차가 오히려 크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도 혼다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탁월한 기술이다. 어차피 엔진은 구동이 아닌 발전을 담당하기 때문에 고부하 환경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특수한 작동 환경이 아니라면 엔진 가동상황은 매우 부드럽고 조용했다.

승차감은 살짝 단단하게 조율되어 있다. 그나마 롤 스트로크가 세단보다는 길고 타이어 편평비도 얇지는 않다 보니 그로 인한 불편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동급 SUV 중 가장 이상적인 승차감 세팅이라고 느꼈다. 어느 정도 운전자와 섀시와의 직결감이 있는 편이지만 요철이나 방지턱에 대한 충격이 크게 올라오진 않는다. 급제동이나 가속 상황에서도 노즈 다이브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잔요철에 의한 흔들림이나 불필요한 리바운드도 깔끔하게 억제해 준다. 막연한 부드러움보다 적절한 반응성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최적의 세팅이다.

그런 안정적인 섀시 세팅은 곧 탁월한 핸들링 성능으로 치환되기도 했다. 외관과 공간은 전폭 대비 전고가 높다고 느껴졌지만, 실제 움직임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항성이 강한 섀시와 즉답적인 스티어링 반응, 특히 대중형 크로스오버치고 살짝 무겁게 조율되어 있는 핸들링 감각이 신뢰감을 더해주었다. 승차감이 조금만 더 단단해져도 피로감이 있을 것 같고, 반대로 가벼워진다면 롤링이 두드러질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주행감각은 그 접점을 매우 이상적으로 잡아냈다는 의미다.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고속 환경에서도 탁월한 응답성을 보여준다. 역시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차의 움직임에 가깝고, 단지 지속적인 엔진 소음과 풍절음이 내연기관의 흔적일 뿐이다. 참고로 주행 모드는 스포츠와 노멀, 에코 세 가지로 일반적인 구성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인 만큼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대신 스포츠 모드에서는 모터의 반응과 함께 인위적인 액티브 사운드를 부가하여, 마치 순수 내연기관 차량을 운행하는 듯한 감각이다. 에코 모드에서는 발전 효율이 극대화되겠지만, 사실 주행에서 느껴지는 큰 차이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보통 도심 주행과 고속 주행의 연비는 엔진과 파워트레인의 세팅에 달라서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직렬 하이브리드는 도심에서의 연비 절감 효과가 극대화되겠지만, CR-V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의 최대 효율 구간에서 구동륜과 엔진을 직접 맞물려 효율을 극대화한다. 결과적으로 도심과 고속 연비 모두 실연비가 높게 계측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CR-V에는 감속 셀렉터라는 기능이 있다. 기존 패들 시프트의 - 방향을 누르면 회생제동이 강하게 개입하는 기능인데, 고속 크루징 시 차간 주행 거리를 패들 시프트 조작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감속 셀렉터 기능은 에너지 회수를 돕고 실제 주행 피로도도 크게 낮추어주는 역할이었다. 도심에서도 사용은 가능한데, 완전 정차는 불가능했다. 함께 우측 턴 시그널 점등 시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레인 와치' 기능도, 화질 자체는 부족하더라도 위험상황을 쉽게 예방할 수 있다. 2레벨 수준의 '혼다 센싱'은 완성도가 높은 주행 보조 기능, 특히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을 별도로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이 편리했다. 일반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18Km/l 수준의 실연비가 계측되었다. 연비 운전을 하는 경우에는 20km/l의 트립 연비도 쉽게 도달한다.

리얼타임 AWD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놀라운 연비다. 사실 2WD 기준으로는 25Km/L 이상의 연비도 쉽게 기록할 정도로, 혼다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뛰어난 효율을 보여준다. 참고로 리얼타임 AWD 시스템은 별도의 트랜스퍼 케이스와 프로펠러 샤프트로 구성하는 방식이고, 험로 주파는 물론 우천이나 젖은 노면에서 효과적인 트랙션 확보를 도와준다. 후술하는 내용이지만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대용량 배터리는 트렁크 하단부에 배치하여, 후륜 접지력을 확보하고 무게중심을 배분하는 등 주행 완성도를 높여주는 설계를 지향한다.

전체적으로 과한 꾸밈이 없는 담박한 제품성이 마음에 든다. 특히 글로시 블랙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익스테리어는 적절한 세련미와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크로스오버들은 하나같이 과감한 디자인과 함께 형식을 탈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느껴지는데, 그저 SUV답고 단단해 보이는 CR-V의 첫인상이 반대로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어쩌면 5세대 CR-V나 그 이전 세대 모델들이 당대에는 더욱 과감한 디자인을 택했던 사례가 되어줄 것이다. 현행 CR-V는 보수적인 디자인의 매력을 철저히 이해하는 사례와 같다.

SUV스러운 디자인은 여유롭고 개방적인 실내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SUV의 중점이라고 볼 수 있는 트렁크 공간도 넓고, 신체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시트의 마감과 포지셔닝이 만족스러웠다. 국산 차량들에 비해 편의 장비 수준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필요한 기능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사용성에서 전해지는 익숙함은 브랜드의 그 어떤 성격도 강요받지 않는 느낌이다. 정말 운전자를 위하는 구성이라는 의미다. 이따금 멋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차량들도 있지만, 자동차의 본질이란 혼다가 가장 잘 이해하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혼다의 CR-V 하이브리드 AWD를 장기간 시승했다.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표현한 SUV의 감성, 그리고 글로시 블랙 파츠를 통한 세련미가 매력적인 익스테리어를 갖추었다. 간결하고 직관적인 실내 구성은 오래 볼수록 만족스러운 부분, 안정감이 느껴지는 승차감은 운전자로써 결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혼다의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효율성은 물론, 편의성과 정숙성까지 더해주는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이다. 크로스오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각자의 개성을 앞세우는 차종들 가운데, 도심형 SUV의 본질과 기술을 품은 CR-V의 성격이 돋보인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