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특집 기획 특집 > 카푸어가 사라진 뜻밖의 이유

카푸어가 사라진 뜻밖의 이유

카푸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그랜저는 곧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2010년대, 래퍼들의 음악에서 포르쉐는 빠지지 않았죠. 자동차는 그 자체로 성공을 증명하는 도구였습니다. SNS에는 고급 수입차를 자랑하는 사진들이 넘쳐났고, 이를 동경한 사람들은 일명 ‘영정사진’으로 불리는 사진과 함께 수입차에 여유 자금까지 땡겨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그 많던 카푸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늘은 SNS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한국에 유독 카푸어가 많았을까?”

첫째, 한국인은 과소비에 취약합니다.

딜로이트 코리아가 발표한 ‘소비자 신호 연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월 평균 과소비 지출액은 59달러로, 20개국 평균인 41달러보다 한참 높은 수치이며 20개국 중 4위입니다.

한국인이 과소비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 것은 바로 ‘정서적 위안’. 그러니까 많은 한국인들이 소비를 통해 위로와 행복을 얻으려 한다는 겁니다. 한국이 OECD 우울증 유병률 1위(36.8%),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슬프게도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증 치료 접근성은 다른 국가 대비 20분의 1 수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즉, 가장 우울한 국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우울증 치료를 받기 어려운 나라라는 겁니다.

여기에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고 합니다. 신경전달물질인 아난다마이드는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이겨내고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한국인은 이 아난다마이드가 아주 적게 분비되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아난다마이드는 마리화나에 함유된 환각물질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명 ‘몸속 마리화나’라고도 불리는데요,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 아난다마이드가 아주 적은 양 분비된다고 합니다. 북유럽이 21%, 나이지리아가 45%인데 반해, 한국은 약 14%가량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우며, 결국 부족한 행복과 만족을 소비를 통해 채워왔다는 겁니다.

한국인에게 소비란 단순한 구매 행위를 넘어 위안과 보상을 얻는 수단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삶의 만족도가 낮을수록 이 소비의 정도가 커지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소비를 통해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을 마치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죠.

둘째, 한국 소비 심리의 특징은 타자승인지향적입니다.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로, 가족·학교·직장 등 소속과 집단의 조화, 그리고 그들로부터 오는 ‘인정’을 중요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자리 잡은 사회입니다. 소비는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행위지만, 구입한 물건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개인을 둘러싼 집단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는 개인적 결정과 소비지만, 구입 후에는 그 차량이 과연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주변 집단으로부터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문화비교연구에서 살펴본 각국의 규범 강도를 보면 33개국을 대상으로 빡빡한 국가와 느슨한 국가로 순위를 매겼는데, 한국은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와 함께 빡빡한 국가로 분류되었습니다. 여기서 빡빡하다는 것은 일탈 행위에 대한 관용이 낮은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사회 전체가 감시하는 구조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화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개인의 소비 행동조차 집단을 크게 의식하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브라질·뉴질랜드·호주 등의 국가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개인의 만족을 중시하는 느슨한 국가로 분류되었죠.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매우 신경 쓰는 사회라는 겁니다.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한국을 망친 문화’로는 평균 올려치기 문화가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더 높은 기준을 접하면서, 더 화려하고 비싸야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가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급기야 그 수준을 평균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요즘 세대는 평범한 삶의 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해 진짜 평범한 삶은 마치 많이 뒤처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평균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지니까 절대다수의 평범한 청년들은 자신이 도태되었다고 느끼는 겁니다.

한국인의 소비는 본질적으로 타자승인 지향적입니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한국인은 소비 결정에 있어 타인의 평가를 가장 크게 고려하는 집단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타자승인지향’이라고 표현하는데, 집단의 시선과 기대가 개인의 선택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는 소비 또한 나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인정을 얻기 위한 행위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동안 인정받기 위해, 혹은 추앙받기 위해 고급 차량을 구입했던 카푸어 현상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죠.

한국 사회에서 소비란 물건을 구입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알아보고 인정해줄 때 비로소 그 소비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사람에 투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브랜드의 등급과 이미지를 사람의 지위·계급에 빗대어 표현하곤 하죠. 모두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학벌과 직장, 가방과 자동차, 더 나아가 아파트까지. 한국 사회는 등급을 나눌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 꼼꼼하게 서열화하는 문화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비교가 가능한 모든 주제에서 자연스럽게 등급을 매기고, 그러면서 이런 계급도들이 나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좌표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외신들에서도 여러 번 다뤄진 이야기입니다. 2023년 블룸버그는 한국 소비자를 두고 ‘label-loving’, 상표를 사랑하는 한국인이라고 칭하면서 명품 브랜드를 통해 지위와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는 학부모들이 다양한 명품 가방과 고급 의류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소비를 하고 이름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는데 수입 차량이 너무 흔해지면서 이제 아무도 그것을 인정해주거나 ‘추앙’하지 않는다는 게 오늘의 핵심입니다

서울 시민 5명 중 1명은 수입차를 탑니다. 역설적으로 수입차가 너무 대중화되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추앙받던 소비는 흔해졌고, 추앙의 기준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쟁 자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앙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2030세대의 자동차 구매 추이를 살펴보면 2017년에서 2022년까지 약 26% 감소했습니다. 인구 감소를 고려해도 자동차 구매가 확연히 줄어들었는데요, 그렇다고 2030세대가 더 이상 차량이 필요하지 않게 된 걸까요?

한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내 차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20년 48.9%에서 2023년 56%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차량은 필수적이라고 밝혔죠. 거기에 국산보다 수입 브랜드가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럭셔리 차량에 대한 선호도도 연령이 낮을수록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자동차 소유에 대한 욕구와 수입차에 대한 로망은 높은 수준인데, 자동차 구매 대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건 2030세대가 차량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건에 맞는 차량을 구입하기보다는, 자기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차량이 아니라면 구입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카푸어는 점점 없어지게 될까요?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는 지위를 나타내는 자산에 가깝습니다. 차량을 구입할 때 감가를 이유로 딜러가 유색 차량 구입을 노골적으로 말리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한국인이 색깔 있는 차를 싫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동차 시장 구조가 유색 차량을 마치 손해 보는 차량처럼 보이게 만든 것도 한몫했습니다.

당장 내 만족이 크더라도 되팔았을 때 금전적 손해를 본다면 유색 차량 선택을 다시 한번 고려해보게 되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리스크로 여기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여기에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한국의 특징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자동차는 무채색’이라는 점인데, 이는 한국인이 개성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감가상각이 만든 무채색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때 벤츠, 아우디, BMW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그 차를 소유하면 잠시나마 상위계층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빚을 진다 하더라도 그런 만족감을 느끼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장벽을 더 높이고, 더 공고히 세우고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가방을 사기 위해 일명 ‘실적템’이라고 불리는 비인기 상품들을 사들여야만 가방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롤렉스는 앞으로 고객의 직업이나 거주지를 조사 후 구매 예약을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소비 기회 자체를 선별적으로 주겠다는 것이죠.

명품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살 수 없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패한 브랜드가 바로 구찌입니다. 포지셔닝을 보급형 프리미엄으로 넓힌 순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아무도 추앙하지 않는 브랜드가 되어버린 겁니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는 “명품은 영원히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말하면서 명품 사업에서 중요한 건 결국 '욕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이란 결국,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내가 얼마나 가졌는지보다 남보다 얼마나 더 가졌는지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많고 높아야 한다는 전제는 결국 무한 경쟁을 부르고, 지금 느끼고 있는 만족도 결국 시간이 흘러 사라지게 될 겁니다. 절대적 가치보다 상대적 위치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거죠.

혹시 오늘 ‘카푸어가 사라졌다’는 제목을 보고, 한국이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되었을 거라고 기대하셨나요? 불행하게도 우리는 상위계층에 진입하는 기분조차 느끼기 어려워진, 더욱 괴로운 사회가 된 듯합니다

. 오늘 주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 엔카티비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조르디

조르디

joso@encar.com

알고보면 더 재밌는 조르디의 차 이야기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