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마세라티의 판매량은 6500대 정도라고 합니다. 전년보다 50% 이상 줄어들었고 영업 손실은 8200만 유로(약 1201억 원)에 이른다고 하네요. 두 달 전쯤 스텔란티스는 치열해진 경쟁으로 인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를 안고 갈 여유는 없다고 말해 마세라티 매각설이 대두되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저조한 실적을 개선할 해결책을 강구 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마케팅 개선을 생각 중인가 봅니다.
최근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는 마세라티가 품질 향상을 이뤄냈고 적합한 라인업과 기술을 갖췄으니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거든요. 잠재적인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시장에서 올바른 포지셔닝을 위한 제대로 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겁니다. 근데 정말 마케팅만의 문제일까요?
포장 말고 내용물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 대학교 켈로그 경영 대학원 석좌교수는 마케팅을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하고 제공하며 자유롭게 교환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입니다.
소비자는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기본적인 요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업은 그들의 관심을 교환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때 교환은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지불하는 등가를 의미합니다. 주로 돈이겠죠. 그러니까 결국 소비자는 자신의 불만족스러움을 만족으로 바꾸어주는 것에 가치를 매기고 그 값을 치릅니다.
스텔란티스가 마세라티의 저조한 실적이 마케팅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들에 매겨진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 일 테니까요.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1은 마세라티 부진에 대한 스텔란티스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뢰성에서 문제를 찾더군요. 마세라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르반떼와 기블리는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고급차로 선정된 바 있는데, 잠깐이 아닌 몇 년간 지속된 브랜드 베스트셀링 모델의 좋지 못한 평가는 브랜드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두 모델들이 단종되고 J.D. Power의 품질 조사에서 마세라티가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는 건 그들의 악명이 높았다는 방증이라면서요.
더불어 모터1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차들을 후속작 없이 보내버린 것에 대해서도 지적하더라고요. 르반떼와 기블리 생산은 중단됐지만 후속 모델의 출시는 빨라야 2027년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대체자 없이 팀의 핵심 멤버를 팔아버린 모양새 같다는 거죠.
브랜드 전동화를 앞두고 시행한 라인업 정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란투리스모, 그레칼레, MC20 등 현재 구성은 더 다양한 범위의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기엔 다소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모터1은 엔진 라인업에도 얘기하더라고요. 브랜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V8 엔진도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하면서 마세라티의 큰 매력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과 같다며.
마세라티코리아는?
앞선 마세라티 글에서 다루기도 했었는데요. 지난 7월, 마세라티코리아가 출범했습니다. 한국 진출 17년 만에 설립된 공식 법인입니다. 이젠 슈퍼카가 1년에 3만 대 이상 팔리는 한국을 직접 챙기겠다는 거겠죠. 참고로 한국은 마세라티의 판매 5대 주요국 중 한 곳이라네요.
며칠 전 다카유키 기무라 마세라티코리아 총괄 책임자는 ‘현재 브랜드를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고요.
100년이 넘는 역사에 기반한 이탈리아만의 예술적인 헤리티지를 담은 럭셔리 브랜드라는 점을 더욱 널리 알려 돈보다 취향과 만족이 우선인 이들을 공략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당장은 판매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없답니다. 판매에 열을 올리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면서요. 브랜드가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게 되면 판매량은 알아서 증가할 거라 생각하나 봅니다.
새로운 여정을 위해 마케팅 비용도 판매량이 두 배 가량 더 많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는데요. 판매량이 434대로 확 떨어진 한국에서도 문제 원인과 해결책을 마케팅에서 찾는 것 같네요. 아무튼 마세라티코리아는 강남 전시장을 글로벌 콘셉트 스토어로 리뉴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나설 예정입니다. 맞춤 제작 프로그램인 푸오리세리에를 활용해 브랜드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잔존 가치를 높이기 위해 품질 보증 기간을 5년으로 늘리고 중고차 가격 보장을 위한 신차 할인을 없애며 인증 중고차 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라네요.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선
브랜딩 부티크 PRFD는 강력한 브랜드의 조건으로 존재감, 관계, 신념, 몰입을 제시합니다. 특정 가치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브랜드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 가치가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두드러져야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브랜드가 있으니까요. 접속이 됐다면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PRFD는 강조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는 식으로요.
이와 함께 브랜드만의 신념을 확고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네요. 이를테면 어떤 생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지, 그 생각은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등등. 신념은 확고할 수록 브랜드가 가치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의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페라리를 보세요. 페라리는 F1에 집중합니다.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방식으로서요. 페라리는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에서 브랜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대중과 관계를 맺으며 신념을 과시합니다. 그렇게 더 많은 이들의 몰입을 유도하죠. 올 2분기 페라리는 3400대가 넘는 차를 판매했는데 작년과 비교했을 때 3%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연례 보고서를 통해 TV 광고와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나 제품을 홍보하지 않는다고 밝힌 페라리지만 효과적인 마케팅은 펼치고 있습니다.
마세라티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모습이 이런 거라면 얼핏 봤을 때 마케팅의 문제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페라리는 적절한 방향 설정과 함께 푸로산게, 296, 로마 등 제품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더욱이 쌓여버린 악명으로 인한 후퇴한 브랜드 평판, 공장 인원 감축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지연, 수익을 이끌 핵심 모델의 부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마세라티가 당면한 어려움은 마케팅뿐만 아니라 제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해결책을 제품에서도 찾아야 하고요. 새롭게 선보인 GT2 스트라달레가 좋은 평가를 받아 신차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엔 그레칼레와 그란투리스모 등으로 이루어진 지금 라인업으로는 버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폭스바겐도 흔들리는 산업의 큰 변혁 속에서 마세라티는 과연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강력한 브랜드로 다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걸 더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글 이순민
사진 Maserati official media site newsroom, 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