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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1위 BMW는 왜 중형차를 ‘5’라고 부를까?국내 외제차 시장에 파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년 2위’로 인식되던 BMW가 벤츠를 제끼고 올 상반기 수입차 판매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죠.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BMW는 올 1월~6월까지 3만8106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했습니다. BMW의 약진 뒤에는 BMW 5시리즈의 흥행이 있었습니다.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판매 1위 차량인 BMW 5 시리즈는 1월~6월 누적 1만 2200대가 팔리며, 같은 기간 9408대를 판매하며 2위로 밀려난 벤츠 E클래스를 큰 폭으로 따돌렸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린 외제차인 BMW 3대 중 1대 꼴이 ‘5 시리즈’인 셈입니다. 그런데 BMW 5 시리즈의 흥행 돌풍을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BMW는 왜 자사의 ‘차 이름’을 모두 숫자로 지어놓은 걸까요?
흔히들 여러 매체에서 BMW 차 이름에 있는 숫자에 대해, 3시리즈 = 준중형, 5시리즈 = 중형, 준대형, , 7시리즈 = 대형 (or 플래그십) 이라는 식으로 ‘차급’을 구분하는 용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BMW 차 이름의 숫자가 차급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이전에, BMW는 도대체 왜 중형차를 ‘5’시리즈’라고 부르고, 그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는 걸까요?
▶벤츠 게섯거라! 처절한 복수극에서 탄생한 ‘5시리즈’ 작명의 비밀
BMW 5 시리즈는 ‘중형차’라는 차급을 구분하는 용도 이전에, ‘5번째 자동차’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노이에 클라쎄(영어로는 뉴 클래스)’ 플랫폼을 사용한 다섯번째 자동차라는 뜻이죠.
‘노이에 클라쎄’ 플랫폼은 BMW가 1961년 개발한 중배기량 자동차 플랫폼입니다. 이 ‘노이에 클라쎄 플랫폼’은 오늘날 BMW가 벤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이에 클라쎄 플랫폼 개발 전인 1950년대, BMW는 벤츠와의 경쟁에서 처참하게 밀려 파산 위기에 직면해있었고, 회사를 벤츠에 매각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던 판국이었습니다. 천하의 벤츠와 자웅을 겨루며 다투는 BMW가, 어째서 이런 암흑기를 맞았던 걸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1950년대 BMW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이죠. 이 당시 BMW는 2600cc / 3200cc 고배기량 엔진을 사용하는 플래그십 세단을 주력 모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전후 복구에 경제가 어렵던 이 시기, 고배기량 차량을 운용하는 건 큰 부담이었죠. 하지만 벤츠는 고배기량 차량 외에도 1800cc 엔진을 사용하는 중배기량 세단 또한 생산하며 ‘고급지면서도 경제적’이라는 시장 포지션을 선점했고, 시장 경쟁에서 BMW를 압살할 수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BMW는 정 반대로 ‘값싼 국민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오토바이에 쓰던 298cc 엔진을 사용하는 초소형 자동차 ‘이세타’를 선보이며 나름대로 시장에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세타가 잘 팔리면 잘 팔릴수록 BMW의 브랜드 이미지는 ‘고급’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궁극적으로 BMW는 시장을 선점한 벤츠와 맞대결을 벌일 ‘중배기량’ 자동차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BMW의 ‘노이에 클라쎄’ 플랫폼입니다. BMW는 1961년 모터쇼에 출품한 1499cc 엔진을 쓴 최초의 노이에 클라쎄 차동차, BMW 1500입니다. 이후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노이에 클라쎄 자동차인 BMW 1800 (배기량 1773/1766cc), BMW 1600 (배기량 1573cc), BMW 2000 (배기량 1990cc)를 출시하며 중배기량 시장 진입에 성공했고, 벤츠를 맹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BMW는 ‘차량 배기량’을 차량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죠.
그리고 마침내 1972년, 다섯 번째 노이에 클라쎄 자동차인 BMW E12를 출시하면서부터 BMW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습니다. BMW는 해당 ‘다섯 번째 노이에 클라쎄’ 차급을 주력 라인업으로 삼으면서 계속 새로운 라인업으로 키워나가고자 ‘5시리즈’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BMW 5 시리즈는 ‘중형차’라는 의미 이전에 ‘다섯번째 노이에 클라쎄 자동차’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3시리즈는 세번째 자동차라는 뜻일까요?
▶ 47년만에 밝혀진 ‘3시리즈’의 진정한 뜻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BMW 3 시리즈의 기원을 굳이 파고들어가자면 ‘세번째’ 노이에 클라쎄 자동차로부터 시작된 것은 맞지만, BMW가 최근 밝힌 ‘3’의 의미가 따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노이에 클라쎄’ 라인업의 성공을 확인한 BMW는 ‘더 작고 더 싼’ 자동차를 만들어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 바로 ‘3번째 노이에 클라쎄’ 플랫폼 자동차였던 BMW 1600이었죠. BMW는 이 차의 휠베이스와 전장을 각각 5cm / 25cm 줄이고, 2도어 세단으로 개조한 BMW 1600-2를 출시합니다. 여기서 숫자 ‘2’는 차 문이 ‘2개’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렇게 2도어 세단으로 개조를 한 뒤 운동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발견한 BMW는 이후 차명을 ‘BMW 1602’로 바꾼 뒤, 엔진 배기량을 높인 파생모델인 ‘BMW 1802’ , ‘BMW 2002’를 연이어 출시하며 ’02 시리즈’ 라인업을 신설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02시리즈’를 ‘3시리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결과론적으로 BMW의 차량 모델명에는 ‘한 가지 법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베이스’가 된 차량을 베이스로 ‘신규’ 차량을 만들게 되면, ‘베이스’차량의 기존 라인업 이름에 1을 더해 신규 라인업을 만드는 ‘+1’식 작명 규칙 말입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크나큰 나비효과로 돌아왔습니다. BMW의 플래그십, 7시리즈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나비효과의 나비효과의 나비효과…어쩌다 보니 ‘7시리즈’?
앞서 말씀드렸듯, 1950년대 BMW는 ‘고배기량 플래그십’을 주력 상품으로 계획했다가 ‘중배기량’을 앞세운 벤츠에게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BMW는 이에 대항하고자 중배기량 플랫폼 노이에 클라쎄 시리즈를 개발했고,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거두는 걸 확인했죠. 결국 1963년, BMW는 눈물을 머금고 자사의 고배기량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BMW2600을 단종시키고 중배기량 라인업에 집중하는 ‘듯’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노이에 클라쎄’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으로 시장 점유율을 회복한 BMW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다시금 풀사이즈 플래그십 시장에 도전했죠. 2차 세계대전 이후, BMW 최초의 ‘6기통’ 엔진을 장착했던 ‘BMW NEW SIX’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BMW NEW SIX’의 숫자 ‘6’은 아주 노골적인 작명이었습니다. 바로 6기통 엔진을 뜻하는 숫자 ‘6’이었죠. 노이에 클라쎄 시리즈의 흥행 속에서 새로 출시된 플래그십 ‘BMW NEW SIX’는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고, BMW는 이 ‘풀사이즈 플래그십’을 꾸준히 라인업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후속 모델을 준비해 1977년 출시를 앞두게 됩니다. 3 시리즈가 ‘세가지 완벽함’을 뜻했던 것과, 5시리즈가 ‘노이에 클라쎄 자동차’라는 의미를 상징했던 것을 보았을 때, 해당 차급의 신차 라인업 이름은 ‘6기통 엔진’을 쓴다는 의미의 ‘6 시리즈’였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6기통 엔진’을 상징하는 숫자 ‘6’, 그 숫자를 사용한 ‘6 시리즈’를 이미 다른 차급에서 먼저 써버렸던 겁니다.
조금 전 ’02시리즈’를 ‘3시리즈’로 바꾸면서, [베이스]라인업을 개조한 후속작에 +1을 해주는 ‘+1’식 작명규칙이 생겼다는 점은 말씀드렸을 겁니다. 문제는 BMW가 ‘5시리즈’를 기반으로 ‘스포츠 쿠페’를 만들어 1976년 출시하면서 ‘5시리즈 기반의 스포츠 쿠페 라인업’의 이름을 이미 ‘6시리즈’로 지어버렸기 때문이죠.
결국 이러한 나비효과(?)탓에 BMW는 ‘BMW NEW SIX’의 후속 플래그십 역시, 전례들처럼 [베이스]모델에 +1을 더하는 ‘작명규칙’을 똑같이 따르면서, 이후 BMW의 플래그십 라인업은 ‘7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BMW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 그들은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대 첫 선을 보인 BMW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는 이후 끊임없이 세대교체를 반복하며 흥행해 나갔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3/5/7이라는 숫자 자체가 단순히 BMW의 라인업을 넘어, ‘차급’을 상징하는 숫자로서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 나왔던 3=준중형, 5=중형or 중대형, 7=대형 or 플래그십으로서의 상징성 말이죠. 실제로 타사 역시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숫자가 상징하는 차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과거 르노삼성의 ‘SM3’,’SM5’,’SM7’이나, 기아의 ‘K3’,’K5’,’K7’같이 유사한 작명의 차량들이 등장하기도 했죠.
테슬라 역시 자사의 ‘4번째’ 양산 차량인 준중형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최초에는 ‘모델 E’로 이름지으려다가 실패하자, ‘모델3’으로 이름지었는데요. 해당 중준형차의 모델을 다른 테슬라의 모델명과 합쳐 ‘S’,’E’,’X’,’Y’, 즉 ‘SEXY’한 라인업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미 ‘모델E’라는 제품명이 상표등록되어있어, 알파벳 ‘E’를 180도 뒤집은 모양의 ‘3’을 사용해 ‘모델3’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테슬라가 ‘준중형’차량의 이름을 ‘3’으로 지은 것에는 소비자들에게 ‘3’이라는 숫자가 ‘준중형’을 의미하는 숫자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 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BMW가 차급으로 불러주기 전에는
3,5,7은 그저 다만 하나의 숫자에 지나지 않았죠.
하지만 BMW가 3,5,7을 차의 이름으로 불러주었을 때
3,5,7이라는 숫자는 나에게로 와서 ‘차급’이 된 셈이죠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