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코리아는 지난 2024년 4월 리브랜딩을 통해 구 삼성자동차의 잔흔을 완전히 지워낸 바 있다. 2022년에는 상표권 만료와 함께 '삼성'이라는 네이밍을 생략했고, 지난해에는 르노의 '로장주' 엠블럼 도입과 함께 CI 전체를 프랑스 본토와 동일시했다. 르노 코리아는 CI 변경 이후 기록적인 판매 신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2024년 하반기~ 지난 하반기까지 누적 신차 등록대수가 약 5만 6668대로 집계되는데, 이는 2023년부터 동기 2만 0991대보다 약 2.7배가량 폭증한 수치와 같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1.6%에서 4.2%까지 3배 증가한 결과다.
물론 CI만 교체했다고 해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리는 없다. 르노 코리아가 2024년 하반기 투입한 '그랑 콜레오스' 단일 차종의 지난 1년 판매량이 4만 5144대에 달한다. 르노 전체 판매량의 약 80%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한 차종에만 의존하는 판매 경향은 장기적인 운영 리크스가 높다. 단, 르노 코리아에게는 희망을 보여준 것과 같다. 오랜 공백기 끝에도 견실한 상품성의 제품만 나와준다면 시장은 열려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출로 연명하던 르노 부산 공장은 그랑 콜레오스를 넘어서 폴스타 4, 오로라 2 등 생산 예정까지 활력을 되찾는다.
2025년 하반기 르노 코리아는 D세그먼트급 전기 크로스오버 '세닉 E-테크' 출시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그간 르노 코리아의 EV 라인업은 조에, 트위지, 그리고 SM3 Z.E 등 소형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하나 전기차의 판매 신장은 지속되고 있으며, D 세그먼트급 SUV라는 포지션은 그랑 콜레오스의 사례처럼 가장 인기 있는 EV 장르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르노 코리아의 리브랜딩 이후 최초로 수입되는 프랑스 현지 수입차라는 점, 본토 기술과 감성을 품은 제품성은 2024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상품성을 입증하기도 한다.
시승 차량은 르노 세닉 E-테크 100% 일렉트릭 '아이코닉' 트림이다. 옵션 기준 최상위 등급이다. 구동 계통의 경우 160kW 구동 모터와 87kWh 리튬이온배터리 단일 사양이며, 옵션 트림으로만 가격대가 구분되어 있다. 참고로 구동계는 유럽 현지에서 상위 모델에 해당된다. 아이코닉 트림의 특징으로는 중간 테크노 플러스 대비 20인치 오라클 휠과 미셰린 타이어, 그리고 투톤 루프와 새틴 크롬 사이드 가니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편의 기능으로는 360도 서라운드 뷰와 스마트 룸미러, 인조가죽 대시보드, 그리고 하만 / 카돈 9스피커 오디오 시스템 등으로 차별화되었다.
르노 세닉 E-테크 100% 일렉트릭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이다. 기능상 라디에이터 그릴은 생략된 모습이지만, 기존의 패밀리룩을 연상시키게 하는 그릴 패턴 패널이 적용되어 있다. '로장주' 엠블럼의 윤곽선과 같은 마름모꼴 패턴이 특징이다. 퓨어비전 LED 헤드램프는 블랙배젤이 적용되어, 주간에는 그릴 패널 상단과 일체감 있게 연결되는 모습을 보인다. 주간주행등의 디자인도 비범하다. 수평형 그래픽이 교차하는 형태, 입체적인 범퍼 디자인의 양 끝단에 배치되면서 차량의 사이즈와 볼륨을 더욱 강조해 주는 역할이다.
측면 디자인이다. 세닉 E-테크는 기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모듈형 플랫폼 CMF 기반, EV 전용 플랫폼으로 설계된다. 그에 대한 특성인지 비율적인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히 돌출된 오버행과 휠베이스, 함께 배터리 탑재로 인해 높아진 차체 하단부는 두꺼운 플라스틱 가니시로 마감되었다. 시승 차량과 같은 아이코닉 트림은 투톤 루프 적용을 통해 A필러부터 이어지는 루프라인을 강조하며, C필러 가니시를 장식하는 새틴 크롬 마감재로 역동적인 프로필을 연출한다. 전체적인 차체 볼륨도 인상적이며, 플러시 타입 도어 핸들로 일체감을 개선한다.
후면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간결했다. 3D 타입 풀 LED 테일램프가 기본 적용되며, 역시 블랙 베젤 디자인으로 세련미를 보강하고 있다. 테일램프 형상이 자연스레 리어 웨이스트 라인을 강조해 준다. 함께 음영 대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테일게이트 디자인은 차량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날카롭게 보정한다. 전기차답게 범퍼 디자인은 단순하나, 역시 새틴 크롬 액세서리가 부착되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20인치 오라클 휠 디자인, 비대칭형과 섬세한 전면 가공으로 차량에 독창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인테리어 공간이다. 약 12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버티컬 터치스크린을 배치했다. 최신 운영체제 OPEN-R 링크 적용으로 세련된 테마와 반응성을 갖추었고, 순정 T맵과 폰 프로젝션 기능을 지원한다. 그에 따라 센터페시아에는 주요 기능들만 물리 버튼으로 남았다. 센터 콘솔은 다층 수납공간이 특징, 기어 노브는 칼럼 타입이다. 스티어링 휠은 더블 D컷 형상이며, A필러에는 페이스 ID 인식을 위한 카메라가 적용되었다. 앰비언트 라이트와 하만 카돈 스피커, 마사지 시트, 가죽 대시보드, 스마트 룸미러 등 고사양 장비가 투입된 반면 통풍 시트는 탑재되지 않았다.
뒷좌석 공간이다. 전륜 기반 CMF- EV 기반 플랫폼을 통해 완전히 평탄한 바닥 공간을 구현했다. 덕분에 동급 크로스오버 대비 레그룸 가장 여유롭게 확보된 수준, 헤드룸도 넉넉하다. 편의 기능으로는 에어벤트와 인지니어스 암 레스트가 제공된다. 암레스트에는 충전 포트와 컵홀더, 태블릿 거치대와 더불어 편안한 탑승감을 더해준다. 또, 추가 옵션으로 솔라베이 루프 선택이 가능하다. 2분할 방식으로 햇빛 투과도를 낮춰주는 고사양 장비다. 파워 테일게이트는 기본, 마찬가지로 EV 플랫폼의 장점을 살려 낮고 평탄한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르노 세닉 E-테크 100% 일렉트릭에는 최고 출력 160Kw 급 구동모터가 앞바퀴를 굴린다. 단순 환산 최고 출력은 214Hp 수준, 최대 토크는 30.6Kg.m에 달한다. 구동력은 1단 감속기를 거쳐 전달되며, 제로백 7.9초의 충분한 가속 성능을 제공한다. 배터리 용량은 87kWh, NMC 타입으로 제조사는 LG 에너지 솔루션으로 알려졌다. 공차중량 1855Kg, 복합 인증 항속거리는 460Km다. 참고로 세닉 E-테크의 기반이 된 CMF 플랫폼은 모듈 방식으로 조합되는 형식에 따라 현가 구조가 달라지는데, EV는 후륜 멀티링크를 채택하고 있다.
여느 전기차 그렇듯 부드럽고 리니어 한 가속감이 매력적이다. 기본 컴포트 모드에서는 엑셀 반응이 상당히 부드럽고, 승차감 또한 적당한 안정감과 유연함이 교차하는 고급스러운 감각이다.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장 미셸과 협력했다고 하는 주행 사운드를 지원하는데, 전기차 특성상 특정한 사운드보다는 정숙성 자체가 메리트인 것 같다. 엑셀 페달에 비해 브레이크 페달은 제동력이 초반에 몰려있는 느낌이다. 대신 회생제동을 높은 강도까지 설정할 수 있어, 원 페달 드라이빙에 익숙해지는 게 편리해 보인다.
도심 주행에서 출력에 대한 부족함은 전혀 느껴볼 수 없다. 즉답적인 반응성은 물론, 속도계는 빠르게 상승해 있다. 사실 전륜구동 전기차로서는 한계치라 보아도 무방한 성능이다. 스티어링 휠은 일반적인 대중 전기차처럼 가볍다. 특징이라면 록투록 거리가 짧아, 다시 말해 일반 승용차보다 핸들링 대비 조향각이 넓다. 직접적인 오버스티어 감각으로 느껴지진 않지만 확실히 동급 전기차보다는 회전 반경이 짧게 느껴진다. 이는 민첩함을 더해주는 요소, 마냥 부드럽지 않은 승차감과 더불어 도심 주행에서의 기본기는 기대 이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행모드는 스포츠와 컴포트, 에코, 개별 설정으로 기본적인 구성이다.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엑셀 민감도와 최고 출력이 20% 수준 정도로 다르게 세팅되는 느낌, 아울러 모드에 따른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은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 고속에서도 세닉 E-테크는 편안함을 유지해 주는 감각이었다. 전기차는 동급 SUV에 비해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접지가 되는데, 고속에서 전륜은 다소 부드럽고 후륜이 단단한 섀시 세팅이 느껴진다. 덕분에 요철을 받아들이는 감각은 매끄러운 반면, 제동에 대한 노즈 다이브 현상이 다소 예민하긴 했다.
최고 시속은 170Km에 제한된다. 그 구간에서는 언제든 막힘없는 가속력과 응답성을 제공해 주었다. 정숙성 또한 기대 이상, 풍절음보다는 20인치 휠의 노면 소음이 조금 더 유입되는 편이다. 아무렴 준수하다. 피칭에 비해 롤링은 억제되어 있는 움직임이다. 회피기동에서도 자세가 잘 흐트러지지 않는 감각이며, 코너링에서도 낮게 분산된 무게 중심 덕분에 쏠림이 적고 접지력은 강하다. 약 80Km 구간의 항속주행에서 실주행 전비는 6.4 km/kWh 수준, 실주행 거리 500Km 정도는 너끈히 주파할 수 있겠다. 10%에서 80% 충전시간은 약 38분이다.
세닉 E-테크 에는 총 30가지 주행보조 및 안전 장비가 탑재되어 있다고 한다. 2.5 레벨 수준의 ADAS 장비는 물론, 고화질 서라운드 뷰 카메라와 스마트 룸미러 등이 그에 포함된다. ADAS의 경우 조금만 더 부드럽게 작동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지만, 사용성과 정확성 측면에 문제는 없다. 또, 스마트 룸미러의 경우 빗방울이 맺히는 경우에는 시야 확보가 어려웠는데 버튼 한 번으로 일반 거울 전환이 가능하다. 아무렴 동급 SUV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사양 장비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력한 장점이라 느꼈던 부분은 각종 디지털 UI의 시인성과 확장성이었다.
르노 세닉 E-테크 100% 일렉트릭 ICONIC 트림을 시승했다. 프랑스 감성의 미학적인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최신화된 디지털 UI를 품은 인테리어가 '세련미'를 정의한다. 기대 이상의 숙련도를 보여준 승차감과 넉넉한 출력은 대중 전기차 시장에서 세닉 E-테크의 존재감을 과시해 주었다. 본론의 내용처럼 전기자동차의 주행성 자체는 내연기관 대비 상향 평준화된 시점에서 소폭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자동차의 브랜드 보다도 스타일 자체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세닉 E-테크가 품고있는 미학적 감수성은 충분한 매력을 더해준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