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입니다.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엑셀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현대차의 미국 진출이 시작됐던 때가요. 1994년 세피아로 미국에 데뷔했던 기아차와 함께 2004년 누적 판매 500만 대를 넘기더니 2018년엔 2000만 대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진출 32년 만이죠. 그리고 올해 누적 판매 3000만 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서 판매량으로 GM, 토요타, 포드 다음가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품질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데요. 2020년 텔루라이드, 2021년 아반떼, 2023년 EV6, 2024년 EV9 등 지난 5년간 여러 모델이 북미 올해의 차(NACTOY)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작년 11월엔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Power)가 발표한 ‘2025 잔존가치상(ALG Residual Value Awards)’에서 코나 일렉트릭이 전동화 SUV 부문, 텔루라이드가 3열 중형 SUV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죠.
현대차와 기아는 새로운 최첨단 거점 현대자동차그룹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생산해 미국 시장에 대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우려가 컸던 상황에서 백악관의 환영과 함께 화려하게 새로운 공장의 스타트를 끊었으니까요.
관세는 노노?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현대차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 것’이라며 어떤 관세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주요 분야에 210억 달러(약 30조 8900억 원)을 투자하거든요. 참고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 기업 중 첫 번째 대규모 투자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 루이지애나 주에 건설될 제철소의 소식을 들은 백악관에서 그룹의 미국 투자 계획을 워싱턴에서 발표하자고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루이지애나에 만들어질 제철소는 저탄소 자동차 강판에 특화된 공간이라고 합니다.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건설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의선 회장은 그린 스틸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걸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강판 공급 현지화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죠.
제철소 건설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로봇,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과 관련된 미국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슈퍼널, 보스턴다이나믹스, 모셔널 등 현지 법인의 사업화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60억 달러(약 8조 8000억 원)를 배정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자국 내 제조업 재건에 집중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하면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기반을 다진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역시 HMGMA.
3번째 미국 생산 기지의 특징 3가지
지난주 준공식이 진행됐던 HMGMA는 최첨단 스마트 팩토리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자리 잡은 이 공장을 두고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의 미래를 현실화하는 제조 혁신 거점으로 소개하더군요.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 센터(HMGICS)에서 실증 개발한 최첨단 제조 혁신 플랫폼을 비롯해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등 여러 계열사의 기술 역량이 모인 곳이라서요.
총 부지 면적 1176만 제곱미터. HMGMA는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을 융합한 제조 혁신 플랫폼을 활용해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9을 생산 중입니다. 현재 연간 생산은 30만 대 정도이며 앞으로 전기차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모델로 생산 라인업을 확대할 예정이라네요. 더불어 생산 능력을 50만 대까지 늘리고 이에 맞춰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면서 배터리팩과 같은 전기차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북미 모빌리티 시장 선도를 위해 마련된 이곳의 특징을 세 가지로 추려봤습니다.
첫 번째는 로봇. 프레스, 차체, 도장처럼 차의 몸통이 될 강판을 성형하고 용접하는 현장에는 수 백대에 이르는 로봇 장비들이 작업을 담당합니다. 프레스 공장에서는 최고 성능의 6800톤 급 초대형 고속 프레스(서보모터에 의해 구동되는 프레스) 5대가 내려찍고 자르는 과정을 반복하며 강판을 패널로 만듭니다. 90%가 넘는 공정이 자동화로 이루어지며 빠르게 옮기는 장치도 있어 작업 정밀성과 효율성이 높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입니다. 여기에 비전 품질 검사와 AI 기반 품질 관리 시스템도 도입해 품질 유지에도 힘을 쏟는다고 하는군요.
만들어진 패널들은 100%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통해 다음 공정으로 옮겨지는데, 자동 적재 시스템(ASRS)은 패널을 차종 별로 분류해 팔레트에 싣고 자율주행 운반 로봇(AGV)은 이 팔레트를 다음 공정으로 가져갑니다. 차체 공장은 로봇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용접과 조립 공정을 거쳐 강판 패널들이 자동차의 외관으로 탈바꿈하는 곳인데요. HMGMA의 차체 공장은 100% 자동화. 도어 간격/단차 자율 보정 장착 시스템은 차체 공정 중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고. 로봇과 비전, AI 기술을 토대로 균일한 품질을 구현하는 기술입니다.
도장 공장도 도료 도포부터 품질 검사까지 높은 수준의 자동화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다고 하네요. 도포 자동화 시스템은 균일한 도장 품질을 실현하고, 특수 도료 공급 설비는 24개 이상의 다양한 색상을 적용하는 작업에서 효과적이죠. 이처럼 프레스, 차체, 도장 등 자동차 생산 공정 과정마다 로봇의 참여를 늘려 작업자의 업무 강도를 낮추면서 효율성과 정밀성을 끌어올려 고품질 생산을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인간 친화적. 기존 공장에서 작업자가 부품을 들거나 윗보기 작업을 반복해야 했었던 공정에서 신체 부담을 줄이고 부상도 예방하는 인간 친화적 공장이라는 것. 자동차 생산을 마무리 하는 작업은 의장 공장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에서 도장 공정까지 마친 차체에 2만~3만여 가지에 달하는 각종 자동차 부품 조립됩니다. 내부에 부품들을 채워야 하는 세밀한 업무가 많아 생산 과정 중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공정이라고 할 수 있죠. HMGMA는 여기를 인간 중심 근무 환경으로 꾸몄다는데요. 일부 구간에선 차체가 컨베이어 벨트 대신 AGV를 타고 이동한다고 합니다. 모델과 옵션에 따라 필요 없는 공정을 건너뛰고 바로 목적지로 이동하는 경로 변경으로 점차 바꿔나갈 계획이래요.
세계 최초로 적용된 도어 자동 탈거 및 장착 시스템은 과거 작업자들에게 의존해야 했던 도어 단차 품질 개선과 관리가 자동화된 사례입니다. 도장 공장에서 넘어온 차체의 도어를 열고, 고정 볼트를 풀어 차량에서 떼어내는 과정을 로봇이 수행합니다. 도어를 다시 붙이는 작업에서는 14대의 로봇이 협동 제어를 통해 장착을 마무리하고요.
차체와 결합될 각종 자동차 부품은 200여 대의 자율이동로봇(AMR)에 실려 각 공정에 투입됩니다. AMR은 SLAM(동시 위치 측정 및 지도 작성) 기술을 바탕으로 물류 창고에서 각 공정으로 목적지까지 경로를 생성하며 부품을 배달하고요. 현대차그룹은 HMGICS에서 양산성 검증을 완료한 AMR 관제 시스템(H-ACS)을 HMGMA에 적용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 겁니다. 이후 완성된 자동차는 주차 로봇(Parking Robot) 위에 실려 무인 품질 검사를 거쳐 지정된 장소까지 이동됩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운전해 차를 옮겨야 했었죠.
현장 작업 자동화와 함께 작업 환경 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과거 공장 상부의 운반 구조물에 실려 차체가 이동했던 설비 중심의 차체 공장은 자율주행 운반 로봇(AGV)을 활용한 차체 운반 덕에 상부 구조물 줄일 수 있게 되어 자연 채광이 실내로 더 들어올 수 있게 됐다네요. 아무튼 HMGMA는 AI 기반 각종 시스템과 자율로봇 등을 완벽히 통제하고, 공장의 생산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운영에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장으로 구축되는 동시에 인간친화적인 생산 현장을 지향한다는 게 두 번째 특징.
마지막으로 (현벤저스) 어셈블. HMGMA는 완성차 생산 공정은 물론 각종 핵심 부품을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개별 거점, 나아가 첨단 생산 시설의 운영을 가능케 하는 그룹사의 기술 역량을 아우르는 제조 현장이나 다름없습니다.
HMGMA 부지 안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배터리 시스템/모듈 공장에선 SUV 용 대용량 배터리를 포함하는 배터리 시스템과 맞춤형 모듈이 생산됩니다. 또한 HMGMA 인근에 전기차 핵심 부품인 PE(Power Electric) 시스템을 만드는 별도의 거점을 마련해 미국 시장의 전동화 트렌드 공략에 적극 나설 거라고 합니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담당인데, 물류 센터는 수요 기반의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보유 재고와 필요량을 예측하는 등 제조에 필요한 부품 공급을 관리합니다. 비전 카메라를 장착한 자율 비행 드론이 물류 센터를 선회하며 부품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부품을 AGV에 실어 제조 컨베이어에 연결하고 같은 속도로 이동시키는 원키트(One-Kit) 물류 시스템을 통해 다 차종 유연 생산을 지원합니다.
현대제철 HMGMA 공장은 초고강도강을 포함해 자동차용 강판을 가공해 프레스 공장으로 공급합니다. 현대제철이 공급하는 초고강도 자동차용 강판은 전기차 소재에 필수적인 경량화와 충돌 안정성을 인정받았으며, 생산량 확대에 맞춰 공급량을 점차 늘려 나갈 예정이다.
현대트랜시스 HMGMA 공장은 연간 42만 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췄으며 아이오닉 5, 아이오닉 9에 탑재되는 시트를 생산합니다. 오토 도킹 시스템(Auto Docking System), 이형제 도포 로봇(Release agent Spraying robots) 등 최신 자동화 설비로 생산 프로세스를 구축했다고.
이 밖에 현대위아는 로봇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HMGMA의 물류 자동화를 지원합니다. 그리고 향후 현대차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올 뉴 아틀라스’가 투입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아틀라스의 AI 학습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추후 아틀라스가 부품 운반 등 단순 반복 작업에 투입될 경우 작업자의 부담을 덜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에는 HMGMA, 한국에는?
미국만 바라보는 건 아닙니다. 올해 사상 최대인 24조 3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만큼 국내 투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연구개발(R&D) 투자 11조 5천억 원, 경상투자 12조 원, 전략투자 8천억 원인데요. 연구개발 투자는 제품 경쟁력 향상, 전동화, SDV, 수소 제품 및 원천기술 개발 등 핵심 미래 역량 확보가 목적입니다. 경상투자는 EV 전환 및 신차 대응 생산 시설 확충, 제조 기술 혁신, 체험 거점 등 인프라 보완을 위한 거고요. 전략투자는 자율주행, SW, AI 등 핵심 미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EV 전용 공장 건설에도 큰 규모의 투자가 집행된다고 하는데, 올해 하반기 기아 화성 EVO Plant를 완공하고 PBV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생산에 돌입한다네요. 2026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현대차 울산 EV 전용 공장에서는 초대형 SUV 전기차 모델을 시작으로 다양한 모델을 양산할 계획이고요.
이와 함께 3월 중 서울시와 협상을 본격화한다고 알린 만큼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듯합니다. 현대차그룹은 GBC를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개발한다는 구상입니다. 최근 축구장 두 배에 이르는 도심 숲도 GBC 안에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히기도 했죠. 도심 숲 형태의 개방형 녹지공간은 서울을 상징하고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의미가 담긴 은행나무 단일 수종으로 군락을 형성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차 만들고 건물 짓느라 참으로 바쁜 현대차그룹입니다.
글 이순민
사진 Hyundai, HK PR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