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특집 전문가 칼럼 > 메르세데스-AMG E53 쿠페 4매틱+ , 무한한 신뢰를 남기다

메르세데스-AMG E53 쿠페 4매틱+ , 무한한 신뢰를 남기다

크로스오버의 시대, 자동차의 형식 구분이 점차 둔화되었다. 쿠페의 성격을 지향하는 세단, 세단의 안정감을 담은 SUV, 더 나아가 쿠페의 스타일을 섞은 SUV까지 많은 브랜드들은 틈새시장을 파고들기에 집중한다. 모터리제이션은 더욱 다양한 소비자들의 원츠를 공략해야 했고, 기술의 발전은 자동차의 형식에 따른 물리적 제약을 완화시킨 것이다. 반면 정통성을 답습하던 차종들은 판매 부진을 겪기 시작한다. 자동차 시장의 표준이던 '세단'부터 정통파 쿠페까지 수요부진과 수익성 결여 등의 사유로 많은 제조사들이 생산을 마다한다.

이번 주제는 E클래스 '쿠페'다. 2인승 경마차라는 어원을 지닌 쿠페는 가벼운 중량과 낮은 무게중심으로 일반적인 승용차대비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함양해 왔다. 또, 프레임리스 도어와 같이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으로 일부 소비자들의 '패션카'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상당한 양의 수요는 4도어 GT 개념의 세단이나 SUV로 이탈되고 있다. 브랜드 가치 재고라는 명목으로 생산을 이어가던 일부 레거시 브랜드들도 이제는 어렵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순수전기차 사업에 집중되고 있고, 테슬라는 '브랜드'가 아닌 '제품'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각 세그먼트마다 2도어 쿠페 모델을 양산한 바 있다. 2022년, 대한민국 시장에 데뷔한 메르세데스-AMG E53 쿠페도 E클래스 세단 'W213'의 MRA 플랫폼을 베이스로 했다. 아마 마지막 E클래스 쿠페가 될 것이다. 다임러 AG는 S클래스 쿠페를 우선 단종시켰고, 기존 E클래스와 C클래스 쿠페의 포지션을 통합한 'CLE 클래스'를 새롭게 공개할 예정이다.

시승 차량의 정식 명칭은 메르세데스-AMG E 53 COUPE 4 MATIC +다. 메르세데스-벤츠의 2세대 E클래스 쿠페를 AMG에서 전담하여 튜닝했다. AMG의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브레이크 세팅 등 주행성에 대한 많은 차별화를 보인다. 국내 시장에서는 단일트림으로 판매중이며 2023년 연식변경을 거치며 나이트 패키지를 전사양 기본화 했다. 이 나이트 패키지는 일반적인 크롬 딜리트 옵션이라 간주할 수 있다.

E클래스 쿠페는 쿠페치고는 점잖은 디자인다. 그것도 메르세데스-AMG의 커스텀 모델인데도 대놓고 과시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튼 AMG의 익스테리어 패키지는 날카롭다. 상징과도 같은 세로형 파나메리카나 그릴과 선명한 그래픽을 갖춘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검은색 차체와 나이트 패키지의 올블랙 컬러는 진중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두꺼운 루버로 장식된 에어인테이크와 거대한 엔진 품은 파워돔 보닛까지, 고성능 E클래스 쿠페의 퍼포먼스는 확실히 다르다.

어쩌면 전면부 디자인은 4도어 세단과 큰 차이가 없기도 하다. 쿠페의 진가는 우아한 루프라인에 있다. 메르세데스가 제시하는 '관능적인 순수미' 철학은 밋밋하지만 자연스러운 프로파일을 추구한다. 역시 쿠페답게 윈도우 라인이 거의 아치형에 가깝고,프레임리스 도어와 플래그 타입 사이드미러까지 쿠페의 정석을 보인다. 샤크노즈 스타일의 전면부는 공겨적인 이미지인 반면, C필러에 다가설 수록 절제미와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5스포크 휠과 레드 캘리퍼의 조화는 스탠스의 완성이다.

매끄러운 바디라인은 어떠한 각도에서도 뚜렷한 리플렉션을 보여준다. 이 반사광이 쿠페의 우아한 윤곽선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리어 펜더와 숄더라인의 볼륨, 덕테일 형상으로 맺어지는 리어엔드가 쿠페의 매력을 고조시킨다. 수평형으로 늠름한 인상을 남긴 후미등에는 OLED가 담겨있다. 카메라 장비와 트렁크 버튼을 엠블럼에 통합시킨 것도 메르세데스다운 섬세함이다. AMG의 공격적인 디퓨져와 서클타입 머플러 팁이 스포한 감각에 방점을 찍는다. 전체적으로 우아함이 본질같지만 곳곳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AMG의 공격성이 E53만의 매력인듯 싶다.

인테리어도 디자인도 E클래스 세단과 유사하다. 12.3인치 병렬 디스플레이 '와이드 콕핏'으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구축했다. 센터페시아에는 최소화된 버튼만 남아있고, 변속기도 칼럼기어 형식으로 매우 심플하다. AMG 전용 D컷 스티어링 휠의 버튼들도 터치식으로 작동되는데 다행히 부자연스러운 감각은 아니다. E53부터 제공되는 드라이브 모드 선택 다이얼이 운전에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AMG가 튜닝한 리얼 카본 대시보드 패널과 터빈 블레이트를 형상화한 에어벤트, 낮에는 은은하게 빛을 내는 엠비언트 라이트가 화려함을 이끌어낸다. AMG 액티브 멀티 컨투어 시트는 주행 모드에따른 최적의 착좌감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E세그먼트를 기반으로 하니 2열 공간도 쿠페치고 넓다면 넓은 공간이다. 절대적으로 편안하진 않다. 헤드룸, 레그룸 공간 자체가 좁다 보니 시트 포지션을 낮춰서 거주성을 개선하는 형식이다. 에어벤트와 컵홀더가 마련되어 있고, 2열 글래스도 개방이 가능하다. 2열 공간이 비좁은 만큼 트렁크 공간은 넉넉하며 당연 시트 폴딩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E세그먼트 쿠페라도 절대적인 오너드리븐 세팅이다. 두껍고 묵직한 도어를 여닫는 승하차감, 프레임리스 글래스와 소프트 클로징이 작동하는 매커니즘, 전동식 안전벨트가 탑승자를 감싸주는 순간 순간에서 프리미엄 쿠페의 낭만이 느껴진다.

명실상부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 메르세데스에서 고성능을 전담하는 AMG의 쿠페다. E53에는 기존 450트림에 사용되던 직렬 6기통 형식의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개량하여 탑재했다. 수치상의 최대출력은 435HP, 토크는 53Kg.M에 달한다. 변속기는 AMG의 9단 토크컨버터를 맞물리는데, 변속기와 엔진 사이에는 ISG를 탑재하며 구조가 꽤 복잡해졌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4매틱+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채택하지만 구동력을 5:5에서 0:10까지 후륜으로만 배분할 수 있다. 서스펜션 세팅은 전자제어식 댐퍼와 멀티 챔버 에어스프링으로 조율한다.

E53 쿠페의 주행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 5가지로 나뉜다. 기본적인 섀시 세팅부터가 굉장히 탄탄하다. 그럼에도 원한다면 ECS의 개입을 차단하고 후륜 측으로 만 구동력을 전달하는 '레이스 모드'를 작동시킬 있다. 고성능 자동차에 익숙치 않다면 굳이 추천하는 기능은 아니다.

엑셀을 부드럽게 밟아보면 묵직한 부밍 사운드가 들려온다. 가변 배기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AMG 특유의 중저음 음역대가 매력적이다. 높은 출력을 지닌 차량임에도 컨트롤은 쉽다. 페달을 지그시 밟아야만 폭발적인 토크감이 느껴지며 고성능 차량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앞서 언급한 메르세데스-AMG의 48V MHEV시스템은 단지 연비 향상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공인연비가 9km/l로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것 같지만, 주된 기능은 터보 엔진의 이질감을 지워내는 것이다. 48V 전압원은 슈퍼차저를 동작시킴으로써 공기 과급까지 소요되는 터보 래그를 상쇄한다.

E53 AMG의 공차중량은 약 2톤, 제조사에서 발표한 제로백은 4.4초다. 중량 증가를 감안하여 수많은 첨단 주행장비를 탑재하고, 그만큼 출력을 키워 완화시키는 느낌이다. 보통 '일상 주행'이라 표현하는 영역에서는 아무리 속도를 올려봐도 힘에 대한 결핍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흡기처럼 즉답적인 엔진 반응과 함께 AMG의 스피트 시프트 변속기도 스로틀 반응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특히 급제동 이후 다시 엑셀을 깊게 밟아보아도 변속기의 응답지연은 느껴지지 않았다.

스티어링 휠은 기본적으로 묵직한 감도를 갖춘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꽤나 무겁다 싶을 정도로 변화가 확실하다. 고속에서는 뚜렷한 안정감을 주지만 저속에서는 이따금 버겁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선회 감각은 약간의 오버스티어 경향이지만 4매틱+ 시스템은 노면과의 끈끈한 트랙션을 유지한다. 멀티챔버 에어서스펜션도 마찬가지로 운전자의 편안함보다는 차체 지지에 힘쓰는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에어스프링 탑재로인한 부드러움은 느껴보기 어렵고, 그저 단단한 승차감으로 차체 흔들림을 억제한다. 추가로 전자제어식 댐퍼는 ADS 를 지원하여 노면 변화에 따른 최적의 감쇠력으로 운전자에게 피드백을 준다.

그런 정교한 하체덕분에 아무리 속도계를 올려보아도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불안감이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속도감'은 없다. 대신 빠르게 움직이는 주변 환경이 현재 속력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것 같다. 차선 변경이나 급커브 구간에서도 시종일관 안정성을 유지한다. 흔들림이 억제되어 있으니 노면 충격도 큰 스트레스로 남지 않는다.물론 편안함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카치고 너무 긴장감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속도감이 잘 체감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훌륭한 N.V.H 성능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력은 B필러가 없는 하드탑 쿠페에도 온전한 차음 성능을 구현해낸 것이다. 오히려 속력을 올릴수록 신뢰도가 더해지는 하체, 운전자를 든든하게 지지하는 두터운 시트, 스피드 시프트 9단 변속기도 인위적인 충격을 강렬하게 남겨주지는 않는다.

즉, 아무리 AMG라도 '스포츠'라기 보다는 럭셔리 쿠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기본적인 승차감이 단단한 편이긴 하나 데일리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어쩌면 개인 성향에 따라 타 브랜드 전기차나 스포티 세단에 비해 부드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수준이다. 폭넓은 토크 밴드를 보여주는 엔진과 변속기는 여유로운 드라이빙에 최적화되어 있다. 베이스모델인 E클래스 쿠페가 '데일리 GT' 성격인 만큼, HUD나 AR 네비게이션, 서라운드 뷰, 인텔리전트 파일럿 컨트롤 등 고급 운전보조 장비들도 빠짐없이 탑재되어 있다. ADAS의 인식률도 훌륭한 편으로 '고성능' 딱지를 떼고 보아도 매력적인 쿠페임에는 확실하다.

무한한 신뢰를 주는 스포츠 쿠페다. 다소 중의적인 표현일 수 있다. 경쾌함보다는 안정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강력한 출력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덜어낼 수 있는데, 그만큼 순수한 재미보다는 디지털적인 완성도에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

메르세데스-AMG E53 쿠페를 시승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지에 따라 정말 만족스럽거나 다소 실망스러운 쿠페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엔진을 점화하는 순간 들려오는 우렁찬 배기음이 설레임을 자극하지만, 생각보다는 인위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가 아니라고 느꼈다. 어쩌면 젠틀한 디자인부터 공격적인 성격과 보수적인 접근이 섞여있다. 아무튼 데일리 GT로는 탁월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쿠페의 우아함과 AMG의 주행성에 걸쳐 메르세데스의 호화로운 기술력이 집약된 차종이다.

주행성을 강조하는 쿠페인 만큼 고성능 AMG의 인기는 당연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지금의 입장은 다르다. 오히려 노골적인 주행감성을 바라는 소비자들이 E 쿠페를 선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브랜드로나 실제 차량의 성격으로나 호화로운 오너 드리븐 쿠페를 찾는 대중들에게 특화되어 있다. 본질이 달랐다. E53은 AMG의 손길이 더해졌지만 고유의 성격을 뒤바꾸지 않았다. 고성능 엔진을 탑재했지만 잔존하는 데일리카의 성향이 곧 E53 쿠페의 경쟁력 같다. 쿠페는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운전자들만 찾는다는 고정관념을 지워내야겠다.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