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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문화기행_독일 4편] 호켄하임링에서 만난 자동차 사나이들

독일은 자동차의 나라 이전에 모터스포츠의 나라다. 독일인들은 스스로가 자동차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이 모터스포츠의 끊임없는 경쟁과 기술의 개발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그런 가운데 지난 독일 출장 동안 호켄하임링에서 만난 자동차 사나이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글, 사진_김경수

호켄하임링, 독일 자동차 역사의 순간을 함께한 현장

호켄하임링.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그 주 호켄하임에 있는 이 서킷은 1932년 개장해 지금까지 F1과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스(이하 DTM)를 개최하고 있는 가장 활발한 서킷이다. 호켄하임링에서 ‘링’은 독일인들이 서킷을 부를 때 쓰는 단어로 뉘르부르크링의 ‘링’ 역시 같은 뜻이다. 호켄하임링은 서킷 길이 4.574km로 초창기 1938년부터 1947년까지는 ‘쿠르프팔츠링(Kurpfalzring)’이란 이름으로도 잠시 불렸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F1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가 뉘르부르크링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사고를 당하자 1977년부터 독일 그랑프리가 개최되고 있다.

길고 긴 역사 만큼 이곳 호켄하임링의 시설들은 대체로 낙후된 편이다. 하지만 아우토반을 통한 주변 도시와의 연결성이 매우 좋고 슈투트가르트와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와 인접해 F1과 DTM등이 개최될 때는 1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이 꽉 차는 장관도 연출하는 곳이다. 호켄하임링은 250km/h가 넘는 초고속 서킷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2001년 독일 GP 이후 FIA가 안전상의 이유로 숲길을 달리는 고속주행로를 대부분 삭제해 버렸다. 프랑스가 독일을 견제한다는 음모론도 제기될 만큼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다. 이 변경 이후 몬자를 위협하는 고속서킷으로서의 명성은 날아가 버렸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대형 운동장 같은 ‘모토드롬’ 코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서킷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호켄하임링을 방문했던 날은 독일 GLP Pro라는 단체에서 클래식 레이싱카 레이스가 있던 날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를 반복하더니 호켄하임링을 찾는 당일 점심에는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호켄하임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패덕까지 걸어가는 순간에는 관중석 너머로 들려오는 우렁찬 레이스카의 배기음이 심장을 고동치게 하더니 이내 발걸음까지 재촉한다. 지하 터널을 지나 호켄하임링으로 들어오니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진다.

호켄하임링에서 만난 자동차 덕후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제 막 서킷에 진입하기 위해 정렬하기 시작한 클래식 레이싱카들이었다. 한결같이 모두 30년 이상은 훌쩍 넘어선 듯한 모델이지만 철저한 관리와 애정어린 손길이 깃들어져 실력발휘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BMW 2002, 로버 미니, 알파로메오 줄리아 스피린트 GT, NSU 프린츠4, BMW E30 M3, 폭스바겐-포르쉐 914, 르노 알피느 A110 등 이름만 들어도 행복한 자동차들이 으르렁대며 트랙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런 차를 모는 드라이버들의 연령대였다. 여성드라이버들도 많았을 뿐 아니라 새파란 젊은 10대 드라이버부터 하얀 수염에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들까지 레이싱 슈트와 헬멧을 갖추고 있었다.

서둘러 관중석으로 가는 도중에도 내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패덕 한 켠에 자리한 벼룩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F1과 DTM이 개최된다고 해서 호켄하임링이 격식을 갖출 줄 알았는데, 어쭙잖은 생각이었다. 그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클래식카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자동차 과년 서적, 공구 등 다양한 제품을 널어놓고 팔고 있었다. 매대도 없고, 카드 단말기도 없다. 이들 대부분은 상인이 아니다.

관중석에 올라 호켄하임링의 모토드롬에 섰다. 눈 앞에 펼쳐진 모토드롬에서는 광활한 공간에서 격렬한 코너링을 하는 레이스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배기음이 저 조그만 레이스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호켄하임링을 달리고 있는 레이스카들은 시대를 풍미한 명차들이다. 특히 각 실린더로 공기흡입이 독립적으로 고르게 이루어지는 독립스로틀을 장착한 BMW E30 M3나 NSU 프린츠4 등이 서킷을 채우고 있으니 그 화려한 배기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날 호켄하임링을 찾은 이들은 질서를 지켜 입장한 후 서킷을 질주하며 실력을 겨뤘다. 2015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무인자동차 등 최신의 자동차들도 모두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서킷데이가 마무리 되고 패덕으로 돌아온 경주차들은 한결같이 정비시간을 갖고 차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미케닉들은 드라이버와 의견을 나눠가며 차의 문제점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서두르는 모습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차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전거, 모터싸이클, 자동차를 누리는 인간

BMW가 모터싸이클 제조사였다는 점은 유명하다. 아우디의 전신 NSU 역시 자전거 제조사로 출발해 모터싸이클과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했다. 거의 대부분의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 역시 이런 성장의 과정을 갖고 있다. 타는 것에 있어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독일 문화에서 서킷을 향유하는 모터사이클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모인 자동차 뿐 아니라 모터싸이클 역시 패덕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참을 부러운 눈으로 이런 광경을 보며 나 자신도 모터스포츠를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터스포츠는 단순히 순위경쟁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레이스에 출전하는 자동차를 바라보고, 드라이버들을 응원하며 미케닉들과 호흡을 맞추는 공간에서 자동차 문화를 즐기는 것이었다. 호켄하임링에서 만난 한 여성 드라이버는 “모터스포츠는 독일 자동차 문화의 산실이자 힘 그리고 미래”라고 말한다. 이런 넓은 저변을 갖춘 독일의 자동차 문화가 있었기에 독일 자동차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김경수

김경수 기자

kks@encarmagazine.com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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