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초대 카이맨 S 를 시승했다. 2세대 포르쉐 박스터와 섀시를 공유하며, 코드는 '987'에 해당한다. 포르쉐 카이맨은 2006년 처음으로 자동차 시장에 데뷔하였으며, 2009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뒤 2012년에 세대 변경을 거친 바 있다. 이번 시승 차량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상품성이 개선된 모델이다. 그 이후에도 15여 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두 차례의 풀체인지를 거쳐 판매 중인 섀시 코드 982, 718 카이맨도 곧 세대교체를 앞둔 시점이다.
사변적으로 포르쉐의 카이맨은 소위 '드림카'의 대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우선 포르쉐라는 브랜드부터 노력한다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몽상적인 꿈의 대상으로 여기기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쟁쟁한 제조사들이 앞섰다. 물론 포르쉐도 동경의 대상, 하지만 게 중에서도 카이맨은 드림카의 반열에 오를 일이 없다. 포르쉐의 아이코닉 모델이 911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조금 더 재미있는 미드십 스포츠카를 찾는다면, 어차피 실용성을 포기하는 겸 오픈 에어링이 가능한 박스터를 꿈 꿀수는 있겠다.
2023년, 포르쉐는 국내 최초로 1만 대의 판매량을 넘겼다. 15년 전과는 다르게 포르쉐도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브랜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천정부지로 솟으니 오히려 내구소비재의 값어치가 낮게 느껴지는 착각도 든다. 아무렴, 15년 전의 카이맨은 시세가 정말 저렴해졌다. 관리나 옵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번쯤 타볼만해 보인다. 브랜드를 떠나 '미드십 쿠페'라는 장르는 상상만 해도 설레이는 법이다.
서론이 길었다. 단지 포르쉐의 라인업 중에 '카이맨'은 가장 흥미가 없던 차종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 차의 종류에 앞서 '포르쉐'라는 브랜드를 마주하면서, 설렘을 느끼지 못할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관리 상태가 훌륭한 1세대 카이맨 S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만났다. 그 시절 포르쉐는 직선 형태의 기조를 완전히 배제했고, 곡선의 매끄러움과 우아함을 극대화한 디자인을 지향했다. 987 코드는 1세대 카이맨이면서도 2세대 박스터이기도 하다. 즉, 1세대 카이맨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그만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윤곽선은 역시 포르쉐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 911에 비해서는 확실히 작고 아담하다. 그럼에도 역동성이 느껴지는 캐릭터 라인이나, 낮고 완만하게 깔려있는 루프라인은 비범한 존재감을 펼쳐낼 수 있다. 특히 후면에서 보이는 깊은 굴곡의 숄더 라인과 볼륨이 극대화된 리어 펜더는 911을 축소시켜둔 인상과 같았다. 프레임리스 도어, 미드십 엔진을 향한 에어덕트, 립 스포일러나 듀얼 머플러 팁 등 스포츠 카의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함께 과시 없이 담백한 외모로 받아들여지는 점도 포르쉐스러운 면모라 볼 수 있다.
인테리어는 15년의 세월이 와닿지 않았다.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미드십 쿠페는 지금도 장식요소를 배제하고 기능미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런 전통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터, 지금 판매되는 718 카이맨과 비교해도 레이아웃이 거의 닮아있다. 옵션 수준도 나쁘지 않다. 운전석 세미 버킷 시트는 전동식으로 조작되며, 심지어 메모리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다. 1열 시트 열선은 물론 BOSE 오디오와 후방 카메라까지 포함하고 있다. 크래시패드에 수납할 수 있는 컵홀더는 디자인이나 기능성 모두 만족스러운 방식이었다.
시트의 착좌감이 생각보다 포근하고 편안하다. 당시에도 옵션이 많이 채택된 차종인 듯 헤드레스트나 암레스트 등 실내 곳곳에 포르쉐 로고가 각인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에는 아무 기능이 없지만, 알루미늄 인서트나 거대한 패들 시프트가 겉으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가져온다. 센터페시아의 아날로그시계나 다이얼 방식의 클러스터를 바라보면, 포르쉐에 앉아있다는 기분이 확실하게 든다. 그리고 좌측에 위치한 시동 버튼, 키를 꽂아 돌리는 재미가 정점이다. 좌측의 시동 버튼은 드라이버의 빠른 스타트를 위한 모터스포츠의 전통이라고 하다.
시동 사운드는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수평대향 엔진 특유의 필링이 느껴진다. 엔진이 좌석 바로 뒤에 배치되는 만큼 그 울림과 진동, 사운드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다. 엑셀을 밟고 RPM을 올리면 사운드는 급격히 확대된다. 718 카이맨 S는 4기통 터보를 택하면서 이질감을 우려할 수 있지만, 올드 포르쉐의 F6 엔진은 자연스럽고 우렁찬 출력 전개를 책임진다. 그런 특유의 감성이 의미하는 바, 내가 포르쉐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겁다. 이제는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카이맨 S의 3.5L급 6기통 수평 대향 엔진은 최고출력 320마력과 최대 토크 37.7Kg.m의 힘을 낸다. 제로백으로 따지만 대략 5초의 가속성능을 보여준다. 2009년 페이스리프트의 핵심은 포르쉐의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 즉 PDK를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플러스까지 엔진 모드를 세분화하고 있으며, 전자제어식 변속기는 감쇠력을 2단으로 조절 가능하다. 구세대 스포츠 쿠페답게 스티어링 휠은 기본적으로 무겁다. 정차상태에서는 휠이 무거워서 조향이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속력이 붙으면 돌릴만하다.
생각보다 페달을 깊게 밟아야 RPM이 상승한다. 즉, 도심주행에서나 일상적인 운행에 있어서는 스포츠 쿠페라 하여 예민한 느낌이 없다. 이는 스포츠 모드에서도 마찬가지, 생각보다 기본 사운드도 조용했다. 하지만 바닥에 붙어가는 듯한 시트 포지션과 딱딱하게 세팅된 현가 계통을 느끼면, 스포츠카에 앉아있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불편한 느낌이 있어야 더욱 재미있는 법이다. 특히 가변식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높이면, 체감상으로는 정말 마차에 앉은 것 처럼 노면에서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조금 안정된 노면에서 엑셀을 깊게 밟아보았다. 증폭되는 사운드는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울부짖는 듯한 두터운 톤이다. 특히 고회전형 엔진 특성상, 저단 변속 시에 울려 퍼지는 엔진음이 매우 자극적이다. 코너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억제된 흔들림과 즉답적인 추종성을 보여준다. 카이맨은 미드십 레이아웃을 채택하기 때문에 911에 비해 이론적으로 균형감이 개선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박스터와 비교해서는 차체 비틀림 강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고출력 엔진이나 고속 코너에서 대응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차를 정말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는 한 그 차이가 체감 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카이맨 S의 출력만으로도 코너에서는 차체 강성의 중요성을 쉽게 느껴볼 수 있다. 횡가속도가 가해지는 순간에서 카이맨의 섀시는 차체에 가해지는 횡력에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이 차를 정말 극한으로 몰고 가기에는 위험부담도 크고 애초에 운전 실력도 받쳐주지 않겠지만, 아무렴 미드십 쿠페라서 느껴지는 안정적인 무게 배분이나 강성 확보는 체감할 수 있는 이점이었다. 고속에서는 가변식 스포일러까지 조작이 가능하다.
차가운 느낌의 패들시프트와 스티어링 휠이 운전의 재미를 자극해 주었다. 더불어 아날로그 방식의 계기판은 스포츠카의 낭만을 더해주는 요소, 6기통 엔진의 필링이나 딱딱한 세팅의 현가, 급가속에서 다소 거칠게 반응하는 변속기는 딱 퓨어 스포츠카의 감성을 지향하는 듯 하다. 더 이상 재미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스포츠카들은 모두 환경규제의 압박을 받기도 하며, 온갖 디지털 장비들로 무장하여 대중성을 흡수하지만 원래 스포츠카는 순수할수록 즐거운 법이다. 일례로 최신 포르쉐들은 일일이 오토스탑을 꺼야 하는 불편함이 매번 거부감이 있다.
가벼운 중량과 DCT 덕분에 연비도 나쁘지 않다. 당시 공인 연비로 10.2kml, 실제로도 비슷한 주행 연비를 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실용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적재 공간이다. 미드십 쿠페이지만 해치 게이트와 트렁크를 갖추고 있다. 당연히 보닛 아래에도 활용할 만한 트렁크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 원래 박스터는 소프트탑까지 수납해야 했으니 공간적 여유가 남을 수밖에 없겠다. 아담한 차체 크기, 실제 911의 하위 호환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웬만큼 필요한 장비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987 카이맨 S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시승했다. 포르쉐의 스포츠카 중에는 가장 접근성이 낮은 모델, 아울러 미드십 쿠페라는 장르에서도 카이맨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차종 중 하나다. 15년 된 카이맨, 그렇게 오래된 차종도 인기 있는 '포르쉐'도 아닌 듯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탑승자를 브랜드의 감성에 매료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함께 입문형 포르쉐를 타보면서, 브랜드의 무한한 잠재력을 채감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카이맨은 그런 역할의 미드십 쿠페였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브랜드의 향수는 오랜 기간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