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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중국 자동차 굴기는 어디까지 왔나?

글로벌 자동차 시장도 미중 양강 구도로 재편될까?

[요약]
1. '중국 사람들조차 타기 싫어한다'는 과거의 인식과 달리, 중국 내수 시장에서 중국 로컬 자동차 브랜드의 점유율이 과반을 넘어섰고,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됐습니다.
2. 이렇게 중국 정부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현실화된 중국 자동차 굴기는,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3. 이제 중국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의 신차 판매 침투율은 50%를 넘어섰고,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동남아 시장까지 점령하고 있습니다.
4. 유럽과 미국 등 자동차 산업 선진국들은 관세 장벽으로 중국 전기차의 침투를 막고 있지만, 문제는 '유럽'입니다.
5. 중국 전기차의 침공 가능성이 가로막히면서,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더욱 더 전기차 전환을 늦추고 내연기관차에 집중하려 할 것입니다.
6. 하지만 전기차 산업은 배터리,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플랫폼'과도 같아, 전기차 보급이 지연될 시 이러한 유관 산업의 성장 또한 지체될 수 있습니다.
7. 실제로 세계 Top 10 자율주행 기술 기업 중 유럽 기업은 전무합니다. 또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의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 전기차 기업들에 투자와 합작 법인 설립을 제안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8. 이러한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신격화할 필요는 없지만, 더이상 과거와 같이 무시하며 덮어두고만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입니다


"누가 칼 들고 위협하지 않는 이상 안 탄다"

"들어오자마자 망할 거다"
"브랜드 로고 쪽팔려서 탈 수 있겠냐"

중국 대표 전기차 기업인 BYD의 국내 시장 공식 진출 기사에 달렸던 댓글들입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지만, 고가의 자산이자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자동차에 있어서는 특히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것 같습니다. 워낙 가격도 저렴하고 중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니 중국 사람들이야 많이 타겠지만, 독일, 일본, 미국 등 글로벌 브랜드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는데요.

하지만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놀랍게도 2023년 중국은 491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의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물론 '테슬라 같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중국을 생산 기지로 활용하기 때문 아니냐?'라는 반문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23년 기준 테슬라는 수출량 상위 10개 제조사 중 5위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 9개 제조사는 모두 중국 로컬 브랜드입니다.

또한 독일, 일본, 미국 브랜드가 득세하던 중국 내수 시장에서도 중국 로컬 브랜드의 점유율이 2013년 40%에서 2023년 10년만에 56%까지 증가했습니다. 특히 미래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중국 내 속칭 젠지 (Gen-Z) 세대는 자동차 구매 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독일에 이어 2순위로 자국 브랜드를 택했습니다.

젠지 세대의 국적별 자동차 브랜드 선호도 (출처: China Marketing Insights)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중국 내수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까지 노릴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해버렸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한국의 현대기아차보다 우수하다'거나,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모두 점령할 거다' 등의 급진적인 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구리다', '후지다'며 깔보던 중국 업체들의 성장이 이제는 마냥 덮어놓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성장했고,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무시를 해도 되는지 혹은 제대로 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하는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테니까요.

한 때 중국인들에게조차 무시받던 중국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열위를 극복하고 이러한 위치에 오른 것일까요?

중국은 어떻게 자동차 시장의 판을 바꿨나?


간단하게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궤적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자동차 산업은 소위 말하는 '발전한 국가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선진국 혹은 이에 가까운 경제 규모에 다다른 국가들은 저마다 자국을 대표하는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하나씩은 거느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또한 고용 창출 효과나 전후방 산업 확대 효과도 큽니다. 때문에 단순히 선진국이어서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다기 보다는, 자동차 산업 발전 덕에 선진국 지위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은데요.

때문에 개도국, 혹은 중진국이라면 어떤 국가의 정부든지 자동차 산업을 제대로 한번 육성해보고 싶다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찍이 80, 90년대부터 중국의 경제 굴기를 위한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자동차 산업을 지목하고, 철저히 국가 주도하에 육성을 추진합니다.

이 때 시행된 것이 이른바 '3대(大)·3소(小)·2미(微)' 정책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 중국 정부는 크고 작은 8개의 자국 자동차 제조사를 지정 후, 이들에게만 중국 내 모든 성 급 도시에 승용차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여기에 들지 못한 나머지 제조사들은 일부 도시에만 판매가 가능하거나 상용차 판매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중국 나름의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것이죠.

또한 '3대(大)·3소(小)·2미(微)' 제조사들로 하여금 글로벌 OEM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게 합니다. 글로벌 OEM들은 오직 이들 중국 로컬 제조사와의 합작 형태를 통해서만 중국 내수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베이징자동차와의 합작을 통해 중국에 진출한 것이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사례일텐데요.

이렇게 글로벌 제조사와의 합작을 통해, 자국 업체들이 독일, 일본 경쟁사들의 쉽게 따라하기 힘든 기술과 노하우를 자연스레 흡수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3대(大)·3소(小)·2미(微)'에 속하지 못한 업체들은 모두 사라졌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유명한 BYD입니다.

지금은 전기차 제조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BYD는 내연기관차로 먼저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모델이 2005년 출시된 F3인데요. 토요타의 코롤라를 있는 그대로 베껴옵니다. 너무 잘 베껴서(?)인지는 몰라도 중국 내수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BYD는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요.

합작이라는 공식 경로로 글로벌 업체의 노하우를 흡수할 수 없었던 업체들은 이렇게 '카피캣' 전략이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동차 사업을 지속합니다.

BYD F3(좌)와 토요타 코롤라(우)의 모습 (사진 출처: X - KoreanMakeOver)

이렇게 중국 정부의 집중 육성을 바탕으로 중국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작'과 '모방' 중심의 육성 전략에는 근본적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가까이 두고 옆에서 보고 배운다 한들, 독일, 일본 등의 경쟁사가 백 년 넘게 쌓아온 기술 노하우를 모조리 흡수하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그들의 브랜드 헤리티지는 노력 만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촘촘하게 짜여진 특허망 그물을 피해 그들보다 나은 성능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결국 후발주자인 중국 입장에서는, 자본과 인력을 압도적인 규모로 쏟아낸다고 해서 단시간 내에 따라잡기 쉽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내리게 된 결단은, 경쟁의 '판'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일본 업체가 꽉 쥐고 놓지 않고 있는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힘들게 경쟁하기보다, 아직 무주공산인 전기차 시장이라면 중국이 선도주자로 나서 잘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인데요.

2009년 중국 정부는 전기차 시범 보급을 본격적으로 개시합니다. 그리고 산업 육성을 위해 소비자와 제조사 양방면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조금을 살포하기 시작합니다. 2009년부터 가장 최근인 2023년까지 약 15년간 집행된 것으로 알려진 보조금 총액은 약 2,308억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300조원에 달합니다. 매년 약 20조원의 보조금이 집행된 셈인데요.

이게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감을 대략적으로나마 감을 잡아보겠습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중국 내에서 생산된 신에너지차(BEV, PHEV, FCEV 등 모두 포함)는 약 960만 대 가량이라고 합니다. 2023년 한 해 중국 정부가 집행한 전기차 관련 보조금은 약 453억 달러이고요. 단순 계산으로 차량 한 대당 무려 약 60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 셈입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지급한 보조금 규모 (사진 출처: CSIS)

이 정도면 가히 전기차 산업이 안 커질래야 안 커질 수 없는 규모입니다. 덕분에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내연기관차에 비할 바가 못 되었던 중국 전기차 산업은 조금씩이나마 계속 커가기 시작하는데요. 실제로 2013년 단 0.1%에 불과했던 중국 내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은 2015년 1.3%, 2017년 2.7%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중국 내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 (출처: 중국자동차공업협회, KOTRA)

하지만 아무리 많은 보조금을 쏟아 붓는다고 한들 전기차 침투율이 한자릿수 초중반을 넘지 못하며, 자력 성장에는 한계를 느꼈던 듯합니다.

2017년, 중국 정부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 테슬라라는 메기를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존에 해외 자동차 제조사는 중국 로컬 브랜드와의 합작 법인 형태로만 중국 시장 진입이 가능했는데요. 테슬라에게는 이러한 규제의 예외를 적용해 100% 자체 지분으로 중국 진출을 허용한 것입니다.

비록 합작 법인이 아니라고는 하나, 테슬라가 현지에 공장을 짓고 다수의 현지 인력을 채용하면서 인력 유출입의 형태로 그 전기차 개발, 제조 기술과 노하우가 중국 내 다른 업체들에 퍼져나갈 수 밖에 없겠죠.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우수한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되면서, 로컬 브랜드 역시 이에 발맞춘 성능과 품질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합작 법인 규제의 예외 적용에 대한 대가로, 테슬라는 중국 내 생산 차량에 쓰이는 부품의 95%를 중국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약속하는데요.

이는 단순히 중국 부품 업체들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지에서 부품 공급 업체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성능과 품질을 충족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겠죠. 때문에 조금 부족한 업체라고 할지라도 테슬라의 자체 노하우를 전수하면서까지 이들을 가르쳐 키워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테슬라라는 메기 한 마리를 중국 시장에 끌어들임으로써, 중국 내 완성차는 물론이고 부품 생태계까지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이제 중국에서 글로벌 OEM의 시대는 끝났다


덕분에 꾸역꾸역 성장하던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은 코로나 시기를 티핑 포인트로 폭발적인 성장을 개시합니다. 2021년, 중국 내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은 무려 13.4%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성장했는데요. 성장세는 꺾이지 않고 2022년 25.6%, 2023년 31.6%로 퀀텀점프를 계속해 나갑니다.

그리고 2024년 7월, 드디어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은 전체 승용차의 50%를 넘어서며 내연기관차를 앞지릅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2030년 이전 70, 80%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존재합니다. 사실 어느 국가이건 간에 중장기적으로 전기차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부정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중국 시장과 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국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쉽게 나타나기 어려울 겁니다.

물론, 중국 시장의 이러한 급성장의 그늘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규제하고 전기차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풀면서 속된 말로 멱살 잡고 끌고가면서 전기차 시장을 성장시켰습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생적인 생존 역량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까지 여럿 생겨났는데요.

현재 중국 내에는 무려 150개가 넘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존재하며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 시장이 미국이나 유럽 시장보다 몇 배 크다고 한들, 이렇게 많은 브랜드들이 필요할까요?

중국 자동차 제조 공장 별 가동률 (출처: Just Auto)

실제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경쟁력 높은 업체 중심으로의 옥석 가리기가 진행 중입니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 같은 자동차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120%에 육박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채 20%도 안되는 공장들도 즐비한 상황입니다. 겉으로 봤을 때 일견 호황으로 보이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도 경쟁력 낮은 업체들은 급격하게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가려지는 업체들에, 중국의 영세한 로컬 업체 뿐 아니라 유수의 글로벌 OEM들이 포함됐다는 겁니다. 실제로 위의 도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동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장에는 포드, 현대, 기아, 미쓰비시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글로벌 제조사들의 공장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 때 중국 업체들의 벤치마킹이었던 글로벌 제조사들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중국 로컬 브랜드 제품의 품질 개선, 글로벌 제조사들의 현지 투자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앞서 이야기한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아래 그래프 우측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독일, 일본 등 해외 제조사들의 브랜드 인지도가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하지만 좌측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요. 상위 5개사 중 1위인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 4개는 모조리 중국 로컬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3-5위는 중국 전통 내연기관차 브랜드가 아닌, 샤오펑, 리 오토 등과 같은 신생 전기차 브랜드인 것으로 보이고요.

전기차(좌)와 내연기관차(우)의 브랜드 선호도 (출처: 맥킨지)

요약하면,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으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장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합작 법인 진출 규제의 폐지인데요. 앞서 언급했듯 해외 자동차 제조사들은 과거 중국 진출을 위해 반드시 중국 로컬 제조사와의 합작을 통해 진출해야 했었으나, 2022년부터는 이러한 규제가 폐지됩니다. 그 배경에는 해외 제조사와의 합작을 통해서 더 이상 얻을 게 없고, 자국 로컬 제조사들의 경쟁력이 이미 충분히 올라왔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겠죠.

이렇게 파죽지세로 성장 중인 중국 전기차는 중국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남아 시장인데요. 토요타, 닛산 등 일본차가 호령하던 동남아 시장이 이제 중국 전기차의 텃밭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태국의 경우, 아래 그림과 같이 가장 잘 팔리는 전기차 Top 5 중 테슬라를 제외하면 나머지 4개 차종 모두 '중국산'입니다. 비록 테슬라, 현대기아차보다 품질과 성능이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압도적인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태국 내 베스트셀링 전기차 모델 (출처: Caixin Global, Kadence)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을 수 있는 유럽, 미국은 이러한 중국 전기차의 위협에 맞서 관세 장벽으로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중국산 전기차에 유럽은 45%, 미국은 무려 100%의 어마무시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며, 자국 시장 보호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실상, '중국 전기차는 여기서 팔지 마라'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일론 머스크 역시 '관세 장벽이 없다면 중국산 전기차가 경쟁자들을 파괴해버릴 것이다'라는 발언을 내놓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현대기아차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모터쇼에 1,000명이 넘는 임직원을 파견하고, 중국 전기차를 사내에 전시하며 임직원들의 스터디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출처: 매일경제)

비록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라는 불공정 경쟁 요소로 찜찜한 성장을 했다고는 하나, 어쨌든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은 이제 단순히 품질이 낮다며 덮어 두고 무시하기 힘든 수준으로 성장한 겁니다.

만약 미국, 유럽처럼 정부 차원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장벽을 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동남아를 시작으로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의 시장에서는 가성비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 전기차와의 피터지는 경쟁이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기존 독일, 일본, 미국, 한국 업체가 주름잡던 다(多)강 구조에서, 미국 vs 중국의 양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유럽은 ‘모빌리티 후진국’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 유럽 시장은 관세 장벽만 쳐두면 중국 기업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니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빗장을 걸어 잠근 후, 미국, 유럽의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로의 전환을 늦추고, 기존 내연기관차 사업에 조금 더 집중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기차의 위협도 없으니, 더욱더 굳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전기차로의 전환에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전기차로의 전환을 늦춘다는 것은, 단순히 전기차를 덜 팔고 내연기관차를 더 파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기차는 다른 여러 미래 먹거리 산업 발전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 산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전기차가 많이 보급돼야만 이에 탑재되는 배터리, 자율주행과 같은 파생 산업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함께 발전할 수 있겠죠. 때문에 전기차 보급이 지연될 시 배터리, 자율주행 같은 미래 산업의 경쟁력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유럽입니다. 미국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테슬라 같은 막강한 전기차 기업이 자리하고 있고, GM과 같은 전통 자동차 제조사도 전기차로의 전환에 적극적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과 협업 하에 웨이모, 크루즈, 앱티브 등 유수의 업체들이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선도주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에는 딱히 이에 비견할만한 전기차 기업이나 자율주행 기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래 가이드하우스의 글로벌 자율주행 기업 기술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 10개사는 온통 미국과 중국 기업이며, 유럽 기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글로벌 자율주행 기업 기술 순위 (출처: Guidehouse Insights, 대신증권)

어쩌면 유럽은 중국 전기차의 위협보다, 지금처럼 자동차 시장의 첨단 기술 경쟁에서 뒤쳐져 갈라파고스화되는 리스크를 더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의 기술 주도권 상실 조짐은 이른바 '리버스(Reverse) JV'에서도 드러납니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 정부가 글로벌 선도사의 노하우 흡수를 위해 택한 대표적 방식이 중국 브랜드와 글로벌 브랜드 간의 합작 법인 설립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이 역으로 중국 브랜드에 협력을 요청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2023년, 스텔란티스는 약 2조원을 투자해 중국 신생 전기차 업체인 립모터의 지분 20%를 확보하고, 합작사인 '립모터 인터내셔널'을 세웁니다. 립모터 인터내셔널은 립모터 전기차의 해외 수출 사업을 맡게 됐고요.

또 같은 해 폭스바겐은 마찬가지로 약 1조원을 투자해 중국 신생 전기차 업체인 샤오펑의 지분 4.99%를 확보했는데요. 이를 통해 샤오펑의 전기차 전기 / 전자 아키텍쳐를 활용한 폭스바겐 신차를 개발하는 것이 지분 확보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뉴스 기사만으로 유럽 업체들이 먼저 나서서 이러한 협력을 진행하는 이유가 단순히 중국 기술이 우월해서라고 성급히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등 수준 기술도 중국이 더 가성비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정된 자본을 본진인 유럽 시장에 집중 투자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보고 배우려 했던 유럽 전기차 기업들이, 이제는 역으로 중국 기술을 돈 주고 사오려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무시해서도 안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가 무조건 보고 배워야한다는 식으로 중국 자동차 산업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떠받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 같이 '저품질'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덮어두고 무시하기에는 중국의 경쟁력이 충분히 위협적이고 경계할만한 수준으로 성장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경쟁력이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더 발전하는지, 관심을 기울여 지켜보고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게 이 글의 결론이자 목적입니다.

[Reference]
- The Chinese EV Dilemma: Subsidized Yet Striking (24/06/20, CSIS)
- The polarisation of China’s automobile production capacity (23/12/12, Just Auto)
- 중국 자동차 시장의 명과 암 (24/02/14, KOTRA)
- 폭스바겐, 중국의 샤오펑과 손잡고 전기차 E/E아키텍처 생산 (24/07/24, IMPACTON)
- 스텔란티스, 中 립모터에 2조원 투자...중국시장 공략 강화 (23/10/27, 뉴스핌)
- 中 자동차 시장은 완전개방…외국기업 100% 소유 가능 (21/12/28, 서울경제)
- Vehicle Exports from China by VOLUME (2024, ECG)
- Tesla CEO Musk: Chinese EV firms will 'demolish' rivals without trade barriers (24/01/26, Reuters)

글 일렉트릭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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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찌릿하게 읽는 테슬라와 전기차 시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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