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핀 A110의 대한민국 정식 출시 소식을 접했다. '알핀'은 프랑스 르노 자동차의 자회사이자 모터스포츠 브랜드다. 현재는 르노 F1팀의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A110을 비롯해 앞으로도 르노의 기술 지원을 통해 신모델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알핀이라는 브랜드 역시 프랑스 출신으로, 그 시작부터 르노의 공정품을 바탕으로 커리어를 쌓아왔기에 기업간의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르노 코리아의 리브랜딩 이후에 각 차종 최상위 트림의 서브네임으로 '알핀'을 활용하고 있다.
A110은 '경량 미드십 쿠페' 장르에 속하는 스포츠카다. 르노 코리아의 정식 수입 예정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확답이 없었고, 막상 A110 차량을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홍보한 건 '슈퍼레이스'팀이었다. 한국의 대표 모터스포츠 리그다. 지난 6월, 알핀 A110 S 단일 차종으로 경쟁하는 원메이크 레이스 '알핀클래스'의 창설을 알린 바 있다. 그 이후에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정 수량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정 판매 방식이고, 공시가가 1억 3천만 원에 시작하므로 판매량은 극소량에 그치리라 예상된다.
지금까지도 르노 코리아에서 A110 차량에 대한 일체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의문점이다. 보다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했던 '그랑 콜레오스' 의 출시, 혹은 전담 부서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당분간 미디어 노출을 꺼릴 수도 있다. 단, 가장 유력한 사유는 판매 자체를 본사가 아닌 소규모 사업체에 위탁했기 때문이다. 본사 차량 전시와 수입, 그리고 A/S 네트워크만 르노 코리아의 지정 사업소에서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3년 10만 Km의 워런티까지 제공된다고 하는데, 홍보만큼은 르노 코리아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한국 시장 진출을 알린 A110은 2세대 모델이다. 1세대는 르노의 인수 이전, 1961년부터 생산되었다가 1977년 부로 단종된다. 소량 생산 스포츠카가 대부분 그렇듯 수익성이 부족했을 것이다. 후속으로 출시된 'A310' 쿠페의 실패, 이를 뒤이은 2+2시터 형식의 그랜드 투어러 'A610'의 단종으로 브랜드의 활동이 중단된다. 그 이후 2016년, 르노는 '알핀 비전' 콘셉트를 공개하며 브랜드의 부활을 알린 바 있다. 그 사이에도 수차례의 프로젝트가 기획과 무산을 반복하였고, 결국 약 40년이 흐른뒤에야 르노의 독자 기술로 A110의 후속 모델을 출시한 셈이다.
A110은 유럽의 여러 전문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초대 A110의 독특한 헤드램프 구성을 물려받았고, 보닛을 장식하던 각종 에어로핀도 섬세히 형상화하였다. 차체 전방에서부터 후면으로 갈수록 완만해지는 역동적인 실루엣도 클래식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듯 느껴진다. A110의 레이아웃은 미드십 후륜구동이지만, 차체 비율만을 바라보면 RR 방식의 스포츠카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대 A110은 리어엔진 타입이다. C 필러를 가득 채우는 곡면 유리와 '캠백' 스타일의 간결한 리어 엔드까지 전통을 고수한다.
2022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지만 외관의 변화는 없었다. 실질적으로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디자인인 반면, 오히려 미래적인 외모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 당시의 디자인 트렌드와 다르게 '더하기'보다는 '빼기'에 집중한 스타일이다. 미니멀하다. 차체가 워낙 작기도 하지만, 미드십 스포츠카치고는 바디라인이나 형태가 굉장히 소극적인 편이다. 그 마저도 A110의 헤리티지를 반영했을 수 있다. 분명한건 그런 스타일 기법으로 인해 타임리스한 디자인이 완성되었고, 특히 절제미가 돋보이는 후면 디자인에서 세련된 이미지가 느껴진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직관적이다. 대부분의 경량 스포츠카가 그러하듯 멋보다는 기능에 충실한 구성인데, 유독 소재 선정이 다채로워 보이긴 한다. 시트 포지션이 굉장히 낮다. D컷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짧고, 큼지막한 패들 시프트와 부스트 버튼이 특징이다. 10.2인치 TFT 디지털 클러스터를 적용했고, 센터 모니터는 약 7인치 크기다. 디지털 UI는 업데이트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미러링을 지원한다. 이 외에 간결한 버튼 구성과 버튼식 변속기, FOCAL 스피커가 눈에 들어왔다. 트렁크는 전후방에 각각 100L, 96L의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참고로 A110은 베이스 모델의 명칭이다. 더욱 강력한 성능과 옵션을 탑재한 A110 'GT '와 'S' 트림이 존재한다. 전시차량이 A110 S 기본 사양이다. A110 GT와 S는 엔진 스펙은 동일하지만 섀시 세팅과 편의 사항이 다르다. S 모델의 지상고가 더 낮고 댐퍼가 딱딱하게 세팅되며, 전시차량의 일체형 버킷 시트와 마이크로 파이버 스티어링 휠도 'S' 전용 사양이다. 외관에는 18인치 휠 내부에 오렌지색 브레이크 캘리퍼가 적용된다. 또, 엠블럼이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있는 모습도, 역시 A110 S 트림만의 차별화 사양으로 확인된다.
A110 S에는 배기량 1.8L급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에 싱글 터보가 배치되어 있다. 최고출력 300Hp, 최대토크 34.6Kg.M의 강력한 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변속기는 7단 습식 듀얼 클러치, 제로백 4.2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1114Kg이라는 가벼운 공차중량이다. 강성 확보를 위해 차체의 70% 이상을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했다. 엔진이 컴팩트하게 들어가다 보니 앞뒤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 방식을 채택할 수 있었고, 전후륜 44:56이라는 이상적인 무게비를 실현한다. 가변 배기 시스템까지 스포츠카의 재미에 충실하다.
알핀은 르노의 자회사이자 자체 생산 능력을 지닌 기업이다. 다만 국내에서 르노 차량의 서브네임으로만 활용해 왔고, 오랜 인지도가 없다보니 오히려 브랜드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지는 분위기다. 그리고 첫 모델이 2017년에 양산되었으니 수입 시점이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르노 코리아가 본격적으로 '삼성'이라는 이름을 포기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2024년부터 프랑스 본사와 동일한 브랜드 CI를 적용할 것으로 발표했고, 그 가치의 관점에서 르노의 오랜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헤일로 카'가 A110이 될수도 있겠다.
아무렴 국내에서의 브랜딩 전략은 확실시해야 할 듯 느껴진다. 일단 르노코리아는 극히 소수를 위한 경량 스포츠카에 관심도가 굉장히 낮다. 지금은 말 그대로 '미래 전략'에만 집중하는 중이다. 반면 소규모 딜러사가 A110의 수입과 전시, 홍보, A/S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르노 코리아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모습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하물며, 한정 수입인 만큼 사업 규모를 키울 수도 없을 것이다. 정확한 내막은 확실치 않지만, 르노의 홍보망을 활용할 계획이 아니라면 '알핀'이라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활동하는 게 가치 정립 측면에서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 방향이 알핀 A110의 프리미엄 마케팅을 위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르노는 한국 시장에서 극히 대중지향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아 있다. 알핀의 역사는 르노와 함께 해왔다고 하지만, 결국 A110의 원형은 르노가 알핀을 인수하기 이전의 모습이었다. 이번에 관람하고 온 A110 S의 분위기는 그 시절의 알핀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외형이기도 했다. 이미 유럽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차량이고, 소위 부자들의 장난감이라 불리는 경량 미드십 쿠페에 속한다. 적절한 마케팅으로 한국 시장에서 반전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