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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닉 9과 EREV 그리고 VW

80여 일 정도 남은 2024 LA 오토쇼.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듯 현대자동차의 3열 전기 SUV, 아이오닉 9이 LA에서 공개되고 전시될 예정입니다. 큰 차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잘 팔리는 곳이라 아이오닉 9의 데뷔 무대가 미국으로 정해졌다는데요. 그 이유를 앞서 출시된 기아의 EV9의 활약에서 찾기도 하더군요.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9600대 이상 판매된 EV9 덕분에 기아가 전기차 판매량에서 현대차를 앞섰거든요. 특히 2분기만 놓고 봤을 때 전기차 판매량에서 기아보다 앞선 브랜드는 테슬라, 포드, GM뿐인데 현지에선 EV9의 활약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한다네요.

이로 미루어 봤을 때 EV9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되 안팎으로 보다 최신의 것이 반영될 아이오닉 9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다른 곳보다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인가 봅니다. 아이오닉 9은 5m가 넘는 길이, 배터리, 500km 이상의 주행 거리 등에서 차별성을 두어 상품성이 높아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들어지고요.

아이오닉 9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올해 4분기부터 생산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니까 현지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는 모델이 되겠죠. 그런 이유로 미국 자동차 전문 미디어 테크 업체 모터스포트 네트워크(motorsport network) 소속 인사이드EVs(INSIDEEVs)는 포드가 하이브리드로 시선을 돌린 지금, 현대자동차그룹이 3열 전기 SUV 세그먼트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모델로 아이오닉 9을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형제 모델인 EV9을 통해 입증된 성공 가능성과 세제 혜택 그리고 느슨해진 경쟁 업체들의 압박. 무대는 얼추 갖추어진 것 같네요. 현대차는 새로운 전기차를 계속해서 출시하며 전동화 과도기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전기차에만 올인하겠다는 건 아닌가 봅니다. 전기차로 넘어가겠다던 제네시스에서도 하이브리드가 나올 예정이거든요.

EREV라 쓰고 BRIDGE로 읽는다?

지난 28일 현대차는 ‘2024 CEO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현대 웨이’를 공유했습니다. 현대 웨이는 모빌리티와 에너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중장기 전략입니다.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변함없는 전동화 전환, 소프트웨어 기술력 고도화, 수소 에너지 기술 관련 역량 강화. 이 중 전동화 관련해서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전기차 시장 상황에 대응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다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입니다.

그 대응의 첫 번째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확대 적용과 개선. 현재 준중형과 중형 차급 중심이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부터 대형까지 넓힐 뿐만 아니라 제네시스 전 모델에도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전기차 전용 모델은 제외하고요. 앞으로 최대 14개의 모델에서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전기차 수요 정체와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수요에 대한 대응책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TMED-II를 내년부터 적용할 예정입니다. 현대차에 따르면 차세대 시스템은 기존 TMED과 비슷한 수준의 원가이지만 성능과 효율 면에서 향상된 것이 특징인데, 특히 출력과 연비가 경쟁 업체의 시스템보다 우월하다고 합니다. 스마트 회생제동과 V2L(Vehicle to Load) 기능도 더해질 거라고 하네요.

추가로 오는 2028년까지 하이브리드 모델을 133만 대 판매하는 것이 현재 설정한 목표인데 이를 위해 현대차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혼류생산 체제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전기차가 만들어지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도 포함된다고 하니 북미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보다 공격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일지도.

두 번째는 EREV(Extended Range Electrified Vehicle). EREV는 엔진이 전기를 생산해 배터리 충전을 지원하는 자동차입니다. 제조사 입장에서 EREV는 내연기관 엔진을 활용할 수 있고 배터리 용량을 낮춰 전기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네시스에 적용될 하이브리드는 EREV입니다.

현대차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판매할 EREV를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전기차 특유의 주행 느낌을 가미하고 9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EREV에게 전기차 전환의 가교(Bridge) 역할을 맡길 건가 봅니다. 2026년 말 북미와 중국에서 EREV 양산을 시작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돌입할 예정인데요. 북미에선 제네시스 포함 중형 SUV 차종을 먼저 선보이고, 중국에선 준중형 급 중심으로 간다네요.

최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와 중국에서 연간 11만 대 이상 판매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EREV는 어디까지나 가교이기에 현대차는 전기차 배터리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을 거라고 합니다. 보급형 NCM 배터리는 그 계획 중 하나. 2030년까지 보급형 NCM 배터리를 새로 개발하겠다는 건데요. 니켈 비중을 조정해서 기존 NCM 배터리 대비 재료비를 절감하고 배터리 에너지 밀도도 개선해서 20% 이상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것이 골자라고.

배터리 안전 관련 기술도 고도화하고요.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의 사전진단 기술과 배터리 시스템의 안전 구조 확보 강화 같은 것들이요.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 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배터리 셀 간 열전이를 방지하는 기술에도 신경을 쓰겠다네요.

이를 통해 현대차는 하이브리드로 시장에 대응하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전동화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전기차 모델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경제형 모델을 비롯해 프리미엄과 고성능 전기차 등 21개까지 확대해 다채로운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겁니다. 관련 기술 역량 강화와 이에 기반한 다양한 모델을 선보여 앞으로의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이지요.

폭스바겐도 앓는 소리 하는 요즘

며칠 전 독일 최대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자국 내 공장 폐쇄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구조조정을 예고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자동차 부품, 승용차, 상용차 등 독일에 있는 공장 10곳 중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 각각 1곳씩 폐쇄하는 걸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함께 2029년까지 전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고용 안정 협약도 해지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지 언론 슈피겔은 폭스바겐의 예고대로 진행된다면 약 2만 명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폭스바겐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해 현지에서 영향력을 키워왔고 2008년부터 2022년까지 판매량 1위를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전기차 BYD에 밀려났습니다.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해 온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급속도로 늘려가며 폭스바겐을 포함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 상반기 폭스바겐의 중국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은 10% 이상 감소했습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독일은 제조업에서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독일에서의 생산 비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죠.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는 거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비용도 증가했을테니까요.

생산 비용과 가격 경쟁력도 문제지만 이렇다 할 '다음'이 없어 보입니다. 업계를 선도하는 테슬라를 위협할 만큼 빠르게 발전 중인 중국 업체들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2년 전 폭스바겐은 모듈형 전기차 구동 플랫폼 MEB에 이어 차세대 플랫폼 SSP를 토대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MEB보다 더 진보된 차세대 모듈형 툴킷인 SSP에 첨단 전자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미래를 그려나가겠다고 했었는데요, 연기됐다는 것 말고는 들리는 소식이 없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를 선택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내부에서 더 많은 공감을 얻었나 봅니다.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자리에서 스티브 잡스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달려간다'는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인용했었습니다. 변화를 선도해 왔고 앞으로도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애플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짧고 강렬하게 전하기 위해서요.

누군가는 이 말에 감명을 받았고 누군가는 아니었나 봅니다.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글 이순민
사진 Hyundai Worldwide, HK PR Center, Volkswagen Newsroom

이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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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blue@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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