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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비교시승] 기아 더 K9 vs 르노 마스터

들어가는 말.
대형 세단을 모는 건 얼마나 편한 일일까요? 이를 객관적 내지 정량적으로 설명하려면 어떡하죠? 이런 고민이 이번 기획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엔카매거진> 편집부는 ‘극단적인 병맛 비교’를 통해 느껴 보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편한 대형 세단을 먼저 구한 다음 불편한 차 한 대를 섭외하면 될 일이었죠. 그리고 그 둘에 편집부가 나누어 타고 장거리를 뛰기로 했습니다. 이 정도면 대형차가 얼마나 편한 존재인지 알 만하니까요.

안티 없는 국산차 중 하나

일단 편안한 대형 세단을 찾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철로를 타는 듯한 고속 안정성과 도서관처럼 조용한 실내, 그리고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힘을 갖춘 모델이죠. 보태어 고속도로 주행 보조인 HDA를 포함한 ‘운전 보조 시스템 장비할 것’이라는 조건도 달았습니다. 이윽고 국산 대형차가 생각났습니다(수입차는 HDA가 없으니까). 그렇게 섭외한 게 기아 2세대 K9입니다. 시승차는 315마력을 내는 3.8L 엔진을 품었습니다. 구동계는 네바퀴 굴림 방식. 여기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를 포함한 운전 보조 시스템을 답니다. 이쯤이면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최적화 됐다고 볼 수 있죠.

이제 반대 성격의 불편한 차를 고를 순서. 처음에는 K9과 같은 브랜드의 기아 모닝을 생각했었는데요. 그보다 조금 더 심한(?) 차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예컨대 수동변속기에다 우당탕거리는 승차감을 자랑하는 모델. 그렇게 떠오른 차가 얼마 전에 나온 르노 마스터입니다. 2.3L 디젤 엔진에 6단 수동변속기를 물린 화물차. 높이가 2.5m에 달하고 뒤쪽이 판 스프링이기 때문에 고속안정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정도면 더 K9과 좋은 비교가 될 만하죠.

이렇게 두 대의 차를 섭외한 편집부는 서울 중구의 사무실을 출발해 전북 진안을 당일치기로 찍고 오기로 했습니다. 네 명의 팀원들은 각각 두 대의 차에 나눠 탔습니다. 아래의 얘기들은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 벌어졌던 대화를 정리한 것. 이제부터 기아 더 K9과 르노 마스터를 동시에 시승한 소감을 전합니다.


 

정상현 기자(이하 정) : 서로 앞다투어 더 K9을 탄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장거리 투어니까 으레 편한 차를 원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일로 다들 마스터 타는 걸 바라더군요. 우리 성향 상 상대를 위해 양보했을 리는 없는데 말이죠. 이유가 뭐였습니까?

없다. 편의장비.

고석연 기자(이하 고) : 사실 더 K9 같은 차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타볼 수 있는 차거든요. 그런데 르노 마스터처럼 키 큰 화물차를 몰아볼 만한 기회는 흔치 않죠. 실제로 운전해 보니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서 도로 상황을 내다 보기 좋았어요. 그런데 가장 먼저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정 기자 아니었나요?

김현규 PD(이하 김) : 그러니까요. 자기가 먼저 운전석 ‘찜’해 놓고 이유를 묻다니. 어쨌든 저도 마스터가 궁금했습니다. 고 기자와 비슷한 이유였죠. 보태어 6단 수동변속기가 달렸다고 하니 더욱 타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아반떼 스포츠 ‘수동’ 오너잖아요(으쓱)? 이제 수동 ‘GO자’ 탈출도 했으니까 제 실력을 검증해 드리고 싶었죠!

이정현 기자(이하 이) : 네, 시동 꺼트리신 거 잘 봤죠. 사실 저는 군 복무 시절 5톤짜리 메가트럭을 몰았었는데요. 마스터를 운전하니까 그때 기분이 들더라고요. 메가트럭처럼 시야가 정말 좋았습니다. 만듦새와 주행감은 메가트럭보다 도리어 나았죠. 추억 돋네요.

정 : 다들 마스터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네요. 저도 몰아 보니 의외로 잘 나가서 놀랐습니다. 엔진 저속 토크가 좋으니까 그 대신 ‘후빨’이 별로일 줄 알았는데 고회전에서도 힘이 살아 있더군요? 6단 수동변속기 변속감도 좋았습니다. 역시 유럽 태생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화물차라 재미가 전혀 없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속도를 붙여 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차 스펙이 어떻게 되죠?

이 : 2.3L 디젤 엔진이고 최고출력 145마력, 최대토크 36.7kg∙m입니다. L 버전 기준으로 공차중량이 2,075kg이니까 가속감은 어지간한 중형 SUV 수준은 된다는 계산이 나오겠네요.

고 : 맞아요, 생각보다 너무 잘 달리더라고요. 저는 (꿈에서) 시속 160km까지 달려 보았습니다. 시속 130km까지는 호쾌하게 올라가서 전혀 스트레스 없었어요. 휠 사이즈가 16인치라서 그런지 정말 웬만한 SUV만큼은 나가는 듯했죠.

정 : 주행감은 어땠나요? 저는 공차 상태에서 뒤쪽 서스펜션이 너무 튀는 듯해 불안했습니다. 다른 화물차가 그렇듯이 짐을 좀 싣고 타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또 엔진과 변속기, 디퍼렌셜까지 모두 앞쪽에 있어서(전륜구동) 화물차 치고도 뒤가 너무 가벼운 듯했습니다. 스핀할까봐 살짝 무서웠어요.

김 : 마스터가 전륜구동이에요? 원래 화물차는 후륜구동 아닌가?

고 : 네 전륜구동이에요. 다른 화물차들과 다른 점이죠.

김 : K9이랑 반대네요. K9은 기본이 후륜구동이잖아요. 시승차는 사륜구동이었지만.

이 : 비단 구동방식 때문이 아니라 이번 K9의 주행안정성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동안 국산차 고속안정성이 별로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더 K9은 고속도로 제한속도 두 배 정도 영역에서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최고출력이 315마력인데, 450마력 정도까지는 보강 없이 올려도 될 것 같았습니다.

고 : 저도 K9의 고속주행성에 대해 놀랐어요. 1세대 제네시스나 K9은 시속 140km를 넘어가면서부터 무척 불안해졌었거든요. 그런데 더 K9은 완전히 다른 차였습니다. 이 기자가 450마력까지는 무리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V8 5.0L 425마력 엔진의 퀀텀 모델도 팔리고 있죠?

정 : 네, 팔리고 있고 사는 사람은 없죠. 두 분이 K9의 고속안정성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혹시 마스터를 타다 갈아 타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요? 사실 저도 K9의 고속안정성은 칭찬하는 입장입니다만 “하체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었거든요. 특히 뒤쪽 승차감이 별로였어요. 차의 성격에 비해 서스펜션 상하 스트로크가 너무 짧았습니다. 요철을 밟고 스프링이 늘어난 뒤 다시 쪼그라들 때 신경질적이었어요. 철로 만든 타이어에 준중형차용 댐퍼를 달아 놓은 것 같았죠.

고 : 그게 K9의 한계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유럽 쪽 플래그십 세단들은 K9보다 고속안정성이 좋으면서도 승차감도 잃지 않았거든요.

이 : 에이, 그래도 K9은 싸잖아요. 시승차 기준으로 6,331만 원이니까 5시리즈나 E클래스 가격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용서해야지요.

고 : 한국차들이 포니 시절부터 ‘가격’을 이유로 많은 용서를 받아왔는데,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요? 이제 정정 당당하게 맞붙을 때라고요. 저는 솔직히 하체 느낌은 잘 모르겠고 고속도로주행보조 시스템(HDA)이 정말 좋았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활성화 되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알아서 잘 가더라고요. 운전하다 물을 마실 수도 있고 이메일 확인까지도 가능할 듯해요. 최고였습니다. 운전 피로도가 기존의 30%로 줄어드는 느낌? 진안에 도착해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죠. 그런데 마스터에는 어떤 편의장비가 있나요?

까끌거리는 운전대와 기어 노브는 목장갑과 찰떡처럼 달라 붙는다

정 : 마스터에는 ‘졸음 방지 시스템’이 있습니다. 워낙 시끄럽고 텅텅거리기 때문에 잠이 안 와요. 그런데 그런 소음도 계속 타다 보면 적응이 되더라고요. 마스터도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속도 영역에서 하체가 좀 신경질적으로 구는데 오히려 고속도로에서는 쾌적해져요. 물론 K9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지만 말이죠. 아, 그러고보니 마스터에 차로 이탈 경고 시스템은 있네요. 이게 카메라 기반의 저가 시스템인데 생각보다 민감하게 잘 감지합니다. 약간 결이 다르지만 ISG도 있어요. 신호 대기할 때 소음 스트레스를 줄여주죠.

이 :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화물 주차장에 주차하시던데, 식당까지 걸어오느라 힘드셨죠?

정 : 사실 승용차 주차장에 세울 수 있어요. 높이만 빼면 생각보다 크지 않거든요. 너비는 K9과 100mm 정도 차이 밖에 안 날 뿐입니다. 길이는 시승차가 롱 버전(5,550mm)이어서 일반 승용차보다는 길쭉하지만 그래도 승용차들 주차하는 자리에 댈 수 있어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집에 놓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보통 지하주차장 높이 제한이 2.1m니까 마스터는 진입이 불가합니다. 결국 집 근처 공터에 재워야 했죠.

다음 생엔 불가사리로 태어나길 바라

고 : 마스터의 장점이자 단점이 ‘높이’인 것 같아요. 키가 크기 때문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고 성인 남자가 짐칸에 기립할 수 있을 정도지요. 운전할 때 시야가 좋은 것도 장점이고요. 대신 건물 지하에는 드나들 수 없는 게 치명적입니다. 일반인이 캠핑카로 개조해서 타는 수요도 있을 텐데 높이에서 주저하는 분들이 적잖을 듯합니다.

이 : 저는 마스터 높이에서 단점을 더 많이 봤습니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달릴 때 바람이 좀 심하게 불었었는데 이때 너무 불안했습니다. 버스 옆을 지날 때는 거의 차로를 반 정도 넘어갈 만큼 옆바람에 약하더라고요. 안정적으로 내달리는 K9이 부러웠습니다.

차가 꿈틀거릴 때 더 멋진 느낌

고 : K9 사륜구동 모델의 무게가 2톤이 넘거든요. 마스터랑 무게 차이가 거의 안 나는 거죠. 그런데 사륜구동이고, 차는 납작하고, 신형이기까지 하니 고속주행안정성은 문자 그대로 극과 극인 듯합니다. K9은 고속도로에서 정말 할 일이 없었어요. 앞을 보고 가속 페달을 밟아 내달리면 끝이었죠.

정 :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K9은 편해도 너무 편한 차예요. 최신의 국산 대형차이고 HDA까지 있으니 말 다 했죠. 진안까지 내려갈 때는 마스터를 타는 게 즐거웠습니다. 생경한 경험이니까요. 대신 밤 늦게 서울로 복귀할 때는 K9을 운전하고 싶었어요. 하루 동안의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죠. 마스터는 이 기자가 말한 옆바람을 많이 타는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소음 때문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운전을 업으로 삼는 분들의 피로를 통감할 수 있었어요.

이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마스터에 짐이 실려 있었다면 주행안정성 문제는 별로 없었을 거 같긴 한데 소음은 대안이 없겠네요. 고속으로 달리면 동승자와 얘기할 때 제법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또 열선 시트가 없는 점과 공조장치도 불만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실내가 안 따뜻해져요. 발 시려워서 혼났죠. K9의 똑똑한 공조시스템과 전석 열선, 열선 스티어링 휠이 부러웠습니다.

김 : K9도 단점은 있어요. 다 좋은데 기름을 너무 많이 먹습니다. 빠르고 편하면 뭐해요. 주유하느라 시간 다 까먹는데. 실제로 K9은 상경할 때 추가 주유를 했죠? 연비가 8.6km/L 나왔던가. 저는 K9을 공짜로 타라고 줘도 기름값 때문에 못 탈 것 같아요.

고 : 사실 K9의 무게와 출력에서 8km/L 나왔으면 준수한 거죠. 테스트하느라 빨리 달리기도 했으니까.

타일러의 눈에는 주인님이라고 읽힐 거다

이 : 반대로 마스터의 연비는 놀라웠습니다. 르노 디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L당 12km를 달려 추가 주유 없이 진안을 왕복했지요. 그러고도 기름이 30% 이상 남았습니다. 서울 시내 간선도로에서 천천히 다니면 14~15km/L도 무난히 나왔습니다. 연비는 포터 같은 1톤 트럭이나 스타렉스보다 잘 나오더군요.

김 : 연비 진짜 좋다. 그러면 스타렉스 망하는 거 아녜요?

짐 칸에 트위지를 넣을 수 있다

정 : 스타렉스 밴 수요는 조금 빼앗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타렉스보다 짐이 많이 들어가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브랜드가 아니니까요(현대가 아니라는 뜻). 대신 전고 때문에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경우가 좀 있을 듯합니다.

이 : 가격도 무시 못하죠. S가 2,900만 원이고 L이 3,100만 원이니 2,000만 원 초반인 스타렉스보다 예산이 확 뜁니다. 소상공인이나 영세 업체 입장에서는 적잖은 부담일 수 있어요.

고 : 그래서 저는 마스터 승용 모델이 기다려져요. 쏠라티 수요를 엄청 많이 가져올 거 같거든요. 상용 모델 값이 착하게 나왔으니 승용 모델도 그럴 테죠. 마스터 승용 모델이 싸게 나와서 잘 팔리면 쏠라티도 상품성을 강화하거나 값을 인하할 테니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 그러게요. 승용 모델은 승차감이나 NVH 대응도 이번 상용 모델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그때는 K9 말고 G90하고 비교 시승 해봐요.

거기 길 아니야

정 :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이런 거겠네요. K9 사륜구동 모델의 운전 피로도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일반 승용차 몰 때의 30%쯤 수고로 몰 수 있을 정도다. 유일한 흠은 연비다. 르노 마스터는 생각 외로 운전이 재미있다. 연비가 말도 안 되게 좋다. 시야도 탁 트였다. 대신 공차 상태에서 몸놀림이 불안하고 소음이 크다. 하지만 분명 매력적인 차이므로 어서 승용 모델이 나왔으면 한다. 그럼, 다음 번 ‘병맛’ 비교 시승은 마스터 승용 모델과 G90을 맞붙이는 걸로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2편도 나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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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정상현

정상현 편집장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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