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이 영화 ‘007 골드핑거(1964)’ 개봉 60주년을 맞이해 영국 런던 벌링톤 아케이드에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007 시리즈 팬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을 다양한 콘텐츠가 가득하다는 ‘하우스 오브 Q(House of Q)’, 구경이나 해볼까요?
공식 시리즈만 스무 편이 넘는 007 영화 중 골드핑거인 이유는 바로 ‘DB5’. DB5는 애스턴마틴이 1963년 출시한 그랜드 투어러 모델입니다. 영화에서 DB5는 기관총, 방탄 철판, 타이어 파쇄기 등 여러 장치를 탑재해 제임스 본드의 숙적 오릭 골드핑거와 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본드카’로 등장했습니다.
이후에도 DB5는 많은 007 시리즈에서 존재감을 뽐냈죠. ‘골든아이’에서 페라리 F355와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벌이는가 하면 안팎으로 쇄신을 보여줬던 50주년 기념 작품 ‘스카이폴’에선 상징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가장 최근 작품인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초반 액션 시퀀스의 주인공으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죠.
잠깐 등장했던 DB10을 제외하고 DB5의 후속 모델들은 시리즈에 출연하지 못했는데, DB5는 8개의 작품에 참여했죠. 덕분에 DB5는 가장 유명한 자동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제임스 본드의 은총(?)으로 DB4 출시 이후 상승세에 오른 애스턴마틴의 인지도는 한층 더 높아집니다.
참고로 DB5의 DB는 1947년부터 1972년까지 브랜드를 소유했던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의 약자입니다. 1963년부터 1965년 사이에 판매되던 DB5는 4.0L 6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 출력 330마력, 최대 토크 39.8kg.m의 성능을 발휘했다고 하네요. 최고 속도는 시속 240km를 넘었다고 합니다. 디자인은 이탈리아 코치 빌더인 카로체리아 투어링 수퍼레제라(Carrozzeria Touring Superleggera)가 맡았고요.
19세기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벌링톤 아케이드. 이곳의 12-13번지에 있는 잡지 가판대로 보이는 비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하나의 숨겨진 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문을 지나면 샴페인 볼랭저(Champagne Bollinger)를 제공하는 시크릿 바(speakeasy bar)가 나옵니다.
이 바에선 애스턴마틴과 EON 프로덕션의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스케치, 도면, 설계도, 초기 DB5의 기술 도면과 부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앞으로 나올 애스턴마틴 모델에 대한 힌트가 숨겨진 극비 케이스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네요.
이뿐만 아니라 곳곳에 007을 투영했다고 합니다. 골드핑거의 오리지널 대본부터 포스터, 세트장 사진까지 말이죠. 제임스 본드와 오랜 인연을 이어 온 브랜드, 바워스 앤 윌킨스(Bowers&Wilkins)의 오디오의 선율도 공간을 채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다른 층에 위치한 ‘컨피규레이터 랩(configurator Lab)’에선 애스턴마틴 디자인 전문가들과 함께 나만의 애스턴마틴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애스턴마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팀이 주최하는 디자인 워크숍과 같은 데일리 이벤트도 진행된다는 하우스 오브 Q는 영국 런던 피카딜리 51번지, 벌링톤 아케이드 12-13번지에서 8월 4일까지 운영됩니다.
마르코 마티아치 애스턴마틴 글로벌 브랜드 사업총괄 책임자는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애스턴마틴과 또 다른 아이콘, 007 제임스 본드와 60년 인연을 기념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하우스 오브 Q는 애스턴마틴 고객, 자동차 애호가, 그리고 007 팬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된 만큼 누구나 애스턴마틴과 제임스 본드의 세계관에 몰입해 골드핑거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를 함께 기념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도전자’로서 럭셔리카 시장을 개척 중인 애스턴마틴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성능과는 크게 관련이 없더라도 제품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강력한 이야기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애스턴마틴의 국내 판매량은 늘고 있지만 100대 미만으로, 람보르기니(400대 이상)나 페라리(300대 이상)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성적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영국에서 탄생한 럭셔리 브랜드,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랑 비교하면 더욱 그렇고요. 물론 애스턴마틴 같은 브랜드는 희소성에 가치를 두기에 판매량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더 많이 팔아서 나쁠 건 없죠. 문제는 어떻게 파느냐지요.
역사, 디자인, 성능 등 브랜드가 이룩한 업적을 토대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유의미한 감정적 변화를 일으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영웅만 한 것이 없습니다. 제임스 본드처럼요.
10주년을 기념해 전시장을 새로 오픈했다고 하던데, 고고하게 애스턴마틴답게 팔고 싶다면 몰입을 선사할 수 있는 세계관과 이야기로 브랜드만의 혼(soul)을 더 강조해 보는 것은 어떨지. 이상 Q 하우스 랜선 투어였습니다.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글 이순민
사진 Aston Martin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