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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를 키운 건 8할이 그랜저다…그랜저 헤리티지로 되돌아본 [소나타의 역사]

▶ 쏘나타를 키운 건 8할이 그랜저다…그랜저 헤리티지로 되돌아본 [쏘나타의 역사]

“클래식러들 비명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네요”
“사이버펑크 2077 느낌이네요.ㅋㅋ”
“이건 한정판으로 출시하면 대박 같은데”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각그랜저]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를 재해석해 내놓은 컨셉트카, [그랜저 헤리티지]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8개월간의 작업으로 탄생한 그랜저 헤리티지는 초대 그랜저의 간결한 차체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픽셀 디자인 램프, 그릴, 휠 몰딩 등을 새롭게 재구성했습니다. ‘직각 미학’으로 유명했던 초대 각그랜저의 바디 디자인과 새로 도입한 픽셀 디자인 램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수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건 정식 출시하면 대박이다’는 향수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각’잡힌 웅장함,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3040 드라이버들의 가슴속에 각인된 ‘그랜저의 위엄’이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으로 좋게 말하는 국민차, 나쁘게 말하면 ‘흔한 차’가 되어버린 그랜저지만, 3040세대가 어릴적 본 그랜저는 성공한 인생의 상징이었습니다. 본인이 ‘어릴 적 각그랜저를 실물로 봤다’하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각그랜저들이 떼지어 나오는 장면에서 느껴지던 위압감과 존재감을 말입니다. 각그랜저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인생’들만이 탈 수 있는 상위 1%의 차로써 대한민국 대형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감대와 존재감이 있었기에 그랜저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산’이라는 뜻의 ‘헤리티지’라는 수식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고급 대형 세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랜저의 존재감은 중형차 시장까지 뻗쳐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바로 ‘국민 중형차’ 소나타를 키운 건 8할이 그랜저였기 때문입니다.

▶ '소나 타는 차' 욕 먹으며 탱킹해 그랜저를 키운 소나타

지금이야 ‘국민 중형차’인 쏘나타지만 그 시작은 비참했습니다. 제작자인 현대조차 한동안 ‘버린 자식’ 취급하던 차, 그것이 바로 1세대 ‘소나타’ 였습니다. 1985년 출시된 ‘소나타’는 현대가 당시 히트했던 중형 세단 스텔라를 개조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크루즈 컨트롤, 파워 시트 등을 탑재하고 유럽 차에나 달린다는 해드램프 워셔까지 달린 소나타. ‘VIP를 위한 차’로 야심만만하게 시장에 등장했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분명 고성능 첨단기능을 탑재하긴 했지만 ‘중형차’ 스텔라와 너무나 외관상 차이점이 없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아반떼N’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할까요? 아반떼N이 고성능 스포츠 세단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돈 들여서 고작 아반떼를 사냐’는 억울한 빈축을 사는 것처럼, 소나타도 당대 최첨단 기능이 집약되어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크롬 범퍼 추가한 스텔라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기에 주 타겟인 ‘VIP’들에게는 외면받았습니다. 생산 후반기에는 판매량이 증가세를 보이긴 했습니다만, ‘소나 타는 차’라고 빈축사기 일쑤였던 소나타는 ‘쏘나타’로 개명되는 굴욕까지 겪게 됩니다. 이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현대자동차는 차량의 ‘ㅅ’발음을 ‘ㅆ’된소리로 내는 유구한 전통을 갖게 됩니다. (EX: 투싼, 싼타페).

하지만 소나타가 존재했기에 현대는 차량 한대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최근 ‘헤리티지’의 대상이 된 명차, 그랜저였습니다. 1세대 소나타가 ‘소나 타는 차’라고 비웃음당했을지언정,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현대는 고급차 라인업의 공백 없이 대형차 ‘그랜저’를 개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1986년 출시된 그랜저는 소나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게 됩니다.

그랜저는 출시와 동시에 국내 대형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각지면서도 웅장한 디자인 등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겠지만 가장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전륜구동 대형 세단’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대의 대세였던 후륜구동은 겨울철 주행 난이도가 올라가는 문제와 더불어 실내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랜저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현대는 그랜저의 유산을 바탕으로 ‘쏘나타’ 2세대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 '그 돈 주고 살빠엔' 소리 듣던 소나타를 구한 그랜저
1988년 ‘그랜저의 그 기술 그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등장한 2세대 ‘쏘나타’는 1세대 ‘소나타’와는 달리 중형차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랜저와 똑같은 전륜구동 플랫폼, 그랜저에 사용했다는 ‘에어로 다이나믹’ 설계를 사용했다는 걸 강조한 쏘나타는, 정작 실내공간은 그랜저보다 더 넓었던 점을 강조하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됩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한 체급 위의 실내공간’이 본격적인 세일즈포인트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더 큰’ 실내공간은 당대 중형차 수요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구매요소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적당히 좋은 차’의 겉모습 속에 ‘대형차보다 더 좋은 거주성’을 누리는 이중적인 소비가 가능했기 때문이죠. 압도적인 인기 속에 중형 세단의 최강자로 인정받은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수출한 중형차가 됩니다. 그랜저가 탄생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줬던 쏘나타가, 그랜저의 위용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최다 기록, 족보 정리, 도시전설까지...쏘나타 3세대의 돌풍

그랜저의 대성공으로 고무된 탓이었을까?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지도자가 되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이 타고 다니던 ‘쏘나타’는 그 꿈을 대신 이뤄줬습니다. 93년 출시된 3세대 쏘나타= ‘쏘나타2’는 출시 이후 2년 반 남짓한 시간동안 60만대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에서 연간판매량이 가장 높았던 중형차’ 기록을 갖게 됩니다. 20세기 마지막의 경제호황기 속에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앞 세대에서 ‘운전이 편한 중형차’, ‘대형차만한 중형차’ 포지셔닝을 선점한 중형차 ‘쏘나타’로 차급을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현대는 페이스리프트로 디자인에 상당한 변화를 준 ‘쏘나타3’를 출시했습니다. (사족으로 이 시점부터 쏘나타 3세대가 비로소 ‘쏘나타 3’가 되며 꼬였던 이름이 정리됩니다)

여태까지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쌓아온 압도적인 인지도로 말미암아 쏘나타3는 그야말로 ‘도시전설’까지 여럿 남기게 됩니다. ‘SONATA 3’ 앰블럼의 ‘S’와 ‘3’을 떼어서 가지고 있으면 수능 300점 이상을 맞아 서울대를 갈 수 있다는 소문부터, 쏘나타3의 헤드램프가 남성기를 닮아 한 여성단체가 판매중지 민원을 넣었다는 소문까지 도는 등, 명실상부하게 온 국민이 아는 중형 세단이 된 쏘나타는 극적인 디자인적 진화를 하게 됩니다.

▶ '각'진 그랜저와는 달랐던 곡선미학...비로소 정점을 찍다

1998년, ‘네오 클래식’을 표방하며 등장한 EF쏘나타는 지금까지도 디자인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쏘나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느낌의 전면부를 가졌던 뉴 EF쏘나타는 당시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전면부 디자인을 도입하는 한편, 베이지 컬러의 가죽시트를 도입해 블랙 일색이었던 차량 내장 인테리어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줬습니다. 2002년 등장한 EF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후기형 모델은 그랜저 XG의 크롬라인과 사이드몰딩을 도입하고, 리어 어퍼가니쉬는 통해 강인하면서도 품격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쏘나타 최고의 작품"이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조금은 민망하지만 중후하면서도 특색있는 디자인인건 분명했기에, 지금까지도 유행을 초월한 디자인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가 70~80년대 소형차 포니, 80~90년대 대형차 그랜저를 헤리티지 프로젝트로 재탄생시킨 현 시점에, [중형차 헤리티지]모델로 쏘나타를 재해석한다면 [쏘나타 연대기] 정 중앙에 위치하면서도 ‘곡선미’의 극한을 지향했던 해당 디자인을 반영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여기까지 현용 8세대가 출시된 쏘나타의 4세대까지, 쏘나타 차생의 ‘전반기’ 이야기였습니다. 그랜저를 출시할 시간을 벌기 위해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 속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쏘나타는 그랜저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산층 차량’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세대 각그랜저의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정 반대의 ‘곡선 미학’을 추구했던 쏘나타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쏘나타 4세대, 뉴EF쏘나타를 마지막으로 반환점을 돌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후 현재 8세대에 이르기까지 쏘나타는 다양한 디자인적인 도전에 나서는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쏘나타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쩌면 현대의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EF 쏘나타를 마지막으로, 쏘나타의 진정한 ‘인생 2막’이 시작됐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끼기엔 쉽지 않은, 흡사 진짜 ‘부장님’ 같은 존재가 되고 있던 쏘나타의 인생 후반기 이야기로 조만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차돌박이

차돌박이

shak@encar.com

차에 대한 소식을 즐겁게 전해드리는 차똘박...아니 차돌박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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