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특집 전문가 칼럼 >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feat. 성수동, 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feat. 성수동, TWS)

“성수동은 패션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브랜드가 대거 자리해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는 최적의 장소로 꼽힙니다. 특색있는 F&B 브랜드도 많아 네트워크 형성에도 도움이 되고요.”

왜 성수동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무신사 커뮤케이션실 PR팀 관계자의 대답입니다. 무신사가 성수동에 신사옥을 마련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용리단길을 비롯해 신당동과 송정동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성수동은 여전합니다. 많은 브랜드가 소통하기 위한 팝업 스토어의 성지이자 색다른 체험을 찾는 MZ세대의 놀이터로서요. 대림창고부터 디올 성수까지, 통일되지 않은 풍경은 언뜻 보면 부조화스럽지만 강남이나 이태원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이 매력적입니다.

김지연 예술평론가는 지도 위에 존재하는 공간에 가치관 경험 시간이 입혀지면 맥락을 형성하고 의미가 부연된 장소로 변모한다고 말합니다. 성수동뿐만 아니라 ‘힙플’로 주목받은 해방촌, 연남동 모두 처음엔 자본과 권력을 피해 새로운 터전을 찾던 이들이 관심에 목마른 공간에 새로운 가치관과 경험을 쌓아 올리며 장소로 만든 곳입니다.

첫 만남(?)을 이곳으로 택한 자동차 회사가 있습니다. 옛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가치관과 경험을 쌓아 올리겠다는 르노삼, 아니 르노코리아입니다.

드디어 태풍 떼고 다이아

지난 3일, 르노코리아는 성수동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 ‘르노 성수’를 오픈했습니다. 쇼룸을 비롯해 서비스센터와 카페를 갖춘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르노코리아는 전동화, 연결성, 안전성에 관한 기술을 중심으로 인간 중심적이고 삶을 위한 모빌리티 브랜드로의 도약을 알렸습니다. 르노 성수는 르노코리아가 단순 자동차 제조 및 판매 기업을 넘어 120년이 넘는 헤리티지에 기반을 둔 프랑스 브랜드의 가치를 공유하며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거점인 셈입니다.

관심에 목말랐던 브랜드에 120년이 넘는 헤리티지에 기반을 둔 철학과 감성을 불어넣어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르노코리아. 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엠블럼. 20년 넘게 사용해 온 태풍의 눈 대신 글로벌 공식, 로장주(Losange)를 적용하는데, 모든 차종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고. 그나마 수요가 있는 XM3와 QM6가 각각 ‘뉴 르노 아르카나’와 ‘뉴 르노 QM6’로 이름을 바꾸면서 엠블럼도 새롭게 달게 되었지만 SM6는 제외라고. 해외에서 ‘탈리스만’으로 판매되던 SM6가 한국을 제외하고 단종된 상황이니 새롭게 포장해서 팔 생각은 없나 봅니다.

그래도 변화는 크게 다가옵니다. 지난 2000년 르노 그룹은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후에도 로열티까지 지불하면서 삼성 이름을 22년 동안 떼지 않았잖아요. 아마도 한국에서 르노의 브랜드 인지도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겠죠. 2022년 삼성과 관계를 정리하고 사명을 르노코리아자동차로 변경했었지만 기존 엠블럼을 유지했었습니다. 당시 해외 공장에서 가져오는 일부 모델만 제외하고요. 사명에서 자동차까지 떼고 엠블럼까지 교체하면서 해외 브랜드 느낌 물씬 풍기는 지금은 2년 전에 비하면 변화의 폭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죠.

어찌 됐든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으로 이러한 변화, 특히 로장주는 질 비달 르노 브랜드 디자인 총괄 부사장의 말처럼 ‘좋은 움직임’으로 다가옵니다. 깜짝 공개된 신차를 보니 더 그렇습니다.

요놈 얼굴 보소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는 앞으로 3년간 1년에 신차 1대 이상을 출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기차인 르노 세닉 이-테크 일렉트릭, 줄여서 그냥 세닉으로 부를게요. 내년 중 국내에 판매될 예정이라는데, 세닉의 두 가지 사양 중 87kWh 용량 배터리가 장착된 모델의 출시가 유력하다고 하네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장착되고, WLTP 기준 1회 충전으로 최대 625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 기준으로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진 가능하지 않을까요?

세닉은 현대 아이오닉 5보다 작습니다. 비슷한 크기로는 폭스바겐의 ID.4를 꼽을 수 있는데, ID.4보다 조금 더 짧고 낮아요.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선 ‘2024 올해의 차’로 선정된 바 있는 세닉을 두고 질 비달 부사장은 ‘미래 지향적 아이콘’으로 표현했는데요. 날카로운 선에서 연출되는 강렬함과 디테일을 살린 섬세한 디자인 그리고 하이테크적 면모를 모두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직선이 두드러지는 헤드램프와 주간 주행등과 더불어 마름모 모양의 패턴이 그릴처럼 녹아든 전면이 인상적입니다.

12.3인치 계기판과 12인치 디스플레이가 자리 잡은 실내는 화려합니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발산되는 빛과 그래픽 덕분인 것 같네요. 전기차답게 여유 있는 실내에 수납공간도 여기 저기 마련해 실용성도 높아 보입니다. 솔라베이 루프라 불리는 글라스 루프는 유리 투명도를 조절해 외부 빛을 차단하는데 꽤나 매력적입니다. 또렷하고 강인한 다자인으로 푸조를 되살렸던 탁월한 디자이너의 마법은 르노에서도 계속되나 봅니다.

오라(aura)가 될 오로라(aurora)?

세닉 출시는 아직 멀었지만 지난 4년간 신차가 없었던 르노코리아는 올해 다른 ‘신상’부터 선보입니다. 르노코리아는 오는 6월 부산 모터쇼를 통해 신 모델 ‘오라라 1’을 공개하고 하반기 중 판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로라 1은 ‘오로라 프로젝트’의 첫 모델입니다. 오로라 프로젝트는 르노코리아 주도로 개발하고 생산한 신차를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선보이는 중장기 전략으로, 이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신차는 오로라 1을 비롯해 오로라 2, 오로라 3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로라 1은 중형 SUV(하이브리드), 오로라 2는 중형 CUV(하이브리드), 오로라 3는 준대형 SUV(전기차)로 출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정보가 많이 공개되지 않아 이런저런 소문과 낭설이 나도는 와중에 르노코리아 브랜드 리뉴얼 영상 속 등장하는 모델을 근거로, 오로라 1은 중국 지리자동차의 싱유에 L의 배지만 갈아 끼운 차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오로라 1은 지리그룹의 스웨덴 R&D센터에서 개발한 플랫폼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되는 건 맞지만, 오로라 1을 포함한 오로라 프로젝트는 그동안 한국에서 부진을 겪었던 르노코리아뿐만 아니라 르노그룹의 전환점이 될 중대한 사안이기에 그런 우행을 저지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대대적인 재단장이후 첫 만남이나 다름없기도 하고요.

제 귀를 스쳐간 어느 노래 가사에 의하면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너무 어렵다는데, 계획대로 라인업을 늘리고 서비스센터와 같은 애프터서비스 관련 인프라도 확충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세계의 비전을 담는 프랑스 브랜드로서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한국에서 쌓아 올려가길 바랍니다. 현대, 기아 말고 고려할 만한 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건 소비자에겐 좋은 일이니까요.

반박시 님 말이 다 맞아요.

▼ ▼르노 이전 푸조에서의 질 비달 이야기도 있어요 ▼ ▼

글 이순민
사진 Renault Group, Renault Group MEDIA WEBSITE, Renault Korea, 네이버 지도

이순민

이순민

royalblue@encar.com

Power is nothing without style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